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의 ‘미운오리새끼’로 불리던 풍납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풍납동은 강남 3구에 속하는 송파구인 데다 한강변에 인접해 있으면서도 문화재 보존구역으로 지정돼 개발이 제한되면서 그간 시세가 잠실 등 주변 지역에 비해 크게 낮았던 지역이다.
하지만 최근 인근 지역의 재건축 이주 수요와 기존 노후 아파트들의 재건축 바람으로 미운오리새끼에서 ‘백조’로 거듭날 준비를 마쳤다는 평가다. 특히 최근 안전진단 기준 강화로 재건축 추진 단지들이 잇따라 제동이 걸리고 있는 가운데 풍납 미성아파트가 재건축 첫 단계인 예비안전진단(현지조사)을 통과하면서 풍납동에 대한 관심이 더욱 치솟을 전망이다.
▶풍납 미성, 재건축 추진 첫걸음 떼
최근 서울 초기 재건축 단지들이 정부의 강화된 안전진단에서 잇달아 고배를 마신 가운데 서울 송파구 풍납동 미성아파트가 예비안전진단(현지조사)을 통과해 눈길을 끌고 있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송파구청은 최근 풍납 미성아파트에 대해 예비안전진단을 실시한 뒤 ‘D등급’ 판정 결과를 통보했다. 예비안전진단은 재건축 추진 절차의 첫 단계다.
안전진단을 원하는 주민들이 주민동의서를 구청에 제출하면 구청이 전문가들로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건물 설비 노후도와 주거 환경 등을 살피는 예비안전진단을 실시한다. 구청 예산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별도의 모금 활동은 필요하지 않다.
진단결과 등급은 A~E등급으로 나뉘며 D·E등급을 받아야 다음 단계인 민간용역업체가 진행하는 정밀안전진단(2차 진단) 자격이 주어진다. 정밀안전진단에서 ‘조건부 재건축(D등급)’ 또는 ‘재건축(E등급)’이 나와야 재건축이 가능하다. D등급 판정을 받을 경우 공공기관 적정성 심사(3차 진단)를 한 번 더 거쳐야 한다.
예비안전진단을 통과한 풍납 미성아파트 측은 올해 안에 주민 간 합의를 거쳐 정밀안전진단 비용을 마련한 뒤 내년 초 진단을 실시할 계획이다. 송파구청에 따르면 정밀안전진단 용역비는 약 1억4000만원으로 추산된다.
특히 이번 결과는 최근 노원구 월계시영아파트와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선수촌아파트 등 재건축 대어들이 안전진단에서 고배를 마신 가운데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월계시영은 예비안전진단에서, 올림픽선수촌은 정밀안전진단에서 각각 문턱을 통과하지 못했다. 최근 규제 일변도인 정부 정책 방향과 재건축에 부정적인 현 지자체 등의 방침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풍납 미성의 한 주민은 “우리 아파트는 노후도가 심각하고 주거 환경이 열악해 재건축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서울시가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객관적인 평가를 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1985년에 준공된 풍납 미성아파트는 4개동 275가구로 용적률은 167% 수준이다. 지난 2005년 재건축 연한인 20년을 채워 리모델링을 추진했지만 분담금 문제가 불거지면서 사업이 한 차례 중단됐다. 이후 아파트 노후화가 진행되며 주민들의 주거환경 개선에 대한 열망이 커지자 다시 재건축 추진에 나서게 됐다.
송파구 관계자는 “풍납 미성이 있는 풍납4권역은 유물이 유실된 것으로 보여 건축행위가 가능하다”며 “다만 정비계획 수립 시 문화재 보호와 관련한 규제를 적용받기 때문에 재건축사업을 추진할지는 주민들이 판단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재건축 기대감이 커지면서 몸값도 치솟고 있다. 일단 풍납 미성아파트 매물은 이미 자취를 감췄다. 풍납동 인근 한 공인중개사는 “예비안전진단을 통과하면서 집주인들이 집값이 오를 것으로 기대해 내놓았던 물건도 다시 거둬들이고 있다”며 “재건축 추진이 가시화될수록 이 같은 분위기가 심화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예비안전진단 통과 소식이 알려지면서 풍납 미성아파트 실거래가는 연일 신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전용 116㎡(6층) 매물은 최근 8억7000만원에 손바뀜했다. 7월 8억1500만원(3층), 9월 8억4000만원(4층) 등 실거래 가격은 매달 경신되고 있다. 이번 풍납 미성 안전진단 통과로 인해 서울 강남3구에 위치하고 한강변을 끼고 있으면서도 그간 부동산 시장에서 외면 받아왔던 풍납동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풍납동 일대는 한강변을 끼고 있고 5·8호선을 관통하는 더블역세권이지만 문화재 보호 이슈로 인해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이 20여 년간 거의 멈춰 있는 상태다. 주변 지역과 비교하면 이 지역 아파트의 시세 차이는 여전히 크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풍납동 아파트의 3.3㎡당 평균 시세는 2240만원으로 송파구 전체평균(3742만원)의 60% 수준에 그친다. 84㎡ 기준 비교적 최근 (2006년) 준공된 송파현대힐스테이트가 8억원대에 거래되고, 현대1 전용 83㎡ 정도가 9억원 중반대에 거래된다. 이 정도면 강남이 아니라 강북 아파트와 비슷한 가격대다.
