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1월 6일 서울 27개동을 필두로 분양가 상한지역을 지정하며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칼을 빼들었다. 분양가상한제가 집값을 잡는 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선 견해가 엇갈리지만, 그 이상의 추가대책을 내기 쉽지 않다는 것은 시장참여자 대부분이 인정하는 사실이다. 주택 가격(아파트 분양가)을 정부가 직접 건드리는 것도 전 세계 유례가 없는 일인데, 그 이상의 규제를 내놓을 경우 자본주의의 시장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번 분양가상한제를 놓고, ‘정부의 마지막 칼이 칼집 밖으로 나왔다’고 말하는 이유다.
국토교통부 주택담당 라인에서도 “분양가상한제 이후 추가 대책이 나오면 무리한 반시장적 정책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제발 좀 집값이 잡혔으면 좋겠다”는 넋두리가 나올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분양가상한제의 허를 찌르고 들어온 재건축의 달인이 있으니, 사상 처음으로 최고 분양가 3.3㎡당 5000만원의 벽을 깬 한형기 신반포1차(아크로리버파크) 조합장이다. 신반포3차·경남아파트 재건축(래미안 원베일리)의 조합원이기도 한 한 조합장은 시공사는 물론 정비업체도 모르게 ‘일반분양 통매각’ 절차를 수개월간 추진해왔다. 실제로 원베일리 조합은 10월 29일 총회를 열고 ▲정관변경 ▲관리처분계획변경 ▲일반물량 전무 매각에 대한 찬반투표 ▲수의계약자와의 계약서 승인 등 통매각 관련 안건들을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 한 조합장의 노림수가 통한다면, 래미안 원베일리는 내년 5월 이후 착공하는 사업장 중에 분양가상한제를 회피한 유일무이한 단지가 된다.
반면 분양가상한제에 ‘올인’하는 정부는 원베일리 통매각에 대해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무력화시키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한번 예외를 인정하면 또 다른 회피수단이 나올 수 있는 데다, 한강변 반포동에 자리 잡은 원베일리는 바로 옆 아크로리버파크를 넘어 가장 비싼 단지가 될 가능성이 농후한데 ‘최대어를 놓치면 강남 규제의 명분도 사라진다’는 위기감이 감돈다.
실제 분양가상한제 회피를 노리는 대규모 단지도 원베일리의 통매각 가부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최찬성 둔촌주공 재건축 조합장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협상에서 조합이 책정한 일반분양가 3550만원 수준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통매각과 후분양 등 가능한 모든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힌 상태다. 최고가 원베일리에 최대규모 둔촌주공까지 분양가상한제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가 규제를 비켜갈 경우 정부는 서울 집값과의 전쟁에서 만회하기 힘든 타격을 받게 된다. 분양가상한제를 앞두고 정부와 재건축 조합 측은 원베일리 일반분양 통매각 허용 여부를 놓고 정면충돌하는 셈이다. 양쪽이 절대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라, 이 대결은 수년 후 법원의 판단에 따라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분양가상한제를 앞두고 ‘일반분양 통매각’이 왜 튀어나왔고, 향후 어떤 법적 판단을 받게 될지 뜯어보자.
강남서도 한강변 노른자위에 위치한 래미안 원베일리의 기존 조합원들은 분양가상한제를 회피할 수 있는지에 따라 최대 4000억원의 분양수익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다. 임대사업자는 일반분양분 364가구를 8000억원에 사들이기로 했다. 일반분양분을 3.3㎡당 6000만원 꼴로 사는 셈인데, 임대사업자는 8년 임대 후 시장에 되팔 땐 최소 3.3㎡당 1억원의 가치가 있다고 봤다. 반면 원베일리 조합 측은 정부의 분양가상한제를 엄격하게 적용하면 선분양 일반분양가가 3.3㎡당 3000만원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택지비를 주변 공시지가의 100~150% 정도로 봤을 때의 예상가다. 10월 29일 총회에서 원베일리 조합원들이 97%의 압도적인 통매각 찬성표를 몰아준 이유다.
