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인사는 위기의식, 변화의지, 성장 열망이 포함된 인사다. 삼성의 미래를 이끌어 갈 젊고 혁신적인 인물을 중용했다.”
2010년 12월3일, 이인용 삼성그룹 커뮤니케이션팀장(부사장)이 밝힌 삼성그룹 사장단 인사의 핵심이다. ‘젊고 혁신적인 인물’의 중심엔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포진해 있다.
최근 삼성그룹 사장단 중 재계와 언론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이름이다. ‘이재용 사단’, ‘JY라인’ 등의 단어가 매스컴에 오르며 이 사장의 든든한 지원군이 재조명되고 있는 시기라 그 의미가 심장하다. 과연 이 사장과 함께 삼성을 이끌어 갈 젊고 혁신적인 인물군은 누구일까.
이 사장의 지원군 중 단연 눈에 띄는 인물은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최 부회장은 회장 비서실을 거쳐 반도체, 디지털 미디어, 정보통신 등 첨단산업 분야를 두루 거친 인물이다. 재계 관계자는 “김순택 부회장, 최지성 부회장, 이재용 사장이 포스트 이건희 시대를 위한 삼각편대를 이뤘다”고 평했다. 최 부회장은 디지털 미디어 총괄사장 시절부터 이재용 사장과 행보를 같이 했다. 해외 행사 등에 함께 모습을 드러냈고, 삼성 특검 결과가 발표된 2008년 4월 이후 이 사장의 백의종군 시절엔 일본과 러시아 등지의 출장에 동행했다. 삼성 안팎에서는 이재용 사장의 경영 개인교사로 최지성 부회장을 꼽고 있다.
삼성의 지주회사격인 삼성에버랜드의 최주현 사장도 이재용 시대의 주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전략기획실 감사팀장 출신인 최 사장은 자금, 경영관리, 그룹 경영진단 등의 업무를 두루 거쳤다. 이 사장과 에버랜드를 중심으로 삼성생명, 삼성전자, 삼성카드, 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삼성그룹의 순환출자 구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삼성맨들 사이에서 “신임이 두터운 사람은 에버랜드로 간다”란 말이 괜한 말은 아니다.
그룹의 재무통으로 알려진 인사들이 대부분 퇴진한 상황에서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인물은 누구일까. 그룹의 중심인 미래전략실에 합류한 이상훈 전략1팀장(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1982년 삼성전자 통신사업부 경리과에 입사한 이 사장은 구조본 재무팀을 거쳐 2009년 말 삼성전자 사업지원팀장(사장)으로 승진하면서 최지성 부회장, 윤주화 사장(CFO 경영지원실장)과 함께 이재용 시대를 이끌어갈 꼭짓점으로 부상했다. 이번 인사에서 미래전략실의 주축으로 자리 잡으며 과거 이학수-김인주-최광해로 이어지던 재무통 3인방의 공백을 메울 것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학수-김인주 라인을 이재용 사장 라인에 편입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이재용 사장과의 관계도 그의 행보를 주목케 한다. 이상훈 사장은 삼성전자 미국법인 근무(1999년 2월~2002년 1월 삼성전자 북미총괄 경영지원팀장)시절, 당시 하버드대에 유학 중이던 이재용 사장과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사장이 2004년 등기이사로 참여한 S-LCD의 장원기 사장도 주목받는 인물 중 하나다. 그는 S-LCD 출범부터 줄곧 이 사장을 보좌해왔다.
장충기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장(사장)과 윤순봉 삼성석유화학 사장은 이 사장의 전무시절부터 수뇌부로 활동했다. 이 사장이 전무로 승진했던 2007년 1월은 ‘이재용 시대’의 출발 시점에 대한 논란이 뜨거웠다. 삼성그룹 임원이었던 한 재계 인사는 “당시 이학수 부회장과 윤종용 부회장이 유임되며 포스트 이건희 인맥이 한 발 뒤로 밀렸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포석은 이미 마련됐다”고 회고했다.
당시 삼성그룹 홍보실 인사를 살펴보면 이러한 포석을 확인할 수 있다. 2007년 1월, 6년 동안 홍보실을 이끌던 이순동 기획홍보팀장이 전략기획실장 보좌역(사장)으로 승진했고, 기획홍보팀장은 장충기 부사장(현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장)이 맡게 됐다. 윤순봉 삼성경제연구소 부사장(현 삼성석유화학 사장)은 이재용 당시 전무의 중용으로 전략기획실로 전보되며 홍보업무에 합류하게 된다. 그룹 홍보실 수뇌부가 이재용 체제로 세대교체된 것이다.
장충기 사장은 그룹 내 기획과 정보수집, 분석 등의 업무에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재용 사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에 실무적 토대를 제공할 인물로 자주 거론되곤 한다. 윤순봉 사장은 삼성의 지배구조와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에 대한 식견이 그룹 내 최고라고 인정받은 인물이다. ‘에버랜드 통’이라 칭하는 이들도 있다.
양해경 구주전략본부 사장, 김낙회 제일기획 사장, 주우식 삼성증권 부사장, 박상진 삼성SDI 사장도 이재용 사장의 지원군으로 꼽힌다. 이밖에 삼성경제연구소 전문가들과 정기모임 등을 갖고 있는데, 그룹 내부에서는 주로 계열사 사장과 핵심임원들이 이재용 사장의 ‘경영 가정교사’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부자문, 학교 동문도 주목대상
그룹 내부의 지원군이 견고한 탑을 쌓는다면 외부자문그룹은 외부활동과 시장상황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장진호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와 이성용 베인&컴퍼니 코리아 대표는 이재용 사장의 대표적인 외부자문그룹으로 분류된다. 서울대 사회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 어스틴대 경영학 석사, 미국 하버드대 경영학 박사, 미국 펜실베니아대 워튼(Wharton) 조교수를 거쳐 2001년부터 연세대에 재직 중인 장 교수는 이재용 사장과 하버드대에서 친분을 맺었다. 전공은 다르지만 이 사장의 서울대 3년 선배다.
