술 전쟁 선봉에 선 주류 오너 3~4세…응답하라 7080(70년대 후반~80년대 후반 生)
안재형 기자
입력 : 2016.01.26 18:13:26
2014년 통계청이 발표한 가구당 월평균 주류 지출액은 1만1260원이었다. 그러니까 마트 등에서 직접 술을 구입해 집에서 마시는 술값이 1만원을 넘어선 것이다. 2003년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된 이후 역대 최대치였다. 당시 경제 전문가와 언론은 와인이나 수입 맥주처럼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술 종류가 늘었고, 경기침체 속에 회식이 줄어든 탓이라고 분석했다. 그럼 2015년엔 어떨까. 공식적인 집계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업계에선 “더 먹었으면 먹었지 덜 먹진 않았다”는 반응이다. 우선 2014년의 활황 요인이 변치않았고, 소주부터 위스키까지 목 넘김 부드러운 순한 술(저도주)이 인기를 끌면서 오히려 애주가가 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주류시장은 순한 술이 지배했다. 위스키는 저도주 열풍이 불었고, 소주의 알코올 함량이 낮아졌다. 하이트진로가 ‘참이슬’을 17.8도로 내리자 롯데주류도 ‘처음처럼’의 알코올 도수를 17.5도로 낮췄고 9월엔 부산지역에 ‘참이슬 16.9도’가 출시되기도 했다. 소주리큐르 시장은 트렌드처럼 번져나갔다. 지난해 3월 롯데주류가 소주에 과즙을 섞은 14도 리큐르 ‘처음처럼 순하리’를 출시하자 하이트진로가 ‘자몽에 이슬’, 무학이 ‘좋은데이 블루, 레드, 옐로우’를 출시했다. 리큐르의 약진에 2012년부터 매해 약 5%씩 감소하던 소주시장은 약 2.8%나 판매량이 늘었다. 오랜만에 시장 상황이 호전되니 안팎의 시선이 경영전략에 집중되고 있다. 특히 주류업계 오너 3~4세의 약진에 업계에선 세대교체 바람을 주목하고 있다.
(위쪽부터) 박태영 하이트진로 부사장, 임지선 보해양조 부사장
▶경영 전면에 나선 오너가 3세
우선 국내 최대 주류 회사로 손꼽히는 하이트진로의 3세 경영이 본격화됐다. 창업주 고 박경복 명예회장의 손자이자 박문덕 회장의 장남인 박태영 전무(경영전략본부장)가 정기임원인사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하이트 측은 이번 인사에 대해 “변화와 혁신을 주도할 경영전략본부 역할을 강화하고 그 아래 신사업개발센터를 통해 차세대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1978년생인 박 부사장은 3년 전인 지난 2012년 경영관리실장(상무)에 임명되며 경영진에 합류했다. 이후 8개월 만에 전무로 승진하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영국 런던 메트로폴리탄대학에서 경영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경영컨설팅 업체 엔플랫폼에서 기업 인수·합병(M&A) 업무를 해오다가 하이트진로에 합류했다. 박 부사장은 하이트진로엔 지분이 없지만 하이트진로홀딩스 2대 주주인 맥주 냉각기 제조사 서영이앤티의 최대주주다. 박문덕 회장의 후계구도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최근 부라더 시리즈로 인기를 얻고 있는 보해양조는 지난해 4월 각자 대표로 선임되며 경영일선에 나선 임지선 대표이사(전무)를 부사장으로 승진시켰다. 업계에선 ‘잎새주’, ‘매취순’, ‘보해복분자’, ‘아홉시반’ 등의 제품으로 유명한 보해양조의 3세 경영이 탄력을 받게 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1985년생인 임 부사장은 고 임광행 보해양조 창업주의 손녀이자 임성우 창해에탄올 회장의 1남 2녀 중 장녀다. 임 회장의 자녀 중 현재 경영에 참여하는 이는 임 부사장뿐이다. 그녀는 미국 미시간대를 졸업한 뒤 파나소닉 인사팀장을 거쳐 2013년부터 보해양조의 모회사인 주정업체 창해에탄올에 상무로 입사했다. 이후 보해양조 영업총괄본부장을 거쳐 지난해 4월부터 유철근 보해양조 사장과 공동 대표이사로 재직해왔다.
