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에도 유행이 있다. 2000년대 초반에는 ‘미래에셋 차이나 인사이트’ 등을 대표로 한 해외 주식형 펀드가 대세였다면 2010년 초반에는 국내 가치주를 담은 국내 주식형 펀드가 유행했다. 그리고 올해는 채권형 펀드의 바람이 드세다. 공모펀드의 위기론이 나오는 요즘도 주요 국내 채권 공모형 펀드는 조 단위 자금을 순식간에 빨아들였다.
과거에는 ‘1조 펀드’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스타 펀드 매니저가 운용하는 주식형 펀드를 연상했지만 이제는 다르다. 주식은 상장지수펀드(ETF) 등으로 지수 베팅만 하고 손실 볼 일이 별로 없는 채권형 펀드에만 돈이 몰린다. 2016년에는 설정액이 1조원이 넘는 국내 주식형 액티브 펀드가 6개나 됐지만 최근엔 1개로 줄어들어 명맥만 지키고 있다.
한때 ‘공룡 펀드’라고 불렸던 KB밸류포커스 펀드, 메리츠코리아펀드, 신영마라톤펀드, 한국밸류10년투자 펀드 들도 모두 몇 년 전부터 설정액이 1조원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대신 그동안 별로 빛을 보지 못했던 채권형 펀드들이 올해 자금몰이를 하며 1조 펀드에 다수 등극했다.
▶신영밸류고배당 주식 대표 펀드 이름값, 인덱스 펀드도 인기
신영밸류고배당증권은 이제 국내에선 유일한 액티브주식형 펀드다. ‘가치투자 명가’ 신영자산운용의 대표 펀드로 배당수익률이 높은 국내 종목을 집중 매입한다. 삼성전자, 맥쿼리인프라, 삼성전자우선주, KT&G, 기업은행, KCC, GS, 현대차우선주 등이 주요 상위 종목들이다. 최근 국내 증시 급락으로 수익률은 다소 아쉽다. 1년 수익률이 -13.9%, 3년 수익률이 -6.8%다. 삼성전자의 주가가 상승하던 2018년 초까지는 펀드가 승승장구했으나 삼성전자 주가가 하락하며 편드 수익률도 하락하기 시작했다. 우선주까지 포함하면 비중이 거의 13%나 되기 때문이다.
교보악사 파워인덱스 역시 여전히 1조원을 지키고 있는 국내 인덱스 주식형 펀드다. 시장수익률을 추구하면서 추가 수익을 얻는 전략이다. 이 펀드는 코스피200과 거의 비슷한 구성종목과 비중이기 때문에 1년 수익률이 -10%로 저조하다. 그러나 인덱스 펀드인 까닭에 총 보수가 1.15%(클래스 C기준)인 점이 장점이다.
1조원 펀드 고지가 얼마 남지 않은 NH아문디코리아2배레버리지 펀드는 수익률과 상관없이 돈은 꾸준히 모이고 있다. 최근 6개월 새 1447억원이 몰려 최근 설정액은 9300억원이다. 특이한 점은 코스피 지수가 2000선이 깨지기 시작한 최근 1개월간 820억원이 몰렸다는 점이다. 레버리지 ETF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가 매수 수요의 상당 부분을 흡입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당연히 2배 레버리지 펀드인 만큼 최근 수익률은 좋지 않다. 레버리지 펀드는 지수 상승분의 2배 수익을 얻기도 하지만 지수 하락분의 2배 만큼 손해를 보기도 한다. 최근 1년 수익률은 -25%다.
작년 글로벌 증시 급락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채권형 펀드는 올해 들어 급성장을 계속했다. 펀드평가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연초 이후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2674억원이 빠지는 와중에 국내 채권형 펀드는 10조6547억원이 모였다. 국내 채권형 펀드의 안정적이지만 낮은 수익률에 만족하지 못한 투자자들이 보다 고금리의 채권펀드를 찾으며 해외 채권형 펀드 역시 3조4000억원이 몰렸다.
우리하이플러스채권펀드는 올해 들어 가장 몸집이 불어난 펀드이자 운용규모로 따지면 국내에서 2위다. 1위인 KODEX200 상장지수펀드(ETF)가 투자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인지도가 높은 데 반해 주로 안전 성향 투자자들에게 인기가 높아 조용히 몸집을 키운 펀드다. 이 펀드의 성과는 최근 1년간 2.89%로 은행 예금이자를 뛰어넘는 성과를 자랑한다. 올해 들어 2조4277억원의 자금이 들어와 시중에 있는 자금들을 거의 다 끌어 모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금융지주에 합병된 우리자산운용(구 동양자산운용)은 우리하이플러스 채권펀드 외 1조 펀드를 2개 더 보유하고 있다. 특히 두 개 펀드는 우리자산운용의 채권 운용 능력에 대한 신뢰로 올해 들어 설정액 1조원을 돌파했다. 우리단기채권 펀드는 올 들어 2741억원이 추가로 유입돼 8월 8일 기준으로 설정액이 1조1743억원이다. 우리하이플러스단기우량채권 펀드는 1조1612억원의 설정액을 기록하고 있다. 올해 들어 8020억원의 뭉칫돈이 유입됐다.
