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1월 6일부터 9일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소비자 기술 박람회 CES 2026이 개최된다. 매년 IT혁신 방향을 예측하고 신기술 공개의 첫 무대가 되는 CES의 올해 관심사는 역시 인공지능(AI), 모빌리티, 로보틱스로 요약된다. 특히 CES 2026은 단순히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다는 선언이 아니라, 포스트 AI 시대의 산업 질서가 어떻게 재편되는지를 보여주는 무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1967년 처음 시작된 CES는 이후 소비자 전자·정보통신 산업의 연례 축제로 자리잡았다. 현재는 전 세계 수만 명의 기업 관계자·미디어·투자자가 한자리에 모이는 글로벌 기술 풍향계 역할을 하고 있다. 2025년 행사 기준 4500여 개 이상의 기업과 14만 명 이상이 참여하며 기술 트렌드를 주도했다는 점에서 CES 2026 역시 단순 제품 전시회를 넘어 향후 기술·산업 지형을 가늠하는 중요한 무대로 주목받는다. CES 2026의 공식 주제는 ‘혁신가들의 등장(Innovators Show Up)’으로 설정됐다. 이 슬로건이 의미하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제품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산업 전환의 결정적 방향성을 제시하는 기술과 기업이 전시장 곳곳에서 두각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외신과 글로벌 IT 업계에서는 CES 2026을 AI가 기술 트렌드가 아닌 인프라(infrastructure)로 전환된 이후 처음 열리는 CES로 규정한다. 2024~2025년 CES가 생성형 AI의 가능성을 과시하는 무대였다면, CES 2026은 AI가 실제 제품·서비스·비즈니스 모델에 어떻게 고착되는지를 보여주는 장이라는 것이다. 이는 과거 CES가 ‘가능성’을 보여주는 자리였다면, 이번 CES는 “누가 이미 준비돼 있는가”를 묻는 행사에 가깝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혁신가들의 등장’이라는 도발적 주제는 두 가지 함의가 동시에 담겨 있다. 하나는 기술 자체의 혁신이고, 다른 하나는 혁신을 구현할 수 있는 조직·자본·생태계를 갖춘 기업의 부상이다. 다시 말해 CES 2026에서는 단순한 아이디어나 콘셉트가 아니라, 이미 시장과 산업 구조 속에서 작동하기 시작한 기술과 기업이 주목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CES의 무게중심이 스타트업의 아이디어 경연장에서, 산업 질서를 재편할 수 있는 플레이어들의 각축장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이 주제는 최근 몇 년간 이어진 기술 환경 변화와 맞닿아 있다. 생성형 AI를 비롯한 인공지능 기술은 이미 실험 단계를 넘어 일상과 산업 전반에 깊숙이 침투했다. 이제 질문은 ‘AI가 가능한가’가 아니라, ‘누가 AI를 실제 제품과 서비스, 비즈니스 모델로 완성시키는가’로 바뀌었다. CES 2026의 슬로건은 바로 이 지점을 정조준한다. 혁신은 더 이상 선언이 아니라, 실행과 결과로 증명돼야 한다는 메시지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혁신가’의 범위가 전통적인 테크 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CES 2026에서는 반도체, IT, 전자기업뿐 아니라 완성차, 에너지, 헬스케어, 제조 기업들까지 스스로를 혁신의 주체로 내세울 가능성이 크다. 이는 기술 혁신이 특정 산업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산업이 기술 기업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된다.
이 같은 맥락에서 CES 2026은 단순한 트렌드 전시가 아니라, 글로벌 기업들이 “우리는 이미 다음 단계에 들어섰다”고 선언하는 자리로 기능할 전망이다. 혁신가들의 등장은 곧 산업 전환기의 주도권 경쟁이 본격화됐음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어떤 기업이 이 무대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느냐에 따라, 향후 수년간의 기술·산업 판도 역시 윤곽을 드러낼 가능성이 크다.
