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mist]소득 분배보다 기회 공정 분배가 중요하죠…고려대서 은퇴 서울대로 부임 이필상 교수
입력 : 2013.04.08 15:14:35
이필상 전 고려대 총장이 30년 6개월간의 고려대 교수 생활을 마치고 지난 3월 1일 모교인 서울대로 부임했다. 지난 2월 고려대를 정년퇴임한 이 교수는 한국의 왜곡된 분배구조를 해결하는데 중요한 것은 세금이나 임금구조 개선보다 기회의 분배라고 강조했다. 또 경제의 선장 역할을 해야 할 한국은행에 대해선 “극단적으로 말하면 식물 상태”라고 강하게 비판했고 정부에 대해선 부처의 이익을 위해 싸울 정도로 이기주의가 극심하다고 지적했다. 평생 학생들을 가르친 것을 보람으로 여긴다는 그는 요즘 학생들에 대해선 “지도자가 될 사람들이 자기만 생각한다”며 개인주의를 경계했다.
조교도 없는 작은 연구실에서 기자를 맞은 이 교수는 직접 커피를 타며 이번 학기 학부에선 미시금융론을, 석·박사 과정에선 응용금융경제연구를 강의한다고 소개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벌어지는 지금 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과목을 맡았다고 하니 금융이 잘못돼 자본주의 위기가 왔다고 말문을 열었다.
“금융이 잘못돼서 자본주의의 모순이 드러났다.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대두되면서 금융산업이 실물부문과 괴리되기 시작됐다. 금융이 실물과 보조를 맞춰야 하는데 독자적 전략산업이 돼 다른 나라를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됐다. 선진국은 파생상품이나 첨단금융 기법으로 M&A를 하거나 증시를 통해 다른 나라의 거래를 지배하면서 많은 이익을 얻어왔다. 이것이 발전해 국가 간 양극화가 심화됐고 산업 간 양극화와 계층 간 양극화를 초래했다. 이 여파로 실물부문이 위축돼 고용창출 여력이 떨어졌다.”
이 교수는 자본주의의 핵심은 고용능력을 높이는 것인데 금융으로 부를 좌우하기 시작하면서 양극화가 나타났고 결국 자본주의의 위기를 초래했다고 진단했다.
“이 맥락에서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한 배경을 보자. 90년대는 개방경제로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던 시대였다. 당시는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 경제가 활황이었다. 2000년대 들어 경제가 위축되자 (미국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 통화정책을 완화 기조로 가져갔다. 기준금리를 1%대까지 내리는 등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려고 했다. 그러나 실물경제가 위축돼 있는 상태라 경제는 살아나지 않고 물가 불안만 심화됐다. 그러자 연준(연방준비제도이사회)은 물가를 잡겠다며 기준금리를 다시 5%대까지 올렸다.
그런데 저금리 당시 수많은 저소득층이 싼 금리에 돈을 빌려 집을 장만했다. 이 상태에서 1%대이던 금리를 5%대로 올리니 금리 부담이 급격히 늘었다.
결국 저소득층이 늘어나는 금융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서브프라임 사태가 일어났다. 이것이 본격화해 금융시장 혼란이 일어났고 2008년 글로벌 위기가 터졌다.”
글로벌 위기 여전히 진행형
그는 최근 위기가 진정된 것처럼 보이나 끝난 게 아니라고 했다. 금융위기는 부채가 많은 나라의 재정위기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글로벌 위기를 부르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
“금융위기가 일어나자 위기를 잠재우기 위해 세계 각국이 돈 풀기 경쟁에 나섰다. 이때 재정여건이 취약한 유럽 여러 나라가 재정팽창에 따른 부담을 이겨내지 못해 위기를 맞았다. 이 때문에 실물부문은 더 침체됐고 이것이 다시 금융부문의 침체를 불렀다. 남유럽 재정위기로 국채시장이 마비됐다. 실물부문 위기가 다시 금융위기를 불러오는 구조적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불황이 나타나고 있다. 이 양상이 심화되면 세계적인 공황이 나타날 수도 있다.”
