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 없이 성공 없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1년만 미쳐라’ 요즘 2030세대를 향해 사회가 강요하는 메시지는 미래를 위한 희생이다. 청년실업에 울고 스펙 경쟁에 치여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손에 들린 비슷비슷한 자기계발서들 역시 마찬가지다. 왜 아파야 하고 희생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쏙 빼먹은 채 지금의 고통이 미래의 행복으로 보상받을 것이라 위로한다.
이렇듯 팍팍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당신답게 오늘을 사세요’라는 잔잔한 메시지를 전한 한화생명의 역발상 광고 캠페인이 큰 화제다. 한화생명의 TV광고는 상품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일체 배제하고 주위에서 흔히 듣게 되는 사회적 압박에 대해, 미래를 위한 오늘의 희생보다 자신답게 현재를 충실히 살아갈 것을 강조한다. 반응은 상당했다. 한화생명 페이스북 페이지는 1만30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좋아요’ 버튼을 누르고 다양한 공감 댓글을 남겼다. 상대적으로 다른 업종에 비해 관심도가 낮은 보험사 SNS로서는 이례적인 숫자다.
“ ‘내일의 불안을 대비하기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것이 과연 바른 삶일까’라는 의문에서 시작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오늘이 모여 인생이 되는 것이므로 지금 이 순간을 행복하게 살 때 비로소 행복한 내일도, 미래도 있는 것 아닐까요? 이런 이야기들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화제의 광고캠페인 뒤에는 황인정 한화생명 브랜드전략팀 상무가 중심에 있었다. 황 상무는 페덱스코리아, 한국코카콜라, 오비맥주, 호텔신라 등 다양한 업종의 브랜딩을 담당한 후 1년 전 ‘마케팅의 꽃’이라 불리는 금융사로 둥지를 옮겼다. 가는 곳마다 여러 기발한 작품들을 히트시킨 그가 한화생명에 합류해 처음으로 내놓은 작품은 ‘오늘을 위한 보험’이다. 보험은 미래를 위한 상품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현재를 위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흔히 보험사 광고들을 보면 미래에 안정적인 이미지를 그리고 여유 있는 노후의 모습을 표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잖아요. 실제로 많은 고객들이 보험 상품을 혹시나 닥쳐올 미래를 위한 희생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고요. 그런데 보험은 가입하면서부터 ‘오늘’을 안심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주는 상품이라는 것에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회사 자랑 자제하고 고객에 잔소리 하려구요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대학 연구팀에 의하면 결혼한 적이 없는 사람이 결혼한 사람에 비해 사망할 가능성이 58%나 높다고 한다. 연구에 따르면 가장 큰 원인은 ‘잔소리’ 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미우나 고우나 옆에서 이것저것 챙겨주고 잔소리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비로소 건강한 삶과 행복한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별안간 잔소리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바로 황 상무의 또 다른 광고 캠페인 주제이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한눈에 봐도 귀여운 아이가 오렌지 컬러 배경화면에 나와 경쾌한 음악과 함께 “운동하세요”, “가계부를 쓰세요”, “종잣돈을 모으세요”와 같은 잔소리시리즈를 선보였다. 참신하고 앙증맞은 광고캠페인 덕분에 한화생명은 다소 올드 했던 기업 이미지를, 젊고 생기 있게 탈바꿈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화라는 모기업은 대중들에게 ‘신용’과 ‘의리’, 그리고 따뜻함을 지닌 오렌지색이 먼저 떠오릅니다. 이러한 점을 최대한 살려 언제나 고객 곁에서 함께하며 때로는 따뜻한 잔소리도 서슴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은 광고캠페인입니다. ‘따뜻한 동반자’라는 이미지를 쉽고 임팩트 있게 전달하려고 했던 점이 좋은 반응을 이끌어낸 것 같습니다.”
황 상무는 일상에 치여 힘든 현대인들에게 구구절절 상품의 장점과 보장내역에 대해 나열하는 것보다 공감과 동반자로서의 신뢰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타사들이 으레 하고 있는 수익률 자랑식의 마케팅에 동참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회사자랑 물론 하고 싶죠.(웃음) 명실상부한 국내 최상위 보험사인데 자랑할 것이 오죽 많을까요? 하지만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보험에 대해 인식은 그리 좋지 않습니다. 가입시킬 때는 온갖 감언이설로 가입을 시켜놓고 막상 보험금을 탈 때에는 이런 저런 이유로 기피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죠.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고객을 향한 진심을 전달하는 것만이 보험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기존 보험사들이 관례적으로 하고 있는 마케팅 전략보다는 차별화·역발상 전략을 통해 고객신뢰도를 쌓아 나가겠다고 강조한 황 상무는 마지막으로 거시적인 마케팅 전략에 대해 살짝 귀띔했다.
“한화생명은 대한민국 최초의 생명보험사이고 시장점유율이나 자산 규모 등으로 보면 생보시장의 확고한 2위 자리를 위치하고 있지만 고객들 마음속에는 아직 그만큼 미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업계 위상에 맞게 브랜드 인지도를 조기에 끌어올려 (삼성생명과) 양자구도를 구축하는 것이 당사 브랜드 활동의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