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위기 대응을 위해 정부는 지난 3월부터 모두 179조5000억원에 달하는 금융지원 방안을 내놓았다. 전례 없는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전례 없는 규모의 자금을 투입하게 됐다는 게 정부 측의 설명이다.
금융지원은 크게 ▲중소기업·소상공인 금융지원 ▲중소·중견기업 자금지원 ▲회사채·단기자금시장 안정화 지원 ▲기업 안정화 지원 등 4개 축으로 구성된다. 기업의 규모에 따라서 지원방식을 달리하되 금융시장에 대해서는 시장 안정화를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일시적 유동성 위기를 겪는 대기업을 대상으로는 ‘고용유지’ 등을 전제로 지원할 수 있도록 ‘기간산업안정기금’ 등을 조성·운용하기로 했다.
이 같은 금융지원을 위해 정부는 다양한 방식으로 재원을 마련했다. 기본적으로 정부·정책금융기관이 보증을 활용하는 방식이 활용됐고, 민간자금을 활용해 증권시장안정펀드·채권시장안정펀드 등을 조성하기도 했다. 또 한국은행이 유동성을 공급하는 방안도 반영됐다.
코로나19 금융지원 패키지 가운데 보증이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프로그램은 모두 합쳐 108조1000억원에 달한다. 전체 금융지원 패키지의 60.2%가 보증과 관계된 셈이다. 보증 제도를 활용하면 재정 여력에 비해 10배 이상의 자금을 시중에 공급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적은 재정투입으로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경제상황이 예상보다 악화되면 보증에 따른 손실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개인·기업이 정책금융기관의 보증을 받아 대출을 받았다면, 이들 개인·기업이 빚을 갚지 못했다고 해도 정책금융기관이 이를 대신 갚아준다. 이를 위해 정책금융기관은 평균적인 손실액 수준인 ‘예상 손실액’을 보증재원으로 투입한다. 예를 들어 예상 손실률이 10%이고 가용 가능한 재정이 1000억원이라면, 1000억원을 보증재원으로 1조원까지 대출을 해줄 수 있는 셈이다.
보증으로 자금을 공급한 뒤 손실이 발생하면 정책금융기관에 이 같은 손실이 반영된다. 손실분이 발생하면 정부가 예산을 해당 정책금융기관에 투입해 이를 보전하게 된다. 손실이 났을 때에만 재정이 투입된다는 측면에서도 재정건전성 측면에서 유리한 부분이 있다는 의미다. 이 같은 이유에서 코로나19 위기처럼 자금이 빠른 속도로 공급돼야 하는 시점에 보증제도는 효율적으로 역할을 할 수 있다.
▶소상공인 지원, 보증방식으로 전환
정부가 지난 3월 발표한 12조원 규모 소상공인 1차 금융지원 프로그램에는 정책금융기관의 보증공급과 직접대출, 이차보전 등의 방식이 혼재돼 있었다.
1차 프로그램은 시중은행 이차보전대출(5조5000억원), 기업은행 초저금리대출(7조8000억원),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경영안정자금(3조1000억원) 등으로 구성됐다. 시중은행 이차보전대출은 대출 금리를 연 1.5%에 맞추되 시중은행의 일반 대출 금리와의 차이를 신용보증기금이 보전해주는 형태다. 다만 시중은행들은 금리차 만큼의 20%를 자체적으로 부담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시중은행 일반 대출금리가 5%라면 1.5%와의 금리차는 3.5%가 발생한다. 이 경우 신보가 은행들이 2.8%만큼의 금리차를 보전하고, 은행들은 0.7%만큼을 자체 부담하는 것이다. 신보가 1차적으로 재원을 투입한 뒤 부족분은 재정이 채워주기로 돼 있어 정책금융과 재정 투입이 혼재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소진공 경영안정자금은 소진공이 직접 대출을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한정된 인원으로 대출을 직접 접수·처리하다보니 소상공인들의 수요를 물리적으로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해왔다. 이것이 결과적으로 ‘대출 병목현상’으로 이어져 소상공인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이에 앞서 시행된 신보·기술보증기금·지역신용보증재단의 ‘중소기업·소상공인 특례보증 프로그램(5조5000억원)’과 ‘영세소상공인 긴급 소액자금 전액보증지원 프로그램(3조원)’도 보증서를 발급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중소기업·소상공인이 대출을 유리한 금리로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정책이지만 지난 3월 일찌감치 소진된 상태다.
