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는 사람이 중심이다.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 혹자는 증권사는 주식이나 금융 상품을 파는 회사라고 하지만 그게 아니라 콘텐츠를 파는 회사이다. 우리가 미리 공부해서 고객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알려주고 거기에 맞는 상품을 매치시켜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KDB대우증권은 독보적 PB하우스를 지향하고 있다. 콘텐츠에서 단연 앞서갈 것이다.”
지난 연말 국내 최고 명성의 증권사 수장이 된 홍성국 KDB대우증권 사장은 리서치센터장 출신다운 경영 철학을 밝혔다. 홍 사장은 대우증권에 근무한 29년 동안 애널리스트와 리서치센터장만 22년을 해온 국내 리서치의 산 증인이다. 그 경력을 살려 이제 전 직원을 자산관리 전문가로 키우겠다는 포부다.
“전국 PB가 56만명인데 대우증권 PB가 모두 1만등 안에 들면 게임은 끝나는 게 아닌가. 고객들에게 그만큼 양질의 서비스를 할 것이다. 모두들 리테일 사업이 돈이 안 된다고 줄이고 있지만 그동안 성과가 나올 수 있도록 투자를 하지 않았다. 콘텐츠를 열심히 가르치면 직원들 모두 충분히 자생력을 갖춘 독보적 PB가 될 수 있다. 게다가 지금 1000조원 이상의 자금이 저금리에 시달리고 있다. 훌륭한 PB들이 이 자금이 제대로 투자되도록 이끌어야 창조 경제를 여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콘텐츠 승부에 대한 공감대 형성
홍 사장은 리서치를 하면서 오랫동안 미래에 대해 연구했고 관련 책도 여러 권을 냈다. 그 경험이 회사 경영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동안 미래를 연구했는데, 미래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는 게 다라고 할 수 있다. 약간 비관적이다. 나는 회사에 대해서도 일반인들보다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최근 여러 가지 갈등과 어려움이 논의되고 있지만 사실 10여 년 전부터 경고했던 것이다. 미래가 더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에 우리가 왜 더 열심히 해야 하는지 직원들에게 알리고 회사를 더욱 알차게 경영해야 한다는 논리적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 정말 어렵고 힘들지만 더 열심히 해서 차별화할 수 있다. 비관적으로 보기에 그걸 극복하려고 그만큼 더 열심히 한다. 노력의 강도가 크니 좋은 결과를 낼 것이다.”
이런 복심이 있었기에 홍 사장은 지난 연말 취임 이후 상당 기간 자신의 색깔을 내지 않고 의견수렴 형식을 통해 회사가 나아갈 방향을 정했다.
“왜 이걸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직원들을 설득했다. 지금은 직원들 모두가 콘텐츠로 승부해야 하는 시기란 걸 알게 됐다. 절실함을 깨달았기에 잘될 것으로 본다.”
그러면서 직원들이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도 설명했다.
“첫째, 세계 경제가 어떻게 되고 국내 경제는 또 어떻게 되며 금리는 현재 어느 수준이기 때문에 우리 경제는 어떻게 될 것이고 주가는 어떻게 간다는 식의 장기적인 전망이 있어야 한다. 직원이 그것을 가지고 고객을 찾아가 지속적으로 대화하고 그것으로 고객에게 도움을 줘야 한다.”
교육 커리큘럼은 기존에 다 있는 것이라고 했다. 다만 공부를 하지 않았을 뿐이란 것. 특히 직원들이 아는 지식을 현장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현실에 맞는 교육을 할 것이라고 했다.
첫 번째 공채 출신 사장
홍 사장이 이처럼 애착을 갖고 전 직원을 독보적 PB로 키우려는 것은 첫 번째 공채 출신 사장으로서 책임감이 크기 때문이다.
“국내 증시는 공채 출신이 증권사 CEO가 되기엔 그동안은 역사가 짧았다. 그래서 공직자들이 많이 왔다. 이제는 공채 출신이 올라갈 시기가 됐다. 내가 그 첫 영광을 안았다. CEO가 공채 출신이라면 그 조직에서 가장 오래 근무했다는 얘기이니 그만큼 로열티가 강하지 않겠나. 그만큼 책임감도 강하다. 공채 출신 뽑았더니 못한다는 말을 들을 수는 없다. 그러면 다음 자리를 맡을 후배에게도 부담을 주게 된다. 공채라서 조직 운영은 편하지만 책임감의 무게는 더욱 크다. 3년 다닐 분과 30년 다닌 사람의 차이라고나 할까.”
특히 공채이기에 현재뿐 아니라 조직의 장래까지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직원들의 교육을 강화하는 것도 그래서다.