반포동 신반포3차·경남아파트 재건축(래미안 원베일리) 사업 현장
▶조합 측 서초구에 “매각 막지 말라” 소송
‘상한제 지키려 무리수’ 주장
정부는 내년 4월까지 일반분양 신청공고를 하는 단지를 대상으로 분양가상한제를 유예해주기로 했다. 이 경우에도 HUG의 분양가 통제를 받지만, 반포동은 인근단지의 기존 분양가가 센 편이라 3.3㎡당 4000만원을 훌쩍 넘는 일반분양이 가능하다. 하지만 래미안 원베일리는 주민 이주와 철거까지 마쳤음에도 내년 4월 착공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해당 대지가 연약지반이라 풍동시험 등 구조성능 설계 인허가를 추가로 받아야 하는데, 물리적으로 1년 가까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결국 일반분양분을 통매각하는 것 외에는 분양가상한제를 피할 길이 없다는 얘기다.
조합과 정부 모두 자신의 주장 근거를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 18조 6항에 두고 있다. 조합은 “주택사업자가 임대사업자에게 주택 전부를 우선 공급할 수 있다”는 원문을 근거로, 주체의 제한 없이 특별법이 통매각을 허용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서울시와 정부는 같은 조항 내에 “분양가상한제 적용주택은 (일괄 매각에서) 제외한다”는 예외문구를 근거로, 원베일리의 통매각 추진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법조계에선 국토교통부가 반포동을 포함한 서울시 27개 동에 대해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적용지역을 지정한 11월 6일을 상한제 적용 시점으로 보고 있다. 그 시점 이전에 통매각 관련 절차를 마무리했는지가 관건이라는 얘기다.
결국 이 사안은 법원으로 공이 넘어갔다. 관할 행정청인 서초구청이 원베일리 조합의 정관변경 심사 및 관리처분계획변경 심사를 모두 반려했고, 이에 맞서 조합은 11월 12일 반려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을 정식 제기했기 때문이다. 서초구청은 정관변경 신고를 반려하면서 “임대주택의 공급에 관하여 조합 정관을 변경하고자 하는 경우 같은 내용이 해당 정비계획에 우선 반영되어야 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서울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조례(제8조 제1항 제2호)에 따르면, 정비계획 수립 시 ‘임대주택의 건설에 관한 계획’을 포함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조합 정관은 조합에서 해당 사업의 특성 등을 고려하여 관계 법령과 선행 계획 등에 위배되지 아니한 범위 내에서 정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조합 측은 “이번 정관 개정안의 내용이 ‘총회의 결의를 받아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매각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관련법(도시정비법 제79조 제4항 및 민간임대주택법 제18조 제6항)에서 정하고 있는 주택공급 방법과 조합 매각권한의 일반적인 내용을 확인하는 데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내부규범에 해당하는 정관이 구체적인 사업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 않은 ‘정비계획’에 반하는 경우를 상정하기 어렵다는 게 조합의 논리다.
또 서초구청은 “관리처분계획변경에 앞서 조합정관 변경 등이 우선 반영되어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원베일리 조합의 관리처분계획변경신고를 반려했다. 이에 대해 조합은 “이번 통매각 건이 조합 예산의 집행 또는 조합원의 부담이 되는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경미한 변경사항’에 해당한다”며 “정관의 경미한 변경사항은 신고 수리여부와 관계없이 총회 결의만으로 유효하기 때문에, 10월 29일 임시총회 때 이미 효력이 발생했다”고 맞서고 있다.
조합은 결국 이 소송전의 실질 상대가 서초구청이 아닌 서울시임을 분명히 했다. 소장에도 “피고(서초구청)가 이처럼 무리한 사유를 내세워 정관변경신고를 반려한 것은 법령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서울시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넉넉히 추단할 수 있다”고 적시돼있다. 원베일리 조합의 실질적인 싸움 상대는 서초구청이 아닌 서울시라는 점을 명백히 한 것이다.
‘전설의 조합장’ 한형기 직격 인터뷰
“시장 이기는 정부 없다”
“정부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재건축을 막고 있지만 이 또한 지나갈 일이다. 분양가상한제와 초과이익환수제도 서울 공급부족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이번 정권 말인 2~3년 후에 약해질 것이다. 역대 정권 재건축 정책을 보면 한 정권당 20번씩 규제를 조이고 풀어왔다. 국내 재건축은 추진위 설립부터 입주까지 평균 20년 걸린다. 초기 재건축이라도 좌고우면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나가야 하는 이유다.”