<한국을 버려라>란 책으로 화제를 모았던 세계적 컨설팅업체 베인&컴퍼니 코리아의 이성용 대표는 경복고등학교 동기동창이다. 글로벌 트렌드를 비롯해 경영전략 등에 대한 조언을 자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장의 학연에 의한 인맥도 주목받고 있다. 그가 졸업한 경기초등학교 동문에는 삼성가(家)뿐만 아니라 재계 인사들이 많기로 유명하다. 우선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딸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 이 사장의 동생인 이서현 제일모직·제일기획 부사장이 동문이다. 재계에는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막내 조현상 전무, 남석우 남영비비안 회장, 박성철 신원그룹 회장의 차남 박정빈씨,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손녀인 정유희씨(고 정몽필씨 차녀) 등이 있다. 언론계에는 방성훈 스포츠조선 부사장, 장중호 IS일간스포츠 사장 등이 포진해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들 전재만씨와 이명박 대통령의 아들 이시형씨도 이 학교를 졸업했다.
이 사장은 청운중학교로 진학해 매제가 된 김재열 제일모직 부사장을 만난다. 두 사람은 청운중학교 동기동창이다. 동아일보 김병관 회장의 차남인 김재열 부사장과 동생 이서현 부사장의 만남은 이재용 사장이 주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복고등학교에선 성적이 줄곧 상위권이었다. 그의 동기들은 “특히 영어와 수학을 잘하는 친구였다”고 기억했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정몽근 현대백화점 명예회장,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이 동문이다. 사촌형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8년 선배이고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이해욱 대림그룹 부회장과는 동기동창이다. 개그맨 신동엽도 후배로 친분이 두텁다.
서울대 동양사학과 진학은 이병철 선대회장의 조언이 크게 작용했다. “경영자가 되기 위해선 경영이론도 중요하지만 인간을 폭넓게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교양을 쌓는 학부에서 인문학을 전공하고 경영학은 유학 가서 배우면 좋겠다”고 의견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학 당시 격의 없는 분위기를 유도하며 친구들과 지리산 종주에 나서기도 했던 이 사장은 지금도 당시 지리산행에 동행했던 구범진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와 친분이 깊다.
1995년 일본으로 건너간 이 사장은 게이오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이번엔 아버지 이건희 회장의 “미국을 먼저 보고 일본을 보면 일본 사회의 특성과 문화의 섬세함, 일본인의 인내성을 알지 못한다. 유학을 가려면 일본에 먼저 가라”는 조언이 작용했다. 이후 2001년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다. 게이오대에선 임성욱 세원화성 회장과 최성원 광동제약 사장, 초등학교 동문인 조현준 효성그룹 사장과 막역하게 지냈다. 하버드대 시절엔 이현승 SK증권 대표이사, 최재원 SKE&S 부회장(최태원 SK회장의 동생), 윤석민 SBS홀딩스 부회장과 함께 공부했다. 그 외 재계 인사 중에는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사장과 관계가 막역하다고 알려졌다.
과거사에 대한 비판 사전 차단
삼성그룹 내 핵심 인맥을 살펴보면 젊은 경영자를 전진 배치하고 고참들을 용퇴시켰다. 우선 ‘이학수 퇴진, 김순택 선임’이 눈에 띈다. 삼성물산 고문으로 물러난 이학수 고문의 퇴진은 ‘과거의 짐은 털고 간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이인용 삼성그룹 커뮤니케이션팀장(부사장)은 “과거 전략기획실에 대한 문책의 성격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삼성의 한 고위 임원은 “지난 10월 말까지만 해도 이 고문이 다시 핵심 분야를 맡는 것 아니냐는 말이 돌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만큼 예상치 못했다는 것이다.
속내를 살펴보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컨트롤타워를 ‘미래전략실’로 복원하며 과거 구조조정본부나 전략기획실이 보여줬던 부정적인 관행에서 탈피, 삼성 비자금 의혹 등 부정적인 고리를 끊겠다는 의지다. 한 재계 인사는 “이재용 체제로의 전환에 앞서 과거사에 대한 비판은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미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학수 시대의 구습을 끊겠다는 의지는 재무통인 이 고문과 업무적 배경이 다른 김순택 부회장의 발탁에서도 드러난다. 이건희 회장이 강조한 ‘젊은 조직’과 거리가 먼 60대의 김 부회장이 이재용 체제를 안정시키고 조만간 신진세력에 키를 넘길 거란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삼성의 한 고위 임원은 “뚜렷한 적이 없는 김 부회장이 신구세대의 갈등을 봉합하고 원만하게 조율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도석 삼성카드 부회장, 유석렬 삼성토탈 사장, 배호원 삼성정밀화학 사장 등 이건희 회장 시대의 주역이자 포스트 이건희 시대의 조언자들도 물러났다. 이학수 고문과 함께 모두 삼성의 재무통이다. 물론 의외라는 시각도 있다. 특히 최도석 부회장의 경우 세대교체 때마다 유임되던 그동안의 신임에 비쳐 ‘토사구팽’이란 말이 나오기도 했다.
현재 이 사장에게 요구되는 건 당연히 자기 사람이다. 시스템을 견고하게 움직이는 주체는 결국 사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