지난해 보해양조의 매출 효자 ‘잎새주부라더’, ‘부라더#소다’, ‘복받은부라더’ 등 부라더 소주 시리즈 출시에 앞장서며 능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보해양조 측은 “임 부사장의 제품 기획과 네이밍 능력을 바탕으로 젊은 소비자층을 끌어들이고 있다”며 “이번 인사에 가장 중요하게 반영된 부분”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알코올 함량이 3%에 탄산을 함유하고 있는 ‘부라더# 소다’는 출시 초기 품귀현상을 빚으며 현재 탄산소주 시장을 이끌고 있다. 용기부터 탄산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페트병을 적용했다. 여기에 화이트 와인을 베이스로 풍미를 살리고 알코올 특유의 맛과 향보다 달콤함으로 승부했다. 보해양조 측은 “알코올 도수는 보해종합기술원에서 소다맛과 비율이 가장 좋은 도수를 연구한 결과 3도 도수를 맞췄다”며 “‘부라더#소다’ 출시를 계기로 주류의 새로운 장르 창출과 주류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보해양조는 임 부사장과 함께 정민호 전무를 신임 영업총괄본부장으로 선임해 경영은 임 부사장이, 전국 영업은 정 본부장이 각각 총괄하는 체계를 마련했다.
지난해 봄, 가짜 백수오 논란에 휩싸이며 자발적으로 100억대의 백세주를 회수하기도 했던 국순당도 정기인사에서 고 배상면 회장의 손자 배상민 상무를 영업총괄본부장으로 선임했다. 1981년생인 배 상무는 그동안 구매, 기획파트에서 업무를 담당해왔다. 지난해 11월 초 52만4220주(2.94%)의 국순당 지분을 취득한 그는 현재 최대주주인 배중호 회장 다음으로 지분이 많다. 가업승계에 대한 추측이 나오는 이유다.
‘좋은데이’ 컬러시리즈가 얻고 있는 영남의 대표적인 주류기업 무학은 지난해 3월 최재호 회장의 1남 1녀 중 장남 최낙준(1988년생) 씨가 등기임원에 오르면서 상무로 입사했다. 무학은 분기보고서에서 최 상무의 업무를 신임 글로벌 사업부장으로 표기했다. 부산과 울산, 경남 지역을 기반으로 ‘화이트’, ‘좋은데이’ 등의 소주를 판매하고 있는 무학은 지난해 5월 알코올 함량 13.5%인 과일 맛 소주를 출시해 두 달 만에 2500만병을 판매했다. 7월부터는 중국 수출을 시작하며 지난해에만 창사 이래 가장 많은 157명의 직원을 채용했다.
제주도의 터줏대감 ‘한라산’은 이미 4세 경영에 들어선 지 오래다. 올해로 4년차다. 1950년 고 현성호 대표가 ‘호남양조장’을 설립한 이래 아들인 고 현정국 회장이 물려받아 ‘한일’이란 상표로 한라산 소주를 일궜다. 이후 1992년 현정국 회장의 장남 현승탁 대표이사가 21년간 재임하며 사명을 ‘한라산’으로 변경했고, 현재 아들인 현재웅 대표(1977년생)가 이끌고 있다. 한라산은 2012년 국제주류품평회(IWSC)에서 국내 증류 소주로는 처음으로 ‘허벅술’과 ‘한라산소주’, ‘순한소주’가 금상과 은상을 수상한 후 본격적인 해외공략에 나섰다. 지난해에는 중국의 북경, 독북 3성, 청도, 중경지역과 일본에 진출했다.
▶와인업계도 확실한 자리매김
와인업계에선 매일유업 계열사 중 와인수입사인 레뱅드매일의 박소영 마케팅본부장이 경영수업 중이다. 박 본부장은 김복용 매일유업 창업주의 외동딸이자 김진희 평택물류 대표의 장녀다.
1987년생으로 미국 캘리포니아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라스베이거스에 자리한 UNLV (University of Nevada Las Vegas) 호텔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영국의 와인전문 교육기관인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에서 고급반 인증(Advanced Class certified)을 받았다. 국내 최대 와인수입 업체인 금양인터내셔널은 전 해태그룹 박건배 회장의 2남 1녀 중 장남인 박재범 대표가 이끌고 있다. 워낙 언론에 노출되는 걸 꺼려해 좀처럼 자사 행사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 박 대표는 샤토 와인을 발굴하는 등 성과를 인정받고 있다.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 학위를 받은 그는 2006년 전무, 2008년 부사장을 거쳐 2010년부터 금양인터내셔널 대표로 재직하고 있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경기 불황에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소비 트렌드와 거리를 두고 있던 주류 시장이 민감하게 바뀌고 있다”며 “경영 전문에 나선 주류업계 3~4세들이 여성과 젊은 층을 공략하며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