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생상품 통한 부채 많아 구조조정 새 틀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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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1.09 17:12:22
수정 : 2014.01.10 15:41:44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재무위기를 맞은 기업들이 급증하면서 구조조정이 경제의 화두가 됐다. 한진 동부 현대 등 주요 그룹들이 계열사까지 내놓으며 위기를 벗어나려 하고 있고 금융기관의 강제매각 물건까지 쏟아져 나와 지금 시장엔 물주를 찾는 매물이 발에 채일 정도다. 주요 대기업집단이나 공기업들은 연간 매출액보다 훨씬 많은 부채를 끌어안고 있고, 그러다보니 이자 갚기 위해 빚을 내야 하는 기업들이 수두룩하다. 외환위기를 “위장된 축복”이라고 강조했던 미셀 깡드쉬 전 IMF 총재의 발언을 불과 10여 년 만에 잊은 것일까.
이헌재 전 장관이 한국 최고의 구조조정 전문가로 꼽은 이성규 연합자산관리(유암코) 대표를 만나 현 상황에 대한 진단을 요청했다. 이 대표는 프로젝트 파이낸싱 등 파생상품을 통한 대출이 급증해 은행을 통한 구조조정조차 어려운 상태라며 새로운 방식의 구조조정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구조조정 역사의 산 증인이신데, 한국의 구조조정을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대기업들이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채권금융기관들도 동시에 대규모 채무조정을 실행한 것은 IMF 금융위기 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당시 신고된 부실채권 규모는 대우그룹의 65조원을 비롯해 100개에 달하는 부실기업에서 무려 100조원에 이르렀습니다. 대규모 부실채권의 처리를 통해 워크아웃 기본틀이 정립됐고, 그 기법들이 지금까지도 유용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현재 기업과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은 어떻게 보십니까.
대기업들이 회사채나 CP 등 유가증권 발행을 통해 더 많은 자금을 조달하고 매출채권을 유동화하면서 채무가 급증했습니다. 특히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나 키코, RG(선수금 환급보장) 등 파생상품을 통한 금융조달과 미확정 채무관계가 복잡하게 뒤섞이면서 대출 금융기관의 채권비중이 크게 줄었어요. 금융기관의 채권비중이 줄어들면 워크아웃 틀은 작동하기가 힘들어집니다. 중소형조선사나 건설, 해운, 부동산PF, 태양광 등 특정 산업의 구조조정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배경엔 이런 채무구조가 있습니다. 여기서 부실채권이 쌓여 우리 경제가 활력을 찾지 못하고 있어요. 금융권과 대기업이 새로운 구조조정 방법과 틀을 짜내야 합니다. 양쪽 톱매니지먼트가 리더십을 발휘해야 합니다.
경제가 어려운 데는 금융기관의 위축도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명박 정부 때도 그랬고 최근에도 당국에서 “비올 때 우산 빼앗지 말라”는 얘기를 하는데 전문가로서 경기순응성 완화와 금융기관의 리스크 관리에 대한 조언을 부탁합니다.
돈 빌려 쓰는 차주들보다는 아무래도 자산규모와 자본력이 우월한 금융기관들이 경기변동 같은 리스크 대응능력이 훨씬 뛰어나다고 봅니다. 금융기관들이 차주들에 대해 관계금융의 깊이를 더해가는 서비스 제공이 정책적으로 필요합니다. 차주들도 그런 금융기관과의 거래를 쉽게 바꾸지 않고 투명하게 정보를 제공하여 미리미리 리스크 관리의 도움을 받아 신뢰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금융거래는 쌍방 신뢰가 기본입니다. 신뢰는 일관된 거래의 축적을 담보로 합니다.
아시다시피 부실여신이 문제입니다. 국내 NPL(무수익 채권) 시장 규모와 추세에 대한 설명을 부탁합니다.
