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테크(Art-tech)’는 아트와 재테크를 합친 말이다. 눈으로 보고 즐기던 예술작품이 재테크 수단으로 떠오른 것이다. 세계 최대 아트페어 주관사인 아트바젤과 UBS가 발간한 ‘아트마켓보고서 2021’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 중국 등 10개국의 고액 자산가와 수집가 2596명 56%가 MZ세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술 경매업체 서울옥션이 올 1분기 진행한 온라인 경매에서도 전체 낙찰자 비율 중 MZ세대가 11%를 차지했다. MZ세대는 1980년대 초에서 2000년대 초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일컫는 말이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유행에 민감하고 남과 다른 경험을 찾는 게 MZ세대의 특징이다.
MZ세대의 재테크에 대한 관심은 주식과 코인으로 시작해 예술작품으로 옮겨 붙었다. 특히 코로나19로 비대면화가 이뤄진 점도 영향을 미쳤다. 바쁜 시간을 쪼개 직접 방문해야 했던 미술관과 갤러리, 경매장 대신에 온라인 시장에서도 예술작품을 구경하고 사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유행에 민감한 MZ세대는 이 변화를 받아들이고 아트테크에 빠졌다.
피카프로젝트가 전시 기획한 ‘임하룡과 한상윤의 그림 파티’전
▶소액으로도 투자 가능… 절세 혜택은 덤
아트테크가 인기를 끄는 비결로는 우선 ‘소액 투자’가 가능한 점이 꼽힌다. 과거 예술작품은 자산가들의 영역이었지만, 소액 투자가 가능해지면서 2030의 관심을 끌고 있다. 비싼 작품의 소유권을 투자자들이 나눠서 소유하고, 그에 따른 수익을 얻는 방식이다. 피카프로젝트는 블록체인을 활용해 예술작품 공동 플랫폼을 운영한다. 투자 금액에 따라 미술품 지분을 받고 기록은 블록체인 서버에 저장된다. 피카프로젝트 디지털 코인(피카아트머니)을 활용해 미술품 거래·경매도 할 수 있다.
미술품 공동구매 플랫폼 ‘아트투게더’도 소액 투자자들을 모아 미술품을 사서 이익을 보고 되파는 스타트업이다. 핀테크 기업 핀크는 아트투게더와 손잡고 소액으로도 미술품을 살 수 있게 했다.
신한은행도 최근 온라인 경매사 서울옥션블루와 손잡고 공동구매 플랫폼 ‘소투(SOTWO)’를 열었다. MZ세대 인기를 끄는 스니커즈와 아트토이, 미술품 등을 공동 구매해 소유권을 나눠 갖고 가격이 오르면 이를 팔아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최소 투자금액은 1000원이다.
미술작품 투자의 또 다른 장점은 바로 ‘세제 혜택’이다. 우선 미술품은 양도 때만 세금을 낸다. 부동산을 양도·보유할 때 모두 세금을 내는 것과 대조적이다. 미술품을 판매해 얻은 소득은 소득세법상 ‘기타소득’으로 분류된다. 지방소득세를 포함해 22%다. 미술품은 양도가액 6000만원 미만이면 세금이 없다. 양도가액 6000만원을 넘어도 세금이 크지 않다. 양도가액이 1억원 이하거나 보유기간이 10년 이상이면 필요경비율은 90%다. 예를 들어 5000만원짜리 미술품을 사서 보유하다가 8000만원에 팔았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양도가액이 1억원 이하라 필요경비율 90%가 적용된다. 7200만원은 필요경비로 제외되고 나머지 10%인 800만원에 대한 세금만 내면 된다는 의미다. 세율(지방소득세 포함) 22%를 적용하면 세금은 175만원에 불과하다.
여기에 살아있는 국내 작가 작품은 가격과 무관하게 비과세다. 국내 작가의 작품을 사들였다가 나중에 그림 가치가 뛰어도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
▶NFT 누구나 접근하기 쉬워
최근 세계적인 경매업체 크리스티 경매에서 NFT 디지털 그림이 6930만달러(약 775억원)에 팔렸다. 프리다칼로와 폴 고갱 등 유명 화가 작품보다도 비싼 가격이다.
