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눈썹, 선 굵은 이목구비를 보면 얼핏 중년배우가 연상되지만 두세 마디 섞어 보니 영락없는 장인(匠人)이다. 깐깐하고 단호한 어투로 자기 회사의 기술력과 제품을 설명해 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수완 좋은 경영인보다 고집스러운 대장장이가 떠올랐다. 30년 가까이 도금처리한 결과 표면처리분야 명장1호의 칭호를 얻은 배명직 기양금속공업(53) 대표의 이야기이다. 명장제도는 1986년부터 한국산업인력공단과 고용노동부가 다양한 직종에서 최고기능인에게 부여하는 일종의 자격증명이다. 현재 각 분야 500여 명이 넘는 명장이 활동하고 있지만 도금분야에서는 배 대표가 2007년 명장칭호를 받은 후 아직까지도 유일하다.
배 대표는 업계 최고의 엔지니어이기에 소파에 앉아 폼 잡을 틈도, 다른 사업에 눈 돌릴 시간도 없이 현장을 지키고 있다. 덕분에 기양금속공업은 3D업종이라는 홀대와 오염배출산업이라는 오명에도 특별한 위기 없이 공장수를 늘려가며 꾸준히 30억~40억원씩 이익을 내는 튼실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경북 영주 주름잡던 싸움꾼, 명장이 되기까지
자신의 인생이 온전한 ‘꾼의 인생’이었다고 회상하는 배 대표는 유달리 장사를 많이 배출한 경북 예천의 한 농촌마을에서 태어났다. 경북 영주공고에 재학시절에는 넘치는 혈기를 누르지 못하고 싸움판을 휩쓸고 다닌 결과 소위 일대의 ‘짱’이 됐다.
“학생이 아니라 건달이었죠.(웃음) 자취방을 아지트로 만들어 여학생들이랑 매일 어울려 놀고 눈만 마주치면 패싸움하고 다녔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미안하지만 친구들 돈 뺏어서 학비내고 용돈 쓰고 그랬었거든요.”
학교보다 경찰서를 더 드나들며 불량학생으로 유명세를 떨치던 어느 날 그에게 슬픈 사건이 일어난다. 칼부림까지 일어나는 큰 싸움이 경찰에 발각된 후 며칠 뒤 어울려 다니던 친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친구 아버지가 경찰이셨는데 아들이 큰 사고를 치니 곤란해지신 모양이에요. 혼도 많이 났겠지만 자책감에 안 좋은 결정을 한 거죠. 그러고 나니내가 한 짓들이 전부 후회가 되고 너무 힘들었어요. 그때부터 정신 차리고 살았죠.”
‘짱’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밤늦게 몰래 공부해가며 자격증까지 따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배 대표는 2년간 대구에서 못·안경테 등을 만드는 공장들을 전전하다 무일푼으로 상경한다.
“무작정 도금업체에 쳐들어가 공장장 친척이라고 속여서 방에 들어가자마자 무릎 꿇고 돈 안 받아도 좋으니 일하게 해달라고 매달렸어요. 희한한 놈이라 생각했는지 1년간 무급으로 일하면서 처음으로 도금과 연을 맺게 됐습니다.”
서울에 아무 연고가 없던 배 대표는 공장 폐수처리장 구성에 박스를 깔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1년간 이를 악물고 버텼다. 악취와 독성 화학물질이 넘치는 곳에서 몇 번이나 빈혈로 쓰러지기도 했다.
“군대 대신 방위산업체에 입사해 제가 없으면 회사가 멈출 정도로 실력을 키웠어요. 그렇게 입사 1년이 지나가니 계장으로 승진 시켜줬어요. 그때가 24살 때였는데 회사에서 고졸 출신이 간부가 된 사례는 저밖에 없었어요.”
악으로 깡으로 버텨가며 공장에서 일하는 틈틈이 도금기술과 이론을 익혀가는 와중 그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온다. 다니던 회사가 부도나 어려운 지경에 내몰렸지만 그에게는 새로운 시작이 됐다.