“증권사는 사람이 움직이는 조직이다. 고정자산이 많지 않고 유동자산이 대부분이다. CEO가 기업 문화를 어떻게 잘 만드느냐에 따라 실력 격차가 크게 벌어진다. 증권사는 (사람만 잘 키우면) 리소스 없어도 100% 신장하는 게 어렵지 않다. 반대로 반 토막 나기도 쉽다. 그 대응을 하는 것도 CEO의 책무다.”
공채 출신 사장으로서 직원들의 희생을 요구해야 할 때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도 밝혔다.
“(나는) 조직에서 누가 언제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정확히 안다. 그래서 그때그때 힘든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격려하고, 운이 좋아 성과가 좋은 사람은 누르면서 조율한다. 직원들 입장에선 사장이 자기의 과거를 잘 안다면 부담감이 클 것이다. 자기의 민낯을 다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직원들 모아 놓고 부탁하면 신뢰하고 따라온다.”
대우증권은 한때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증권사였다. 그 명성을 회복할 수 있을지가 궁금했다.
“지금은 외형이 우리보다 큰 곳도 있다. 2등으로 출발해 따라잡는 것이니 더 좋다. 다만 1등 한다고 할 때 과거 현재 미래의 1등은 차이가 크다. 과거 증권사는 주식 위주였으나 지금은 다양한 금융상품이 나오고 있다. 주식뿐 아니라 자기자본을 이용한 투자도 다양하다. 명성은 과거와 같을지 모르나 질적으로 1등 하기는 쉽지 않다. 그만큼 더 많이 공부하고 노력해야 한다.”
한국 주식 투자 너무 적어
홍 사장은 한국의 주식 비중은 절대적으로 적고 투자 문화도 새로 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개인의 주식 투자 비중이 매우 낮다. 주식 투자를 하지 않아 나라까지 어려워진 일본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일본 정부는 너무 어려워지자 아베노믹스라는 무리수까지 두었다. 우리도 이 정도로 주식 투자를 하지 않으면 일본 꼴 날 수 있다. 부동산도 떨어지고 금리도 떨어지는데 무엇으로 버나. 주식 비중을 대폭 늘려야 한다.” 그는 특히 한국 주식이 아주 저렴하다고 덧붙였다.
“아무리 미래가 어렵다고 해도 한국 증시는 여전히 싸다. 상대적으로 강남 부자들의 주식 비중이 높다. 미국도 마찬가지로 부자들이 주식 투자 비중이 높다. 문제는 이것이 강남 밖으로 확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식 투자를 더 늘려야 한다.”
홍 사장은 한국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투자 철학이 없다며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투자 문화와 관련해 첫째, 개인들이 주식 비중을 줄이는데 이 비중을 늘려야 한다. 둘째, 어떻게 투자할지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거래소나 금융투자 회사가 함께 힘써야 한다. 우리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투자 철학이 없다. 주식을 위험자산이라고 하면서 투자를 제한하는 곳이 많은데 산업화 역사가 짧아서다. 아직도 내부 규정 때문에 증권사 거래를 하지 못하는 기관투자가가 많다. 그런 몰이해를 개선해야 한다.”
세계 경제문제는 부채
세계 경제에 대해 홍 사장은 근본적 문제가 부채 증가라고 지적했다.
“이번 위기의 본질은 부채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급한 부채는 정리되고 있지만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 미국만 (부채가) 줄었다. 다른 나라는 그대로인데 그게 줄어야 안정을 찾는다.”
아직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다는 해석이다. 특히 아베노믹스에 대해선 극도로 비관적으로 평가했다.
“일본의 올해 상반기는 괜찮지만 시간이 지나면 아베노믹스의 후유증이 나타나고 궁극적으로 실패할 것이다. 한계 상황에 부딪치면 어려워진다. 부채가 과도하게 늘었고 고령화로 소비가 늘어나지 않는다. 일본 산업이 의외로 부실해 국제 경쟁력이 약하고 일본 정부의 움직임이 둔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국가 부채가 커서 정부 지출을 더 이상 늘리기 어렵다. 결국 긴축을 하거나 세금을 인상해야 하는데 둘 다 경제가 어려워진다. 지금 일본 국채는 일본중앙은행만이 사주고 있다. 일본은 비정상적 구조가 돼가고 있다. 일반적으로 부채의 임계치를 GDP의 90%로 보는데 일본은 이미 250%나 된다. 그래도 끄떡없는 게 아니라 비정상적인 상황이 쌓이면 언젠가는 무너진다고 봐야 한다.”