맨큐 교수가 경제학 책에서 정부는 아무리 빚을 많이 져도 망하지 않는다고 쓴 데 대해 이 교수는 그것은 미국에나 맞는 얘기라고 했다.
“미국은 기축통화국이기 때문에 돈을 풀어도 된다. 찍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 따른 위기가 다른 나라로 전이된다. 들고 있는 미국 돈의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이 돈을 찍어내는 게 다른 나라엔 고통이 된다. 이 때문에 중국이나 EU도 자기 나라 돈도 국제통화로 만들려고 한다.”
이 교수는 경제의 국경이 사라진 지금은 돈 풀어 경제 살리는 게 어렵게 됐다고 분석했다.
“90년대 이후 경제의 세계화로 자본이 마음대로 국경을 넘나들고 있다. 첨단금융이 생겨나면서 경쟁력 있는 사람들이 돈 내고 돈 버는 머니게임을 벌이고 있다. 국경이 있으면 돈을 풀어서 살려낼 수 있었으나 이제는 돈을 풀어도 경기부양이 안된다.”
유럽 국가들은 특히 EU 출범으로 통화주권을 상실해 위기에 무방비 상태가 됐다고 했다.
“마르크화를 사용한 독일은 유로화 체제가 되면서 통화가치가 절하됐다. 유로화가 더 싸기 때문이다. 반면에 다른 나라들은 자국 통화가치가 올라가는 효과가 생겼다. 이 때문에 주변국은 손해를 보고 독일은 이익을 보게 돼 양극화가 심화됐다. 그런데도 주변국은 통화정책을 쓸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재정정책을 쓰자니 이미 부채가 많은 상태라 위기가 심화됐다.”
이 교수는 특히 독일이 자국 이기주의를 내세워 주변국에 빌려줬던 여유자금을 한꺼번에 빼내 위기를 심화시켰다고 비판했다.
“독일은 EU 출범으로 가장 이득을 본 나라다. 당연히 이웃을 도와줘야 하는데 자국 이기주의로 자금 회수에 나서서 위기를 고조시켰고 결국 자기 발등을 찍었다. 문제는 여기서 정치논리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왜 우리 돈을 떼이냐, 빨리 받아내라고 압력을 가하니 돈을 회수해 사태를 악화시켰다.”
한국은행은 식물 상태
그렇다면 한국의 상황을 이 교수는 어떻게 볼까.
“극단적으로 말하면 한국은행은 식물 상태다. 중앙은행은 경기흐름을 예측해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정책이 뒷북치기 일쑤라서 효과도 없고 신뢰도 떨어진다. 이 때문에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고사하고 성장동력을 창출하는 데도 실패했다.”
그는 특히 자금이 비정상적으로 흐르고 있어 한은이 금리를 조작하는 것만으로는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했다.
“금융시장이 실물경제와 연계돼 있어야 금융정책이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정책 효과가 나타난다. 그러나 우리 금융시장은 돈 흐름이 비정상이다. 과잉유동성 상태이기 때문에 기준금리를 올려도 시중금리는 내려가는가 하면 기준금리를 내렸는데 시중금리가 올라가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갈 길을 잃은 한은을 어떻게 치유할까.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해 선제적 정책을 펴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한은을 고치는 것만으로는 안된다. 금융시장이 실물과 연계해서 정상적으로 돌아가도록 만들어야 한다. 지금 한국의 금융기관들은 담보를 잡고 이자 받는 돈장사만 하고 있다. 금융이 실물과 같이 커야 하는데 연결고리가 끊어졌다. 은행이 실물경제 발전기구 역할을 하지 못한다.”
금융이 실물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정부가 금융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선 한은만 바꿔선 안되고 정부와 금융기관이 함께 나서서 금융이 선순환하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불행히도 박근혜 정부가 제시한 정책만 봐서는 은행의 돈장사를 고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 한국에선 해외금융은 기획재정부가 담당하고 국내금융은 금융위원회가 맡고 있다. 또 금융감독 정책은 금융위가 하고 금융감독 집행은 금융감독원이 한다. 게다가 통화정책은 한은이 맡고 외환정책은 기재부가 맡는 식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 때문에 부처 이기주의가 극단적으로 작용해서 국가경제를 위해 어떻게 조화로운 정책을 펼 것인지 고민 없이 정책을 내놓고 있다. 국내금융과 외환정책도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인데, 그래서 합리적인 고민이 안된다. 전체적으로 정책이 엇나가고 있다.”