CES 2026에서 가장 뚜렷하게 부각될 트렌드는 AI의 일상화와 피지컬 AI(Physical AI)의 본격적인 확산이다. 인공지능은 더 이상 특정 기능이나 서비스에 국한된 기술이 아니다. 이제 AI는 스마트폰, 가전, 자동차, 의료기기, 로봇 등 거의 모든 기술 영역에 기본 전제로 내재화되고 있으며, ‘AI를 쓰느냐’보다 ‘AI를 전제로 어떻게 설계했느냐’가 제품 경쟁력을 가르는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다.
CES 2026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전시장 전반에 걸쳐 입체적으로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AI 기반 스마트홈은 사용자의 행동 패턴과 환경 데이터를 학습해 능동적으로 반응하는 단계로 진화하고, 헬스케어 영역에서는 진단·모니터링·예측 기능을 결합한 개인 맞춤형 AI 솔루션이 대거 소개될 전망이다. 차량과 모빌리티 분야에서도 AI는 단순한 보조 기능을 넘어, 주행 판단과 에너지 관리, 차량 내 경험 전반을 설계하는 핵심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분야는 로보틱스다. 그동안 CES에서 로봇은 주로 공장 자동화나 물류 중심의 산업용 기술로 소개돼 왔지만, CES 2026에서는 로봇의 무게중심이 명확히 ‘생활 영역’으로 이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정용 서비스 로봇, 병원과 요양시설에서 활용되는 의료 로봇, 매장·호텔·공공 공간에서 사람을 보조하는 서비스 로봇 등이 한층 현실적인 형태로 전시될 가능성이 크다. 이 변화의 배경에는 AI 기술의 진화가 있다. 시각·음성·동작 인식 능력이 고도화되고, 실시간 추론 속도가 개선되면서 로봇은 더 이상 제한된 환경에서만 작동하는 기계가 아니다. 물리적 공간을 인식하고, 상황을 판단하며, 사람과 상호작용하는 ‘물리 세계의 AI’, 즉 피지컬 AI것이다. CES 2026은 이러한 피지컬 AI가 개념이 아닌 실제 제품과 서비스로 전환되는 모습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무대가 될 전망이다. 결국 CES 2026에서 드러나는 AI 트렌드는 기술의 존재감이 아니라 침투 정도다. AI가 눈에 보이는 기능으로 강조되기보다, 사용자가 의식하지 않아도 작동하는 기본 인프라로 자리잡는 과정이 전시장 곳곳에서 확인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AI 경쟁이 성능 과시에서 벗어나, 누가 더 자연스럽게 일상과 물리적 공간에 녹여낼 수 있는지를 겨루는 단계로 넘어갔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된다. 또 다른 핵심 관전 포인트는 모빌리티 전 영역의 확장이다. CES는 더 이상 전통적인 전자제품 전시회에 머물지 않는다. 자율주행과 전기차는 물론, 공중 이동체(eVTOL·에어택시), 차세대 물류 모빌리티까지 아우르는 미래 이동 수단이 CES의 주요 전시 트랙으로 완전히 자리잡았다. 특히 차량 자체보다, 이를 구성하는 센서·반도체·소프트웨어·AI·클라우드 인프라가 전시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 같은 변화는 모빌리티 산업의 경쟁 구도가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 완성차 업체 중심이던 생태계는 이제 기술 플랫폼 경쟁으로 재편되고 있다. 자율주행 판단을 담당하는 AI 알고리즘, 이를 실시간 처리하는 차량용 컴퓨팅, 클라우드 기반 데이터 학습과 OTA 업데이트 체계가 하나의 패키지로 제시되는 흐름이 CES 2026에서도 분명히 드러날 전망이다. 이는 모빌리티가 ‘하드웨어 제품’에서 지속적으로 진화하는 소프트웨어 서비스로 전환되고 있음을 상징한다.