‘재건축의 전설’로 불리는 한형기 신반포1차재건축 조합장은 정부의 서슬 퍼런 규제와 압박에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강경발언을 내놨다. “다 경험해 봤다. 그래도 시장 이기는 규제 없더라”는 게 그의 자신감의 원천이다.
한 조합장은 사분오열 돼있던 조합원과 주변 단지를 하나로 묶어 아크로리버파크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이 단지는 2013년 분양당시 누구도 생각 못한 3.3㎡당 최고 5000만원의 분양가에도 완판됐고, 최근에는 20평대와 30평대 모두 3.3㎡당 1억원 넘게 실거래 됐다. 최근 한 조합장은 바로 이웃단지인 래미안 원베일리의 일반물량 통매각 작업에 올인하고 있다.
지난달 반포동 조합사무실에서 매일경제신문과 만난 한 조합장은 “20년 넘게 재건축 과정을 진행해온 원베일리 기존 조합원들이 3.3㎡당 4800만원에 조합원 분양을 받는데, 로또분양 맞은 일반분양자가 3.3㎡당 3000만원에 새 집을 가져가겠다는 게 말이 되냐”며 “아무리 강남 집값을 잡겠다지만 이게 공산주의 아니고 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분양가상한제 적용 받으면 조합원 한 가구당 관리처분인가 당시 예상치보다 2억7000만원씩 더 내야 한다”며 “조합원 중 달랑 여기 집 한 채 가진 사람이 부지기수고 나중에 일반분양 들어오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대출 없이 현금 10억원 이상을 조달할 수 있는 부자들인데, 이게 누구를 위한 분양가상한제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2년간 서울 아파트 폭등세가 정부규제로부터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한 조합장은 “무식하다 싶을 정도로 부동산 규제를 밀어붙인 이런 정부는 역대로 없었다”며 “초과이익 환수금에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분양규제, 분양가상한제 등 재건축 규제를 다 쏟아 부으니 ‘강남에 새로 나올 아파트가 없다’는 시그널을 주게 되고 미친 집값 상승으로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분양가상한제의 빈틈을 일반분양 통매각 카드로 파고든 것도 그의 작품이다. 한 조합장은 “일반분양 통매각은 불법이나 위법이 아닌 적법한 규제 회피수단으로 법적으로 따지면 100% 이길 자신이 있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재건축 전문 대표 변호사들 10명이면 10명 다 원베일리 통매각을 막을 법적 장치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며 “서울시가 조합장과 시공사, 정비업체를 거의 매일 불러 통매각을 포기하라며 겁을 주고 있는데도 우리 조합이 강행할 수 있는 건 그만큼 법률적 검증을 확실히 받았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10월 말 인터뷰에서 그는 일반분양 통매각의 유효성 판단이 결국 법원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정부가 11월 초 분양가상한제 적용지역을 지정하면 원베일리 이후 다른 재건축 사업장은 원천적으로 통매각 대상이 되기 어려워, 원베일리 분상제 회피 이슈가 조용히 사그러들 것으로 내다봤다.
지금까지 한 조합장의 예상은 하나는 맞고 하나는 어긋났다. 서초구청의 정관변경·관리처분인가 변경 신고 반려처분으로 조합은 11월 12일 소를 제기해 법원으로 공이 넘어간 것은 예상대로였다. 하지만 서울 27개동을 분양가상한제 적용지역으로 지정한 규제당국은 아직도 ‘단 하나의 분상제 회피를 인정할 수 없다’며 원베일리에 대한 감시의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다.
인터뷰 말미, 그에게 “만약 통매각 절차가 완결돼 조합원들이 분상제 적용 대비 4000억원 정도의 이익을 보게 되면 당신은 인센티브를 얼마나 받느냐”고 물었다. 한 조합장은 “원베일리 조합원이 2500명 넘는데 한 사람당 1000만원씩만 모아줘도 250억원 아니냐”며 웃어 넘겼다. 그는 이내 진지하게 두 손을 모으고 “이번 원베일리 사업을 진행하면서 아크로리버파크보다 더 성공시켜 서울 재건축사에 이름을 남길 만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며 “나중에는 재건축 관련 토털 컨설팅 업체를 만들어 노하우를 공유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