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mist] 닥터둠 `누리엘 루비니`가 보는 2012년 세계경제…글로벌 경기침체 다시 온다
입력 : 2011.12.29 15:15:21
수정 : 2012.02.10 10:23:13
루비니 교수의 2012 전망 ·Global 경기 점점 위축… 2012년 2.8%, 2013년 2.7% 성장 ·Europe 신용경색 지속… 2012년 -0.8%로 위축 예상 ·US 당초 예상보단 낫다… 1분기 성장은 정체 예상 ·China 경착륙 가능성… 수출 부진·부동산 급락 가능성
닥터둠(Dr Doom·경제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을 하는 사람)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이는 아무래도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스턴스쿨(경영대학원) 교수이자 자신의 연구소인 루비니 글로벌 이코노믹스(RGE) 회장일 것이다. 사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 루비니 교수는 스타 경제학자들에 비하면 무명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 경제학자였다. 그가 전 세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글로벌 경제에 대한 탁월한 혜안을 갖춘 구루로 등극한 것은 지난 2006년 사건(?) 때문이다. 그해 7월 그는 조만간 과도하게 오른 주택가격 거품이 터지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손실이 확대되고 상업용 부동산시장이 붕괴될 것으로 진단했다. 부동산시장 붕괴의 충격으로 금융기관이 파산하고 기업들이 연쇄 부도를 맞는 한편 글로벌 주가가 폭락하고 세계경제가 망가질 것이라는 12단계 불황 시나리오를 내놨다. 같은 해 9월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 강연회에 참석해 많은 경제학자들 앞에서 또다시 조만간 정책 결정권자들도 손을 댈 수 없는 엄청난 위기가 온다고 주장했다.
그때까지는 작고 다부진 체격에 항상 웃음기 없는 심각한 얼굴로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는 루비니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당시 글로벌 경제가 물 흐르듯 잘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주장은 현실과 동떨어진 것으로 치부됐다.
그러나 지옥의 묵시록 같은 그의 예언이 현실로 나타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07년 하반기부터 주택가격 오름세가 꺾이더니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주택시장의 거품이 꺼졌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우후죽순처럼 터지기 시작했다. 부실자산이 눈덩이처럼 확대되면서 천문학적 손실을 입은 미국 4대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그해 9월15일 파산했다. 리먼브러더스 파산을 신호탄으로 미국 발 금융위기는 전 세계적 경기침체로 이어졌다.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루비니는 닥터둠의 대부라는 명성을 얻게 됐다. 그리고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강연과 언론 인터뷰를 하는 가장 바쁜 경제 전문가로 꼽히고 있다.
필자는 루비니 교수를 뉴욕과 다보스 등에서 다섯 차례 정도 만났으니 아마도 국내 기자 중에서는 가장 많이 접했을 것 같다. 닥터둠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그는 만날 때마다 글로벌 경제에 대해 긍정적 이야기를 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언제나 기다렸다는 듯 비관론 보따리를 풀어놨고 글로벌 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나려면 아직도 한참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경고를 끊임없이 쏟아냈다.
그렇지만 그의 차별화된 통찰력과 분석능력은 언제나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다. 2012년 세계 전망 또한 마찬가지다.
선진국 경제 더 나빠질것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지 4년째가 되지만 루비니 교수는 2012년 글로벌 경제도 비관적으로 보았다.올해 글로벌 경제의 평균 성장률이 2.8%에 머물고 2013년에는 2.7%로 더 떨어질 것이란다. 이는 2010년 성장률(5.1%)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루비니 교수는 선진국 경제를 더 좋지 않은 것으로 본다. 2012년 유럽·미국 등 선진국 경제가 더블딥에 빠질 확률을 50% 이상으로 잡고 있다. 지난해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선진국 경제의 더블딥 가능성을 40%로 봤지만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유로존 부채위기 때문에 더블딥 확률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이제 루비니에게 선진국 경제가 더블딥 덫에 걸릴지 아닐지는 관심사가 아니다. 이슈가 되는 것은 경기침체 정도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혹은 그 이상으로 심각(severe recession)해질지 아니면 가벼운 침체(mild recession)로 끝날지 여부다. 그는 심각한 경기침체와 가벼운 경기침체를 가르는 가장 큰 변수로 유로존 재정·금융위기를 지목하고 있다.