이 교수는 이를 시정하려면 정부조직을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위를 예전처럼 금감위로 개편해 금융위 내에 금감원을 두고 금감위원장이 금융감독원장을 겸임해 일사불란한 정책을 펴야 한다. 금융정책 기능은 기재부에 주어 재정정책과 조화를 이룰 필요가 있다. 반대로 기재부가 갖고 있는 예산편성권은 떼어내야 한다. 예산편성 권한과 재정집행 권한을 함께 행사하니 너무 막강해 남용한다. 기재부는 재정금융부로 만들고 예산편성은 기획예산처로 넘기는 게 바람직하다.”
정부 부처 이기주의 심각할 정도
그는 정부 내 갈등을 해소하는 것도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지금 부처끼리 심하게 싸우고 있다. 금융위는 금감원과 자료 교환조차 제대로 안되고 있다. 그렇다 보니 비리가 생겨 저축은행 사태가 터졌다. 금융기관은 돈놀이에 혈안이 돼 있고 이 때문에 서민은 사채시장으로 내몰린다. 예산은 혈세를 쓰는 것인데 부처별로 과도하게 늘리고 있고 국회의원은 그것을 통제할 생각은 않고 타내기에 바쁘다. 외환정책과 통화정책은 뗄 수 없는 것인데 그것마저 기재부와 한은이 나눠 갖고 갈등을 벌이고 있다. 이것이 경제의 딜레마다.”
새 정부가 미래창조과학부에 힘을 싣는 것도 의미는 있으나 나라의 경제정책을 제대로 하고 또 제대로 키우려면 이 부분부터 손대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 교수는 분배 문제에 있어서도 세금이나 임금만 따지는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른 의견을 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금융위기가 번지면서 국가경제가 식물 상태에 머물고 있어 고용창출이 안된다. 경제 패러다임을 새로 바꾸고 거기에 맞게 성장정책이나 분배정책의 틀을 새로 짜야 한다. 분배도 성장의 과실로서 나오는 개념으로서의 분배는 떠나야 한다.
소득 분배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기회의 공정한 분배이다. 근로자에겐 일할 기회를 주어야 하고 벤처기업이 창업할 기회를 주어야 하며 중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에겐 지역에서 장사할 수 있도록 해 신분상승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성장의 과실을 독점하지 못하게 조세나 임금구조를 고치는 것이 당연하나 보다 중요한 것은 기회의 분배를 제대로 해 신분상승을 할 수 있게 해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 대목이 MB정부가 실패한 부분이라고 했다.
“이명박 정부는 대기업과 부유층 중심의 성장을 한 뒤 낙수효과를 보는 정책을 폈다. 대기업이 성장해 투자를 늘리면 고용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고환율 정책을 폈다. 덕분에 수출 중심의 대기업들은 돈을 벌었으나 낙수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구조적으로 문제만 악화됐다.”
이런 상태에서 고환율 정책을 펴라는 주장을 그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고환율 정책으로 대기업이 엄청난 이익을 냈지만 정규직끼리 그 이익으로 엄청난 보너스를 받아먹어 양극화가 심화됐고 경제의 저변은 약화됐으며 고용창출 효과가 큰 중소기업은 위축됐다. 지금의 성장률 2% 정도로는 경제가 식물 상태로 들어갔다고 할 수 있다. 분배는 제대로 안되고 부채는 늘어나고 경제는 붕괴되고 있다.”
이 와중에 경제력이 집중된 대기업은 투자를 대부분 자동화에만 해 고용은 감소하고 그렇게 해서 늘어난 이익을 정규직만 누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기업 정규직은 귀족이고 그 다음이 비정규직이며 바닥에 일자리가 줄면서 실업자가 된 사람들이 있다. 자영업과 벤처 중소기업이 무너졌다.”
