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에 엄청난 관심을 쏟는 영국이라는 나라의 국립미술관 관장을, 그것도 하나가 아닌 네 개의 국립미술관을 총괄하는 이. 영국 테이트 미술관 그룹의 총관장을 맡고 있는 니콜라스 세로타 경이 최근 한국을 찾았다. 11년이나 되는 장기 후원을 약속한 현대자동차와의 파트너십을 알리기 위해서다.
테이트가 세계적 미술관이기는 하지만 11년이나 되는 장기 후원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이제까지는 길어야 3년에서 5년 계약을 했고 그 기간을 연장했을 뿐이라고 한다. 그러니 현대차나 테이트 미술관 그룹 모두 새로운 기록을 크게 홍보하고 싶은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기자의 관심은 긴 계약 기간보다 니콜라스 세로타 경이 1988년부터 무려 26년 동안이나 테이트 미술관 그룹을 이끌어 왔다는 데 더 끌렸다. 한국으로 치면 정권이 다섯 번이나 바뀌고도 1년이 더 지나야 할 기간 아닌가. 일반 사립미술관도 아니고 국립미술관의, 그것도 테이트 브린튼을 비롯해 테이트 모던과 테이트 리버풀,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스 등 네 미술관 모두를 총괄하는 자리를 그토록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던 비결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니콜라스 세로타 경은 오히려 자신이 최장수 관장은 아니라고 겸양을 부렸다.
“이전엔 1938년부터 1964년까지 관장을 역임한 분도 있다. 내가 그 기록에 가까워지고 있다.” 내년이면 테이트 관장 최장 기록과 타이를 이룬다. 그런데 그의 말을 빌릴 때 “지금 상황은 1938년과는 크게 다르다.” 요즘 같은 변화무쌍한 시기에 그 정도로 오래 똑같은 공직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더욱 놀라운 일이 아닌가.
이에 대해 세로타 경은 다음과 같이 비결 아닌 비결을 밝혔다.
“테이트는 영국의 국립 미술관이자 공공 미술관이다. (내가 관장으로 취임한) 1988년엔 예산의 80%를 정부에서 지원받았다. 지금은 정부 지원이 30% 이내다. 나머지는 개인과 기업, 재단 등의 후원을 받고 대중으로부터 수익을 창출해 충당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미술관 경비는 계속 늘어났을 터인데 오히려 정부예산을 엄청나게 줄인 것이다. 그 정도 능력이라면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그를 계속 눌러 앉히려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뿐만이 아니다. 지금 테이트 미술관 그룹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이 확장공사를 하고 있는데 그 경비는 별도이기 때문이다.
세로타 경은 “2015년에서 2016년 사이에 확장부분이 완공될 예정이며 이 공사가 끝나면 런던 사우스뱅크 일대의 지형이 바뀔 것”이라고 했다. 그런 대규모 공사를 벌이면서 정부엔 거의 손을 벌리지 않았다고 한다.
“건물을 지으려면 재원을 더 확보해야 한다. 현재 짓고 있는 건물의 건축비 재원은 20%만 정부에서 받는다.”
엄청난 사업을 벌이면서 재원의 80%를 알아서 조달한다니 정책 당국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기특할지 짐작이 갔다.
그의 탁월한 예술경영 능력은 예전 화력발전소를 리모델링해 지난 2000년 개관한 테이트 모던을 불과 10여년 만에 세계 1, 2위를 다투는 현대미술관으로 끌어올린 데서도 나타났다. 지금 테이트 모던은 연간 방문객만 500만 명이나 돼 세계에서 방문객이 가장 많은 현대미술관으로 꼽히고 있다. 현대차가 장기 파트너십을 맺은 것도 이 부문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짧은 연륜에도 불구하고 테이트 모던은 3000여 명 작가의 작품 6만5000여 점을 갖추고 있다. 이렇게 하려면 대규모 지출이 불가피했을 터이니 그 돈을 마련한 능력이 보통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미술관의 후원자 중엔 부유한 개인도 있지만 일반 개인도 많다. 테이트 모던의 후원자는 처음 1만 명이었는데 지금은 10만 명이 된다.” 그 정도 성적만도 훌륭한데 아직도 만족하지 않는다는 농담 같은 진담을 그는 담담하게 했다.
세로타 경은 “테이트 모던의 회원이 급증했다지만 500만 관객에 비하면 적은 수준”이라고 조크처럼 날렸다. 그만큼 정열적으로 미술관을 이끌고 있다는 얘기다.
세로타 경은 테이트 모던에 앞서 지난 1993년엔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스를 개관해 성공시키기도 했다.
그에게 연이은 성공의 비결을 물었다.