유로존 위기가 무질서한 디폴트와 일부 국가의 탈퇴와 같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지만 않는다면 세계 최대 경제대국인 미국이 가벼운 경기침체만 겪을 것이란 게 그의 분석이다. 가벼운 경기침체라고 하더라도 더블딥은 더블딥이다.
루비니 교수는 상반기 중 최소한 한 분기 정도는 미국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실질 성장률이 1%에도 못 미치는 0.7%라는 저성장 국면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유로존 충격에다 당파싸움과 정치적 리더십 부족으로 초당파적으로 협력하지 못해 경제에 힘을 실어주기보다는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으로 봤다. 실제로 향후 10년간 1조2000억 달러의 재정적자를 감축하기 위해 미 상·하원 합동으로 마련한 특별위원회인 수퍼커미티(Super Committee)는 작년 11월 재정적자 감축 계획 합의에 실패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또 작년 말 만료되는 소득세 감면과 장기실업급여 혜택을 올해에도 받을 수 있도록 1년간 더 연장해줄 것을 의회에 요구했지만 지난 18일 상원은 단 2개월 연장에만 동의한 상태다. 2012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주도권을 잡으려는 공화당과 민주당간 정치적 갈등이 한층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루비니는 유로존을 더 걱정스럽게 보고 있다. 재정위기 장기화에 따른 신용 경색과 불확실성으로 기업들이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기 힘든데다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재정긴축으로 소비수요까지 위축돼 당분간 의미 있는 경기 반등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특히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경우 단기적인 혼란까지 더해지며 유로존 경제가 0.8% 정도 퇴보할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그는 특히 유로존이 부채위기를 극복하더라도 경쟁력이 단기간에 회복되기 힘들 정도로 훼손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경쟁 상대인 아시아 국가들은 투자와 수출을 통해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있는데 유로존 국가들은 생존에만 올인해 장기적인 경기 전망이 더 안 좋아질 수도 있다는 판단이다.
반면 신흥시장에 대해 그는 상대적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선진국 경제침체 여파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아 신흥경제 성장이 어느 정도 둔화될 수는 있지만 경기침체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란 얘기다. 아시아 등 신흥국들이 경상수지 흑자를 내고 있고 국가부채가 선진경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어 정책 수단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 아시아 경제는 지난 2010년 성장률(9.2%)보다는 못하지만 7% 수준의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루비니 교수는 진단했다. 다만 미국이나 유로존 경제가 생각보다 더 큰 폭으로 가라앉을 경우, 선진경제와 신흥경제 간 리커플링이 강화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주문했다.
그는 중국에 대해서는 당장 2012년은 아니지만 경착륙 가능성까지 언급하면서 다소 박한 대접을 하고 있다. 중국은 수출의 50%를 유럽 쪽으로 보내고 있다. 유로존 경제침체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중국 수출의 경제성장 기여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 부동산 가격 하락이 본격화되면 부동산 개발업자·투자 그리고 정부세입에 연쇄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루비니 교수는 특히 은행의 천문학적인 부실자산과 국가부채 문제가 2013년부터 수면 위로 떠올라 중국 경제 성장이 2013~2014년부터 정체될 것으로 내다봤다.
유로존 임밸런스(Eurozone Imbalance)
루비니 교수는 유로존 이슈가 뿌리 깊은 구조적 허점을 안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본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다. 그러나 한 꺼풀 더 벗겨보면 신흥국과 미국 간 무역 불균형을 의미하는 글로벌 임밸런스(Global Imbalance)가 자리 잡고 있다.
글로벌 임밸런스가 무엇인가? 한국·중국 등 아시아 무역수지 흑자국들은 수입을 넘어선 지출을 해온 미국과 같은 과소비 국가에 상품을 수출해 엄청난 무역수지 흑자를 쌓고 눈부신 경제성장을 지속해 왔다. 벌어들인 달러로 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이 발행한 국채를 사들여 미국이 소득을 넘어서는 과도한 소비를 지속하도록 부추겼다. 반면 과소비에 빠진 미국 등 선진시장은 과도한 무역적자와 부채 확대의 악순환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글로벌 불균형 현상이 강화됐다. 이 같은 불균형 상태는 무역적자국인 미국 등 선진경제 부채를 키웠고 부채 규모가 임계점에 도달했을 때 자산버블 붕괴까지 합쳐지면서 글로벌 경제위기가 촉발됐다. 루비니 교수는 유로존에서도 글로벌 임밸런스와 유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바로 국가 간 임밸런스다. 지난 10년간 PIIGS(포르투갈·아일랜드·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 국가들은 수입을 넘어서는 지출을 했다. 갈수록 경상수지 적자 규모가 커졌다. 이때 유로존 핵심국(독일·프랑스·오스트리아·네델란드)은 제조업을 기반으로 생산국 역할을 하면서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를 냈다. 과도한 소비로 경상적자 규모가 커지면서 이를 메우는 과정에서 민간·공적 부채가 커졌고 주택버블까지 터지면서 디폴트 상황으로 내몰렸다는 진단이다.