고환율 불가피 경제민주화로 보완해야
그러나 지금 당장은 어쩔 수 없이 고환율을 유지해 잠재성장률을 높이고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일본이 선전포고를 해왔다. 과도한 엔화약세 전략 때문에 우리 경제는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우리의 주력 수출 품목인 자동차나 전자 화학 등은 대부분 일본의 수출 품목과 중복된다. 그러다 보니 주력 수출산업이 큰 타격을 받았다. 토요타와 현대차의 관계에서 잘 드러난다. 사정이 이러니 일단은 대기업이라도 살려야 한다. 정당방위 차원에서 수출기업을 보호해야 한다.”
통화전쟁이 벌어진 상태니 고환율은 용인하되 부작용을 경제민주화로 보완해야 한다는 게 그의 논리다.
“대기업의 문어발 확장이나 순화출자를 막아야 한다. 국가적으로 역할을 분담해 대기업은 대외적으로 경쟁하게 하고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이 설 땅을 주어야 한다. 지금 큰 나무 밑의 벤처기업이나 중소기업이 자라지 못하고 있다. 너무나 무성해 햇빛이 들지 못한다. 경제의 저변을 확대해야 균형성장이 가능하다.”
그는 경제민주화가 결국은 대기업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제민주화로 대기업에 피해를 주자는 게 아니다. 잘 할 수 있는 분야에서 경쟁하도록 하고 불공정 경쟁이나 문어발식 확장을 막자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제까지는 경제민주화 얘기만 나오면 진지하게 고려해 보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좌파라고 몰아대 대화가 안됐다. 성장동력이 꺼지면 대기업이나 부유층도 피해를 본다.”
대기업들이 앉아서 환율로 돈 버는 데만 매달리지 말도록 경제 구조를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필상 교수
1982년부터 고려대에서 강의했다. 2006년 서울대 학부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고려대 총장이 됐으나 취임 직후 논문표절 의혹이 제기돼 67일 만에 자진사퇴했다. 한국 시민운동가 1세대로 1998년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장을 역임하는 등 90년대 시민운동을 이끌었다. 금융실명제, 토지공개념, 중앙은행 독립 등 경제민주화 관련 이슈들을 주도했고 감사원 부정방지대책위원도 역임했다. 1947년 경기도 화성 출신. 제물포고, 서울대, 컬럼비아대 경영학 박사.
공학도 출신의 재무 전공한 경제학자, 이필상 교수
이 교수는 고려대에서 꼬박 30년 6개월 동안 강의했다. 진짜 후회 없이 했지만 그래도 좀 더 열심히 연구해서 더 잘 가르쳤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고 했다.
“학생들은 이해관계 없이 올바로 공부하고 싶어 했다. 그들에게 한국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시킬 필요가 있었다. 당시엔 정경유착이 심했고 경제력 집중이 심했으며 부정부패가 심했다. 이런 것들을 바로잡기 위해 금융실명제가 필요하다고 했더니 학생들은 믿고 받아들였다. 그들이 배운 것을 가슴 깊이 새기는 것을 보는 게 나로선 보람이고 감동이었다.”
그는 교수를 천직으로 생각했기에 다른 쪽을 보지는 않았다고 했다.
“처음 교수가 돼서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했다. 교수는 등록금 받아먹고 사는 직업이다. 그래서 개인적 이해나 영달을 위해 교수란 직위를 쓰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 생각으로 열심히 연구하고 가르치며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그랬더니 학생들이 몰려왔다. 그게 교수 사회의 갈등을 일으켜 고통스럽기도 했다. 그 때문에 필수과목은 강의하지 않고 선택과목만 강의했다. 대신 참다운 지식을 가르쳤다.”
이 교수는 MBA를 했고 박사과정에선 재무를 전공했다. 그런데 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친 까닭이 궁금했다.
“나는 학부에선 공학을 했다. 호구지책으로 은행에 시험 봐서 들어갔더니 월급을 많이 주더라. 그런데 공대 출신이라고 차별을 했다. 그래서 나도 너희가 한 공부를 해보겠노라며 사표 내고 MBA를 하러 갔다. 그런 뒤 은행으로 돌아가 뜻을 펴볼 생각이었으나 MBA를 하고 나니 이왕 시작한 것 조금 더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박사과정에 들어가 재무를 전공했다.