국내 NPL 시장을 뭉뚱그려 말하면 정확한 이해가 어렵습니다. NPL 시장은 크게 둘로 나뉩니다. 하나는 경쟁입찰로 거래가 이루어지는 시장입니다. 이쪽 NPL은 리만 사태 이후 지난 4년간 원금 기준으로 매년 6조~8조원 규모가 거래되었습니다. 주거용 건물(아파트·주택), 상업용 건물(상가), 중소규모의 공장, 나대지 등이 주요 물건들입니다. 거래가격이나 낙찰률도 꾸준히 올라갔고, 그간 이쪽 부실채권은 정리가 꽤 됐습니다. 우리 경제가 정상화되면 4~6조원 규모에서 시장이 안정될 것입니다.
시장에서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는 NPL도 있지요.
맞습니다. 요즘 은행권 NPL이 많이 쌓여있다는 것은 이 부분 때문입니다.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에 처해 있거나 채권은행들이 공동관리하는 형태의 거액 채권들입니다. 주로 건설, 부동산PF, 중소형조선, 해운은 물론 웅진, STX, 동양 등 재벌기업의 부실채권들이죠. 현재 은행권 전체 여신의 1.5% 정도를 차지할 만큼 큰 규모입니다. 채권단이 구성되어 있는 NPL이라서 은행들이 시장에서 팔겠다고 내놓아도 선뜻 사겠다고 나서는 수요자는 없습니다. 채권단의 보유채권을 다 모으지 않는 한 일개 은행이 보유한 채권만 사보았자 매수자는 주도적으로 처리하기도 어렵고, 또 신규자금 지원이나 출자전환 등 채권단 결정에 수동적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기에 그만큼 싸게 팔지 않는 한 수요가 없습니다. 채권은행도 무작정 싸게 팔려고 하지 않을 것이므로 시장에서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부실채권은 경기후행지표이므로 이렇게 시장거래가 이루어지지 않고 은행권 장부에 적체되는 기업부실채권은 당분간 더 늘어날 공산이 큽니다.
특별히 외환위기 직후와 현재 상황에 어떤 차이가 있나요.
외환위기 당시에는 외부 충격으로 인해 모든 산업에서 대기업 부실채권이 발생했으나 은행권의 채권비중이 높아서 구조조정과 채무조정을 통한 부실처리가 비교적 신속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경제 내부에서 일어난 과잉투자와 경쟁력 상실의 문제가 주요 원인이라서 특정산업에 부실이 몰려 있고, 산업구조조정 차원의 처리방법이 아니고서는 NPL의 단순한 시장거래라는 방법으로는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습니다. 과거에 축적된 경험이 제대로 먹히지 않는 구조이죠. 전문가 시각으로 보자면 시장방식에는 돌파구가 없어 매우 답답한 상황입니다.
경제가 살아나아 한다는 얘기네요. 그러나 경제가 살아나면 NPL 시장이 위축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렇죠, 경제가 살아나면 당연히 NPL의 절대규모는 줄어듭니다. 하지만 은행 같은 수신기관은 대출을 통해서 실물경제를 지원해야만 본연의 수익이 납니다. 리스크를 거래해 돈을 버는 비즈니스라는 얘기이죠. 따라서 과도하게 리스크를 져도 부실이 생겨 문제지만, 과소하게 짊어지면 수익이 안 나고 실물경제도 위축되어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결국 적정수준의 리스크를 짊어져야 할 것이기 때문에 NPL 시장은 경기 사이클은 타겠지만 경제규모가 성장함에 따라 꾸준히 커갈 것입니다.
유암코는 출범 이후 계속해서 상당히 좋은 실적을 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인가요.
유암코는 4년 전 5000억원의 자본금으로 출범했습니다. 2013년 결산을 하면 자기자본 규모는 8000억원에 이를 전망입니다. 그만큼 NPL 시장 규모가 커지는 시점에 사업을 시작해 많은 수익을 냈습니다. 유암코 출범 전엔 시장규모가 크지는 않았어도 제한된 시장참여자들 사이에서 알려지지 않게 더 높은 수익을 냈을 겁니다. 지금은 저금리 시대라 모든 투자영역에서 기대수익률이 낮아져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좋아 보이는 NPL 시장으로 자금이 몰리고 있고 덩달아 수익률이 낮아지는 상황입니다. 어차피 시장이란 투자정보가 흐르면서 균형을 맞춰가는 것이므로 수익률 하향조정이 당연한 평형화 과정이라고 봅니다.
