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주년 맞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 로보틱스·UAM·자율주행·수소경제 4대 신사업 통해 미래형 기업으로 변신
안재형 기자
입력 : 2021.10.26 14:51:41
수정 : 2021.10.26 14:51:57
지난 3월 일본의 주요 경제지인 닛케이는 “정의선 회장은 현대차그룹을 기존 자동차 메이커의 틀에 머무르지 않고 폭넓은 이동 수단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변화시키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7월 세계 유수의 자동차 전문지 오토모티브뉴스의 발행인 K C 크레인은 정몽구 명예회장의 자동차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 참석한 정 회장을 소개하며 “현대차그룹은 정의선 회장의 리더십 아래 자동차 제조 기업에서 미래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10월 14일 취임 1주년을 맞았다. 앞서 각 매체의 평가가 아니더라도 지난 1년간 현대차그룹은 확 달라졌다. 업계에선 “정몽구 명예회장의 뚝심·품질경영이 세계 5위권 완성차 기업을 일궜다면 정의선 체제에선 미래 선도 기업으로 퀀텀 점프에 도전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대차의 한 관계자는 “정의선 회장의 지난 1년의 행보는 인류의 행복에 대한 물음에 함께 답을 찾는 여정”이었다며 “상상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개발하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고 전했다. 로보틱스(Robotics), 도심항공모빌리티(UAM·Urban Air Mobility), 자율주행, 수소경제 등 4대 신사업을 개척하며 과연 될 수 있을까란 상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매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정 회장의 소신은 “그룹 임직원 모두가 변함없이 지켜야 할 사명은 안전하고 자유로운 이동과 평화로운 삶이라는 인류의 꿈을 함께 실현해나가는 것”이라는 올 새해 메시지에 축약돼 있다. 이러한 의지가 4대 신사업을 중심으로 구체화되고 있는 셈이다.
▶기술은 목적이 아닌 인간을 위한 수단
“로보틱스, UAM, 스마트시티 같은 상상 속의 미래 모습을 더욱 빠르게 현실화시켜 인류에게 한 차원 높은 삶의 경험을 제공하겠다.”
정의선 회장이 밝힌 이 같은 구상은 지난 1년간 빠르게 가속화됐다. 정 회장은 취임 후 첫 대규모 인수합병(M&A) 분야로 로보틱스를 선택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12월 보스턴 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 지분 80%를 인수하기로 하고, 올 6월 M&A를 완료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지난해 출시한 4족 보행 로봇 스팟(Spot), 연구용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Atlas)를 개발하는 등 로봇 운용에 필수적인 자율주행(보행), 인지, 제어 등 종합적인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내년에는 최대 23㎏의 박스를 시간당 800개나 싣고 내리는 작업이 가능한 물류 로봇 스트레치(Strech)를 상용화하고 제조, 물류, 건설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힐 계획이다. 그룹 내 조직인 로보틱스랩도 웨어러블 로봇, AI 서비스 로봇, 로보틱 모빌리티 등 인간과 공존하는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정 회장은 지난해 하반신 마비 환자의 보행을 돕기 위한 의료용 착용로봇 ‘멕스(MEX)’ 개발자들에게 “이 기술이 필요한 사람은 소수일 수 있지만 우리는 그분들의 꿈을 현실로 이뤄줄 수 있다”며 “인류에게 꼭 필요한 기술이니 최선을 다해 개발해야 한다”고 기술은 목표가 아니라 인간을 위한 수단임을 강조했다고 한다. 로보틱스랩은 이후 생산현장에서 고개를 들고 장시간 근무하는 작업자를 보조하는 착용 로봇 ‘벡스(VEX)’, AI 서비스 로봇 ‘달이(DAL-e)’, 로보틱 모빌리티 ‘아이오닉 스쿠터’ 등을 공개했다. 최근엔 보스턴 다이내믹스와 협력해 스팟을 활용한 ‘공장 안전 서비스 로봇(Factory Safety Service Robot)’을 개발해 기아 오토랜드 광명 사업장에서 시범 운영 중이다.
