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10억 달러 달성’ ‘섬유업계 ODM방식 선도한 프런티어’.
화려한 수식어를 보유한 국내 섬유업계 리딩컴퍼니 ‘세아상역’은 국내 대중에게 다소 낯선 편이다. 이는 매출의 대부분을 수출을 통해 올리고 있는 탓이 크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세아상역은 세계 각국에 퍼져있는 생산기지에서 하루 150만장 이상의 의류를 생산하고 지난해 자회사 포함 약 1조5000억원의 매출을 올린 히든챔피언이다. 한국은 물론 미국 인도네시아 니카라과 등 9개국 17개 현지법인과 24개 생산 공장에 근무하는 직원들과 협력업체 근로자는 5만명에 이른다. 1년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내며 지사 점검과 바이어 미팅으로 눈코 뜰 새 없는 세아상역의 수장 김태형 대표를 삼성동 본사에서 만났다.
야성 숨기고 섬유업계 독보적 맹수로 군림
“독수리는 평소 용맹한 본성과 발톱을 숨기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듯한 모습을 할 때가 많아요. 그러면 다른 동물도 경계를 풀고 가까이 다가옵니다. 본모습을 감춘 독수리는 항상 긴장을 풀지 않고 먹이를 노리죠. 이러한 독수리의 특성은 세아상역의 모습과 상당히 닮아있습니다.”
‘숨겨진 강자’로 섬유업계를 호령하고 있는 세아상역 김 대표는 독특하게 기업의 성장과정을 독수리에 비유했다. 항상 완벽을 기하면서 협력업체들과 신뢰관계를 쌓아가고, 중요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발전의 기반으로 삼아 온 세아상역의 자취와 독수리의 습성이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김 대표의 설명이다.
“돌아보면 세아상역은 위기의 순간에 부쩍 자랐어요. 국가적 위기가 닥친 외환위기 시절이 세아상역이 선두기업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됐고 글로벌 침체가 극에 달했던 지난해 실적은 좋았고 올해도 1억8000만 달러 정도 매출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위기상황을 잘 예측해 비용은 줄였고 신규투자도 성공적으로 시행한 결과죠.”
올 초부터 김 대표를 비롯한 세아상역의 임원들은 해외출장 시 이코노미석을 이용하고 있다. 장거리 비행 이후 바로 지사 점검이나 협력사 미팅에 나서야 하는 임원들에게는 부담스러운 결정일 수 있었다.
“실질적인 금액은 사실 얼마 되지 않지만 위기를 맞아 한푼 두푼 모은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점이 좋았던 것 같아요. 임원들의 솔선수범이 회사 전체 분위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고집스럽게 추진한 신사업, 업계 트렌드로
1986년 맨주먹과 배짱을 밑천으로 창업주 김웅기 회장이 탄생시킨 세아상역은 설립 이후 지속적으로 성장세를 그려왔지만 특히 1997년 터진 외환위기를 통해 사세가 늘었다. 당시 원화가치가 급격히 떨어지자 서울 본사는 담보가치가 하락하며 금융비용이 늘어나 다소간 어려움을 겪었으나 수출은 아우토반에 들어섰다. 1997년 3700만 달러였던 매출액은 3년 만에 1억 2700만 달러 규모로 3배 이상 급성장했다.
“외환위기를 거치고 매출이 늘어가며 새로운 욕심이 생겼어요. 팀의 직원들에게 ‘10억 달러 한번 해볼까’ 했더니 다들 기가 차 웃더라고요. 이후 동종업계 오너 분과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 역시 업종의 특성상 5억 달러 매출이 한계일 것이라 주장하셨죠. 그러나 결과는 달랐습니다.”
2005년 1월 미국의 의류 수출쿼터가 폐지되며 사업은 다시 한 번 탄력을 받았다. 2008년 중남미 진출이 성공하며 세아상역은 2011년 꿈에 그리던 10억 달러 수출 목표를 달성한 바 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글로벌 경기침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세아상역은 올해 15억 달러의 매출을 바라보고 있다. 이렇듯 외형적인 성장을 거듭해온 세아상역은 체질 개선을 통한 질적 성장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OEM방식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2001년 업계 최초로 제품기획을 위한 디자인팀을 도입하여 자체적으로 디자인을 개발해 주문자에게 먼저 제안하는 ODM(제조자개발생산)방식을 정착시켰다.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의류업체들은 단순 봉제수준에 머물러 있던 터라 ODM방식의 도입은 업계에서는 모험으로 비춰졌다. 이러한 모험의 중심에는 1997년 세아상역에 합류한 김 대표가 자리하고 있다.
