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시장이 식을 줄 모르고 요동치고 있다. 대표적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이 1코인당 역대 최대인 8000달러의 목전까지 임박했다가 폭락을 거듭하는 등 진폭이 더욱 커지고 있다. 열기를 감당 못한 일부 거래소의 서버가 다운돼 거래가 중지되며 피해자가 속출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투자의 기회가 큰 만큼 동시에 리스크도 역대 투자 수단 중 최고라며 투자자들의 신중한 투자가 요구된다고 경고한다.
지난 11월 8일(현지시각) 글로벌 암호화폐 정보제공업체 코인데스크는 1비트코인이 사상 최고치인 7458.79달러(832만원 상당)에 거래됐다고 밝혔다. 1비트코인 가격은 장중 한때 7879.06달러(879만원 상당)까지 치솟았다.
비트코인은 올해 1월 처음으로 1000달러대를 돌파한 이래 이달 초 7000달러 고지까지 정복했다. 특히 최근으로 올수록 폭등세다. 첫 1000달러 돌파 후 2000달러대 고지에 오르기까지는 약 4개월이 걸렸지만, 6000달러대에서 7000달러대로 뛰어오르기까지는 불과 열흘밖에 걸리지 않았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6일 보고서를 통해 비트코인이 8000달러대에서 잠시 가격 조정 기간을 거친 뒤 다시 뛰어오를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특히 지난 9월 22일(3603.31달러) 이후 두 달도 안 돼 가격이 두 배 이상 올랐다. 첫 거래 당시 0.003달러였던 1비트코인의 가치는 7년 만에 280만 배 이상 오른 셈이다. 비단 해외뿐 아니다. 국내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도 11월 9일 새벽 비트코인 가격이 한때 866만원까지 뛰었다고 밝혔다.
비트코인의 이 같은 급상승은 불과 두 달 전인 지난 9월 급락 때와는 전혀 대조적인 모습이다. 지난 9월 중국 정부가 암호화폐 규제에 나서면서 비트코인 가격은 3000달러 선까지 떨어졌다.
중국으로부터 맞은 뺨을 달래준 건 미국이다. 비트코인의 급등엔 미국 시장에서 호재가 한몫했다. 세계 최대 파생상품 거래소인 시카고상품거래소(CME)가 올해 안에 비트코인 선물 상품 출시 계획이라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10월 31일(현지시각) 시카고상품거래소가 올해 4분기 비트코인 선물 거래를 시작할 계획이며 규제 당국의 승인이 임박했다고 보도했다. 테런스 더피 CME 최고경영자(CEO)는 이에 “진화하는 가상화폐 시장에 대한 고객의 관심 증가를 고려해 비트코인 선물 계약을 도입하기로 했다”고 공식화했다.
시카고상품거래소에 비트코인 선물이 등장하면 개인들도 비트코인 선물 거래가 가능해지는 등 신규 투자자가 대거 유입되고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 등 간접 상품이 출시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시카고상품거래소의 이번 결정은 비트코인이 제도권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보도했다. 그동안 주요 은행들은 비트코인이 돈세탁과 불법 거래에 이용되고 있는 점을 이유로 ‘합법 자산’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번 선물 상품 도입을 통해 가상화폐가 금이나 원유 등과 같은 주요 자산 파생 상품의 반열에 오를 수도 있다는 뜻이다. 비트코인 선물 도입은 개인을 넘어 본격적으로 막대한 기관 자금 유입도 기대할 수 있다.
이런 호재에 투자자들은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다른 암호화폐)을 팔고 비트코인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암호화폐 정보업체 코인힐스에 따르면, 비트코인만 나 홀로 독주를 하면서 비트코인이 전체 암호화폐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0%를 돌파했다.
문제가 발생한 건 지난 11월 16일로 예정됐던 대규모 업데이트 ‘세그윗2X 하드포크’가 사실상 취소된 후부터다. 세그윗2X는 블록 크기를 두 배로 키우는 업그레이드를 의미한다. 하드포크는 시스템 업그레이드로 기존 가상화폐를 분리하는 작업이다. 즉 비트코인 1개의 단위는 두 배로 키우고 일부를 쪼개 새로운 종류의 코인을 만드는 업데이트다. 최근 비트코인은 거래량이 증가하면서 결제 처리 속도가 늦어지는 문제의 해결책으로 나온 방안이다.
세그윗2X 하드포크를 기점으로 비트코인이 또 쪼개지는 게 기정사실이 되는 분위기였다. 일부 거래소들은 분리에 대비해 선물의 형태로 원래의 비트코인(BTC1)과 세그윗2X가 된, 곧 블록사이즈가 2배로 커진 비트코인(BTC2)을 거래했다. 한데 예상을 벗어나는 일이 벌어졌다. 시장이 새로운 비트코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BTC1의 가격이 처음에는 BTC2의 대략 3~4배에서 거래되다 5~6배로 더 벌어졌다.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인지 처음엔 열을 올리던 채굴 세력들이 발을 빼며 더욱 차이가 벌어졌다. 세그윗2X 공동 개발자들은 8일 메일로 “새로운 합의에 이를 때까지 세그윗2X 하드포크 계획을 보류한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다시 한 번의 반전이 펼쳐졌다. 비트코인 가격 상승에 힘을 싣던 투자자들이 라이벌이 사라지자 오히려 힘을 잃었다. 비트코인 가격이 지나치게 폭등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급속도로 시장에 퍼졌다. 급격히 비트코인을 판 자금이 비트코인캐시로 몰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8000달러를 넘보던 비트코인 가격은 6000달러 선마저 내줬다. 반면 비트코인의 5분의 1 수준 가격에 불과했던 비트코인캐시는 매수세에 뛰기 시작했다. 여기에 관성이 또 더해져 보고 있던 투기적인 매수세가 몰렸다.
