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딜펀드가 뭐길래? 출시 5일 만에 완판행진 ‘세금으로 위험상품을 안전상품 만들었다’ 우려도
문일호 기자
입력 : 2021.04.29 15:12:01
수정 : 2021.04.29 15:12:19
국민참여정책형 뉴딜펀드는 완전체 금융상품일까. 정부가 나서서 20%의 원금 손실이 나더라도 원금 보장을 해주겠다는 상품이기 때문에 은행 증권사를 가리지 않고 불티나게 팔린 것을 보면 가히 ‘마법의 재테크 상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시간이 없어서 펀드 가입을 못했거나 가입 기준을 못 맞춘 고객 중심으로 불만도 쏟아지고 있다. 금융권이나 학계에선 자산시장 버블로 20%가 넘는 손실이 난 경우라든지 손실분에 대한 국민 세금 투입은 국민적 공감을 얻었는지 등에 대한 논란도 커지고 있다.
국민참여정책형 뉴딜펀드가 3월 29일 출시됐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5개 금융사가 이날부터 다음달 16일까지 일반 국민을 상대로 국민참여 뉴딜펀드를 판매한다.
▶“김 과장 뉴딜펀드 가입 안 했어?”
국민참여 뉴딜펀드가 IBK기업은행의 한도 소진을 끝으로 조기 판매 완료에 성공했다. 출시 5영업일 만에 완판됐다.
뉴딜펀드는 일반투자자 참여지분이 약 1370억원에 달했지만 지난 3월 29일 이후 은행과 증권사 총 15곳의 창구를 통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마지막 물량이 남아 있던 기업은행의 뉴딜펀드 물량은 지난 4월 5일 오전 10시쯤 전부 소진됐다. 이 은행은 펀드 출시 4일 만인 지난 2일까지 총 배정물량 220억원 중 198억원어치를 판매했다가, 이날 영업 개시 약 1시간 만에 뉴딜펀드 판매 완전 소진을 알렸다.
초저금리 시대에 일정 부분 원금 손실 보장이 되는 상품에 국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던 셈이다. 직장인들이 업무에 집중하느라 이 펀드를 가입하지 않아 가족들에게 한소리 들었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올 만하다는 평가다.
이 상품은 정부가 발표한 ‘국민참여형 뉴딜펀드 조성 및 뉴딜금융 지원방안’에 따른 한국판 정책형 뉴딜펀드다. 기본적으로 중도환매가 불가능한 환매금지형(폐쇄형) 펀드라는 성격을 갖고 있다.
신탁기간은 약 4년이다. 오는 2025년 4월 21일이 만기라는 뜻이다. 다만 투자자산 회수가 늦어지면 신탁계약 종료 이후에도 투자기간은 연장될 수 있다.
정부는 이 펀드를 소개하면서 대규모 국가정책 뉴딜 프로젝트와 관련해 ‘정부와 국민이 함께 참여하는 투자기회를 제공한다’는 명분을 달았다.
이 펀드 설명자료에 따르면 이 펀드는 뉴딜분야 관련 상장 기업 주식이나 비상장 기업의 주식, 메자닌 증권(전환사채·신주인수권부사채) 등에 주로 투자하는 사모집합투자기구(사모펀드)에 투자한다고 명시돼 있다. 또 정부가 후순위로 참여하여 ‘손실 발생 시 일부를 흡수’하여 펀드의 안정성을 강화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개별 사모펀드 10개의 건별로 후순위로 투자하여 약 20%까지 손실을 흡수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상품의 본질을 보면 기본적으로 원금 보장형 상품이 아니다. 정부가 은행 등 주요 판매사에 내린 상품 설명서를 보면 이 상품에 대해 ‘손실 보전’이라기보다는 ‘손실 흡수’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가령 뉴딜펀드에 속한 A펀드와 B펀드에서 각각 20%씩 손실이 났다고 가정해보자. 정부가 편입자산인 사모펀드 10개의 개별 건별로 후순위 투자자금인 약 20%까지 손실을 흡수하기 때문에 이 경우에 고객 손실은 없다.