유로존 위기 탈출의 투트랙 전략
루비니 교수는 그리스 등 회원국들의 유로존 탈퇴로 유로존이 2~3년 내 와해될 가능성을 50%로 보고 있다. 루비니 교수가 가장 염려하는 시나리오는 무질서한 디폴트와 유로존 와해다. 질서 있는 유로존 탈퇴를 유도하면 유로존 와해 위험을 상당부분 경감할 수 있겠지만 무질서한 유로존 와해는 글로벌 경제엔 최악의 시나리오란 것.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루비니 교수는 투트랙 전략을 제시한다. 유로 핵심국은 경기부양에 나서고 주변국은 경제성장의 숨통을 터놓은 채 적정한 긴축·개혁에 나서야 한다는 주문이다.
일단 국가부채가 눈덩이처럼 커진 유로 주변국들은 국가부도 위기를 막기 위해 재정긴축에 나서고 구조조정에 들어가 국가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재정긴축과 인원 삭감·한계기업 폐쇄 등 구조조정 작업이 오히려 단기적으로 경기침체의 골을 키워 부채상환을 더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절약의 역설(Paradox of Thrift)도 부담이다. 가계가 저축을 늘리고 소비를 줄이면 총수요가 줄고 결국 경제가 더 큰 침체의 늪에 빠지게 된다. 경기가 더 어려워져 막다른 골목에 처하게 되면 그리스나 아일랜드 같은 나라들은 유로존을 탈퇴한 뒤 자국 통화를 재도입, 대폭적인 평가절하에 나서 수출을 늘리는 등 자구책을 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같은 무질서한 유로존 탈퇴는 유로존 체제 와해를 가져와 글로벌 경제에 커다란 혼란을 줄 수 있다.
그래서 독일과 유럽중앙은행(ECB)은 재정불량국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긴축을 요구하더라도 성장을 저해할 정도의 과도한 긴축을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는 게 루비니 교수의 생각이다. 어느 정도 성장의 숨통을 열어주는 방향으로 긴축을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1유로당 1.3달러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는 유로화 가치도 1유로=1달러로 낮춰 유로·달러화 등가시대를 여는 것도 유로존 수출경쟁력을 높이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했다.
독일 등 아직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유로존 핵심국가들은 재정건전성을 확보한답시고 긴축에 나설 게 아니라 재정지출 확대 등을 통한 경기부양에 나서는 게 정답이라고 루비니 교수는 강조한다. 그래야만 주변국 긴축에 따른 경기둔화 부담을 어느 정도 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또 ECB가 현재 1%인 유로존 금리를 미국 FRB처럼 제로금리로 가져가 시장에 충분히 돈이 돌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유로존 위기가 쓰나미처럼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덮치기 전에 ECB가 무제한적인 국채 매입에 나서는 등 최후의 대부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스가 무너지는 것쯤은 감당할 수 있지만 이탈리아까지 시장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려 시장에서 자금을 차입할 수 없게 되면 유로존 디폴트 사태가 최악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것. 이탈리아와 스페인 경제의 덩치는 코끼리처럼 너무 커 나중에 완전히 망가진 뒤엔 구제에 나서기 힘들다고 했다. 이탈리아나 스페인의 국채 규모는 3조 유로에 달한다. 지금 논의되고 있고 몇 천억 유로의 바주카포(구제기금)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때문에 망가지기 전에 ECB가 나서서 이탈리아, 스페인 국채를 매입해주면 양국 국채에 대한 시장 신뢰가 쌓여 이들이 시장에서 원활하게 국채 차환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루비니 교수는 50% 헤어컷(채무탕감)을 결정한 그리스처럼 아예 위기의 싹을 지금부터 잘라버리는 차원에서 당장 이탈리아 채무재조정을 실시하는 게 낫다고 한다. 이탈리아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120% 달하는 상황에서 채무재조정 외에는 부채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 또 실질금리가 5%에 달하는 이탈리아 입장에서 국가부채를 현 수준에 잡아두려면 GDP 대비 5%가 넘는 프라이머리 서플러스(이자비용을 감안하지 않은 재정흑자)가 필요하지만 경제가 제로성장 국면에 빠진 상태에서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루비니는 이탈리아 국가부채를 현 120%에서 90%로 줄이기 위한 채무재조정을 위해 기존 채권자들에게 두 가지 선택권을 부여할 것을 주문한다. 