“기관의 성공은 변화에 얼마나 잘 적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변화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잘 예측하느냐가 중요하다. 변화를 예측하고 대응하는 데는 창의력이 필요하다.”
그는 테이트 모던이 개관한 지 10여년 만에 세계 최고 수준의 현대미술관으로 자리 잡은 비결 역시 창의력의 연장이라고 할 큐레이터들의 상상력에서 찾았다.
“테이트 미술관은 컬렉션이나 재정지원, 전시를 위한 건물도 중요하지만 큐레이터의 상상력으로 운영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테이트 모던의 성공 비결은 큐레이터의 상상력 때문이다.”
큐레이터의 상상력이 무엇을 뜻하느냐고 묻자 그는 “작가와 긴밀히 협력하면서, 리스크(위험)를 감수하는 용기, 역사를 재해석하는 능력을 말한다”고 밝혔다.
“내 생각으로 테이트 모던이 최고의 컬렉션을 갖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젊은이들을 자극하는 큐레이터들의 상상력만큼은 최고 수준이다. 테이트의 성공은 (관객을 끌어들이는) 큐레이터들의 역량과 교육학습 역량, 미래예측 역량에 달려 있다.”
그래서 세로타 경은 자신의 책임은 그 큐레이터들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게 재원을 제공하고, 후원사를 끌어다 주며, 상상력을 발휘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했다. 군림하기보다 아랫사람들이 마음껏 일할 수 있게 끌어주고 밀어주는 그의 능력이 사실상 테이트 미술관 그룹의 성공 비결이었던 셈이다.
큐레이터의 힘 아는 큐레이터 관장
그가 이처럼 큐레이터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그 자신이 큐레이터라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테이트에 오기 전 옥스퍼드 현대미술관과 화이트채플 아트 갤러리의 관장을 역임한 세로타 경은 테이트에 와서 21세기 사진이나 비디오, 퍼포먼스, 건축 등으로 분야를 넓혔다. 또 남미와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 세계 각국의 미술품들을 사모으기 시작했다. 다양한 작품들이 들어오니 관객들의 발길이 테이트로 이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다.
세로타 경은 테이트 모던에서 최근 싸이 톰블리 전시와 게르하르트 리히터 전시 등을 직접 기획했고 올해 4월 17일부터 9월 7일까지 열게 될 앙리 마티스 전시도 기획했다.
이처럼 총관장이 직접 나서서 관객들을 끌어들일 만한 소장품을 사들이고 대형 전시를 잇달아 기획하니 다른 큐레이터들도 자극을 받아 활발하게 움직일 것은 자명했다.
그의 경영 능력은 테이트로 오기 전에 이미 검증됐다. 화이트채플 아트 갤러리 시절 그는 갤러리를 1년간 폐쇄하면서까지 전면적인 쇄신에 나선 적이 있다. 이 작업으로 1987년에 화이트채플 아트 갤러리는 25만파운드의 적자를 냈다. 그러나 이듬해 그는 140만파운드를 마련해 적자를 일소하고 오히려 장기적으로 안정적 전시를 할 기반을 마련했다. 이것이 테이트가 그를 영입하게 된 계기가 됐다.
한 마디로 미술관 경영에는 타고난 재능이 있는 인물인 셈이다. 그에게 앞으로 예상되는 미술계의 큰 변화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세로타 경은 “예술가와 대중의 대화일 것”이라고 조심스레 전망했다. “미래를 예측한다는 게 위험한 일이긴 하지만, 1960년대와 1970년대 독일 작가 요셉 보이스가 관객들과 대화를 한 게 가장 큰 예이다. 2012년엔 티노 세갈이 구조화된 공연을 한 바 있다. 모든 작가가 그렇지는 않지만 작가와 대중이 대화로 서로를 이해하는 게 추세다.”
세로타 경은 아직 한국 작가의 전시 계획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작품은 계속 구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인 큐레이터도 있어 한국 리서치를 열심히 하고 있는 만큼 한국 대표작가의 진출이 늘어날 것”이란 게 그의 설명이다.
니콜라스 세로타 경은
부모가 모두 공직자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런던 북부 햄스테드에서 성장한 그는 런던대 쿠어톨드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에서 석사를 마친 뒤 테이트 계열의 젊은 예술지도그룹 회장이 됐다. 이후 영국 비주얼 아트 부문 예술원 회원이 됐고 1973년엔 옥스퍼드 아트 갤러리 관장이 됐다. 1976년 런던 동부의 화이트 채플 아트 갤러리를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미술관 경영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1999년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은 그는 매년 50세 미만 작가 한 명을 선정해 시상하는 영국 최고 권위의 미술상 터너 프라이즈의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 외에도 영국문화원 시각예술자문위 위원과, 영국건축재단 이사, 건축과주거환경위원회 위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