그렇지만 경쟁업체보다 월등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NPL 투자는 대단히 전문가들 중심의 시장입니다. 담보물건의 복잡한 권리분석과 실수요자를 찾아내는 자산관리능력을 요합니다. 축적된 경험과 고객 네트워크, 법률적 지식을 갖추지 않으면 이익 내기가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유암코의 경영실적이 좋았던 것은 우수한 전문인력이 모여 있고 다른 경쟁사보다 상대적으로 자금조달 코스트가 유리하기 때문일 겁니다. 새로 NPL 시장의 강자로 올라서고 싶은 투자자가 있다면 자금력보다는 경험 많은 전문가를 먼저 상당수 확보하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그게 바로 지금의 유암코가 마켓 리더이자 꾸준히 높은 수익을 유지해온 비결입니다.
유암코 출범 이전에 이미 우리F&I 등 자산관리회사들이 있던 것으로 압니다만.
우리F&I는 IMF 위기를 벗어나면서 은행권에서 공급되는 NPL 시장의 규모가 크게 위축되었을 때도 적정규모의 자산관리 전문인력을 유지해온, 이 시장에 공을 세운 회사입니다. NPL 사관학교라고 할 수 있죠. 사실 유암코 출범 때 우리F&I의 인력과 노하우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 외에는 외국투자자들이 떠나고 난 뒤 일부 저축은행과 소수의 전문투자회사들이 시장에 매수자로 있었습니다.
유암코는 NPL 처리에 많은 기여를 한 것으로 아는데요.
글로벌 금융위기로 NPL이 증가하는데 IFRS 도입으로 유동화를 통한 부실채권 정리를 진정매각으로 인정하지 않는 상황이 되었어요. 은행권이 NPL을 처리할 방법이 없단 거죠. 수요기반 부족한 상황에서 특단의 방법으로서 유암코가 출범했습니다. 처음부터 유암코의 역할이나 수익력에 대해서는 주주 은행들도 기대가 크지 않았습니다. 유암코를 운영하면서 이 사업이 속성상 전문가들이 하는 사람 비즈니스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게 맞아 결과가 좋았습니다. 포트폴리오 운용규모가 커지면서 위험분산 효과가 더 커지고 경험 축적이 서로 상승효과가 일어나 지금의 결실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런 비즈니스의 속성은 앞으로도 크게 변하지 않을 듯합니다. 전문인력을 선발하고 잘 유지하는 게 저 같은 CEO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암코는 글로벌 금융위기란 특수한 환경에서 출범했는데 국내 경제에 어떤 긍정적 효과를 냈는지요.
NPL 투자자의 역할은 은행에 적체된 부실채권을 사서 그것에 딸려오는 공장이나 상가, 주거용 건물, 토지 등의 실수요자를 빠른 시간 내에 찾아주는 것입니다. 실수요자라고 함은 해당 물건에 대해서 가장 높은 가격을 낼 수 있는 매수자일 겁니다. 유암코 같은 NPL 투자자는 사실상 죽어있는 부동산 물건을 찾아서 투자가 일어나게끔 거래를 이어주는 역할을 함으로써 경제에 투자와 활력을 일으키는데 기여합니다. 저성장 시대에는 유암코 같은 역할을 하는 NPL 투자자가 매우 중요합니다. 이런 투자자들이 활발히 움직여 NPL 시장에서 공급자와 수요자가 공정하게 거래할 수 있을 대 경제도 분명히 활력을 얻을 것입니다. 유암코를 운영하면서 늘 직원들에게는 죽어있는 자원의 재분배라는 사회적 순기능을 한다고 설파하고 있습니다. 그냥 부실채권 싸게 사서 돈 번다는 설명보다는 이런 소명의식을 일깨우고 공감하게 하는 게 보람도 생기고 결국 회사나 경제에 모두 유리하게 됩니다. .