첫째 옵션은 기존 채권자가 보유하고 있는 채권과 등가의 가치를 갖는 채권(par bond)을 주되 만기를 늘리고 이자율을 기존 시세의 25%정도 낮추는 것이다. 다른 옵션은 기존 채권보다 액면가가 25% 낮은 할인채권을 발행, 기존채권과 교환하도록 하는 것이다. 등가채권(par bond)은 채권을 만기까지 들고 있고 시가평가를 하지 않는 은행들에게 적합하다. 이렇게 하면 은행들은 상당 기간 손실이 발생하지 않은 것처럼 회계처리를 할 수 있고 신규 자본을 조달해 자본을 재확충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다. 이탈리아 국채의 40%를 국외 투자자들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채무재조정을 통해 국내 채권자와 외국인 채권자가 손실을 분담할 수 있게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기존 채권을 그냥 들고 있는 채권자들에게 이 두 가지 옵션보다 더 많은 이익을 줘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두 가지 옵션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 옵션은 폐기처분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루비니 교수의 이탈리아 채무재조정안을 유럽연합(EU)정상들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이미 EU정상들이 민간이 국채 손실을 부담하는 것은 그리스로만 한정한다고 못을 박은 상태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국채까지 민간이 손실을 분담하는 채무재조정에 들어갈 경우, EU정상들이 시장에 한 약속이 허언이 되고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 시장혼란이 더 커질 수 있다. 그만큼 수용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또 다른 문제는 이탈리아 채권 보유자들이 상당한 손실을 볼 수밖에 없는 채무재조정을 하더라도 이탈리아 등 유로존의 장기적인 성장과 경쟁력 문제는 해결이 안 된다는 점이다.
유로라는 단일통화를 사용하기 때문에 유로화가 절하되더라도 유로존 내 경제력 격차 때문에 독일 등 경쟁력이 있는 국가는 혜택을 보겠지만 경쟁력이 떨어지는 국가는 여전히 성장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단일통화 체제하에서는 근본적인 유로존위기 해결책을 찾기 쉽지 않다. 때문에 루비니 교수는 유로존 부채위기는 물론 장기적인 성장·경쟁력 이슈까지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옵션은 유로존 국가들이 유로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탈리아는 리라를 사용하고 다른 유로존 국가들도 자국 통화를 사용하는 것이다. 루비니 교수는 당장 유로존이 채무재조정이나 그리스, 포르투갈 같은 소국의 이탈로 와해되지 않겠지만 결국 이탈리아, 스페인이 채무재조정에 들어가고 자국통화 사용을 추진하면 유로통화동맹이 붕괴될 것으로 본다. 질서 있는 유로존 와해가 충격의 강도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닥터 둠 루비니 교수는 내다봤다.
[박봉권 / 매일경제 국제부 기자 peak@mk.co.kr]
경제석학 '판 강'의 중국경제 진단 No Problem… 중국은 여전히 건강하다
판강 소장의 2012 전망 ··중국 성장률 하락 2011년 9%, 2012년 8.5% 예상 ··부동산 시장 일부 대도시 급락 가능성 ··위안화 상승 가능성 있으나 추가 상승은 시간 필요 ··부실채권 문제 지자체 대출 문제 될 수도
미국, 유럽에 이어 전 세계의 관심은 다시 한번 중국으로 향하고 있다. 연착륙 할지, 아니면 텅텅 볼썽사나운 소리를 내며 경착륙을 할지에 말이다. 경착륙 우려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고 있지만 그래도 중국은 믿음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더 크다. 여기에는 중국마저 무너지면 전 세계 경제가 걷잡을 수 없는 나락에 빠질 수도 있다는 걱정이 깔려 있다.
중국 경제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커질 때, 이 사람의 입은 더욱 주목받는다. 바로 중국 대표 경제학자인 판 강 중국경제개혁연구기금회 국민경제연구소 소장이다.