하지만 최근 풍납동에서 송파구 일대 재건축사업의 영향으로 집값 상승의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우선 신천동의 미성·크로바, 진주아파트 재건축사업에 따른 이주로 인해 전세 수요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풍납동의 한 공인중개사 대표는 “미성·크로바, 진주아파트 거주자들이 집을 구하기 위해 문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풍납동은 매우 훌륭한 입지에도 불구하고 문화재 발굴·보존이라는 특수한 상황 문제로 부동산 시장에서 외면 받아왔다”면서 “신축 효과로 주변 단지의 재건축이 속도를 내면서 재조명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풍납토성 주거지 현장, 풍납 복토작업 주민들 반발
▶개발 제한에 쌓인 한… 이번엔 풀까
서울 송파구 풍납동은 ‘풍납토성’으로 대표되는 백제의 역사가 그대로 담겨져 있는 지역이다. 하지만 역사적 발견으로 인해 개발제한 구역으로 묶이면서 지역민들에게는 말 그대로 ‘재앙’이 되고 말았다. 문화재 발굴 역시 중요한 사업이지만 지역민들의 자산가치 상승과 상권 활성화라는 가치 역시 함께 고려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풍납동의 운명을 바꾼 것은 20여 년 전 백제유물의 발굴이다. 지난 1997년 아파트 재건축 공사 현장에서 옛 하남위례성(한성)의 것으로 추정되는 백제 유물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문화재 보존지역으로 묶였기 때문이다. 이후 정부가 예산부족을 이유로 보상을 늦추면서 20여 년간 재산권 행사가 제한됐다.
물론 풍납토성의 문화적 가치는 높다. 백제는 원래 하남위례성(한성)에서 건국돼 678년간 이어졌다. 백제의 중심이 한강 유역에 있던 시기는 약 500년에 달한다. 대중에 백제의 고장으로 알려진 웅진(공주)으로 천도한 건 기원 후 475년이 돼서다. 한성은 남성·북성으로 나뉘는데, 학계에서는 풍납1·2동을 둘러싼 풍납토성이 북성, 그 아래 몽촌토성을 남성으로 추정한다. 풍납토성으로 인해 서울의 역사가 한층 깊어진 셈이다.
이처럼 문화적 측면에서 거대한 발견이었지만 지역 주민들 입장에선 ‘악몽’이 시작됐다. 문화재 발굴이 이어지면서 지역 개발이 멈춰 섰고 상권도 침체되기 시작했다.
송파구 풍납동의 풍납시장 골목길에는 곳곳에 건물주들에게 임대료를 깎아 달라는 호소문을 써 놓은 현수막이 걸려 있다. 저층 상가 건물이 줄지어 있는 시장 골목에는 곳곳에 빈 상가가 많다.
이곳에서 만난 한 상인은 “풍납토성 복원사업으로 많은 고객들이 떠나 매출액이 절반 이상 감소했다”며 “손님도 줄고 문을 닫는 가게가 많아 동네 전체가 어수선하다”고 하소연했다.
다행히 정부가 완전히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문화재청은 2048년까지 풍납토성 발굴·복원·정비작업을 벌일 계획이며, 올해부터 2048년까지 전체 소요 예산은 1조6326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실제 예산이 언제, 얼마나 투입될지 여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라 지역 주민들은 지쳐가고 있다.
정부는 풍납토성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하지만 예산 확보가 늦어지면서 현재 토성 내부 면적의 63%만 보상이 진행됐고 나머지는 22년째 재산권 행사가 묶여 있다. 실제로 정부는 2034년이 돼야 보상이 완료될 것으로 본다. 사실상 기약이 없는 셈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금까지 풍납동 발굴 과정에서 소요된 보상비만 약 8000억원이고, 풍납토성 전 지역을 보상하려면 10조원 이상이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풍납토성 전체 발굴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셈이다. 이 때문에 서울시와 문화재청은 발굴과 주거지 재생을 병행하고 있지만 사업 장기화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역사적 유물이 나오면서 풍납동은 개발이 원천적으로 제한됐다. 그 사이 주변 집값은 급등했고, 이 동네는 송파구에서 가장 낙후된 동네 중 한 곳이 됐다. 서울시와 문화재청은 2009년 토성 내부를 보존 우선순위에 따라 6개 권역으로 나누고 단계별로 유물 보전·발굴 작업을 하고, 권역별로 보상과 규제를 적용했다.