그러나 또 다른 경우 C펀드가 30% 원금 손실이 나고 D펀드가 10% 손실이 날 경우에는 해당 펀드 가입 고객은 원금을 잃을 수 있다. D펀드는 손실분이 20% 이내이기 때문에 정부의 손실 흡수 범위 내에 들지만 C펀드는 보장 한도(20%)를 넘어서기 때문에 그만큼 원금 손실이 난다는 뜻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뉴딜펀드 전체 손실을 보장해주는 식으로 오해하는 고객들이 많다”며 “정부가 뉴딜펀드 내 개별 펀드 기준으로 20%까지 손실을 흡수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사모펀드 합산으로는 언제든 원금 손실이 날 수 있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뉴딜펀드 보수 및 수수료, 제세금 등 각종 비용은 손실 흡수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리고 향후 펀드 수익이 마이너스 구간으로 접어들어 정부가 손실 흡수에 나설 경우 그 금액은 과세 대상 소득으로 규정되기 때문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뉴딜펀드 광풍에 판매사 눈속임 논란까지
뉴딜펀드의 판매 속도는 가히 ‘5G 속도’ 급이었다. 증권사들이 일찌감치 완판 소식을 알리면서 은행권 물량도 조기 마감이 일찌감치 예고됐다.
출시 당일 한국투자증권(140억원)과 유안타증권(90억원), 하나금융투자(90억원), 한국포스증권(90억원) 등 증권사들이 바로 배당된 물량을 모두 판매했다. 이들 증권사의 최소 가입금액 조건은 제각각이었다. 이 중 한 증권사는 최소 가입금액이 1000만원이었고, 가입 한도에 아예 제한을 두지 않았던 증권사도 있었다.
은행권의 경우 배정물량은 KB국민은행(226억원)과 기업은행(220억원), 신한(110억원)·하나(155억원)·우리(70억원)·NH농협은행(150억원)과 KDB산업은행(10억원) 순이었다. 은행별로도 최소 및 최대 가입금액 기준 등 조건이 조금씩 달랐는데 이 중 기업은행을 제외한 모든 은행이 지난 4월 2일까지 모든 물량을 소진했다.
은행들도 최소·최대 가입 기준이 제각각이었다. 기업은행의 경우 배정물량이 비교적 넉넉했고 최소 가입금액은 5만원으로 가장 낮았다. 한 은행의 가입금액 조건은 최소 500만원에서 최대 5000만원, 또 다른 은행은 최소 3000만~최대 5억원이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누구든지 투자성향에 따라 가입할 수 있는 국민참여형의 공모펀드라는 취지를 최대한 감안해 최소 가입금액을 기존의 공모펀드와 같이 5만원으로 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뉴딜펀드의 판매사별 최소·최대 금액은 정해진 기준이 아니라 판매사 자율로 결정됐다는 뜻이다. 뉴딜펀드 광풍이 불자 일부 판매사들은 신탁기간(4년) 동안 고객 부담 비용이 타사보다 낮은 것처럼 보이게 설명서를 만들었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원금 보장형 상품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판매사들끼리 경쟁이 치열해졌고 이에 따라 일부 은행은 금융소비자보호법 위반이 될 수 있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은행권 뉴딜펀드 간이투자설명서에 따르면 기업은행의 뉴딜펀드에 1000만원을 투자할 경우 고객 부담 총 비용은 96만6000원이다. 같은 조건으로 국민은행에서 판매한 ‘KB 뉴딜펀드’는 85만4000원, 다른 은행들이 판매한 뉴딜펀드 비용은 52만8000원으로 나왔다.
은행들이 제공한 간이투자설명서만 보면 똑같은 뉴딜펀드의 고객 부담 비용이 2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셈이다. 그러나 이는 단순 착시효과다. 실제 부담 비용은 금융사별로 거의 차이가 없는데 ‘단지 그렇게 보이게 했다’는 분석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수수료가 높게 나온 IBK 뉴딜펀드와 KB 뉴딜 펀드는 재간접펀드 특성상 고객이 부담할 ‘피투자집합투자기구 보수’가 포함됐다. 반면 다른 은행권 뉴딜펀드는 ‘피투자집합투자기구 보수’를 제외한 비용만 간이투자설명서에 포함돼 있다.
일반투자자를 대상으로 판매한 뉴딜펀드는 운용사가 사모펀드로 운용되는 10개 자(子)펀드에 투자하는 재간접형공모펀드로, ‘피투자집합투자기구 보수’가 투자자 비용에 포함돼야 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재간접투자 관련 보수를 본투자설명서에는 넣고, 간이투자설명서에는 포함시키지 않아 차이가 나는 것처럼 보인다”고 전했다.
금융당국은 어떤 경우라도 간이투자설명서와 본투자설명서의 내용이 다르면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은행 관계자는 “간이투자설명서와 본투자설명서는 각각의 기준에 맞게 적법하게 작성됐으며 고의적으로 착시 효과를 노린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은행들 대부분이 뉴딜펀드에 대해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본투자설명서보다는 핵심 내용을 담은 간이투자설명서를 제공한 것도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일각에선 ‘피투자집합투자기구 보수’가 포함되지 않은 간이투자설명서만을 제공받고 뉴딜펀드에 가입했다면 금소법상 설명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해석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전까지 없던 원금 보장형 펀드
정부의 또 다른 실험?