“문제없다(No Problem).”
판 강 소장은 중국 경제를 밝게 보기로 유명하다. 각종 산적한 문제들이 있지만 해결 못할 과제는 아니며, 중국은 정부 주도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이라는 게 판 강 소장의 발언 요지다. 그는 지난 12월17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한 경제컨퍼런스에서도 “중국 경기는 연착륙할 것”이라며 “현재 중국 경제는 성장하는 과정에 보일 수 있는 건강한 조정 국면에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 유럽이 흔들리는 이 때 중국은 또 한 번 세계경제의 새로운 견인차로 부각되고 있다. 판 강 소장에게 2012년 중국 경제를 물었다. ▲예상 경쟁성장률 ▲부동산시장 ▲중국의 경기부양책 ▲미국의 위안화 절상 압력 ▲시진핑 체제로의 변화와 중국 경제 ▲한반도 통일과 중국 경제 등 중국에 관한 전방위적인 질문을 했다.
2011년 중국의 9% 성장은 무난한가? 2012년 성장 전망은 어떤가
2010년엔 전 세계 경제위기에 대한 정책적인 대응이 있었다. 재정도 팽창 정책을 썼다. 부양정책도 있었고, 통화정책도 느슨하게 진행됐다. 유동성이 늘다보니 인플레이션이 생겼다. 2010년 중반 들어서 정부가 정책 기조를 바꿨다. 유동성 과잉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섰다. 그러나 2011년에도 9% 성장이 가능하리라 본다. 다만 2012년부터는 2010년부터 진행된 긴축정책의 영향으로 8.5% 수준의 성장률이 예상된다. 중국의 잠재 성장률이 8%임을 감안하면 이는 건전한 성장률이다.
중국 부동산시장의 경착륙에 대한 우려가 종종 나오는데
일부 대도시에서는 부동산 거품이 보인다. 일부 대도시에서는 부동산 가격이 20~30% 정도 폭락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일부에 불과하다. 중국 정부는 이를 안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09년 4조 위안 경기부양과 같은 양적완화 정책을 쓸 가능성이 있나
2012년에 8.5% 성장이 예상되기 때문에 2011년만큼 적극적으로 부양책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단기적으로 중소기업의 유동성을 재고할 수 있는 정책을 쓸 수 있다. 성장률이 11%에서 9% 밑으로 낮아짐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문제도 있다. 설비시설이 남고 중소기업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이 부문은 중국이 조치를 취할 것이다.
2012년에 시진핑 체제가 되면서 경제정책상 변화는 있을 것으로 보는가
2012년 11월경 전당대회를 통해 새로운 지도부가 들어설 것이다. 경제학자로서 새 지도부의 제도 개혁 부분에 많은 기대를 갖고 있다. 시진핑은 시골 출신으로 실물경제 경험이 많다.
새 지도부는 문화대혁명 시대 이후 세대로서 개혁을 겪었고 시장경제 경험이 있다.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현실적인 비전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은 지속적으로 위안화 절상을 요구하고 있다. 위안화 절상 가능성은 있는가
환율 문제는 오래된 이슈다. 미국은 달러가 기축통화이기 때문에 달러 절하를 위해 다른 통화를 절하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위안화는 2010년 6월 이후 실질적으로 12%, 명목가치로는 7%나 올랐다. 미국 달러가 1% 오를 때, 중국은 6% 올랐다. 위안화 절상은 이미 이뤄졌다. 더구나 중국은 GDP 대비 무역 흑자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 1980년대 일본에서 볼 수 있듯이 역사적으로 급변한 환율이 미치는 악영향을 중국은 알고 있다. 중국은 계속 성장을 하고 있지만 인구도 너무 많고 실업 문제와 소득의 불평등 문제를 여전히 안고 있는 개도국이다. 경제적으로 인한 환율 변화에 따른 충격을 받아들일 만한 탄탄한 경제가 아니다.
위안화 절상 여부는 중국 정부가 아니라 금융시장이 결정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중국 은행들이 시장의 개방과 자금의 원활한 흐름으로 이뤄지게 되면 감당할 수 있을까. 중국의 금융시장이 개방되고 더 유연하게 될 수 있도록 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중국 은행 부실 위험은 없나
중국 은행은 전반적으로는 별 문제는 없다. 부실채권 비율도 높지 않다. 국가 통제로 위험 관리도 잘했다.