팔린 작품은 바로 ‘비플(Beeple)’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마이크 윈켈만이 제작한 <매일: 첫 5000일>이다. 5000개 이미지들의 모자이크다. 트위터 최고 경영자(CEO) 잭 도시는 자신이 2006년 처음 올렸던 ‘지금 막 내 트위터를 설정했음’이라는 트윗을 NFT로 만들어 판매했다. 이 트윗 한 줄의 가격은 290만달러(약 32억7600만원)다.
아트테크 열풍에 힘입어 최근 ‘NFT(대체불가능토큰)’도 같이 떠오르고 있다. NFT란 디지털 그림과 음악 등을 블록체인에 기록해 ‘토큰화(유동화)’한 것을 의미한다. 거래 기록이 자동으로 저장되고 위·변조가 불가능하다. 예컨대 겉으로 보면 비플의 작품은 다 똑같아 보이지만, NFT에 일정 코드가 새겨져 있다. 비트코인 등 일반 가상화폐의 가격은 모두 같지만, NFT는 각 코인마다 가치가 다르다. 이더리움 네트워크상에서 NFT가 구현된다.
NFT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는 추세다. NFT 시장 분석업체 넌펀저블닷컴에 따르면 올 1분기 NFT 거래량은 20억달러(약 2조2364억원)에 이른다. 2019년 1억4000만달러(약 1565억원)였던 NFT 시장 규모는 지난해 3억4000만달러(약 3801억원)로 커진 뒤 올 들어 더 성장했다.
NFT 인기 비결은 누구나 접근하기 쉽다는 데 있다. 우선 창작자들은 누구나 NFT를 만들어 판매할 수 있다. 사진 등을 토큰화한 다음에 NFT 마켓인 ‘오픈씨(Opensea)’ 등에 판매하면 된다. 창작자들은 제작·판매 과정에서 비용을 거의 들이지 않는다. 게다가 현실의 예술작품처럼 NFT를 사두면 언젠가 오를 것이란 믿음이 시장을 받친다. NFT가 일종의 ‘자산’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공동구매 플랫폼 ‘소투(SOTWO)’
일부 창작자들도 NFT를 반긴다. 지금은 작가가 작품을 판매한 뒤에 자신의 작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NFT는 이더리움상 ‘스마트 계약’에 따라 작품의 구매 경로를 모두 추적할 수 있다. 소유권과 저작권을 넘기지 않고 작품이 판매될 때마다 원작자가 일정 수준 로열티를 받을 수도 있다. 코로나19로 전시 등이 어려워진 예술가들이 NFT 시장에 눈길을 돌리는 이유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실물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이 그림을 디지털화하거나 개발자들과 협력해서 NFT를 만들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 크립토아트에 따르면 5월 말 NFT 예술품 거래액은 6억1659만달러(약 6967억원)에 이른다. 코로나19로 작품 판매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NFT 예술품 판매는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NFT는 게임 시장에서도 화두다. 게임 아이템은 일반 사람들에겐 가치가 없지만, 게임 사용자들에겐 가치가 있다. 탄탄한 생태계가 존재하면 NFT로 만든 게임 아이템을 계속 사고팔 시장이 생긴다.
NFT 시작도 ‘크립토키티’라는 게임이다. 크립토키티는 가상세계에서 고양이를 키우는 게임이다. 이 게임에서 거래되는 고양이들은 비슷해보여도 모두 다르다. 각 고양이 NFT마다 고유값을 갖고 있다.
메타버스 시장이 커지면서 NFT는 더욱 빛을 발할 것으로 전망된다. 메타버스는 가상과 현실 경계가 허물어진 세계를 의미한다. 메타버스에서 NFT가 의미 있는 이유는 게임 아이템을 NFT로 토큰화해서 사고팔 수 있기 때문이다. 가상의 아이템으로 현실 세계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셈이다.
올 3월 경매 시장에서 784억원에 판매된 디지털 화가 비플(Beeple)의 NFT(대체불가능토큰) 그림파일 작품 <매일 첫 5000일>.