이동공간을 하늘로 확장한 UAM 분야도 대중화 기반을 다지고 있다. UAM은 현대차그룹의 지향점인 ‘안전하고 자유로운 이동’이란 인류의 꿈을 실현하는 중요한 축이다. 정 회장이 직접 UAM사업부 관계자들에게 “인류가 원하는 곳으로 스트레스 없이 갈 수 있게 정성을 다해 서비스하는 게 우리의 소명”이라고 강조한 이유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말 구체적인 UAM 개발 일정을 공개했다. 2028년 도심 운영에 최적화된 완전 전동화 UAM 모델을, 2030년대에는 인접한 도시를 서로 연결하는 지역 항공 모빌리티 제품을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수소연료전지 기술을 활용해 독보적인 효율성과 주행거리를 갖춘 항공용 수소연료전지 파워트레인 개발도 추진 중이다. UAM 이착륙장 관련 협업도 진행 중이다. 서울시와의 업무협약을 비롯해 LA 등 미국 주요 도시, 싱가포르 등과 신규 시장을 열기 위해 긴밀하게 협의하고 있다. 미국 워싱턴 UAM 법인 설립, 항공우주 기술 개발 전문가 영입 등 조직도 확대하고 있다.
자율주행 분야도 정 회장 취임 이후 개발 속도가 빨라진 분야다. 현대차는 지난 9월 자율주행 합작사 모셔널과 공동 개발한 아이오닉5 기반의 로보택시를 독일 뮌헨 IAA 모빌리티에서 공개했다. 모셔널은 글로벌 차량 공유업체 리프트와 협력해 2023년 ‘아이오닉5 로보택시’를 활용한 완전 무인 자율주행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현대차그룹은 미래 스마트 모빌리티의 핵심 분야로 전기차, 수소전기차 중심의 전동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차, 기아, 제네시스는 올해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GMP를 바탕으로 ‘아이오닉5’ ‘EV6’ ‘GV60’를 차례로 출시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주행거리, 상품성, 안전성은 물론 V2L(Vehicle to Load) 등 새로운 모빌리티 경험을 제공하며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과 함께 전동화 계획도 구체화했다. 현대차는 글로벌 판매 차량 중 전동화 모델 비중을 2040년까지 80%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제네시스는 2025년부터 모든 신차를 전동화 모델로 출시하고, 2030년까지 총 8개 차종으로 구성된 수소와 배터리 전기차 라인업을 갖출 예정이다. 기아는 2035년까지 주요 시장에서 친환경차 판매 비중을 90%로 확대한다.
▶수소사회 비전과 탄소중립, 미래 위한 포석
“정의선 회장은 비즈니스 차원이 아니라 미래 세대 관점에서 수소를 바라봅니다. 미래와 지구, 인류를 위한 솔루션을 수소로 보고 있는 것이죠.”
업계의 한 관계자가 전한 정의선 회장의 수소사회 비전이다. 실제로 정 회장은 사내에서 “현대차그룹이 수소에 투자하는 건 우리가 가진 기술적 수단들을 모두 활용해 미래를 지키려는 차원”이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고 한다.
지난 9월 현대차그룹이 온라인으로 개최한 하이드로젠 웨이브(Hydrogen Wave) 행사에선 그가 그리고 있는 미래 수소사회 비전이 구체화됐다. 정 회장은 이날 “수소를 편리하게 쓰는 대중화 시대를 2040년에 달성하고자 한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 정 회장은 “향후 내놓을 상용차 새 모델은 수소전기차나 전기차로만 하고 2028년까지 모든 상용차에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을 적용하겠다”고 말했다. 직접 ‘수소비전 2040’과 세계 최고 수준의 수소연료전지기술, 수소모빌리티 등 청사진을 공개한 것이다.
현대차그룹의 수소전기차는 승용에 이어 상용도 해외에서 주목받고 있다. 스위스에선 현대차 수소전기트럭 50여 대가 달리고 있고, ‘캘리포니아 항만 친환경 트럭 도입 프로젝트’를 통해 2023년부터 미국에 30대를 공급할 예정이다. 또 최근에는 독일 뮌헨에 수소버스 ‘일렉시티’를 인도했다. 이날 행사에는 무인 장거리 운송 시스템 콘셉트 모빌리티 ‘트레일러 드론’과 100㎾급, 200㎾급 차세대 연료전지시스템 시제품도 선보였다. 연료전지시스템은 자동차 외에 트램, 기차, 선박, UAM 등 모빌리티 전 영역은 물론 주택, 빌딩, 공장, 발전소 등 생활과 산업 전반에 걸쳐 활용도를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수소연료전지시스템 브랜드 ‘HTWO(에이치투)’를 통해 글로벌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HTWO는 ‘인류를 위한 수소’란 의미로 지난 3월 해외 첫 수소연료전지시스템 생산공장 ‘HTWO 광저우’를 착공하기도 했다.