물론 자율경쟁이 이뤄지지 않고 있고, 금리 결정의 자율성도 없고 국가 통제를 받는 부분이 문제다. 그러나 정부는 지속적으로 규제 개혁을 하고 있다. 딱 하나 문제는 지방정부의 대출 문제다. 지방자치단제는 대출할 수 없다. 채권을 발행할 수도 없고 금융시장에서 돈을 끌어오는 것도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지자체는 2009년과 2010년 금융시장 완화를 틈타 국영기업을 만들어 대출을 받았다. 지자체는 책임감과 상환능력이 부족해 부실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것도 전체 규모도 GDP 대비 20%밖에 안 된다. 금융자산에 비해서는 10%밖에 안 된다. 더 늘고 있지도 않는다. 장기적으로 국유화돼 있는 금융시장을 민영화하는 과제가 있다.
중국의 북한 투자에 관심은 어느 정도인지
나진·선봉 경제특구를 지정하기 전에도 중국의 많은 민간기업이 북한에 관심 가지고 비즈니스를 펼쳐왔다. 지금도 정부가 나서기 보다는 중국의 민영기업이 관심을 갖고 북한에 투자한다. 지금은 핵문제와 정치적 불안정성 때문에 투자에 머뭇대고 있다. 이 부분이 해결되면 중국 기업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설 것이다. 북한으로의 중국 관광객이 증가하는 게 고무적이다. 이는 관련 투자 증가로 이어질 것이다.
중국이 유럽의 구원자가 될 가능성은 없는가
유럽의 위기는 매우 커다란 부분이다. 중국이 (채권을) 사준다고 해서 도움이 되진 않는다. 유로화 채권의 매수 여부는 정부가 아닌 시장과 기업이 결정할 문제다. 수익률과 리스크 금리 조건에 기반해 중국의 금융시장은 포트폴리오에 유럽 채권 편입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중국의 유럽 채권 매입설은 지난번 중국 대기업이 이탈리아에 갔을 때 생긴 루머다.
향후 10년 중국이 세계 1위로 부상하는 것과 관련해 전망은 엇갈린다. 지속적 부흥과 곧 쇄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혼재한다
둘 다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아무리 중국이 경제 규모 면에서 세계 1위가 된다 하더라도 이는 진정한 1위가 아니다. 중국의 인구는 14억 명에 이른다.1인당 소득 면에서 경제대국은 아직 멀었다. 현재 중국의 1인당 GDP는 4000달러 수준인데 반해 미국은 4만 달러다. 겉으로 양적인 성장을 해도 이를 국제적인 영향력으로 연결하기도 어렵다. 중국 내에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재해 있다. 내수 개발과 소득의 불균형 등 국내 관심사가 워낙 많다. 지속적 성장을 해서 양적인 성장을 해도 중국은 여전한 개도국이다.
빠른 성장은 과열로 이어지며 위기로 연결될 수 있다. 10~20년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중국 경제는 1970년 남미, 1990년 아시아가 겪었던 문제를 통해 경기 과열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다. 단절 없는 성장이 중국의 현재 최대 관심사이다. 큰 위기 없이 큰 실수 없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게 1위를 하는 것보다 중요하다.
유로존은 지속 가능하다고 보는지
유럽의 전체 부채비율은 미국보다 좋은 편이다. GDP 대비 유럽의 부채가 86%라고 한다면 미국은 100%다. 일본은 200%가 넘는다.지금의 위기는 남유럽 일부의 문제다. 북유럽은 건전한 재정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북유럽 국가들도 남유럽 국가들이 무너지는 것보다는 그들의 위기를 해결해주는 게 자신들에게도 더 나은 결정임을 알고 있다. 정치적 합의가 어려운 일이긴 하겠지만, 나의 인식은 비관보다 낙관 쪽에 더 점수를 주고 있다.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것은 매우 불안한 징조이다. 허나 전 세계적으로 확산될 것으로 본다. 현재 일반 사람들이 원하는 바는 같기 때문이다. 여러 국가들은 양극화와 실업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중국 지식층 사이에 남한과 북한의 통일이 언제쯤 이뤄질 것으로 암암리에 얘기하나
지정학 전문가가 아니라 한반도 통일에 대해 전문적 식견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 그러나 한반도의 안정화는 희망하는 바다. 통일을 논하기 이전에 북한의 개혁, 성장 그리고 한국과 중국 같은 외국 기업의 투자가 이뤄지면 해당 지역은 모두 혜택을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