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서울숲 한화갤러리아 포레 전용면적 271.45㎡의 펜트하우스는 51억6600만원에 분양됐다. 50억원이 넘는 아파트가 팔린 것도 놀랍지만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이 펜트하우스는 2012년 4월 54억9913만원에 실거래됐다. 입주한 지 1년이 채 안 돼 3억원이 넘는 웃돈(프리미엄)이 형성됐던 것이다.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최고가 고급 아파트 단지에서 3채 뿐인 복층 펜트하우스는 매물 자체가 희소해서 호가만 70억원을 부른다”고 전했다. 이 아파트 펜트하우스 한 채는 모 재벌그룹 회장의 소유로 알려졌다.
부동산114 시세조사에 따르면 대림산업이 분양한 서초구 반포동의 아크로리버 파크 전용면적 234㎡ 펜트하우스는 일반분양가가 35억원 정도였지만 분양권 시세만 평균 54억~55억원에 달한다. 분양한 지 1년 반 만에 20억원에 달하는 웃돈이 붙었다. 이처럼 아파트 내에서도 격이 다른 공간, 펜트하우스에 대한 인기가 뜨겁다. 다양한 장점에 희소성까지 더해지니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상류층에게 인기가 높다. 여유 자본이 있다면 입지가 검증된 펜트하우스에 주목할 만하다.
▶도심 마천루 최상층 고급아파트 부유층 몰려
일반적으로 펜트하우스(Penthouse)는 아파트 최상층에 들어가는 고급스러운 주거공간을 뜻한다.
메리엄웹스터 영영사전에 따르면 14세기에 처음 등장한 단어다. ‘붙어 있다’는 의미를 가진 라틴어 appendere에서 유래해 ‘부속품’을 뜻하는 프랑스 고어 apentis로 발전했고 경사(slope)를 의미하는 pente와 혼용되면서 중세 영어에서 pentis로 축약됐다. 즉 맨 꼭대기 층에 부속 건물로 붙어 있는 집을 의미하는 셈이다.
오늘날과 같은 펜트하우스 아파트가 대중들에게 알려진 것은 미국 경제호황기이던 1920년대에 뉴욕 시에 건설붐이 불면서부터다. 도심 마천루에 부유층이 몰려들면서 최상층에 고급 아파트가 등장한 것.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은 미국의 패션잡지 <보그> 출판인으로 유명한 콘데 몬트로스 나스트(Conde Montrose Nast) 소유의 파크애비뉴 인근 복층 펜트하우스가 1925년 완공되면서부터라고 한다.
앞서 1923년 센트럴파크 조망이 탁월한 대표적 뉴욕 호텔 플라자호텔이 옥상에 펜트하우스를 구축한다는 뉴스가 보도된 후 관련 건설이 확산됐고 뉴욕에서 펜트하우스가 본격적으로 최상류층의 ‘필수 아이템’으로 인식되기 시작됐다고 전해진다.
펜트하우스는 맨 꼭대기 층에 들어서기 때문에 주변 전망이 한눈에 들어오고, 럭셔리한 고급 저택의 이미지도 강하다. 또 한 층에 한 가구만 있거나 동선을 분리해두는 경우도 많아 사생활을 침해받을 여지도 적다. 이 때문에 고독한 상류층을 드러내는 주요 장소로 흔하게 활용된다.
할리우드 대작 영화 <다크 나잇>의 주인공 브루스 웨인(크리스찬 베일)은 집안의 유산인 고성이 불타자 고담시티(Gotham City)의 펜트하우스로 이주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실제 영화를 찍었던 곳은 시카고 시 시카고 강을 내려다보는 환상적인 전망을 갖춘 윈덤그랜드 빌딩 39층으로 알려졌다. 본래는 호텔이던 건물이다.
한국 영화 <올드보이>에서 주인공 오대수(최민식)를 상대로 15년간 복수의 칼을 가는 이우진(유지태)도 펜트하우스에서 박쥐를 연상시키는 요가 자세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초현대적이고 단순한 집안 인테리어 바깥에 펼쳐진 마천루 모습은 미국 할리우드 영화에서 흔한 펜트하우스를 연상시킨다. 냉혈한 상류층 이미지를 극대화시키는 효과를 자아낸다. 영화 속 공간은 실재하지 않고 세트장에서 플라자호텔 전망을 배경으로 사용한 것이다.
아난티 펜트하우스 야외테라스, 힐스테이트 광교 펜트하우스 거실
▶최상층 전체 또는 절반을 주거기능 맞춰 설계
최고층 펜트하우스는 옥상을 별도로 쓸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비밀스럽고 사적인 장소로 만들 수 있다. 미국의 부자들은 수영장이 딸린 펜트하우스에서 살면서 사교 파티를 여는 장소로 활용한다.
한국에서도 펜트하우스가 본격 주목받기 시작한 것도 소득 수준이 올라가 고층 아파트와 주상복합이 생겨나면서 조망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시점과 궤를 함께한다. 최덕배 한미글로벌 부장은 “40년 전 아파트가 초기에 공급될 때는 강도나 구조가 약하고 엘리베이터 속도가 받쳐주지 못해서 기껏해야 5~10층으로 지었고, 옥상에 물탱크를 두고 고층일수록 수압이 약해 고생했다”면서 “과거 세대가 저층을 선호한 이유가 분명했지만 기술적으로 난관을 개선하다 보니 조망권이 뛰어난 고층 펜트하우스가 선진국처럼 인기를 모으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펜트하우스와 일반 아파트의 가장 큰 차이는 평면이다. 최상층부 전체 혹은 절반을 주거기능에 초점을 맞춰 설계하기 때문에 통합적인 평면설계를 적용하는 일반 아파트와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최근에는 복층형으로 다락방이나 테라스를 설치해 차별화하는 등 다양한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예를 들어 84㎡ 아파트 두 채를 짓는 공간에 109㎡ 아파트에 지붕을 59㎡ 공간으로 쓰는 식이다.
