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올 때마다 기분이 새롭습니다. 굉장히 변화가 빠른 도시에요. 전통과 모던한 기운이 서로 융합돼 있는 것도 보기 좋네요. 아직은 서울 밖으로 나가 보지 못했는데, 사람들이 굉장히 친절하고 친화적이어서 마음이 푸근해집니다.”
작고 탄탄한 체구에 블랙으로 멋을 낸 매무새가 세련됐다. 검은 뿔테 안경 너머로 살짝 가린 눈매는 부드럽지만 매서웠다.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의 리모델링을 총괄한 건축디자이너 숀 셜리반(Shawn Sullivan)이 내한했다. 건축 및 설계전문회사 록웰그룹(Rockwell Group)의 수석디자이너이자 파트너인 그는 그동안 그리스 미코노스 섬의 ‘벨베데레 호텔(Belvedere Hotel Mykonos)’, 뉴욕 링컨 센터의 신관 ‘엘리노 버닌 먼로 필름센터(Elinor Bunin Munroe Film Center)’, 뉴욕 휘트니 현대미술관의 뮤지엄 레스토랑 ‘언타이틀(Untitled)’, 라스베이거스 코스모폴리탄 호텔의 나이트클럽 ‘마퀴(Marquee)’, 전 세계 다수의 ‘노부(Nobu)’ 레스토랑과 호텔 등 다양한 장르의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미국 건축가 협회(AIA)와 디자인 매거진 등이 집중 조명하고 있는 세계적인 건축가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예닐곱 번 서울을 찾았다는 그는 이번엔 한국의 건축학도들과 건축, 인테리어, 신규 프로젝트 등 글로벌 건축 트렌드에 대한 콘퍼런스를 진행해 주목받았다.
과연 전 세계의 핫한 공간을 직접 디자인한 건축디자이너에게 서울은 어떤 공간이었을까. “굉장히 미스테리한 곳”이라고 운을 뗀 그는 “한 번에 다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여러 번 와서 깊게 파고들어야 한다”며 ‘매력적’이란 단어를 덧붙였다.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철저히 공부하는 게 우선
“강남 한복판에 자리한 호텔을 리모델링해서인지 강남은 알고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다 알 순 없지만 젊은 친구들이 많더군요. 여전히 발전하고 있고 트렌디 했습니다.”
뉴욕 본사와 전 세계 5대륙에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숀 셜리반은 리모델링을 제안 받으면 가장 먼저 건물이 갖고 있는 스토리에 집중한다고 설명했다. 디자이너가 붕어빵 찍어내듯 자신의 디자인을 이식하는 게 아니라 지역의 역사와 문화, 특징을 담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록웰그룹의 뉴욕 본사에는 200여 명의 직원과 10명의 스태프가 있습니다. 이 10명은 오로지 리서치만 진행하죠. 새로운 프로젝트가 들어오면 우선 이 스태프들이 지역적 특색과 역사, 문화, 사회적인 특징을 분석하고 브리핑합니다. 그런 후에 디자이너들이 투입됩니다. 왜냐고요? 좋은 건축은 모든 걸 이해하고 디자인을 가미해야 하거든요. 뉴욕의 디자이너 몇 명이 똑같은 디자인을 찍어내 적용하는 게 아니라, 최대한 지역적 특색을 살리는 것이 프로젝트의 기본입니다.”
그런 이유로 한국에서의 프로젝트에는 2명의 한국인 팀원이 참여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그들의 감성과 전통에 대한 이해가 리모델링 콘셉트에 중요한 디딤돌이 됐다고 한다.
“제 팀에는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 둘 있습니다. 둘 다 한국인이죠.(웃음) 한국에서 자라나 하버드에서 건축학을 공부했어요. 지금은 뉴욕에 살고 있는데, 이 두 사람이 이번 리모델링에 투입됐습니다. 전 세계 여러 도시에서 작업을 진행하지만 변치 않고 지켜지는 원칙은 각 지역의 특색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겁니다. 우리만의 상징적인 스타일보다 리서치와 공부가 우선이죠. 디자이너의 명성은 그 다음입니다.”
선행된 리서치를 통해 한국과 서울에 대해 어떤 점을 발견하게 됐냐고 묻자 잠시 침묵하더니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다. 외국인인 그가 느끼기에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기가 버겁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전통에 기반을 둔 신축건축물이 많다고 말문을 열었다.
“한국의 모던 디자인 콘셉트를 이해하는 건 너무 어려워요. 너무 빨리 바뀌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대부분 도시들의 모던한 디자인은 전통이 바탕이 된 게 많습니다. 한국에서 신축된 건물들도 마찬가지죠.
가장 어려운 프로젝트 중 하나가 이처럼 전통적인 건물인데, 이용하는 이들의 애착이 강한 곳일수록 특히 더합니다. 예컨대 2년 전, 1920년대에 지어진 LA의 한 호텔을 리모델링했는데, 지역민들의 애착이 대단해서 어떤 부분을 보존해야 할지 굉장히 난감하더군요.”