그는 일본 공적연금은 수익이 나지 않자 일본 국채를 던지고 주식을 사기 시작했는데 그 주식마저 떨어질 경우 일본은 헤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진단했다. 그리스에 대해서도 그는 아주 비관적으로 내다봤다.
“나는 처음부터 그리스는 간다고 봤다. 유로존 탈퇴는 언젠가 한다. 이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한다.” 그리스건 일본이건 당장 무너지지 않더라도 점점 무너질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 그 전에 대응하고 체질을 다져야 한다는 게 그의 논리다.
“지금 (한국도) 위기가 오는데 고령화는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처음이니 잘 모르기에 거기에 맞춰 더 대비해야 한다.”
지수는 횡보, 그러나 전문가가 요구되는 장
리서치 전문가인 홍 사장에게 올해 시장 전망을 물었다.
“종합지수는 올해도 그대로 1850에서 2050 범위에서 움직일 것이다. 다만 시장의 변수가 많다. 그렉시트 쇼크나 달러 강세가 나타나면 이머징 마켓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그럴 경우 100포인트 정도 더 떨어질 수도 있고 반대로 상황이 좋아지면 100포인트 정도 더 오를 수도 있다. 다만 중심은 1850에서 2050으로 본다.” 그렇지만 지수와 상관없이 지금은 전문가의 조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수의 변동성은 작지만 회사들 간의 경영성과 차이는 크게 난다. 그만큼 기업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이 필요하다. 지수가 갇혀 있어 전문가의 깊이 있는 장기적 뷰가 필요한 시점이다. 중소형주 상승은 새로운 형태의 산업이 부상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지수영향이 큰 대형주의 하락은 모멘텀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조조정이 끝나가고 더 이상 나빠지지 않을 것이란 점은 긍정적 요소가 될 것으로 본다.”
홍 사장의 자기관리
말단 사원으로 시작해 국내 굴지의 회사 CEO가 된 그에게 사회 초년생들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자기관리에 대한 조언을 부탁했다.
“첫째, 어떤 일이든 주인의식을 가지고 하라는 것이다. 내 일처럼 하라는 얘기다. 남이 시켜서 하지 말고 스스로 알아서 하라. 이게 내 좌우명이기도 하다. 둘째, 남들보다 확실히 잘하는 한 가지가 있어야 한다.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나는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읽었다. 이를 통해 견문도 넓혔고 미래학을 하는 계기가 됐다. 세상을 미리 보는 게 리서치와 연관이 있다. 리포트는 좁고 짧게 보는데 책은 넓고 길게 봐야 한다. 이 두 가지가 서로 보완돼야 한다. 셋째, 돈이나 명예를 중시하지 않았다. 나도 과장 지나서는 스카우트 제의를 많이 받았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한 분야에서 오래갈 수가 없다. 객이 아니라 주인이라고 생각했기에 옮기지 않았다. 넷째, 필요한 희생을 했다. 특히 금전적 희생을 했다. 나는 아직도 도봉구에 살고 있다. 남들은 출퇴근에 시간 많이 걸리지 않느냐고 하는데 나는 그 시간에 책을 읽는다.”
그러면서 우이동에 오래 살며 등산하고 체력을 다진 게 정신 건강에도 아주 좋다고 추천했다.
“산에 가서 1만보를 걸으면 1만번 갈등을 한다. 걷다보면 누구나 힘들게 된다. 그때마다 이제 그만하고 내려가자는 마귀의 유혹을 받는다. 그걸 걸음마다 넘는다. 나는 그걸 마음의 근육 단련이라고 하는데 아무튼 그러면서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바르게 살게 됐다.”
그에게 감명 깊게 읽은 책을 물었다.
“제레미 리프킨 연작이다. <육식의 종말>, <소유의 종말>, <노동의 종말> 과 같은 종말 시리즈가 많은 영향을 줬다.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세계 체제 분석>, <이행의 시대> 등도 영향을 많이 준 책이다.”
그렇지만 딱 이런 책이라고 추천하는 것은 사양했다.
“흔히들 나를 바꾼 한 권의 책 운운하는데 사실 책 한 권으로 나를 바꾸기는 어렵다. 본인의 의식을 바꾸려면 적어도 100권 정도는 읽어야 한다. 다만 과거 고전보다는 프랜시스 후쿠야마나 제레미 리프킨 등의 저서를 읽고 최근 이론을 접목해 본인의 사고의 틀과 철학을 정립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나는 오래된 책을 안 읽는다. 대부분 인구가 늘어나는 것을 가정해서 쓴 책들이기 때문이다. 현재에 맞는 책을 보고 거기에 기초해서 본다. 지금은 역사의 변곡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