세 펀드 모두 우량 회사채와 국고채로 운용한다는 측면에서 비슷하나 평균 듀레이션에서 약간 차이가 난다. 듀레이션은 채권 투자자금의 평균 회수 기간을 말하는 것으로 채권에서 발생하는 현금흐름의 가중평균 만기라고 할 수 있다. 듀레이션은 채권 수익률을 좌우하는데 채권수익률은 채권금리 변동폭과 채권 듀레이션에 비례한다. 채권금리가 하락할 때 듀레이션이 짧은 펀드보다는 듀레이션이 긴 펀드가 수익률이 훨씬 더 많이 상승한다. 채권금리가 상승하는 경우라면 듀레이션이 긴 펀드가 수익률이 더 많이 하락한다. 지금처럼 금리 하락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시기에는 듀레이션이 짧은 경우보다는 긴 경우가 유리하다. 단기채 펀드보다 장기채 펀드가 유리한 이유도 평균 듀레이션이 길기 때문이다.
우리하이플러스 채권 펀드와 우리하이플러스단기펀드의 평균 듀레이션은 2.1년인 데 반해 우리단기채펀드는 1.4년으로 다소 짧다.
국내 단기채 펀드 중 가장 높은 시장점유율을 자랑하는 펀드는 유진챔피언단기채 펀드다. 1년 수익률이 2.2%, 3년 수익률이 6.3%로 기복 없이 은행 예금이자보다 높은 수익을 쌓아가는 펀드다. 듀레이션이 1년으로 짧아 금리 하락기에 수익률이 오르는 폭이 적을 수 있지만 금리 상승기에도 수익률이 떨어질 염려가 없는, 변동성이 적은 펀드다. 설정액은 3조3800억원으로 올해 들어 911억원이 추가로 들어왔다.
그동안은 묻혀있던 펀드였지만 올해 들어 집중적으로 자금이 몰린 채권형 펀드는 한국투자크레딧포커스 펀드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1000억원이 안 되는 펀드였는데 최근 6개월 새 9199억원이 몰렸다. 올해 거의 1조원이 몰려 1조733억원 규모의 펀드가 된 셈이다. 이 펀드 역시 2년 미만의 듀레이션으로 금리 변동과 상관없이 기복 없는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 1년 수익률은 3.31%, 3년 수익률은 8%다.
저평가된 국내 우량 크레딧 채권에 선별 투자해 금리변동 시에도 안정적인 성과를 추구한다. 신용등급이 높은 채권의 비중을 일정 수준 유지하며 펀드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부실징후 및 펀더멘털 저하가 예상될 경우 신속히 포트폴리오를 조정해 신용위험을 관리하는 펀드다. 박빛나라 한국투자신탁운용 픽스드인컴 운용팀장은 “최근 선진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완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채권시장에 우호적인 환경이 이어지고 있어 자금유입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듀레이션이 긴 펀드 중에서는 삼성ABF Korea인덱스 펀드가 돋보인다. 현재 설정액은 7500억원 정도로 아직 1조 펀드는 아니다. 그러나 연초 자금유입이 1848억원이어서 현재와 같은 속도라면 내년 초라면 1조원 펀드 반열에 들 것으로 기대할 만하다.
이 펀드는 국고채 외에도 통화안정채권 등 무위험 신용등급의 채권에 집중 투자한다. 수익률을 보면 다른 공룡 채권 펀드와 달리 매우 높다. 평균 듀레이션이 7.6년에 달하기 때문에 금리 하락 효과를 톡톡히 본 것이다. 최근 1개월 수익률은 3%이며 올해 수익률도 7.1%다. 최근 국채금리가 가파르게 인하하면서 듀레이션이 긴 펀드의 수익률이 올랐기 때문이다. 최근 1년 수익률은 11.4%로 매우 높지만 2016년 금리 상승기엔 큰 폭으로 수익률이 하락하기도 했다.
▶분산투자 효과로 해외 채권형에도 1조 펀드 나와
하나UBSPIMCO글로벌인컴 혼합자산투자펀드는 올해 들어 수익률과 자금을 모두 잡은 펀드다. 해외채권형 펀드 중에선 유일하게 1조 펀드에 등극했다. 2018년 1월에 설정돼 채 2년이 안된 펀드였고 애초에 판매사도 은행 2곳에 불과했는데 올해 해외채권 선호 분위기를 타고 연초부터 가파른 자금 유입 속도를 보였다. 현재 설정액은 1조2435억원가량이다. 수익률은 올 들어 4.93%를 기록했다.