스토리가 살아있는 도시가 인상적이다
여러 대륙과 도시에서 인상적인 건축 디자인을 선보인 그는 가장 유니크한 도시로 러시아의 모스크바를 첫 손에 꼽았다. 도시에 들어서면 어린 시절 읽었던 소설책이 떠오른다는 게 그 이유였다. 과거와 현재, 역사가 숨 쉬는 공간에 대한 애착이 엿보였다.
“사실 모스크바는 도시 어딜 가도 차 없는 곳이 없고 한 번 잘못 들어서면 길 잃기 십상인 곳이죠.(웃음) 하지만 역사가 살아있습니다. 직접 살고 싶진 않지만 베이징도 흥미로워요. 하버사이드를 중심으로 모든 기관과 시스템이 퍼져나가는 홍콩도 그렇죠. 그런 면에서 저 자신도 트렌드에 똑같이 끌려 다니기보단 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로서 나만의 이야기, 히스토리를 만들고 풀어가는 걸 좋아합니다.”
그는 성공적인 디자인 요소로 사람들의 ‘기억’을 꼽았다. 각자 일상에서 수많은 사건을 겪게 되는 데, 어느 한 순간 생각 없이 지나쳐간 건물이 떠오른다면 그보다 더한 성공이 어디있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리곤 서울에 대한 인상과 조언도 잊지 않았다.
“리모델링은 건물의 문제를 고치기 위해 계획되고 공사가 진행됩니다. 그러니 마무리 된 후 그 문제가 해결돼야겠죠.
그래서 리모델링을 진행한 후에는 사용하는 분들의 만족도를 꼭 체크합니다. 건축디자인은 어쩌면 첫 인상이에요. 하루에도 수백 수만 가지 기억이 일상이 되는데, 어느 한 순간 제가 디자인한 건물이 인상에 남는다면 그건 성공한 디자인 아닐까요. 도시로 범위를 넓히면 일반인들은 잘 지어진 도시를 빌딩으로 판단합니다. 하지만 빌딩은 부수적인 부분이죠. 공공의 공간과 공원들이 어떻게 조화롭게 배치됐는지, 그 곳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관계하며 살고 있는지가 중심이죠. 빌딩은 그 후에 올라가야 합니다.”
숀 셜리반이 디자인한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개관 26주년을 맞아 지난해 5월부터 10개월간 리모델링된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서울 삼성역 사거리)는 로비, 레스토랑, 연회장, 외관 등 호텔 전반에 걸쳐 대대적인 변화가 진행됐다. 이번 공사는 파르나스호텔이 2016년까지 진행하는 대규모 프로젝트 중 첫 번째. 내년 10월 파르나스몰 개관에 이어 2016년 더 파르나스호텔 럭셔리 컬렉션이 들어서는 파르나스타워 개관이 예정돼 있다. 리모델링을 진두지휘한 숀 셜리반은 콕 집어 로비와 레스토랑, 그랜드볼룸을 주의 깊게 봐달라고 당부했다.
·로비와 프런트 데스크
로비는 서양적인 수직적 웅장함을 느낄 수 있는 석조벽체에 한국의 도성문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한 구조물을 배치했다. 천장을 채우고 있는 6.5m의 웅장한 금빛 조명은 찰랑거리는 수천 개의 황금 색상의 잎사귀(Gold leaf)로 이뤄져 있다. 프런트 데스크는 호텔과 고객의 ‘시간과 기억의 쌓임’을 상징하는 나이테 모양의 벽면을 통해 전통적인 고급스러움을 강조했다. 바닥은 조각보 디자인을 적용했다. 천장 역시 한국의 전통적인 우물 모양이다. 전체적으로 한국 전통 문양이 통일감을 이루며 현대적인 동양미를 극대화시켰다.
·로비 라운지
고객이 간단한 식사, 주류 등을 즐길 수 있게 설계됐다. 기존의 클래식한 이미지는 유지하되 사람을 만나고(Mingling), 간단한 식음료를 즐기며(Snacking), 한 잔의 술과 함께(Sipping) 라는 세 가지 콘셉트를 바탕으로 디자인했다. 별빛을 상징하는 수직형 샹들리에 조명을 설치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뷔페 레스토랑, 그랜드 키친
기존 지하 1층에서 로비 층으로 이동해 오픈한 그랜드 키친은 국내 최대 규모의 호텔 뷔페 식당이다. 입구부터 홀까지 이동하는 긴 거리에 라이브 스테이션과 주방을 오픈형으로 배치해 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베지테리언 섹션이 따로 구성된 것도 특징적이다.
·그랜드 볼룸
코엑스 광장이 한 눈에 들어오는 자연 채광에 포이어(Foyer, 연회장 앞 대기 공간)를 갖추고 있다. 1494m²로 국내 최대 면적에 7m 이상 천고로 웅장한 느낌이다. 잔치를 상징하는 ‘떡살 무늬’를 모티프로 사용해 동양적인 상징성을 담아냈다. 바닥은 수화 김환기의 유작 ‘십만 개의 점’에서 모티브를 얻은 카펫으로 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