“법정관리인에게 회사를 놀리느니 공간을 임대해줄 것을 청했죠. 무엇을 좋게 봤는지 40평을 공짜로 얻었어요. 자그마한 공간에 기계를 채워 넣고 조그맣게 시작한 거죠.” 공장 한쪽 구석을 막아 사업장을 차려 어엿한 사장이 된 그의 나이는 27세였다. 이후 도금 관련 특허를 4건 개발하고 크롬, 납, 수은 등 중금속의 위험성이 부각된 친환경 공법인 크롬-프리 도금법을 세상에 내놓는 동안 구멍가게는 어엿한 중소기업으로 바뀌었고 업계에 배명직이라는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35살에는 체계적인 학문에 대한 갈증을 느껴 만학도가 됐다. 재능대학 표면처리과를 졸업한 뒤에는 내친김에 산업기술대학원에서 신소재공학 학사와 석사를 마쳤다. 현재는 현장 경험과 접목해 경기공업대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건달이 교수까지 된 거죠.(웃음) 이왕 시작한 거 끝을 보자는 생각에 독하게 (공부)한 것 같은데 잘 한 것 같아요. 현장 경험에 이론적인 부분이 뒷받침 되니 사업을 대하는 마인드도 다양한 각도의 시각으로 생긴 것 같습니다.”
배 대표는 몇 해 전부터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최고기술을 지닌 국내 명장들의 작품을 세계시장에 진출시켜 명품 브랜드로 키워내는 것이다. 마음을 굳힌 배 대표는 다양한 분야의 명장들을 찾아다니며 여러 작품을 공동브랜드화하는 프로젝트를 설명했다.
오랜 기간 공을 들인 끝에 도자기(천한봉), 귀금속(김찬), 나전칠기(김규장) 등 명장 30여 명이 참여한 브랜드 골드 스퀘어를 탄생시켰다. 배 대표 본인은 방자유기에 순금도금을 한 식기를 개발하기도 했다.
이제 막 발걸음을 뗀 명장브랜드는 시화공단 내 산업기술대학교에 명장의 작품을 모아 2년간 전시하는 한편 김포공항 명품관에 직영점도 냈다.
최고기술 입힌 황금칼 세계시장에 통할 것
기양종합금속은 자체적으로 기술력을 살려 주석, 스테인리스, 청동 소재에 순금을 도금처리해 다양한 선물용 장식품이나 트로피 등을 만들어내는 ‘골드마이스터’란 브랜드를 론칭했다.
창업이후 주로 방위사업체를 대상으로 B2B사업에 집중해 왔던 터라 배 대표는 골드마이스터 론칭을 제2의 창업이라 평가했다. 긴 호흡으로 시장에 알려지기 시작한 골드마이스터는 서서히 백화점과 면세점에 입점 수를 늘려가며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순조롭게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배 대표는 최근 시장에 야심작을 내놓을 준비에 한창이다.
“우연히 호텔셰프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칼의 위생 상태와 품질이 식감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생각보다 쓸모 있는 칼이 없다는 소리를 듣고 무릎을 쳤습니다. 강도가 높아 쉽게 마모되지 않으면서 위생적인 명품 칼을 만들 생각에 바로 실행에 나섰습니다.”
배 대표는 곧장 칼 제조업체 장미천사를 찾아가 취지를 설명하고 제품개발에 나섰다. 오랜 연구기간 끝에 탄생한 주인공은 ‘지앨리’라는 이름의 황금칼이다. 사실 색상은 황금색이지만 칼날은 카본 스테인리스에 티타늄코팅처리를 했다. 모양은 일반적인 부엌칼과 다르게 칼날이 웨이브 모양으로 되어 있다. 이 때문에 절삭력이 강하고 강력한 티타늄코팅으로 내마모성이 일반적인 제품에 비해 높아졌다. 야심작의 성공을 확신한다는 배 대표는 향후 세계시장 진출을 통해 지앨리가 글로벌 명품으로 발돋음 할 것이라 자신했다.
배명직 대표는
대한민국 1호 표면처리 명장이자 기능한국인으로 기양금속공업과 골드마이스터(GOLD MEISTER)대표다. 현재 반월, 시화 청정도금 클러스터 회장을 엮임하고 있으며 한국전통공예산업진흥협회와 대한민국 명장회 이사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도금표면 공학Ⅰ>, <도금표면 공학Ⅱ>가 있다.
[박지훈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