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효원로 1번지, 팔달산 아래 자리한 경기도청에 들어서니 ‘언제나 민원실’이 북적북적하다. 이름 그대로 24시간 연중무휴로 운영되는 경기도청 민원실은 도민들의 고충과 불만을 비롯해 여러 행정 서비스가 진행되는 현장이다. 그곳에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모습을 드러내자 민원인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제가 격주로 금요일 이 시간에 이 자리에 있습니다. 오늘 말씀하신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다시 오세요.”
“저희가 책임지고 해드릴게요. 여기 담당 과장님이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도에서 해드려야죠. 힘내세요.”
40대 회사원부터 80대 촌로까지 다양한 이들의 갖가지 민원을 접한 남경필 도지사가 “어떻게든 도와드리겠다”며 먼저 손을 내미니 억울하다고 말하던 이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격주로 금요일 오전 10시에 진행되는 ‘도지사 좀 만납시다’는 그렇게 2시간 동안 10여 명의 민원을 해결했다. 남 도지사는 되는 건 된다고, 안 되는 건 법이 허용하는 한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솔직히 말했다. 도지사 얼굴 처음 본다는 섬마을 아저씨는 “이런 경험은 생전 처음”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취임 첫 해를 보낸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도정 운영이 화제다. ‘파격’이란 수식어도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우선 당선과 동시에 추진한 야당과의 연합정치(연정·聯政)가 결실을 보였다. 올해는 경기도의 예산 편성을 여소야대의 도의회와 함께할 계획이다. 이른바 연정의 확대다. 취임 후 처음 진행된 인사는 “사람을 평가하는 데 몇 개월로는 어렵다”며 관여하지 않기도 했다. 과연 남경필식 도정의 원칙은 무엇일까. 그는 “모든 정책의 지향점은 수요자인 도민에게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취임 첫 해를 보냈는데, 그간 소회가 궁금합니다.
국회에 있을 땐 새로운 시도를 하려면 법 개정이 필요했어요. 하지만 경기도는 현장입니다. 도민들이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변화를 바로 시도할 수 있습니다. ‘경기도부터 하나씩 바꿔 나가자’라는 생각으로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일과가 눈코 뜰 새 없는데, 퇴근 후에는 어떻게 지내십니까.
바쁘죠(웃음). 아침은 묵상하면서 시작합니다. 오전 6시에 일어나는데 1시간 정도는 오롯이 제게 주어진 시간이에요. 그 시간에 성경도 보고 교훈이 담긴 글귀를 읽으면서 마음을 다잡습니다. 오바마 미 대통령도 묵상으로 아침을 시작한다는데, 제게 이 시간은 바쁜 일정에 휩쓸리지 않게 도와주는 재충전의 시간입니다. 저녁에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데, 도정과 관련된 민간 전문가들을 만나 자문을 구하고 있어요. 그러다보면 하루가 마무리됩니다.
취임 첫 해에 기억에 남는 일을 꼽으신다면.
도지사를 하면서 가장 보람 있는 시간이 금요일 오전에 갖는 ‘도지사 좀 만납시다’ 입니다. 이 시간에는 도청 민원실에서 직접 민원인을 만나 다양한 사연을 듣고 있습니다. 상담을 통해 제가 도민들의 말씀을 듣고 해결한다는 면도 있지만, 거꾸로 제가 많이 배우고 있어요. 도민들이 공무원에게 바라는 점은 무엇인지, 어떤 점을 힘들어 하는지 똑똑히 배웁니다. 소통 과정에서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고 만족하는 모습을 보면 보람이 크죠.
권력은 나눌수록 커지는 것올초 취임 후 첫 인사가 있었는데, 전혀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도정 운영에서 도지사의 핵심 역할은 구조와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사도 마찬가지죠. 도지사로서 인사 원칙의 큰 틀을 정하고 세부적인 인사는 원칙에 따르면 됩니다. 사람을 평가하는 데 몇 개월로는 어렵다는 생각에, 취임 후 6개월 만에 단행된 첫 인사는 기존의 인사평가 시스템에 따라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후속 인사는 인사혁신토론회를 거쳐 새롭게 정한 원칙을 적용했습니다.
첫 인사 후에 공무원 대표들과 인사 혁신을 위한 비공개 100분 토론을 진행했는데, 현장에서 일부 부서의 ‘승진 독식’에 불만이 제기됐다고 들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소외받는다고 생각하는 직원들 수를 최소화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인사혁신토론회를 열어서 직원들의 허심탄회한 속내를 들었습니다. 직급별, 직능별로 요구가 다양했는데, 기술직 인사에 대한 형평성 부족, 자리 이동이 잦아 전문성을 키우기 어렵다는 점, 북부청 직원이나 여성 공무원의 상대적인 소외감 등이 공통적인 불만이더군요. 그래서 토론회를 거쳐 기회 균등, 전문성, 형평성, 배려를 강조한 4대 인사 원칙을 마련했습니다. 이후에 실시한 인사에 이 원칙을 적용했더니 파격적이란 말이 나오더군요. 일례로 기술직 출신 인사과장도 나왔어요. 그동안은 인사, 총무 등 일명 ‘요직’이라고 하는 자리는 행정직의 전유물이었지요. 앞으로도 이 원칙은 지켜 나갈 겁니다.
취임 후 또 하나의 화제는 연정이었습니다. 여소야대의 도의회에선 쉽지 않은 결정인데, 정치적인 면에서 득과 실이 있을 법합니다.
