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펀드의 신화 ‘존 리’ 이정복 메리츠자산운용 사장 | 기대하라 꼴등 회사의 유쾌한 역전 홈런
입력 : 2014.04.25 10:08:36
그는 수익률 꼴등 회사의 새로운 사장이다. 남들은 100개가 넘는 펀드를 파는데 오직 한 개 펀드만 팔겠다는 고집통이다. 다른 운용사들은 유치하지 못해 안달하는 기관 자금조차 수시로 성과를 보고하라기에 거절했다는 괴짜(?)이기도 하다. 월가에서 코리아펀드 전설을 만들고 돌아온 이정복 메리츠자산운용 사장이다.
스커더의 ‘존 리’로 더 잘 알려진 이 사장은 1991년부터 코리아펀드를 맡아 15년간 운용하며 숱한 신화를 남겼다. 3만원대에 매입한 SK텔레콤으로 70배 수익을 올렸고 2만2000원대에 산 삼성전자 등 몇몇 종목은 그가 펀드를 넘길 때까지 끝까지 들고 있으면서 고수익을 냈다.
그 고수가 메리츠자산운용을 맡았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말까지 설정한 지 1년이 넘은 5개 주식형펀드의 수익률이 모두 마이너스였던 회사가 아닌가. 한때 한국 증시의 뉴스메이커이기도 했던 그가 하필이면 꼴찌 회사를 선택했다는 게 자못 신선했다.
“오랜 월가 경험으로 한국에서 금융산업을 글로벌화 하는 데 기여해보자는 생각으로 적당한 회사를 골랐다. 대상은 작은 회사여야 했고, 변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그런 회사를 찾다보니 딱 하나 메리츠자산운용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너무 우연하게도 메리츠에서 연락이 왔다. 궁합이 잘 맞는다고 생각해 두 말 않고 맡았다.”
그는 여의도에 있던 사무실을 북촌의 작은 건물 반지하로 옮긴 얘기부터 풀었다.
“자산운용에서 중요한 게 독립성이다. 운용사는 고객이 중심이지 주주가 중심이어선 안 된다. 그러려면 지리적으로도 떨어져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사를 왔다.”
지금은 그룹에 보고하는 것도 없고 전적으로 일임을 받아 회사를 꾸려가고 있다고 했다. 그에게 이곳으로 와서 비용도 많이 줄었을 것 같다고 물었다.
“맞다. 사실 이곳 임대료는 여의도의 절반밖에 안된다. 게다가 반지하 아닌가.”
이 사장은 밝게 웃으면서 그게 다 제대로 된 투자문화를 정착시키려는 시도라고 했다.
“회사 맡은 뒤 먼저 사무실부터 옮기자고 했다. 조용하며 다양성 있는 곳을 원했다. 다양성이 있어야 좋은 주식을 고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 와 보고 딱 맞는 곳이라 생각했다. 어느 건물도 같은 게 없고 커피숍도 다양하다. 물론 직원들은 처음엔 여의도 떠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게 거기서 살았는가 싶다고 한다. 거기선 스타벅스 가도 줄서서 기다려야 하고 식당도 매일 그게 그거였다.”
새 투자문화 이루려고 옮겨 사무실
투자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에 앞서 그는 “(한국에서) 제일 들어오고 싶은 회사, 일단 들어오면 나가고 싶지 않은 회사, 제일 자유로운 회사를 만들 것”이라고 했다. 짧은 기간이지만 이미 많은 것을 이뤘다.
“회사 시스템을 서양식으로 바꿨다. 20년 다닌 여직원이 지금처럼 회사 나오고 싶었던 적이 없다고 한다. 집에 가고 싶으면 집에 가고 자기 일만 하면 된다. 그만큼 합리적이다.”
그가 사무실 위치나 근무환경부터 틀을 깨고 자유롭게 바꾼 것은 투자문화를 바꾸는 게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운용회사에선 내가 아니라 고객이 보스다. 그러려면 자유롭게 토론하고 아닐 때 반대할 수 있는 문화가 중요하다. 나를 중시하면 내 눈치를 볼 게 아닌가.”