정부는 5월 말부터 10조원 규모로 소상공인 2차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할 계획이다. 앞서 시행된 1차 프로그램과 다른 점은 2차 프로그램은 전액 보증부 대출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신한·KB국민·하나·우리·NH농협·기업은행 등 6개 시중은행으로 대출처를 분산했고, 신보에서 보증서를 발급받도록 했다. 보증서를 발급받기까지 여러 기관을 거쳐야 한다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은행에서 보증서 발급까지 받을 수 있도록 프로세스를 개선했다.
이밖에 채무를 갚지 못해 연체 상태로 접어든 소상공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자산관리공사(캠코)가 금융회사로부터 연체채권을 매입하는 ‘소상공인 연체채권 매입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캠코가 자체 재원을 바탕으로 2조원 규모의 연체채권을 사들여 연체 소상공인들의 연체이자 등 상환 부담을 덜어주는 방식이다.
▶중소·중견기업 대상 P-CBO
중소·중견기업들을 대상으로 하는 금융지원 프로그램에도 보증제도가 주로 활용된다. 신보와 수출입은행은 7조9000억원 규모의 ‘신용취약 중소중견기업 보증공급’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이 역시 보증서를 발급받아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정책금융기관의 보증을 바탕으로 금융시장에서 채권을 매각해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의 ‘유동화회사보증(P-CBO)’이 적용된 프로그램도 적지 않다. 중소·중견기업 대상의 코로나19 피해대응 회사채 발행지원(6조7000억원)이 대표적이다.
2조2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신속인수제에도 P-CBO가 활용된다. 지난 4월 22일 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정부는 회사채 발행지원을 위한 P-CBO 발행을 5조원 추가로 늘리기로 했다. P-CBO를 활용한 자금만 13조9000억원이 공급되는 것이다.
P-CBO는 정부 기관의 보증을 활용해 시장의 자금을 활용하는 제도다. 기업들의 회사채를 묶어 신용보증기금이 신용을 보강한 뒤 이를 시장에 매각해 기업들이 낮은 금리로 자금조달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통상 만기 1년인 대출에 비해 회사채 만기는 3년이고, 대출받을 수 있는 금액 또한 대출보다 많다.
예를 들어 A·B·C 기업이 P-CBO 이용을 위해 회사채를 발행하면, 신보가 A·B·C 기업의 채권을 한데 묶어 보증을 한 뒤 채권을 시장에 매각하는 방식이다. A·B·C 기업이 각각 신용등급이 다르고, 이들 기업의 신용등급으로는 채권이 시장에서 소화되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정책금융기관인 신보의 보증이 보강됐기에 낮은 금리로 시장에서 자금 조달을 할 수 있다.
산업은행의 회사채 신속인수제 프로그램도 산은이 일단 자금조달이 어려운 기업의 회사채를 매입한 뒤 이를 신보에 매각하고, 신보가 P-CBO로 묶어 시장에 매각하는 방식이다.
신보가 P-CBO를 발행할 때 적용되는 보증배수는 6~7배 수준인 것으로 전해졌다. 코로나 위기 대응을 위해 P-CBO가 모두 13조9000억원 발행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재정은 2조~2조3000억원가량이 소요되는 셈이다. 정책금융기관들은 중소·중견기업 대상 직접대출을 확대하기도 했다. 산은(5조원), 기업은행(10조원), 수출입은행(6조2000억원) 등이 총 21조2000억원 규모의 자금지원이다.
▶대기업 대상 기간산업안정기금
40조원 규모로 이달 말 가동이 예정된 기간산업안정기금도 보증과 간접적으로 연관된 프로그램이다. 산은에 기금을 설치하고, 재원은 국가보증의 형태로 산은이 채권을 발행해 마련하는 방식이다. 한은은 산은이 발행한 채권을 매입하는 형태로 유동성을 공급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20대 국회가 마무리되기 전에 서둘러 국회의 입법·동의절차를 진행했다. 기금 설치를 위한 산은법 개정안은 4월 29일 통과했다. 정책을 발표한 지 불과 1주일 만의 일이다.