이미 메타버스 게임에선 NFT가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다. 가상 부동산을 사고파는 ‘디센트럴랜드’라는 게임이 대표적이다. 이 게임에선 ‘랜드’라는 부동산을 사고팔 수 있다. 최근 거래된 ‘EST #4186’ 랜드는 70만4000달러(약 7억8700만원)에 팔렸다. 가상 지구인 ‘어스2’도 최근 인기다. 어스2는 구글 위성 지도를 이용해 지구를 10m 정사각형 타일로 쪼개 사고파는 게임이다. 처음 ‘타일(10m² 넓이의 땅)’ 가격은 0.1달러(약 111원)에 불과했지만, 입지 좋은 땅의 가격이 치솟고 있다. 인기가 좋은 땅은 서로 높은 가격을 내고 사려해 가격이 올라간다. 한국 사람이 중국 천안문에 투자하고, 중국 사람이 청와대에 투자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NFT 마켓이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해외에는 ‘오픈씨’와 ‘라리블’ 등 NFT 마켓이 있지만, 국내엔 거래 플랫폼이 없었다. 가상화폐 거래소 코빗은 NFT 마켓을 국내 최초로 선보였다.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도 최근 서울옥션과 손잡고 예술품 경매를 위한 NFT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카카오는 블록체인 자회사 ‘그라운드X’를 통해 가상화폐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가상화폐 지갑인 클립에 다양한 디지털 작품을 전시·유통하는 ‘클립 드롭스’를 7월 중에 출시할 계획이다.
▶아트테크·NFT 투자 주의점은
좋은 작품을 고르는 일은 쉽지만은 않다. 유명 작가의 작품은 경매에 잘 나오지도 않고, 가격이 비싸기 때문이다. 반면 신진 작가 작품은 ‘고수익’을 얻을 수도 있지만, 동시에 작품 가치가 사실상 사라질 우려도 크다. ‘공동구매’ 역시 비싼 작품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소유권을 인정받지 못하는 점이 한계다.
NFT도 마찬가지다. NFT로 예술품을 사고파는 것의 가장 큰 단점은 바로 ‘저작권’과 ‘소유권’ 문제다. 디지털 그림이나 사진, 음악 역시 현실 세계에선 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이다. NFT는 무료 사이트를 이용해 누구나 쉽게 만들어 사고팔 수 있어 다른 창작자의 원본을 토큰으로 발행하는 일도 생긴다. 블록체인 기술 연구소 헥슬란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원작자와 NFT 발행자가 다를 수 있고 이는 저작권 도용이나 같은 기초자산을 기반으로 한 NFT의 중복 발행도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 NFT가 유행하자 소유자가 디지털 작품을 원작자 허락 없이 NFT로 만들어 판매하는 사례가 생겼다. 최근 근대미술작가 이중섭·김환기·박수근의 NFT 작품 경매도 저작권 논란에 휩싸였다.
블록체인 기반 메타버스 게임 플랫폼 ‘디센트럴게임즈’
경매 기획사 워너비인터내셔널은 김환기의 <전면점화-무제>와 박수근의 <두 아이와 두 엄마>, 이중섭의 <황소>를 NFT로 만들어 온라인 경매를 진행하려 했다. 이에 고 박수근 유족 측이 “해당 작품이 위작으로 의심된다”고 주장하면서 저작권 문제가 됐다.
‘원본’의 개념이 모호한 것도 문제로 떠올랐다. 헥슬란트는 “NFT 자체는 디지털 자산 원본 인증서에 가깝다”며 “실제 자산의 저장 유무가 아닌 디지털 요소가 가치를 갖고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NFT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자리 잡지 않은 것도 문제다. 해당 NFT의 가치가 얼마인지를 합리적으로 추정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 때문에 스타트업 NFT뱅크는 NFT의 가치를 분석하는 일을 한다. 이더리움 블록체인 네트워크상 모든 거래 데이터를 분석해 각 NFT의 예상 가치를 알려주는 식이다.
일각에선 NFT를 ‘거품’이라고 우려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유명인의 디지털 작품이 고가에 팔리면서 NFT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관심도 높아졌다”며 “유명세를 기반으로 작품이 터무니없이 비싸게 팔리는 경우는 문제”라고 했다.
CNBC는 “일부는 NFT 붐을 2017년 말과 2018년 초 가상화폐공개(ICO) 상승과 비교한다”며 “ICO는 결국 수많은 사기로 이어졌다”고 했다. 블록체인업체 모핑아이의 김기영 대표는 “각 NFT 금액이 왜 비싼지 평가 기준이 모호한 점이 한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