이 펀드는 세계 최대 채권 운용사 핌코(PIMCO)가 운용하는 ‘GIS 인컴 펀드’에 투자하는 재간접 펀드다. 모펀드인 GIS 인컴 펀드는 70조원의 투자금을 끌어모았다. 100명이 넘는 펀드매니저와 리서치 인력이 매달려 있는 펀드로 운용 역량 면에서는 검증된 펀드다.
4800여 개 글로벌 채권에 분산투자하고 있으며 채권의 종류도 다양하다. 주택저당증권(27.4%)과 이머징채권(15.7%), 선진국 국채(15.1%), 상업용부동산담보증권(10.6%), 투자등급채권(9.5%), 자산유동화증권(9.0%) 등 채권 수익 원천을 다각화했다. 평균 채권 만기는 1.42년이어서 펀드 이름 그대로 채권 가격 상승에 따른 자본이득을 추구하기보다는 펀드에서 나오는 쿠폰 수익인 인컴을 중시한다.
하나UBS자산운용 관계자는 “가격 하락(자본 손실)이 예상되는 지역 또는 해당 채권에 대해 숏(매도·short) 전략을 수행하고 있어 금리 인상과 물가 상승(인플레이션) 국면에서도 성과를 추구한다”며 “고배당, 우선주 등 주식을 혼합해 투자하는 기존 인컴 펀드와 달리 이 펀드는 다양한 채권만으로 높은 수준의 인컴(이자수익)을 추구하므로 변동성이 낮고 꾸준한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간접펀드 일색인 해외 채권형 펀드 중에서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미래에셋글로벌다이나믹 펀드는 국내에서 펀드매니저가 직접 운용하는 펀드로는 유일하게 5000억원이 넘었다. 설정액 6200억원으로 해외 채권형 전체로도 2위 규모다. 연금 펀드까지 다 합한 설정액은 1조5000억원에 달한다.
평균 듀레이션 8년에다 쿠폰 수익률이 높은 아시아 쪽 채권 역시 다수 담고 있어서 수익률도 국내 채권형이나 해외 채권형 펀드를 앞서고 있다. 최근 1년 수익률은 7.81%이고 3년 수익률도 8.27%다. 해외 채권형 펀드지만 한국 채권 비중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특히 지난해 말에는 한국 채권 투자 비중이 33%까지 올라갔다. 작년 선진국·이머징 국채가 모두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할 때 원화 채권만 연 3.1%의 수익률을 보였는데 미래에셋글로벌다이나믹 펀드는 한국 원화 채권 비중을 늘리면서 수익률 방어에 성공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자체 리서치 역량으로 운용된다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 원화 채권, 선진국 국채, 글로벌 하이일드 채권, 이머징 로컬 채권, 이머징 회사채 등 다양한 자산에 분산 투자하기 때문에 변동성도 낮다.
시장 전망과 금융시장 환경 변화에 따라 적극적으로 지역·섹터 간 자산 배분을 실시하는 것도 미래에셋글로벌다이나믹 펀드의 운용 전략이다. 2017년 상반기에는 이머징 국가의 펀더멘털 개선에 이머징 현지 통화 채권 투자 비중을 확대했고 2018년 상반기엔 미국발 금융 긴축에 따라 이머징 채권 비중을 줄였다.
채권혼합형 펀드로는 KB퇴직연금배당40 펀드가 1조3000억원의 설정액을 기록해 퇴직연금전용펀드의 저력을 입증했다. 국내 주식 비중은 35%, 국내 채권 비중은 60% 정도로 채권 덕에 최근 1년 수익률이 1.8%로 선방하고 있다.
ETF는 지수형 펀드들이 1조 펀드 차지
일반 펀드와 달리 ETF에는 대부분이 주식 지수형 ETF가 순자산 상위를 모두 차지하고 있다. 펀드평가사 한국펀드평가에 따르면 국내 ETF 순자산 1위는 삼성KODEX200으로 순자산은 5조7633억원(8월 12일 기준)이다. 그 뒤를 TIGER200이 2조6565원의 순자산을 기록했다. 최근 증시 변동성이 커지면서 거래량이 급증하고 있는 KODEX레버리지 ETF로 순자산 3위로 규모는 2조4162억원이다.
순자산 4위는 채권 ETF가 차지했다. KODEX단기채권은 잔존만기 1개월 이상 1년 이하의 국고채, 통화안정증권 등 30 종목으로 구성된 듀레이션 0.5년 내외의 채권을 담아 자본손익, 경과이자 및 이자 재투자 손익을 감안한 총수익에 관한 지수를 추종한다. 순자산 규모는 1조3734억원이었다. KODEX코스닥150레버리지도 1조1470억원으로 순자산 5위를 차지했다.
그 외 KBSTAR200증권이나 KODEX종합채권(AA-이상)액티브증권ETF도 순자산이 1조원이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