우리F&I가 대신증권에 매각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시장에 어떤 변화가 있고, 유암코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까요.
우리F&I의 최종매수자는 가장 높은 프리미엄을 지불하려는 인수자가 될 공산이 큽니다. 프리미엄을 지불한 만큼 NPL 시장에서 적극적인 투자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또 비즈니스 속성을 잘 이해한다면 전문인력을 잘 유지하는 전략을 펼 것이 분명합니다.
유암코 같은 마켓리더는 역량 있는 경쟁자가 있어야 시장에서 위협을 느끼고 발전하게 됩니다. 제2의 경쟁자는 자신을 위협하는 제3의 경쟁자가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치열한 경쟁구도로 NPL 시장이 정립되면 최종 승자는 NPL을 내다 파는 은행권이 될 것입니다. 동시에 이 분야에서 일하면서 몸값이 올라가는 전문인력들도 승자가 될 것입니다.
일반인들의 NPL 투자에 대해 조언을 부탁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NPL 시장은 운영자금 규모가 큰 투자자가 활동하는 곳이지 개인투자자가 한두 건 물건에 투자해서 꾸준한 이익을 낼 수 있는 곳은 아닙니다. 소위 차주를 상대로 추심업무를 하는 무담보채권과 달리 NPL은 담보물건의 가치분석과 매수상대방을 찾아서 해소해야 하는 복잡한 과정을 수반하기 때문에 일반인이 들어오면 위험부담이 매우 큽니다. 개인은 실수요자로서 담보물건을 사서 직접 사용할 목적이라면 바람직하지만 단순히 투자목적으로 덤벼서는 곤란합니다. 차라리 전문가가 운영하는 펀드에 가입하는 게 좋습니다.
끝으로 앞으로 하시고 싶은 일이나 바람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유암코는 소규모로 이루어지던 NPL 입찰시장이 커지는데 일조했습니다. 또 NPL 시장 투자가 사업모델로서 매력이 있음을 각인시켰습니다. 하지만 이는 기존 시장을 키우고 알리는 정도의 수평적 역할에 불과합니다. 현재 시장에서 거래가 잘 안 돼 은행권과 우리 경제를 짓누르는 거액 부실채권을 처리하는 시장이 열려야 합니다.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 은행공동관리 하에 장기간 머물고 있는 조선이나 해운, 건설, 부동산PF, 태양광 등 산업구조조정형 거액부실채권 처리가 시장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언젠가는 그런 때가 올 것입니다. 제게 부실채권 전문가, 구조조정 전문가라는 명칭이 붙어 다닐 때마다 미안한 생각이 많습니다. 이 분야의 시장을 형성하는 데 제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이성규 대표는
충남 예산 출신으로 서울대 대학원 졸업 후 한국신용평가에서 10년간 산업분석과 대기업 신용평가를 담당했다. 또 연세대에서 재무론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식품이 주력이던 제일제당(현 CJ그룹)으로 옮겨 계열 EMI 뮤직에서 미래 성장산업인 엔터테인먼트를 익혔다. 그는 CJ그룹에서의 경험이 이후 콘텐츠 사업이나 사람 비즈니스의 속성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외환위기 때 한신평에서 인연을 맺은 이헌재 전 장관의 요청으로 기업의 저승사자라던 기업구조조정위원회 사무국장이 되어 워크아웃 작업을 총괄하며 불모상태였던 기업회생작업을 시스템으로 만들어냈다. 이 과정에서 과로로 두 번이나 목 수술을 받기도 했다. 이후 서울은행 여신담당 상무 국민은행 워크아웃본부 부행장, 하나금융지주 부사장, 하나은행 부행장 등을 역임했고 2009년부터 유암코 대표를 맡고 있다. 2004년 ‘이헌재식 경영철학’이란 경영연구서를 낸 데 이어 2012년엔 유년 시절의 기억을 되새기는 ‘소년은 철들지 않는다’라는 에세이집을 출간했다.
[정진건 기자 ·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0호(2014년 0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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