이러한 예측 불가능한 광풍을 담아내기엔 아직 부족한 인프라는 투자자들을 더욱 불안하게 한다. 실제 지난 11월 12일 가상화폐 가격이 급등·급락하면서 일부 가상화폐 거래소 접속이 일시 중단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대표 가상화폐 비트코인(BTC) 가격이 급락하고 또 다른 가상화폐 비트코인캐시(BCH) 가격이 폭등하는 과정에서 거래량이 몰려 서버가 다운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날 오후 4시 빗썸을 비롯한 일부 거래소 접속이 막혔다. 빗썸 측은 사이트 내 게시판을 통해 ‘서비스 안정화를 위한 서버점검’ ‘빗썸 전체 서비스 일시 중단’이라고 공지했다.
인터넷진흥원은 사이버 테러 등의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밝히고, 가상화폐의 한 종류인 비트코인캐시 가격이 급등하면서 거래량이 몰려 서버가 다운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빗썸 측은 서버 중단 사고에 대해 “원인은 트래픽 과부하”라고 지난 11월 15일 밝혔다. 빗썸은 이날 기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지난 12일 하루 거래량이 6조500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며 “서버에 전송되는 데이터 양인 트래픽이 평균보다 5배나 많은 3Gbps 수준이었다”고 설명했다.
디도스 공격 등 외부 침입설에 대해서는 사실 무근이라고 답했다. 빗썸은 “디도스 공격에 대한 부분은 확인된 바 없다”면서 “혹시 모를 일말의 가능성에 대비해 IT팀에서 최종 검증 절차를 밟고 있다”고 답했다.
일각에서 제기된 조작설도 전면 부인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빗썸이 긴급 서버 점검이라는 명목으로 고의적으로 서버 가동을 중단한 다음 내부망을 통해 회사가 갖고 있는 물량을 몰래 거래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빗썸 측은 “모든 거래 기록은 서버에 저장돼 있으며 점검 시간대에 거래된 물량은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피해 규모나 향후 대응 방안은 아직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피해자들이 집단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나섰다. 특히 이번엔 서버 중단 시간 동안 비트코인캐시 가격이 40% 가까이 폭락해 피해가 더욱 컸다. 비트코인캐시 폭락 시점에 매도하지 못했다는 투자자들은 집단소송 카페를 만들기도 했다. 13일 오후 ‘빗썸 서버다운 집단소송 모집’ 네이버 카페엔 5000여 명이 가입해 피해를 호소하며 소송에 동참할 의향을 표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재 암호화폐 거래소의 법적 지위가 금융회사도 아니고 통신판매업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소송을 내더라도 피해금을 보상받기는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비트코인 투자 손실은 투자자 개인의 책임이라며 주의를 당부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정부는 가상화폐를 제도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고 투자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투자자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뚜렷한 대책 없는 상황
정부차원에서 관심을 가진다고 해도 현재 뚜렷한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정부의 권고로 한국블록체인산업진흥협회가 지난 10월 출범해 투자자 보호 정책을 담은 영업행위 준칙을 구성 중이다. 이 가이드라인에는 거래량 폭증에 따른 서버 다운 등 전산 문제를 개선하라는 내용도 담길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를 실천할지 여부는 개별 사업자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논란에 대해 상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이대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규제를 하지 않겠다는) 당국의 입장은 맞는 방향”이라며 “당국이 가상화폐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규제에 들어가면 오히려 더 나쁜 시그널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연구위원은 “가상화폐에 투자하는 사람은 자기 위험을 부담하면서 투자하는 것인데 그렇게 해서 손실을 본 사람에 대해 정부가 나서서 보호하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며 “가상화폐에 대한 투기적 위험성을 계속 경고해 왔는데 그럼에도 묻지 마 투자를 하는 것에 대해 당국이 공식적 입장을 취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신 가상화폐 거래소, 취급업소나 취급업자들에 대해서는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며 “이번에 빗썸 사태가 터진 게 오히려 도움이 된 것 같다. 가상화폐는 가격 변동성뿐 아니라 인프라 등에서 사고가 터질 수 있는데 이 위험성에 대해 투자자와 당국 모두에게 경각심을 주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법제연구원은 법제화를 통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의 규제 및 법제화 방향’을 주제로 ‘법제이슈브리프’를 발간하고 가상화폐의 특성을 모두 반영한 입법적 근거 마련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제기했다. 보고서 작성자인 김명아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향후 비트코인 등의 가상화폐에 대한 규제의 방향은 합법적인 부분에서는 시장건전성 및 핀테크 산업 육성을 위한 관리 차원에서 규제를 실시해야 한다”면서 “위법성이 강한 행위들에 대해서는 감독과 처벌 수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가상화폐 시장 자체를 믿을 수 없다는 주장도 여전히 제기된다. 아시아 최대 은행 중 한 곳인 싱가포르개발은행(DBS)이 가상화폐 비트코인을 ‘폰지 사기(Ponzi scheme)’에 비유했다고 CNBC가 15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폰지 사기란 명확한 이윤 창출 없이 기존 투자자들에게 새로운 투자자의 돈으로 배당을 지급하는 일종의 다단계 금융사기다.
DBS의 최고정보책임자(CIO)이자 기술운영책임자인 데이비드 글레드힐은 싱가포르 핀테크 전시회에서 “비트코인은 지나치게 비싼 반면 모든 수수료는 암호화 메커니즘 뒤에 감춰져 있다”며 “폰지 사기와 비슷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데이비드 글레드힐은 이어 “DBS가 가상화폐 게임에 선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경쟁 우위나 수익을 가져다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지금은 비트코인 거래 추이를 살펴보는 정도”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