국민참여 뉴딜펀드에는 정부 정책자금 400억원(전체의 20%)과 자산운용사 고유자금 30억원(1.5%)이 투입된다.
이를 통해 일반투자자들의 손실을 20%까지 보전해주겠다는 이례적인 조건이다. 또 수익률이 0~20%면 일반투자자와 정부 등이 출자 비율에 맞춰 수익 배분이 이뤄진다. 20%를 넘는 초과 수익분은 일반투자자와 후순위 투자자가 4대6 비율로 나누게 된다.
판매사들은 한목소리로 이 같은 뉴딜펀드 광풍이 정부의 손실 방어 지원이라는 콘셉트가 제대로 통했다고 밝히고 있다.
판매사 중 한 곳인 증권사 관계자는 “최근 DLF 라임 등 각종 사모펀드 사태 때문에 펀드 가입보다는 직접 투자가 대세였는데 이번 뉴딜펀드는 이 같은 흐름을 완전히 바꿔놨다”며 “정부 주도로 사실상 원금 보장을 해주는 최초 사례인 데다 펀드별로 20% 이상이 빠지지 않으면 손해가 나지 않아 고객들의 불안감을 크게 해소해줬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금소법 시행 여파로 다소 혼란스러웠던 은행 지점에서도 걱정과는 달리 뉴딜펀드가 완판되면서 흥행 수혜를 받았다. 고객들도 오랜만에 은행 지점을 찾아 은행과 고객 간의 거리를 좁혔다는 평가가 나왔다.
정부가 자본시장을 통한 한국판 뉴딜을 추진하고 그 결실을 다수의 국민과 함께 공유한다는 점에서도 호평이 따랐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장기 투자가 대세가 되면서 만기 4년이 길지 않다는 인식도 있었다”면서 “역시 정부 주도의 원금 보장형 상품이라는 점이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는 평가가 많았다”고 전했다.
호평과 함께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다.
뉴딜사업 자체의 연속성에도 의문이 있고, 일부 국민이 가입한 금융상품의 손실 보전을 다수 국민의 세금으로 메꾼다는 점에서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월 1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뉴딜펀드 판매 창구를 방문해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의장과 함께 뉴딜펀드 판매 직원과 대화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펀드 설계 자체가 뉴딜 사업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토대로 만들어졌다”며 “사업이 잘 안될 경우 정부가 투자자 손실까지 마련해야 하는데 당초 예상보다 더 많은 지출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포퓰리즘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일부에선 증시가 나쁘지 않은데 이 같은 펀드 설계 자체가 명분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과거 미국에선 뉴딜사업 추진 당시에 미국 자산시장이 붕괴됐고 투자 심리가 크게 위축됐기 때문에 정부 주도형 사업이 필요하다는 명분이라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의 경우 동학개미가 증시를 사상 최고치 수준으로 끌어 올렸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하락 압박이 심하다는 점도 리스크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는 당장의 펀드 설계보다는 첨단, 미래산업에 대한 규제완화 등의 좀 더 큰 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정부가 위험상품을 안전상품으로 포장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 펀드는 투자상품 위험등급이 1~2등급(초고위험~고위험)으로 높지만 만기도 2025년으로 긴 편이다. 폐쇄형 구조로 가입 후 4년간 중도 해지나 환매는 불가하다는 점도 리스크 요인이다. 주가가 상승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상품이지만 지속적으로 하락할 경우 고객 입장에선 펀드 손실을 감수하고 나오고 싶어도 나올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특히 투자 대상 중에는 뉴딜분야 관련 상장 기업 주식도 있지만 비상장 기업 주식도 포함돼 있다. 비상장 기업의 신뢰도는 당연히 상장 기업보다 낮기 때문에 그만큼 투자 리스크도 높다. 자신이 직접 공부한 기업에 투자해 수익을 거두는 요즘 트렌드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고객들이 초저금리 시대에 원금 보장형이라는 점에서 앞다퉈 가입했을 것”이라며 “기본적으로 사모펀드이고 주식시장이 최고점이라는 리스크를 고려해야 한다. 최근 주가 상승률을 보면 향후 20% 손실 가능성이 마냥 낮다고 보기 어렵고 투자로 묶이는 기간이 4년이라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