전통적으로 CES를 떠받쳐 온 디지털 헬스, 스마트 홈,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지속가능 기술 분야 역시 인공지능과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 이들 영역에서 공통으로 관측되는 변화는 기술이 더 이상 단편적인 기능 개선에 머물지 않고, 사용자의 삶 전반을 이해하고 개입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디지털 헬스 분야에서는 웨어러블 기기가 단순한 데이터 수집 도구를 넘어, 진단·예측·관리까지 포괄하는 AI기반 개인 맞춤형 헬스케어 플랫폼으로 발전하고 있다. 심박수나 활동량 측정에 그치던 초기 웨어러블과 달리, 최근에는 수면 패턴, 스트레스 지표, 생활 습관 데이터를 종합 분석해 질병 위험을 예측하거나 건강 관리 시나리오를 제시하는 솔루션이 등장하고 있다. CES 2026에서는 의료기기 제조사뿐 아니라 보험사, 병원, 빅테크 기업들이 참여해 헬스케어 데이터의 활용 방식과 규제 대응 전략 까지 함께 제시할 가능성이 크다. 스마트 홈 분야에서도 변화의 결은 분명하다. 음성 명령이나 단순 자동화 중심이던 초기 단계에서 벗어나, 이제는 사용자의 행동 맥락과 생활 리듬을 학습하는 AI 홈 시스템이 주류로 떠오르고 있다. 조명·온도·가전 제어를 넘어, 거주자의 패턴을 인식해 스스로 환경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이는 스마트 홈이 개별 기기의 연결을 넘어, 하나의 통합된 생활 플랫폼으로 재정의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미디어·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는 생성형 AI와 실감형 기술의 결합이 콘텐츠 산업 전반에 구조적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AI를 활용한 영상·음악·게임 콘텐츠 제작이 일반화되면서 제작 비용과 시간이 크게 줄어드는 동시에, 사용자 맞춤형 콘텐츠 제공이 현실화되고 있다. 여기에 확장현실(XR), 공간 음향, 몰입형 디스플레이 기술이 더해지며, 콘텐츠 소비 방식 역시 수동적인 감상에서 참여형·상호작용형 경험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강화되고 있다.
결국 전통적인 CES 강자 분야의 진화는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한다. 기술은 더 정교해지고, 더 개인화되며, 더 깊숙이 일상에 스며든다. CES 2026은 이들 산업이 AI를 매개로 서로 연결되며, 생활·산업·환경 전반을 아우르는 통합 생태계로 재편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무대가 될 전망이다.
이러한 흐름은 CES 2026이 여전히 확장 중인 전시회임을 보여준다. 전시 규모의 물리적 확대뿐 아니라, 기술 간 경계가 빠르게 허물어지면서 전시 내용 역시 점점 더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구조를 띠고 있다. 이는 CES가 단일 산업의 박람회를 넘어, 미래 산업 전반의 교차점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은 CES 2026에서 ‘혁신 국가’로서의 위상을 한층 더 분명히 하겠다는 전략 아래, 대기업부터 스타트업,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참여에 나선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 이미 존재감을 구축한 대기업들이 전면에 나서며, 한국 기술 산업의 방향성과 메시지를 집약적으로 보여줄 계획이다.
대기업 가운데서는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그룹이 CES 2026의 핵심 플레이어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전시 개막에 앞서 자체 프레스 콘퍼런스를 열고, 모바일과 가전, 웨어러블을 아우르는 AI 전략과 스마트 디바이스 로드맵을 공개할 예정이다. 온디바이스 AI와 클라우드 AI를 결합한 생태계 전략이 핵심 메시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LG전자는 ‘일상 맞춤형 AI’와 감성 컴퓨팅 경험을 전면에 내세워, 가전·로봇·모빌리티를 연결하는 생활 중심 AI 비전을 제시할 계획이다. 현대차그룹 역시 모빌리티 전시를 통해 자율주행과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DV), 로보틱스 기술을 중심으로 미래 이동 수단 전략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공공 부문과 지방자치단체의 역할도 확대되고 있다. 코트라(KOTRA)는 CES 2026에서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통합 한국관 운영과 글로벌 바이어 매칭, 투자 상담 프로그램을 강화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단순 전시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수출과 협력 성과를 창출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는 방침이다.
[추동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4호 (2026년 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