그의 사무실조차 직원들 것과 똑같이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사진 찍을 때 만난 메리츠의 직원들은 격의 없이 사장 주위에서 밝게 웃었다.
문화를 바꾼다고 했지만 사실 주식운용 부서만 본다면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라자드코리아 출신으로 대부분을 채웠기 때문이다.
“완전히 새로운 조직이고 완전히 새로운 회사로 봐도 좋다. 지금 자산은 많지 않으나 투자문화가 좋다면 돈은 저절로 들어올 것이다.”
꼴찌의 변신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중순에 와서 보니 꼴등이었다. 주식을 너무 자주 사고팔아 문제가 됐다.”
그러면서 연간 회전율이 어느 정도나 됐을 것 같았냐고 되물었다. “700~800%정도일 것 같다”고 했더니 “어떻게 알았느냐”며 “당시 연간 회전율이 800%나 됐다”고 했다.
전 펀드 수익률이 마이너스라면 무리하게 사고팔았을 것이란 기자의 추정대로였다.
이 사장은 “회사를 맡아 장기투자를 하고 (무리하게) 사고파는 게 없어지니 성적이 좋아지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실제 메리츠코리아펀드는 지난 3월 13일 기준 코스피가 1.5% 하락한 최근 3개월간 7.69%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한국에선 아직도 주식투자를 카지노 가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그는 ‘하나의 펀드로 장기투자를 해’ 새로운 성공모델을 제시하겠다고 다짐했다.
“여러 개 펀드를 모두 닫고 (지난해 7월 새로 설정한) 메리츠코리아펀드 하나만 한다. 남들은 수십 개, 어떤 곳은 백 개가 넘는 펀드를 파는데 하나만 한다니 사람들이 신기해 한다. 그렇지만 두 달 밖에 안됐는데 그렇게라도 호응하니 일단 성공한 것 같다. 남들은 실험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진짜다.”
주식 장기투자는 국가적 과제
이 사장은 고객들의 긍정적 반응을 볼 때 자산운용 선진화를 앞당길 수 있을 것 같다고 흐뭇해하면서 왜 장기투자를 해야 하는지 설명했다.
“1991년부터 코리아펀드를 운용하면서 사고팔고 한 게 1년에 15% 내외다. 처음 운용할 때 사서 코리아펀드 떠날 때까지 한 주도 팔지 않은 종목들도 있다. 10%, 20%가 아니라 열 배, 백 배 수익률 내줄 종목을 찾는다. 그런 종목 발굴하는 게 매력이다.”
그는 장기투자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이어지는데 정부가 그들의 노후를 책임지지 못한다. 그들이 노후를 안정적으로 보내려면 자본이 일하게 해야 하는데 주식이 가장 좋은 수단이다. 미국도 국민연금만으론 안되니 기업연금에 세제 혜택을 줘 개인들이 주식에 투자하도록 했다. 그만큼 주식투자는 국가적으로 중요하다.”
다만 국가적 과제인 장기투자 문화를 정착시키려면 코퍼레이트 거버넌스(기업지배구조)를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퇴자들이 기업에 투자해 노후를 편하게 보낼 수 있게 하려면 대주주가 잘해야 하고 이를 위해 정부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
그러면서 일련의 기업인 관련 재판을 지적했다.
“더 이상 사회적 비용이 생겨선 안 된다. 구속되고 재판받고 주가가 폭락하니 얼마나 비용이 많이 들어가나. 미국에선 (대주주의 배임을) 직원들이 먼저 용납하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자본이 제대로 일하는 구조여야 한다. 한국 주식이 싼 것은 다 이유도 있다.”
그가 라자드에서 ‘장하성펀드’로 불리는 ‘한국지배구조개선펀드’를 만든 것도 이런 까닭이다. 그는 경영진을 믿을 수 없는 기업은 피한다고 했다. 1991년부터 한국에 투자했지만 대우그룹 같은 곳엔 일체 투자하지 않았다고 했다.
“우리는 IMF 외환위기 때도 하나도 안 다쳤다. 대우는 투명성이 없었기에 투자하지 않았다. 혼자서 의사결정 하는 구조라서 피했다.”