그런데 박사과정의 재무는 미시경제가 기반이었다. 그래서 논문은 시장구조에 대해 썼다. 나처럼 학부에서 공학하고 석사과정에서 경영을 하고 박사 과정에서 경제를 한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요즘 얘기로 통섭을 한 것이라고 하니 이 교수는 “좋게 표현하면 융합이고 나쁘게 말하면 잡탕이다”라며 웃었다. 그런데 그런 공부가 도움이 됐다고 했다.
“이렇게 하고 보니 산업이나 경제의 흐름을 제대로 볼 능력이 생겼다. 이것을 기반으로 연구하고 강의를 하니 학생들이 잘 따라왔다.”
그는 특히 최근 경제학이 너무 이론 중심으로 흐르고 있다며 사회과학은 현장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과학은 사회현상을 진단하고 분석하고 연구하고 교육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명력이 없다. 그래서 학생들에게도 강의 시작 때 우리나라 현실이 어떤 지부터 진단한다. 그 뒤 이론으로 설명하며 강의를 해 나간다.”
그런 면에서 현실과 교감을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몸이 (학교)밖으로 나가선 안 된다고 했다.
“생각과 마음이 밖으로 나가서 세계 경제가 어떤지, 기업들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근로자의 실상은 어떻고 서민들의 삶은 어떤지를 통찰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 생각으로 학생들에게 진리를 가르쳤다고 했다.
“대학은 우리 사회의 불의를 거부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이다. 그래서 경제의 잘못된 부분을 가차 없이 비판하고 학생들과 토론하면서 올바로 갈 수 있도록 가르쳤다.”
이 교수는 금융위기로 자본주의의 모순이 불거지면서 위기를 맞은 경제학에 한국이 새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만든 나라다. 우리 경제는 위기를 겪으면서 성장했다. 97년 외환위기를 거치고,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많은 경쟁력을 갖췄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경제 구조를 뜯어고쳐 양극화 상태에서 경제의 저변을 확대해 성장 잠재력과 고용 능력을 회복하고 다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일 수만 있다면 세계에 모범이 되는 경제발전 모델도 가능할 것이다. 이것이 한국 경제학계에 주어진 숙제다.”
그런 점에서 정부나 기업도 마음을 열라고 주문했다.
“자본주의 모델을 만들자면서 재벌을 개혁하자면 대기업이 거부하고, 관료주의를 타파하자면 공직자가 거부한다. 재벌 개혁이나 관료주의 타파가 그들을 때리는 게 아니다. 그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기 위한 양보를 요구하는 것이다. 다 함께 잘 살려면 시장경제를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학생들에게 공동체를 생각할 것을 강조했다.
“학생들은 집단 이기주의나 개인 이기주의에 휘말리지 말고 우리 경제와 사회, 국가가 어떻게 발전해야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현실은 그렇질 않다. 학생들이 너무 자기만 생각한다. 당장 취직해서 돈 버는 것만 생각한다. 지도자가 될 사람들이 그래선 곤란하다.”
경제학 하려면 재무는 필수
그러면서 폭 넓게 배울 것을 주문했다.
“경제학을 한다면 재무는 당연히 배워야 한다. 그런데 지금 경제학과 경영학은 서로 대립해서 자기가 최고라고 주장한다. 그래선 안된다. 세계경제의 흐름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세계의 자금 흐름을 알아야 하고 그러려면 재무를 배워야 한다. 예전엔 주식을 한다면 모두가 천박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그만큼 폭 넓게 배워야 한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연구한 지 30년이 넘었지만 책을 쓸 생각은 없다고 했다.
“경제학은 동태적으로 변하는 경제현상을 진단하고 분석하는 학문이다. 기본 이론은 필요하지만 상황에 맞게 진단을 하다보면 어느 정도 (자료가)쌓여도 시간이 지나면 달라진다. 학문적 연구는 계속하고 있지만 현실을 파악하는 책은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칼럼 쓰면서 그때그때 평가하는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지금까지 쓴 게 2500건 정도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