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금리인하·중금리 대출 상품 봇물-대출금리 얼마나 낮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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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5.13 17:29:21
수정 : 2016.06.03 15:09:36
시중은행·저축은행·카드사들이 50조원에 달하는 중금리 대출 시장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판을 만든 곳은 금융당국이다. 금융위는 양극화된 신용대출 시장의 왜곡을 바로잡고 중금리 대출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에 나서며 올 하반기 인터넷 전문은행 출범을 통한 중금리 대출 공급 기반 확대, 1조원 규모의 보증보험과 연계한 은행 및 저축은행의 중금리 상품 출시 등의 정책을 내놨다. 이 같은 분위기에 힘입어 최근 은행과 저축은행은 물론 일부 카드사와 보험사까지 중금리 대출 상품을 내놓으며 경쟁을 벌이고 있다.
기존 신용대출 상품의 경우 은행권은 4% 내외 저축은행권은 25% 내외로 간극이 20% 포인트를 넘는다. 중신용자에 대한 ‘금리 단층’이 심각한 것이다. 실제로 10∼15% 중금리 대출금리를 적용받는 가계신용대출 비중은 전체의 5.1%에 불과했다. 그러다 보니 은행에서 대출을 받지 못하면 중간에 다른 상품이 없다 보니 저축은행의 고금리 대출 상품 외에 대안이 부족한 상황이다. 특별한 수입이 없는 전업주부 역시 대출을 받기 쉽지 않은 환경이다. 중금리 상품은 이 중간을 잇는 금리 사다리의 역할을 한다. 주 이용계층은 4등급에서 7등급 사이로 전체 금융권 대출 이용자의 40%에 달한다.
서민금융 활성화라는 명분으로 금융위원회는 신용등급 4∼7등급의 ‘중(中)신용자’를 위한 중금리 대출 시장 활성화에 힘을 쏟고 있다. 지난 4월 4일 금융위원회와 금융업계에 따르면 전체 금융소비자 1498만 명 중 46.6%를 차지하는 중신용자에 대한 신용대출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85조1000억원으로, 전체 258조원의 33% 수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중신용자에 대한 대출 규모가 고 신용자에 비해 훨씬 적은 데다 문제는 이러한 중신용자 대출의 상당 부분이 저신용자 대상의 20% 이상 고금리 시장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자신의 신용등급에 맞는 대출금리보다 더 높은 금리 부담을 안고 대출을 받고 있는 셈이다.
▶최고금리 인하, 중금리로 몰리는 시선
지난 3월 법정 최고금리를 기존 34.9%에서 27.9%로 대폭 인하하는 대부업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최고금리 인하로 대부업의 구조조정이 촉발되고 중금리 시장과의 경계가 모호해질 것으로 예상되며 수익성 제고를 위한 금융회사들의 경쟁도 심화될 전망이다. 최근 은행은 고금리 부과에 따른 평판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수익성 제고를 위해 단독 또는 제휴 등의 형태로 중금리 신용대출을 확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카드사도 가맹점 수수료 인하에 따른 수익성 하락을 만회하기 위해 카드론 및 중금리 신용대출 비중을 늘리려는 움직임을 활발하게 보여주고 있다. 신규 사업자인 인터넷전문은행도 올해 하반기 본 인가 후 영업을 개시하며, 중·저신용자 및 소상공인 대상 중금리 신용 대출을 적극 다룰 계획이므로 향후 경쟁 체제는 더욱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포문 연 우리은행 연체율은 고민
초기 중금리 대출 시장의 포문을 연 것은 우리은행이다. 지난해 5월 모바일은행인 ‘위비뱅크’를 통해 연 10% 이내의 금리로 직업이나 소득에 관계없이 최고 1000만원까지 대출해주는 ‘위비모바일대출’을 출시했다. 위비 대출의 파격적인 대출조건과 간편한 심사로 고객이 몰리면서 출시 한 달 만에 100억원의 실적을 돌파하는 등 반응이 좋았다. 뒤이어 KEB 하나은행은 이지세이브론, 신한은행은 써니모바일대출 등 시중은행들도 잇따라 연 10% 이하의 중금리 신용대출을 선보였다.