회사는 대주주가 아닌 주주를 위해 일해야 한다는 그는 “한국이 선진국으로 가려면 이런 구태는 반드시 털고 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에선 대주주를 오너라고 하는데 오너는 주주다. 왜 대주주의 아들이 CEO가 되어야 하나. 능력 있는 사람이 해야지. 그러려면 왜 상장했나.”
다행히 최근 젊은 기업들은 기업지배구조를 중시한다고 했다.
젊은이들 커피값 아껴 주식 사라
그는 젊은이들에겐 주식투자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라고 강조했다. “열심히 일해 자산 모으는 데는 한계가 있다. 주식으로 자산이 일하게 해야 한다. 커피 마시지 말고, 자동차 사지 말고 주식부터 사라. 꼭 자동차를 사야 한다면 중고차 사고 나머지는 주식을 사라. 기업이 밤낮으로 내 노후를 위해 일해 주는 게 얼마나 신나는 일이냐. 소주 마실 돈 있으면 소주 만드는 회사 주식을 사라.”
젊었을 때 투자해야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얘기다. “투자는 길게 봐야 한다. 옛날엔 땅 사서 묻어두면 상상할 수 없는 큰돈이 돼서 자식들이 편했다. 주식은 그보다 훨씬 낫다. 그러니 단기적으로 5%, 10% 벌려고 사고팔고 하지 말라. 20년 동안 커피값 아껴 삼성전자에 투자했다면 지금 20억원이다.”
한 마디로 매달 투자해놓고 잊으라는 얘기다.
“내 미국 연금은 100% 주식이다. 메리츠에 와서 놀랐다. 직원들이 주식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퇴직연금을 DC형으로 바꾸도록 했다. 지금은 전 직원이 메리츠코리아펀드에 투자하고 있다. 아이들에게도 이 펀드를 사게 했다. 고객의 이익과 우리의 이익이 같이 가야 한다. 그래야 고객을 설득할 수 있지 않나.”
이 사장은 올바른 장기투자 문화 정착을 위해 미디어도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TV엔 주식투자하다 망한 사람들 얘기만 나온다. 증권방송은 매일매일 어떤 종목이 좋다거나 그래프 보여주며 단기매매를 부추기는 내용뿐이다.”
한국주식 싸다
그는 한국 주식은 외국에 비해 싸다고 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주가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성장할 기업에 투자하고 있는가라고 했다.
“한국엔 기업이 많다. 시장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언제든 좋은 기업은 있다. 그런 면에서 중국이 어떻게 되느냐,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가 어떻게 되느냐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매크로(거시경제) 문제다. 주식과 매크로는 같이 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어떤 주식으로 어떤 포트폴리오를 짜느냐다.”
그는 특히 주가를 보고 투자하려는 마켓 타이밍은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항상 투자가 돼 있어야 한다. 스스로 하지 못한다면 펀드라도 들어라. 다만 20년 동안 함께 가야 하니 철학 있는 펀드를 선택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즉흥적으로 펀드에 들지 말라”고 했다. 자주 갈아타는 게 아니니 사기 전에 최소한의 공부는 해야 한다는 얘기다. 아울러 주가가 올랐다고 해지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주가가 올라갈 때 찾고 싶은 유혹을 이기는 훈련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사장은 주식을 위험자산이라고 기피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채권이 내 노후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원금이 위험하지 않은 상품만 찾는 것은 잘못이다.”
그는 주식이 위험하다는 얘기는 단기적으로는 주가가 어디로 움직일지 모른다는 의미이며 5년, 10년을 본다면 주식은 무조건 투자해야 할 대상이라고 했다.
“리스크가 커야 리턴이 크다. 장기적으로 보면 (주식의) 리스크는 줄어들고 리턴은 커진다. 게다가 그 리스크는 공부해서 줄일 수도 있다. 그런 걸 리스크라면 직업 갖는 것도 리스크 아닌가. 공부하는 것도 리스크다. 왜 다니나.”
한 마디로 위험자산에 대한 인식이 잘못됐다는 얘기다.
이 사장은 특히 한국에 주식투자 문화가 형성되지 않은 단적인 증거로 ‘손절매’를 들었다.