토성 내 1권역은 토지 매입과 복원작업이 마무리됐다. 2권역은 구간별로 매입, 발굴을 진행해 개발 행위가 제한된다. 3권역은 문화층이 있을 것으로 판단돼 지상 21층까지만 건물을 지을 수 있고, 지하 2층까지만 터파기 공사가 허용된다. 4권역은 아파트 지역, 5권역은 성과 관련된 해자·백제유적 확인 가능성이 있는 지역, 6권역은 백제유적이 확인될 가능성이 있는 도성 권역이다.
이 지역 주민들은 “예전엔 우리 동네 집값이나 잠실 등 옆 동네 집값이 별 차이가 없었다”며 “20년째 보상이 지연되면서 지금은 정부에서 나오는 보상금으로 인근 지역의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개발이 지체되는 사이 상권도 몰락하고 있다. 곳곳에 철거를 기다리는 빈집들이 생기면서 인근 상인들도 하나둘씩 사업을 접고 있다. 풍납동 인근 한 공인중개사는 “빈집이 늘어나다보니 장사도 안 되고, 권리금이 수천만원씩 붙어 있던 상가도 이제는 텅텅 빈 상황”이라며 “문화재 발굴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먹고 사는 게 더욱 중요한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화재 발굴과 함께 집값의 발목을 잡고 있던 인근 삼표산업 레미콘 공장 이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은 호재다. 삼표산업은 풍납동 공장이 문화재 복원사업 부지에 포함돼 공장 사용 허가를 취소당하자 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해 2심에서 패소하고 대법원에 상고했다.
풍납동 전경
▶풍납동 시세 상승 이끌 기대주 ‘잠올아’
풍납동의 시세 상승을 이끌 기대주는 풍납 우성아파트를 재건축한 송파구 풍납동의 ‘잠실올림픽아이파크(잠올아)’다. 이 아파트는 다음 달 준공, 입주에 나선다. 총 7개동 697가구 규모인 이 아파트는 지난 2016년 3.3㎡당 평균 2852만원에 분양됐으며, 정비사업이 제자리걸음을 거듭하던 풍납동에서 거의 유일한 신축아파트로 꼽힌다.
풍납동에서는 지난 2000년대 이후 준공된 아파트 단지가 송파 해모로(2006년 입주, 114가구), 송파 현대 힐스테이트(2006년 입주, 166가구), KNP상상(2008년 입주, 49가구) 등 손에 꼽는 수준이다. 가장 규모가 큰 단지는 1·2지구로 나눠져 있는 현대 리버빌(1지구 557가구, 2지구 984가구)이며 그 외 1000가구 이상 규모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 아파트는 한강변과 성내천을 끼고 있고, 강동구청역 인근 요지에 위치해 있다. 맞은편으로는 가까운 거리에 올림픽 공원이 있다. 현재까지 분양권 거래가 활발하지는 않지만, 올해 8월 이 아파트의 전용 59㎡(11층) 매물이 11억843만원에 팔렸다. 현재 호가는 12억~12억5000만원 수준이다. 분양가와 비교하면 매물에 따라 5억5000만~6억5000만원 수준의 프리미엄이 붙은 가격이다. 이 단지는 이달 서울에서 입주하는 5개 단지들 중 가장 큰 폭으로 시세가 오르면서 ‘강남불패’를 다시 한번 입증했다.
전용 75㎡와 84㎡짜리 입주권 시세도 각각 14억5000만원, 16억~16억5000만원 선에 형성됐다. 분양 당시보다 6억~7억원가량 오른 것이다.
풍납동 한 공인중개사는 “올해 상반기까지 12억~13억원대였던 인근 파크리오 전용 59㎡ 시세가 최근 15억원을 넘었다”며 “잠실올림픽아이파크는 일부 집주인들이 파크리오의 같은 평형대와 가격이 맞춰질 때까지 매도 시점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시행으로 새 아파트 선호 현상이 심해지면서 입주를 앞두고 가격이 급격히 오르고 있다”며 “풍납동은 지역 자체가 저평가되어 있기 때문에 당분간 잠실올림픽아이파크를 중심으로 시세 상승이 계속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