2금융권 가운데에는 저축은행들의 중금리 대출 시장에 경쟁적으로 뛰어들었다. SBI저축은행이 지난해 말 출범한 연 6~13%대의 사전확정 중금리 대출 ‘사이다’는 약 3개월 만에 누적 실적 400억원을 기록하는 등 업계에서 놀랄 만한 실적을 나타내고 있다. JT친애저축은행의 ‘원더풀 와우론’도 출시 40일 만에 100억원의 실적을 세우는 등 그동안 중금리 대출 시장에 대한 수요가 상당했음을 보여줬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카드사와 보험사도 중금리 대출 상품을 속속 출시하고 있다. KB국민카드는 지난달 29일 카드업계에서는 최초로 중금리 대출인 ‘생활든든론’을 내놓았다. 한화생명은 지난 2월 ‘한화 스마트 신용대출’로 중금리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연체율 고민 여전
과열로 인한 손실 우려도
중금리 대출 상품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아직까지 금융소비자의 금리 부담은 여전히 높다. 시중은행들은 연체율 등을 산정할 시스템을 갖추지 못해 깐깐한 기준을 적용해 소비자들이 중금리 대출을 활용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은행은 위비 대출 심사를 20대를 중심으로 점차 강화해왔다. 1년간의 신용카드 기록을 요구하고 최대한도도 기존 1000만원의 절반인 500만원으로 낮춘 것으로 알려졌다. 상품운용 결과 높아진 중금리 대출 실적만큼이나 연체율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위비 대출의 연체율은 2% 중반대고 6~7등급 차주의 경우 4%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연체율이 0.39%라는 점을 감안하면 6~10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시중은행이 빡빡한 대출심사와 소액 수준에 머무르는 대출한도 등으로 몸을 사리자 금융소비자들은 신용등급 하락 위험을 감수하고 좀 더 높은 금리의 2금융권 중금리 상품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다. 실제 은행권의 1~3등급 신용대출 비중은 2012년 말 69%에서 작년 말 79%로 확대되며 중신용자는 밀려나고 있는 상황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이 나름대로 기준을 세워 중금리 시장에서 우량고객 유치에 나서고 있지만 기존 대출에 비해 연체율이 높아 적극적으로 고객 유치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새로운 분석 툴을 내세울 것으로 보이는 인터넷 은행이나 노하우가 쌓인 저축은행의 진출이 가속화될 경우 주도권을 빼앗길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카드사 주 수익원 뺏길라
대출 인하 경쟁 상품 출시 잇따라
카드사들 역시 50조원대에 육박하는 중금리 대출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장기카드대출상품인 카드론의 이자율을 경쟁적으로 인하하는 한편 은행과 손잡고 중금리 대출상품을 본격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지난 4월 9일 KB 국민카드는 신용등급에 따라 연 7.5~14.91%대 금리를 책정하는 대출상품 ‘생활든든론’을 출시했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세분화된 신용평가를 통해 기존 장기카드대출(카드론) 대비 금리를 낮췄다. 대출 대상은 신용등급 중위 고객으로 내세우며 대출 가능 금액은 최고 2000만원, 대출 기간은 최장 24개월이다.
롯데카드도 연 10~15%의 금리를 적용한 ‘당신과 함께-파이팅론’을 선보였다. 분할상환 및 만기 일시상환 중 선택 가능하며, 대출 가능금액과 대출기간은 소비자의 신용등급에 따라 차등 적용한다.
우리카드는 ‘우리카드 신용대출’이란 상품을 선보였다. 최저 6.9%의 금리로 서류 제출 없이 신속한 대출이 가능하다.
이밖에 업계 1위 신한카드도 중금리 대출상품을 준비하고 있다. 신한카드는 SK텔레콤과 제휴를 통해 신용등급이 낮아도 통신료 연체가 없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대출상품을 선보인다는 방침이다. 삼성카드는 SC 은행과 손잡고 다음 달 중으로 중금리 대출상품 판매에 나설 계획이다.
현재 카드사들의 주 수익원은 중금리 대출이라 볼 수 있는 카드론에서 나오고 있다. 신한카드의 경우 카드론 취급액은 지난해 7조2347억원으로 2014년에 비해 8000억원 가까이 상승했다. 삼성카드는 2014년 5조751억원에서 지난해 5조4944억원, 현대카드는 같은 기간 5조 1299억원에서 5조3254억원으로 늘었다. 카드론 소비자 유치 경쟁이 가속화되며 금리 인하 경쟁도 불붙을 것으로 보인다. KB 국민카드는 오는 6월 18일부터 카드론 금리를 연 24.8%에서 24.3%로 0.5% 포인트 내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은행들의 경쟁으로 기존 고객의 이탈이 우려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중금리 대출 시장으로 타 금융권의 도전이 거세지면서 확보해 놓은 소비자들의 이탈을 막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금융당국이 인터넷전문은행 도입 방안을 발표하면서 올해 안으로 인터넷은행이 출범하게 된다. 특히 카카오 뱅크와 K 뱅크 등 인가를 받은 컨소시엄들은 주요 사업모델로 중금리 대출에 역점을 두겠다고 발표했다. 금융당국은 올해 하반기 인터넷전문은행이 본 인가를 받고 나면 앞으로 3년간 1조4000억원 규모의 중금리 대출을 공급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카드사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중신 용지를 위한 상품개발을 독려하면서 상대적으로 블루오션이던 중금리 시장이 순식간에 레드오션이 됐다”며 “카드론과 현금서비스를 통해 시장을 선점한 카드사들이 긴장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출 떼이면 보증보험이 100% 변제
도덕적 해이 우려도
금융당국의 적극적인 중금리 대출 활성화 정책 역시 시장 과열에 한몫하고 있다. 올해 하반기부터 1조원 규모로 공급되는 보증보험 연계 중금리 대출을 SGI 서울보증이 100% 보증하게 됐다. 쉽게 말해 하반기에 은행과 저축은행 등이 내놓을 보증연계 중금리 대출을 대출자가 갚지 못할 경우 서울보증이 금융회사에 대출금 전액을 대신 갚아준다는 것이다. 정부는 올 하반기에 신용등급 4~7등급의 중신용자를 대상으로 연 10% 내외의 중금리 대출을 1조원 규모로 공급한다.
서울보증은 이 중금리 대출을 금융회사들이 적극 판매하도록 대출금 전액을 보증하기로 했다. 부분보증으로 제한할 경우 금융회사들이 중금리 대출을 꺼릴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연체율이 늘어날 경우 서울보증이 손실을 볼 수 있다.
금융사들의 경쟁으로 보증만 믿고 무분별하게 대출해주는 모럴 해저드(moral hazard)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상존한다. 서울보증은 대출금을 대신 갚기 위한 보증 보험금 지급이 보증 보험료 수입의 150%를 초과하면 금융회사가 서울보증에 추가 보험료를 납부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서울보증은 지난달 중신용자 신용평가 모형 공동 개발 업체로 나이스평가정보를 선정하고 신용평가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68호 (2016년 0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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