정 회장은 4대 신사업뿐 아니라 기후변화 대응, 조직문화 혁신, 친환경 브랜드 이미지 구축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 9월 내연기관차 판매 중단을 골자로 한 ‘2045년 탄소중립’을 선언했고, 그룹 주요 계열사도 사용 전력량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글로벌 캠페인 RE100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무인 장거리 운송 시스템 콘셉트 모빌리티 ‘트레일러 드론’
▶도전적 동기부여, 폭넓은 소통
정 회장은 기존의 현대차그룹 조직문화를 혁신하기 위해 앞장섰다. 그는 수석부회장 재임 시절부터 사내 포럼에 “저부터 바뀔 수 있도록 하겠다.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는지 알려주기 바란다”고 먼저 말했다.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 설계 당시 수군을 고객으로 배려했다는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고, 올해에만 두 차례 타운홀 미팅에 직접 참석해 임직원과 소통에 나서기도 했다. 제도적 측면에선 유연 근무제, 복장·점심시간 자율화, 자율좌석제 등을 운영했고 직급체계도 통합했다. 임직원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점프업 아이디어 공모전’도 매년 시행하고 있다. 지난해 공모전에는 5000건이 넘는 아이디어가 모였다. 최근엔 거점 오피스와 오픈 이노베이션 공간을 비롯해 ‘위드 코로나’에 대비한 근무형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현대차는 판교, 성내 등 최근까지 8곳의 거점 오피스를 마련했다. 지난해 클라우드 방식의 신업무 플랫폼 도입 이후 효율적 재택근무를 위한 시스템 고도화도 추진 중이다.
▶제품과 서비스로 경영 불확실성 돌파
사실 정의선 회장이 취임한 지난 10월은 팬데믹과 원자재 가격 상승, 보호 무역주의 강화 등으로 글로벌 경영환경이 불투명했다. 올 초부터는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완성차 업체들이 어려움에 직면했다. 그럼에도 올해 현대차와 기아의 글로벌 시장 실적은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양사가 올 9월까지 505만여 대를 판매하며 전년 동기 대비 13.1%나 성장했다. 특히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선진국에서 산업수요 성장률을 상회하며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올 9월까지 미국 자동차 시장의 전체 판매량이 13.3% 증가하는 동안 양사는 117만5000여 대를 판매하며 33.1% 성장했다. 시장점유율도 전년 대비 1.5% 늘며 10%로 올라섰다. 유럽에선 지난 8월까지 66만3000여 대를 판매해 전년 동기 대비 28.3% 늘었다. 유럽 전체 산업수요가 12.7% 증가에 그쳐, 현대차와 기아의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7.1%에서 올해 8.1%로 1%포인트 상승했다. 특히 SUV와 고급차, 고성능차 등 고부가가치 차량의 판매 비중이 크게 늘었다. 제네시스는 9월까지 국내를 포함해 전 세계에서 전년 동기 9만1000여 대보다 57%나 늘어난 14만4000여 대를 판매했다. 제네시스는 올해 유럽과 중국에 현지 법인을 설립하고 본격적인 해외 시장 공략이 나섰다. 친환경 브랜드로의 입지도 굳히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는 지난 9월까지 전년 대비 68% 증가한 53만2000여 대의 친환경차를 판매했다. 수소전기차를 포함한 전체 전기차 판매는 17만6000여 대로 전년 대비 70% 성장했다. 수소전기차 ‘넥쏘’는 지난해 세계 수소전기차 중 최초로 누적 판매 1만 대를 넘어섰고, 이르면 올 연말 누적 2만 대 판매 돌파가 예상된다.
물론 정 회장 앞에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도 산적해 있다. 현대차그룹이 연말까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내부 거래 물량을 확 줄이거나 오너 일가의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10% 가까이 처분해야 한다. 국내 10대 그룹 중 유일하게 순환출자 구조를 유지하고 있어 지배구조 개편도 시급한 상황이다. 노사 갈등도 풀어야 할 숙제 중 하나다. 현대차와 기아 모두 올 임금협상은 무분규로 타결했지만 온라인 판매나 전기차 라인 배정 등을 놓고 논란이 적지 않았다.
He is…
1970년생 ▲고려대 경영학과 ▲샌프란시스코주립대 MBA ▲1994년 현대모비스 ▲1999년 현대차 구매실장 ▲2001년 현대차 영업지원부장 ▲2002년 현대차 국내영업본부 부본부장 ▲2005년 기아차 사장 ▲2009년 현대차 부회장 ▲2018년 현대차 수석부회장 ▲2020년 현대차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