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병철 회장이 이건희 회장 첫 출근 당시 해준 첫 번째 조언은 ‘잘 들어라’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경영인들도 이러한 면은 반드시 본받아 듣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합니다.”
국내 최고의 노동행정 전문가로 알려진 문형남 노사관계발전재단 사무총장은 인터뷰 시작과 동시에 국내 경영인들의 부족한 노사문제 인식수준을 꼬집었다.
“격렬한 물리적 분쟁이 일어난 후 부랴부랴 협상테이블에 앉아서야 비로소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회사의 입장을 설명하려 하니 해결이 쉬울 리가 있나요? 노사문제 역시 상시 신경 써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1974년 15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이후 대전과 부산지역 노동청장을 거쳐 노동부 기획관리실장 등 노동행정 전문가로서 역량을 쌓은 문 사무총장은 최근 최저임금위원회 제7대 위원장으로 활동한 바 있다.
40년 넘게 노동현장을 누비며 노사관계에 대해 연구해온 결과 그는 경영자들이 지금보다 조금 더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노사분쟁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사관계 정립이 잘 되어 있다는 일본기업들의 경우 부서 간담회를 상당히 중시합니다. 직접 경영자가 현장에 방문해 실무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 기업의 정보를 수시로 공유합니다. 그러다 보니 서로에 대한 오해로 오는 갈등의 소지는 적어지는 것이죠. 반면 국내 경영자들은 그러한 노력은커녕 노사문제는 1년에 교섭 한 번 잘하면 된다라는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죠.”
경영자들의 경청의 자세에 대해 반복적으로 강조한 그는 노사문제가 기업의 경쟁력으로 중요하게 인식되는 시점이 올 것이라 내다봤다.
“현재 경제 환경은 상시위기, 예측 곤란의 시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100-1이 0이 되는 시대죠. 1~2%가 무엇이 대단하냐 하지만 0.1%의 차이가 생존을 결정합니다. 원만한 노사관계 역시 중요한 경쟁력 중 하나입니다. 기업의 생존 경쟁력이 유지돼야 고용도 유지되는 것이 당연하죠. ‘자기만 주의’를 버리고 상생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야 저성장 뉴노멀(New Normal)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
노사상생에 대한 공감대가 중요하다고 강조한 그는 기업경쟁력을 저해할 수 있는 노사분쟁 해결방안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중재를 위해 현장을 찾아가 보면 정치적이고 감정적인 싸움만 하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죠. 협상 중에 ‘당신 지금 모라고 했어?’ 한마디 나오면 바로 교섭 끝 싸움 시작이죠. 절대 상대방이 틀렸다는 말은 금물입니다. 정치적인 부분과 감정을 완전히 배제하고 실제 양측이 원하는 바를 솔직하게 적고 기업에 어떤 영향이 있는지,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하면 실상 중재는 쉽게 끝납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강력한 노조는 기업의 자산이다
문 총장은 최근 다양한 현장경험과 연구결과를 담아 노사상생의 중요성과 근로자와 경영자에 대한 제언을 담은 저서 <상생을 위한 여섯 섬돌>을 출간했다.
“기업경영자, 노동조합간부 신입사원에 이르기까지 노사 모두에게 생존을 위한 자기개발의 중요성을 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섬돌은 시골집에 가면 신을 벗고 마루에 올라가기 위해 도와주는 네모 반듯한 돌입니다. 노사가 상생하기 위한 중요한 덕목들이 기업의 발전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섬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됐습니다.”
그가 제시한 6가지 덕목은 집단적 차원의 노사관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 원활한 소통과 공감, 공정성 확립, 일과 직장에 대한 사랑, 건강한 위기의식 가지기, 일상적인 업무 개선과 창의성 발휘 등이다. 그는 저서를 통해 노사관계가 어떻게 전개돼야 하고 주체인 근로자와 경영관리자가 어떤 의식과 행동을 통해 상생해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한편 그의 책 내용 중 일반적인 인식과는 배치되는 부분이 눈에 띈다. ‘강력한 노조는 기업의 경영자산이다.’
“노사분규는 강성으로 할수록 좋다라는 의미는 아닙니다.(웃음) 노조 집행부가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다면 그것은 경영자산이 될 수 있는 측면이 있죠. 사실 노조집행부가 우유부단해 의사취합과 교섭이 늦으면 경영적인 측면에서 손실을 계속 늘어나기 마련입니다. 의사를 하나로 합칠 수 있는 능력이 노조의 힘이자 기업 전체의 경쟁력이 될 수 있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