지난해 12월에 야당에서 추천한 이기우 사회통합부지사와 경기도 연정의 첫걸음을 내디뎠죠. 올해는 4월부터 본예산을 편성하고 도의회와 함께 짜는 예산을 통해 혈세를 투명하게 쓰는 ‘예산 연정’도 할 거예요. 이렇게 상시 예산 편성으로 밀실 심사나 부실 심사라는 해묵은 문제를 해결할 겁니다. 기획 단계부터 각 지역 주민이 바라는 점도 반영할 수 있습니다. 수요자 중심의 예산 편성이 가능해지는 것이죠. 물론 도지사의 인사권과 예산 편성권을 도의회나 야당과 나누면 불편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하지만 권력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게 제 지론입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합니다. 야당과 소통하고 더 많은 사람의 의견을 모을수록 궁극적으로는 보다 옳은 길, 보다 먼 길로 나갈 수 있습니다. 국민 입장에서도 권력은 불편할수록, 나눌수록, 감시를 많이 받을수록 오히려 좋다는 생각입니다.
일각에선 여전히 연정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는데요.
전 국회에서도 꾸준히 권력 분산을 이야기했어요. 국회 선진화법이나 여야 중진대화와 같은 타협과 협치를 주장했습니다. 연정도 그 연장선상에서 제의한 것이죠. 제가 연정을 제의한 게 도지사 후보 수락 연설(2014년 5월 11일) 때였으니, 여소야대라는 선거 결과가 나오기 전이에요.
경기 연정의 첫 단추는 끼워졌고, 과연 연정의 최종 단계는 무엇입니까.
연정은 최종점이 아닌 시작입니다. 연정으로 안정된 도정을 기반으로 여야가 도민 행복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합심해야죠. 도민들에게 ‘연정으로 경제가 활성화되고 일자리도 늘어 살기 좋아졌다’는 평가를 듣는 게 목표입니다.
경기도의 새해 첫 달은 토론의 달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기존의 관례적인 신년 업무보고 대신 소통에 중점을 둔 ‘도정 공감 토론회’를 진행했어요. 34개 주제별로 도지사부터 관련 전문가, 실국장, 실무자까지 도지사 집무실에 모여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제 집무실에 걸려 있는 보드 위쪽에는 몇 가지 원칙이 적혀 있는데, 경기도정의 운영 원칙을 적은 것이죠. 바로 도정 공감 토론회를 통해 모두가 공감하며 정한 내용입니다. 제가 얻은 도정의 최우선 원칙은 ‘모든 정책의 지향점은 수요자인 도민이 만족하는 데 있다’는 거예요. 그동안 실국 보고는 ‘도지사가 원하는 것, 도지사 공약을 어떻게든 되게끔 하는 것’이 정책 목표였죠. 하지만 앞으로는 도민이 요구하는 정책인지, 혹은 도지사나 공무원이 원하는 정책인지를 명확히 구분해 도민을 위한 정책을 펼칠 겁니다.
증세 없는 복지, 토론 후 국민평가가 순서정계는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한 논의가 사그라들지 않고 있습니다.
증세 없는 복지는 이제 진지한 토론과 소통을 통해 선택을 해야 할 시점에 다다랐다고 봅니다. 지금부터라도 각 정당이 허심탄회하게 토론하고 입장을 분명히 정해서 국민의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복지에 대한 시각이 궁금한데요.
개인적으로는 현 수준의 복지를 유지하면서 구조를 합리화하기 위해선 복지와 조세 부담 모두 중간 수준인 ‘중복지, 중부담’으로 가는 게 맞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복지가 만족스러운 수준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그렇다고 북유럽과 같은 복지 선진국이 되기도 어려운 상황이거든요.
연말정산 파동에서도 나타났듯 경제 정책에 대한 국회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습니다.
클린턴 미 전 대통령이 1992년 대선 때 외친 구호가 있습니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구호죠. 클린턴은 이 구호로 당시 경제 침체에 대해 불만이 가득했던 미국 국민들 가슴에 불을 질렀어요. 하지만 전 이 시대, 대한민국의 구호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라는 것이죠. 정치가 좋아야 경제도 좋아집니다. 경제인들에게 가장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답은 세금이 아닙니다. 불확실성이에요. 투자를 하고 싶어도 정책이 어디로 갈지 모르니 할 수가 없다는 것이죠. 경기도가 연정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연정을 통해 정치가 안정돼 불확실성이 제거되면 경제인이 지갑을 열고 투자가 늘고 일자리가 증가하고 세수가 늘면서 복지까지 탄탄해지는 선순환이 일어납니다. 정치인들의 사명 의식, 최상위 구조의 정치 안정성, 정치적 갈등 구조의 해소가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인 남경필은 변혁의 아이콘이라고들 합니다. 이런 애칭이 간혹 부담스러울 때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전 소장파, 쇄신파라는 표현을 좋아해요.(웃음) 5선 중진이 쇄신파냐는 분도 있었는데, 오랜 시간 변하지 않고 변혁과 쇄신을 외친 데 대한 평가가 녹아 있는 것 같아서 오히려 기분 좋게 받아들였습니다. 중진이 됐다고 유불리를 따져 상황에 맞게 주류로 편입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도정에서도 그 모습은 그대로 가져갈 겁니다. 이제는 ‘혁신 도지사’로 불려야죠. 저부터 혁신하고 경기도를 확 바꾸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