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돌은 태고 적부터 모든 이들에게 수집의 대상이었다. 반짝이는 금과 은, 그리고 절정의 투명함을 뽐내는 다이아몬드와 화려하고 찬란한 색상의 사파이어와 호박 등 이른바 ‘보석’으로 불리는 이들 역시 바로 광물로 불리는 ‘돌’이었다.
이런 광물을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집해 온 이가 있다. 국내 최대의 기업이자, 글로벌 기업으로 세계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여온 삼성전자 출신의 이지섭 민자연사연구소 소장이 바로 주인공이다.
그는 삼성전자 시절부터 지금까지 35년에 걸쳐 세계 각국의 다양한 광물을 수집해왔다. 그리고 2010년 퇴임 이후 그동안 모아온 광물들을 정리해 대중에게 공개했다. 민간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민자연사연구소’가 바로 그곳이다.
민자연사연구소에는 현재 1000여 점의 광물과 희귀 원석이 전시돼 있다. 150여 평 남짓한 공간을 활용해 각종 원석과 보석, 그리고 화석에 이르기까지 광물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광물과는 전혀 다른 형형색색의 컬러와 다양하고 신비로운 모습의 광물들을 위주로 전시돼 있어 ‘아름답다’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
우연히 들른 자연사박물관에서 원석에 빠지다
“아름답죠. 이처럼 다양한 색상을 가졌지만, 실제로는 구리원석의 한 종류입니다. 다양한 종류의 광물과 원소가 여러 가지 조건에서 결합해 휘황찬란한 색상과 다양한 모습으로 결정을 생성하는데, 이게 바로 광물 수집의 숨겨진 재미라고 할 수 있죠.” 이지섭 민자연사연구소 소장은 희귀 원석과 광물의 매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자연과 시간이 만들어낸 예술품이란 점에서 희귀 원석과 광물은 그 어떤 예술작품보다 더 가치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희귀 원석과 광물의 매력에 빠지게 된 계기는 우연이었다. 삼성전자 과장 시절 바이어와 미팅을 끝낸 후 남은 시간을 활용해 우연히 들른 뉴욕 자연사박물관에서 평생의 업이 될 희귀 원석과 광물을 만났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에서 근무하던 당시 저는 새로 개발한 전자레인지의 품질관리를 위해 전 세계를 다녔습니다. 그러던 중 1981년 뉴욕에서 바이어와 미팅을 마치고 남은 시간에 뉴욕 자연사박물관에 가게 됐죠. 그곳에서 희귀 원석과 광물을 처음 접했습니다. 제가 금속공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원석들과 광물을 책으로 봐왔지만, 박물관에 전시돼 있던 원석과 광물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이후 해외 출장을 갈 때마다 한두 개씩 사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그는 삼성전자에서 근무하며 세계 각국을 다닐 수 있었다는 점이 희귀 원석 및 광물 수집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당시 저희가 개발한 전자레인지는 OEM(주문자 상표 부착 제품)이긴 했지만, 미국과 일본에 이어 전 세계 세 번째로 개발한 제품이었습니다. 또 품질이 워낙 좋아 GE를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의 수요가 높았습니다.(실제 삼성전자의 전자레인지는 한때 글로벌 점유율 20%를 넘기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전 세계로 수출됐고, 그 과정에서 세계 각국을 다닐 수 있었습니다. 업무 때문에 세계 곳곳을 누빌 수 있었기에 다양한 희귀광물과 원석을 수집할 수 있던 거죠.”
이런 방식으로 수집한 그의 희귀 원석과 광물은 3000여 점에 달한다. 개인이 수집한 것으로 여기기에는 방대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다. 그렇다면 비용은 얼마나 들었을까. 그는 정확한 액수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희귀 원석과 광물 수집에 집중하다보니 노후 준비도 제대로 못했어요. 그래도 연구소 와서 원석들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마음이 푸근해집니다. 원석 수집에 매달리다보니 비용 문제로 아내와 가족들의 만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내가 제가 회사에서 퇴근하고 집에 와 원석을 보고 미소 짓는 걸 보더니 허락해 줬습니다. 이후에는 아내와 자녀들도 원석 수집에 일조했죠. 여기 모인 원석과 창고에 보관 중인 원석 중 일부는 제가 아닌 아내와 가족들이 사서 선물로 준 것입니다.”
희귀 원석 수집은 인연을 찾는 것
35년의 세월 동안 전 세계 각지에서 희귀 원석과 광물을 수집해 온 그는 아직까지 모은 원석과 광물을 판 적이 없다. 어렵사리 수집한 것도 이유 중 하나겠지만, 보유 광물을 팔게 되면 이익을 보기 위해 원석과 광물을 수집하는 ‘딜러’로 비쳐질까 염려하기 때문이다.