“2008~2009년 대형 유통사들이 OEM업체들의 납품가격을 지속적으로 낮춰 수익을 내기가 힘들어진 거예요. 갈림길이었죠. 거품을 빼고 생산 공장으로 갈 것이냐’ 아니면 가치를 붙여서 하이엔드 쪽으로 갈 것이냐? 저는 ODM방식을 도입하자고 주장했는데 ‘우리가 무슨 디자이너가 필요하냐’는 회사 내 반대의 목소리도 많았어요. 다행히 (김웅기) 회장님의 신뢰를 얻어 추진하게 됐는데 지금은 업계 트렌드가 됐죠.”
현재 DKNY, 아베크롬비 앤 피치(A&F), 갭, 아디다스, 아메리칸 이글, 자라 등 유수의 브랜드가 세아상역의 고객사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회사의 전체 매출 중 ODM이 차지하는 비중은 15%까지 높아졌다.
입사 이후 기업의 성장과 함께 CEO자리까지 오른 김 대표에게 어두운 그늘은 없을까 궁금해졌다. “2002년 10월에 과테말라 법인장이 대가를 목적으로 한 괴한에 납치됐다가 탈출하는 과정에서 가슴에 총을 맞은 일이 있어요. 저 뿐만이 아니라 그룹 차원에서도 상당히 큰 사건이었죠. 다행히 현재 그 분은 아이티 지사 고문으로 활동하고 계시는데 가슴에는 아직도 총알이 박혀 있어요.”
김 대표가 밝힌 지사장 납치·총격사건은 회사 운영에 있어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이후 모든 임원들의 차량은 방탄차로 변경했고 총기를 소지한 경호원이 항상 대동하고 있다.
100억 달러 수출 불가능한 이유 있나요?
“돈 버는 벌레가 되면 안 되죠. 진정한 현지화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에 어떻게 공헌할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룹의 장기 비전에 대해 김 대표는 숫자보다 먼저 지역사회 봉사와 시스템 구축을 들었다. 이는 세계 각국에 퍼진 지사와 협력업체를 통합할 하나의 원칙과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과 단기적인 비전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진정한 현지화를 위한 지역사회 공헌과 봉사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비전 하에 대표적으로 추진 중인 사업이 아이티 섬유산업단지 조성이다.
“2010년 지진 피해가 막심한 아이티를 재건하기 위해 미 국무부, 미주개발은행, 아이티 정부와 손잡고 재건 사업을 진행 중이에요. 장기적으로 2만명 고용창출효과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지난해 첫 번째 결실이라 할 수 있는 공장이 가동됐습니다. 올 가을에는 유치원·초등학교·중학교 과정으로 구성된 세아학교(S&H School)도 학생들을 맞이할 예정입니다.”
대지진으로 황폐해진 아이티 재건을 위한 최대 규모의 산업단지를 조성 중인 세아상역은 각 해외 법인을 통해 학교, 탁아소, 아동보호센터, 여성 인권보호 등 지역 내 사회 복지시설에 꾸준히 투자하고 있다. 한 세아상역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아이티인들을 위해 전남대학교 의대와 함께 의료봉사 활동을 진행해 4000명이 넘는 현지인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했고 최근에는 과테말라 지사 여성 근로자들에게 무료 자궁암 검사를 실시해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고 밝혔다.
한편 현지화와 지역사회 공헌의 중요성을 강조한 김 대표는 마지막으로 오랜 시간 고민해 왔다는 중장기 계획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그는 이미 갖춰진 법인망을 통해 섬유 이외에 무역에도 뛰어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근 제가 회사에 던지는 화두가 ‘세아트레이딩 컴퍼니의 정체성은 무엇인가’입니다. 이전까지 세아상역은 봉제를 중심으로 무역을 통해 성공을 거두었지만 트레이딩에는 소홀히 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직원들에게 종종 ‘우리가 삼성물산이나 미쓰비시가 되지 말란 법이 있는가’ 라고 묻곤 합니다.”
장기적으로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분야를 확대해 종합상사로 발돋움 하리라는 비전을 제시한 김 대표는 다시 원대한 목표를 제시했다.
“계열사 매출과 더불어 수년 내 30억 달러 수출은 무난히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제는 100억 달러의 꿈을 꿀 시기라고 생각해요. 직원들은 또 웃겠죠.(웃음) 물론 현재 사업만으로 달성할 수 있는 목표는 아니에요. 호시탐탐 신규 사업 진출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김태형 대표
1962년생으로 서강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경영학을 전공하고 삼도물산, 금경을 거쳐 1997년 초 세아상역에 합류했다. 입사 11년차인 2008년 7월 7일 세아상역 대표이사에 올랐다. 기업 내부 체질 개선에 앞장섰고 수출 10억달러 달성의 전방에 섰다. 사내 소통을 중요한 가치로 여겨 직원들과 야구장 데이트를 즐긴다. 해외출장 시 대부분 의전 없이 청바지와 후드티셔츠에 배낭을 걸친 캐주얼한 차림으로 홀로 비행기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