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를 위협할 만한 가장 큰 요인들은 여전히 유럽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과도한 재정지출이 현재의 유럽 위기를 초래했다. 그렇다고 지금 정부지출을 너무 공격적으로 줄이면 경제 회복을 위한 다른 방법들마저 사라지게 된다.”
아프리카 잠비아 출신 여성 경제학자인 담비사 모요는 세계 경제 회복과 관련해 여전히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MBN포럼 참석차 방한한 그는 2년 전부터 저서와 강연을 통해 “현재의 성장과 경제구조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미국과 대부분의 유럽 경제권은 잘해야 2류에 머물게 될 것이 확실하다”고 강하게 거듭 강조해 왔다. 올해 44세인 담비사 모요는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뽑힌 차세대 여성 거시 경제학자다.
모요는 유럽의 경제 회복과 관련해서 “균형 잡힌 긴축과 확장정책이 필요한 것이지, 긴축 자체에만 의미를 둬선 안 된다”고 역설했다.
“유럽 정책결정자들은 중장기적으로 국가재정 재건이라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이것이 세계 경제 회복의 최대 위협요소다. 물론 지금 단기적으로는 회복할 만한 지원 정책이 받쳐주고 있지만 여전히 마이너스 경제 성장률을 보이고 있고, 성장한다 하더라도 아주 미미한 수준에 그칠 것이다.”
그는 유럽 내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여전히 불안정성이 존재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유럽연합(EU)의 핵심 회원국인 영국의 캐머론 총리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폭탄선언을 하면서 불안정성은 더욱 커졌다. 이와 관련해 모요는 “영국은 이런 결정에 대해 매우 신중해야 한다”면서 “영국처럼 중산층 비율이 높고 부유한 국가라도 그 보다 더 큰 무역 공동체에서 벗어나면 결국 시련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저축 장려토록 세금 체계 고쳐야
그렇다면 유럽 경제 회복을 위한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일찍부터 모요는 ‘서구의 반격’을 위한 조건으로 “방만한 소비보다는 저축을 장려하도록 세금 체계를 뜯어고치고, 자본·노동·기술이라는 성장의 세 가지 핵심요소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자본에 있어서는 정부와 가계가 모두 빚으로 충당되는 소비를 줄여야 하고, 노동생산성 향상과 관련해서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지적재산권 보호에 나서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자본이 확보되고 올바른 정책이 채택되면, 불확실성은 줄고 신뢰도는 높아져 투자 확대로 이어진다는 논리다.
모요는 “금융 위기를 초래한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비생산적인 분야에 막대한 자본이 흘러 들어갔기 때문”이라며 “차라리 인프라스트럭처나 교육처럼 생산적인 분야에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듯 경제 성장을 가져올 수 있는 분야에 투자한다면 긴축이냐 확장이냐에 대한 논쟁도 불필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프런티어 시장 주목할 때
모요는 서구경제의 위기와 더불어 신흥시장의 힘을 주목했던 학자이기도 하다. 앞으로 세계 경제를 이끌어갈 성장동력을 어디서 찾아야 하냐는 물음에 그는 이른바 프런티어(Frontier) 시장에 주목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프런티어 시장이란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브릭스(BRICs)를 제외한 신흥시장을 말하는 것”이라며 “특히 콜롬비아 나이지리아 케냐 대만 베트남은 중국과 비교하면 10년은 뒤처져 있지만 젊은 인구, 도시화, 소비자 구매력 성장 등이 두드러진다.”
이 때문인지 유럽 문제가 아직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요가 보는 전반적인 세계경제의 그림은 썩 나쁘지 않다. 모요는 “많은 ‘꼬리 리스크(Tail Risk)’가 사라졌다”며 “최근 나오고 있는 통계수치 또한 모든 상황이 보다 건설적이고, 긍정적으로 바뀌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그는 “그렇지만 이런 전망 역시 어디까지나 단기적인 상황일 뿐”이라며 “장기적으로는 교육, 부채, 생산성 저하를 비롯한 여러 구조적 문제들이 아직까지 존재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일본의 엔화약세 정책 등에 따른 글로벌 환율전쟁 가능성에 대해서는 낮게 봤다. 일본은 수십 년에 걸쳐 장기 침체를 겪어 왔고, 그동안의 재정정책은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러면서 모요는 “일본의 엔저정책을 단순히 외환시장 개입 자체로만 생각해선 안 된다”며 “일본은 경제 회복을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나는 엔저정책이 일본 경제를 살리는데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일본의 정책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다만 걱정되는 건 다른 여러 나라들이 일본 등에 대한 보복 정책으로 돌아서면서 모두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태”라며 “일본의 통화정책이 경제회복을 위한 것임을 우선 이해하고, 향후 어떤 영향을 미칠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담비사 모요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공공정책 석사학위를,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계적인 경제사학자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의 제자이기도 하다. 세계은행 컨설턴트, 골드만삭스 이코노미스트로도 10년간 근무했다. 주요 저서로는 아프리카 생존방안으로 차별화된 경쟁 포인트를 찾아줄 것을 주장한 <죽은 원조>, 서구의 경제 몰락과 신흥국 성장을 분석한 <미국이 파산하는 날> 등이 있다.
꼬리 리스크(Tail Risk) : 발생 가능성이 낮은 사건이 전체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리스크. 정규 분포 곡선의
끝부분이 꼬리 모양을 하고 있어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꼬리 리스크는 발생 가능성이 희박하고 예측하기 어렵지만 그 여파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