“이곳에 있는 원석과 광물은 1000여 점 정도 됩니다. 전시하지 못한 원석과 광물은 창고를 임대해 그곳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방대한 규모의 원석과 광물을 수집한 그의 첫 번째 컬렉트(수집품)는 어떤 것일까. 그는 ‘쌍둥이 눈사람’ 모양의 마노를 가리켰다.
“뉴욕 자연사박물관을 나와 곧바로 인근의 기념품점에 들렀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60달러를 주고 샀죠. 1980년대 초반에 60달러면 상당히 높은 가격의 기념품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애착이 가는 원석은 어떤 것일까. 그는 여기 있는 모든 원석이라고 답했다.
“희귀 원석이나 광물은 수집자들과 묘한 인연이 있는 것 같아요. 1980년대 중반 정도에 하얀 수정 위에 빨간색 꽃처럼 피어난 능망간석을 보고 매입하려 했는데, 결국 가격문제로 포기해야 했습니다. 나중에 돈을 모아 사야겠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지금까지 그처럼 예쁜 능망간석은 다시 볼 수 없었습니다. 반면 1980년대 후반에는 돈이 없었는데도 일단 멋진 원석을 보자 구입하겠다고 했습니다. 부족한 돈은 친분이 있던 네덜란드 수집가에게 빌렸죠. 나중에 다른 수집가들이 그 원석을 사지 못해 후회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나중에서야 희귀 원석 수집도 인연을 찾는 것처럼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연이 닿아야 좋은 원석과 광물을 만날 수 있는 거죠.”
어렵사리 찾은 인연처럼 희귀 원석과 광물에 대한 사랑이 깊은 만큼 그는 보관과 전시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일단 150여 평 남짓한 민자연사연구소의 곳곳에는 CCTV와 센서가 자리해 있다.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 높은 가치를 가진 희귀 원석과 광물들을 모아놨기 때문에 보안에 상당히 애를 쓰고 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전시된 원석과 광물들은 모두 LED 조명의 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그 자체로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LED를 통해 더욱 화려하고 휘황찬란한 빛을 내야 원석과 광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이란 게 그의 설명이다.
기초과학 증진 위해 광물표본 만들어
“제가 가진 원석과 광물은 많지만, 이를 전시할 공간이 부족한 게 아쉽습니다. 아름다운 광물과 원석을 보면 자연과학에 대한 관심도 늘어날 텐데. 아직까지 혼자 힘으로 진행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그는 자신이 보유한 희귀 원석과 광물을 전시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 운영 중인 민자연사연구소가 아닌 대규모의 전시공간에서 화려하고 아름다운 원석과 광물을 볼 수 있게 되면 자연과학에 대한 관심 역시 자연스레 높아질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자연과학에 대한 투자가 부족한 편입니다. 특히 학생들이 자연과학을 고리타분한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선진국들을 보면 자연과학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고, 학생들도 이곳에 높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민자연사연구소를 통해 그동안 수집한 원석과 광물을 공개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연과학이 발전해야 연관 산업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그래야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높은 경쟁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지난해부터 광물표본 제작에 집중하고 있다. 최종목표인 자연사박물관 건립 이전에 자연과학에 대한 관심을 북돋아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현재 지구상에는 약 118종의 원소가 있습니다. 이 원소들이 결합해 4300여 종의 광물이 만들어지죠. 하지만 이 광물들은 다시 250종으로 나눠집니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이 250종의 광물 표본을 모아 도감제작을 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광물 도감을 보고 아름다운 원석을 봤을 때 더 큰 감동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기업의 CEO로 일하면서도 희귀 원석 및 광물 수집에 30년이 넘는 세월을 투자한 이지섭 민자연사연구소 소장. 희귀 원석과 광물만 있으며 여전히 눈이 반짝거리는 그에게서 아직도 젊은이의 열정과 패기가 느껴진다.
이지섭 민자연사연구소 소장 1974년 삼성그룹 공채 14기로 입사해 2010년 퇴직까지 무려 36년 동안 삼성맨으로 근무했다. 초기 5년의 제일모직 근무를 제외하면 1979년부터 31년간 삼성전자에서 일했으며 삼성전자에서 최초로 전자레인지를 개발했다. 이후 존폐 기로에 있던 컴퓨터 사업부문을 맡아 부활시켰으며, LCD 사업부문을 담당해 세계 1위에 오르는 등 삼성전자의 발전사를 모두 겪은 뒤 2010년 부사장으로 퇴직했다.
현재 성남시 상대원동에서 민자연사연구소를 운영 중이며, 호서대 객원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