기간산업안정기금은 국민경제와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큰 기간산업 지원을 목적으로 운영된다. 남은 절차가 순조롭게 마무리되면 5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가동된다. 당초 기금은 항공·해운·조선·자동차·일반기계·전력·통신 등 7개 주요 기간 관련업종을 대상으로 지원하기로 했지만, 항공·해운업을 우선적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산은법 시행령의 입법 예고기간 동안 관계부처 의견수렴 과정에서 일부 수정이 있었던 것이다. 다만 정부는 시장 상황과 자금 수요를 보면서 필요한 경우 기간산업을 추가로 지정한다는 계획이다.
기금은 대출자산 매수, 채무보증 또는 인수, 사채 인수, 출자(전환사채·신주인수권부 사채 등 포함), 특수목적기구(SPV)·펀드지원 등으로 기업을 지원하게 된다. 산업특성과 개별기업 수요에 맞게 대출·지급보증·출자 등의 방식을 형태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기금의 지원을 받는 기업은 일정 기간 고용을 유지해야 한다.
아직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제시되지는 않았지만, 정부는 대략 고용 총량의 90%를 유지하는 것을 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이 같은 약정을 어길 때에는 가산금리를 부과하거나 지원자금 축소·회수하는 조치가 뒤따르게 된다.
정부의 자금이 투입되는 만큼, 이해관계자의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한 장치도 마련된다. 임원의 보수제한, 배당·자사주 취득 제한 등이 주요 방식이 될 전망이다. 금융위는 지원자금을 전액 상환할 때까지 퇴직금·성과급 등을 포함한 고액연봉에 제한을 두고, 배당·자사주 취득을 금지하는 방안을 예시로 들었다.
기금이 기업을 지원한 뒤 정상화됐을 때 이익을 정부와 공유하는 방안도 담겨있다. 일정 조건 하에서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기로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분에 대한 ‘의결권 행사’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의결권 행사는 원칙적으로 제한한다”고 못을 박았다. 다만 기금의 재산보존을 위해 필요한 두 가지 예외사항을 내놓았다. ‘주식의 가치에 중대한 영향을 초래할 수 있는 사항을 결의할’ 때나 ‘자금지원을 받은 기업이 구조조정 절차를 신청한 경우로서 기간산업안정기금의 재산을 보존하기 위해 의결권을 행사해야 하는 경우’에 한해 의결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금융시장 ‘안전판’ 마련
20조원 규모의 채권시장안정펀드와 10조7000억원 규모의 증권시장안정펀드는 정책금융과 민간 금융회사의 자금을 활용해 조성됐다. 산은이 각 펀드에 20% 수준의 자금을 투입하고, 민간 금융회사들이 나머지를 출자하는 형태다. 펀드 조성분에 대해서는 한국은행이 해당 금융회사에 유동성을 일정 부분 공급해준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산은의 회사채 차환발행 지원(1조9000억원), 한국은행과 한국증권금융의 증권사 유동성지원(5조원) 프로그램도 금융시장의 안전판을 마련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활용되고 있다.
다만 민간 금융회사를 활용했다는 한계점이 있는 만큼, 이들 프로그램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시각이 있어 왔다. 이에 기재부, 금융위, 한은은 20조원 규모의 ‘저신용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기구’의 설립을 추진 중이다. 정부의 보증과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활용한 프로그램이다. 그동안 금융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였던 저신용등급 회사채·CP 시장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산은에 특수목적기구(SPV)를 설립한 뒤 정부가 보증의 형태로 출자를 하고, 한은이 해당 SPV에 대출을 해주는 개념으로 가동을 준비 중이다.
이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와 재무부의 합작품인 미국 ‘CP매입기구(CPFF)’를 벤치마킹한 모델이다. CPFF는 미 연준이 SPV에 대출을 해주는 방식으로 자금이 공급되며, 재무부가 이 가운데 10%를 보증한다. SPV는 이렇게 마련된 재원을 활용해 시장에서 소화가 어려운 CP를 매입하는 방식이다.
미 재무부가 10%의 보증을 제공했다는 것은 미 연준과 재무부가 예상하는 손실률이 10%라는 의미다. 예를 들어 SPV가 1억달러어치의 채권을 매입했다면 이 가운데 1000만달러어치 정도의 채권이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손실이 2000만달러가 발생했다면, 1000만달러는 정부가 손실을 메우고 나머지 1000만달러의 손실은 미 연준이 감당한다.
저신용 회사채·CP 매입기구는 현재 재정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와 한은이 보증범위를 두고 논의를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