“손절매 한다는 것은 주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얘기다. (좋은 주식이 떨어졌다면) 더 사야 할 때인데 왜 파나. 그게 아니라면 공부를 하지 않아 불안해하는 것 아닌가.”
이 사장은 월가에서 검증된 모델로 수탁자(fiduciary)의 의무를 다하는 자산운용사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겠다고 했다.
투자는 스크린 보고 하는 게 아니다
그에게 회사를 보는 비결을 물었다.
“자산운용은 스크린 보고 하는 게 아니다. 숫자는 다 아는 것이다. 첫 번째로 보는 게 매니지먼트의 자질이다. 그 다음은 회사 안팎을 보고 경쟁사는 어떻고 납품회사는 어떤지 등을 살핀다. 중국 사업을 한다면 중국까지 가서 본다. 최근엔 중국에 투자했거나 중국을 상대로 영업하는 기업들이 많아 중국어 잘 하는 사람을 영입했다. 중국에 정기적으로 가서 회사를 보고, 은행도 본다. 이런 식으로 5년, 10년 투자할 회사인지를 본다.”
회사의 크기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우리는 시가총액에 구애받지 않는다. 우주선이 한국 상공에서 내려다보며 1800개 회사 가운데 가장 매력적인 회사 60~70개를 고르는 것 같은 게 우리 포트폴리오다. 그만큼 편견 없이 발전성 있는 기업들에 투자한다.”
그는 산업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 만큼 강한 회사라도 빠른 변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회사들이 나타나 시가총액이 커지고 있다.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회사는 도태된다.”
이런 점에선 일본보다는 한국 기업의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일본에선 4대, 5대를 이어가는 스시집을 자랑한다. 그런 나라는 가망성이 없다. 변화가 느리다. 지식산업에서 일본이 떨어지는 이유다. 한국은 성공의지가 강하고 교육열도 높다. 사촌이 땅 사면 배 아파하는 나라다. 그 정신으로 파괴했기 때문에 발전했다. 다음 세대는 나보다 더 나아야 한다는 생각이 발전을 이끌었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잠재력은 무한하다. 그런데도 주식투자 안하는 것은 난센스다.”
지금 메리츠의 운용자산은 6조원대에 달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채권펀드다.
이 사장은 “채권도 관장하지만 매니저에게 일임하고 주식 비중을 높이는 게 내 일”이라며 한국의 개인고객과 외국자본을 끌어들이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엔 돈이 넘친다. 게다가 한국을 모르고 선진국에만 투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가교 역할을 할 것이다.”
펀드 규모를 키우는 게 시급하지만 투자문화를 이해하고 오래 가는 사람들만 받겠다고 했다.
“자격을 갖춘 고객이 많아야 한다. 5년, 10년 보고 주식을 사는데 일주일 뒤 결과를 얘기하라면 우리 고객이 될 자격이 없다.”
‘존 리’ 이정복 사장
‘존 리’란 미국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진 한국 기업지배구조 개선 운동의 선구자다. 한국에서 태어나 연세대 상대 재학 중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 뉴욕대에서 회계학을 배운 뒤 KPMG의 전신인 피트 마윅에서 회계사로 근무하다 1990년 스커더로 옮겨 이듬해부터 15년간 코리아펀드를 운용했다. 스커더가 도이체방크로 넘어가자 라자드로 옮겨 장하성 교수와 ‘한국지배구조개선펀드’를 설립해 운용하다가 지난해 메리츠자산운용 대표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투자스타일을 ‘가치주 투자’나 ‘성장주 투자’ 같은 기존의 범주와는 다른 벤치마크 애그노스틱 스타일(benchmark agnostic style)이라고 한다. 벤치마크(주가지수)와 무관하게 가장 갖고 싶은 주식만 모아 장기간 보유해 높은 수익률을 내는 투자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의 포트폴리오엔 다양한 성격, 여러 규모의 종목들이 들어 있다.
25년간 같은 투자스타일을 유지해온 그는 한국에서 10년, 20년 동안 한 펀드로 새로운 트랙 레코드를 쌓아 장기투자 문화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