올해 4월 분양했던 꿈의숲 코오롱하늘채의 펜트하우스는 마당을 테마로 한 중정을 두고 전용 테라스를 배치하는 등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강남 아파트값 수준 실속형 펜트하우스 등장
최근에는 실속형 펜트하우스가 새로운 추세가 되고 있다. 과거 펜트하우스는 전용면적 200~300㎡의 넓은 면적에 초호화 인테리어로 평균 30억~40억원을 넘기는 높은 분양가로 부유층 전유물처럼 여겨졌으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택시장이 내리막길을 걸으며 대형 아파트 가치가 떨어졌고 건설사들은 면적을 줄이고 분양가격을 합리적으로 책정한 보급형 펜트하우스를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가격 거품을 빼고 규모를 줄이면서 펜트하우스로 입성할 수 있는 문턱이 낮아지면서 실수요층이 흡수하기 시작했다. 작년 10월 분양한 위례신도시 ‘위례자이’의 전용면적 134㎡형 펜트하우스는 11억원대, 11월에 분양한 미사강변도시 미사강변센트럴자이 펜트하우스는 전용 132㎡에 9억원대였다. 지역 입지에 비해 비쌀 수도 있지만 강남 아파트 가격으로 나만의 특별한 공간을 소유하려는 심리를 자극할 만하다.
우남건설이 2014년 경기 고양 삼송신도시에서 분양한 고양삼송 우남퍼스트빌 펜트하우스는 전용면적 113㎡로 5억원대, 유승종합건설이 지난해 인천 구월보금자리지구에서 분양한 한내들 퍼스티지의 펜트하우스는 전용면적 124㎡에 5억9700만원이라는 가격으로 화제를 모았다.
롯데건설이 경기 용인시 중동에서 분양중인 ‘신동백 롯데캐슬 에코’에는 전체 2770가구 중 전용면적 151~199㎡로 52가구가 펜트하우스로 설계됐다. 특히 151㎡형 펜트하우스는 7베이가 적용돼 채광과 통풍에 탁월하며, 2세대가 함께 거주할 수 있는 구조다. 또 중앙과 측면에 있는 테라스로 넓은 개방감까지 제공한다.
펜트하우스 보급의 또 다른 요인으로 건설사들이 조망권이 확보된 택지를 선별해 펜트하우스를 분양했다는 점도 꼽힌다. 한강변이나 호수공원, 골프장 주변 등 조망권이 좋은 아파트의 펜트하우스는 희소성이 커서 수요가 꾸준한 편으로 주택시장 침체에도 상대적으로 타격이 덜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전히 상대적인 가격은 높은 편이다. 내부 인테리어, 구조 자체도 일반 아파트와 다르다 보니 건축비가 더 들어가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분양했던 경기도 고양시의 킨텍스 꿈에그린의 경우 일반 아파트와 펜트하우스 건축비 차이는 꽤 크다. 이 아파트의 펜트하우스인 전용면적 149~152㎡ 12가구의 ㎡당 건축비는 395만~449만원에 달한다. 전용면적 93㎡의 건축비가 263만~340만원 정도인 것과 비교하면 100만원 이상 높은 셈이다. 대지비용은 ㎡당 108만원 내외로 거의 비슷하다. 가격이 비싸도 인기는 좋다. 애초에 각 동에 1~2채 정도씩만 들어가다 보니 대단지라도 분양물량이 적게 나올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아예 설계에 포함시키지 않는 곳들도 있고 조합 사업의 경우 조합원들이 선점해 버리는 경우가 많아 일반 주택 수요자들 입장에서는 ‘그림의 떡’이다. 그만큼 희소가치는 높아진다. 예컨대 9월 초 분양했던 서울의 e편한세상 옥수 파크힐스의 경우 전체 중에서 펜트하우스 4가구가 포함돼 있었지만 조합원들이 모두 가져가 일반분양으로는 나오지도 않았다. 부동산114 자료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서울에서 분양한 29개 단지, 7511가구의 일반분양 물량 중 펜트하우스는 단 1가구뿐이었다. 이 때문에 당첨을 받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며 웃돈도 쉽게 붙는다. 지난 8월 기흥역세권 지구에서 분양한 기흥역 더샵의 펜트하우스 전용면적 172㎡ 3가구에는 1순위에서 8명이 청약을 신청해 2.67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 아파트의 1순위 평균 경쟁률인 1.79 대 1을 웃돌았다. 같은 달 분양했던 갈매역 아이파크의 펜트하우스 110㎡ 4가구는 일반분양의 평균 경쟁률인 2.13 대 1의 10배가 넘는 25.25 대 1의 경쟁률을 올렸다.
박합수 KB국민은행 명동PB센터 팀장은 “펜트하우스는 내부 평면설계가 좋고 정원이나 사랑방이 조성돼 인기가 높다”며 “하늘 위에 지어지는 단독주택인 셈이라 부자들에게 특히 선호된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웃돈을 노리고 일반분양 펜트하우스에 청약하는 투기성 일반인들도 많다고 본다. 웃돈을 노린다면 펜트하우스가 소비될 입지인지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중산층 실수요자는 펜트하우스가 너무 비싸다면 희소성은 여전하지만 대신 좀 더 저렴한 테라스하우스 청약에 도전해 보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