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기업 정년을 채우고 퇴사한 A씨는 퇴직금으로 잠실에 있는 직장 부근 커피숍을 인수하기로 결심했다. 임차인은 임대기간이 2년 남아 있지만 임대인에게 이야기해 5년 동안 운영을 할 수 있게 해주겠다며 대신 시설비와 입지가 좋으니 권리금조로 5000만원을 내라고 했다. A씨는 흔쾌히 승낙했다. 임대인과는 상견례를 하고 관례에 따라 남은 2년의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했다. 그런데 임대인은 2년의 임대 기간이 지나자 점포를 비워달라고 요구했다. A씨가 5년을 보장해 준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부당함을 따지자 임대인은 자신은 그런 말을 한 사실이 없다고 잡아뗀다.
# 이혼위자료로 서울 종로구에 있는 한식당을 인수한 B씨는 2년 전 가게를 열면서 이전 세입자에게 권리금 1억원을 지불했다. 장사가 잘되자 임대인은 1년 만에 대폭 인상된 보증금과 임대료를 요구해 왔다. 부당한 처사라고 판단했지만 쏟아부은 권리금과 늘어난 단골손님 생각에 임대인의 요구를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계약 만료 7개월 전, B씨는 계약을 연장하려고 건물주를 찾아갔지만 그는 건물이 노후화돼 리모델링이 필요하다며 가게를 비워달라고 통보했다.
정부가 자영업 생계 대책의 일환으로 상가권리금 법제화카드를 꺼내 들었다. 취지는 장사가 잘되는 상가 건물주가 임차인을 쫓아내고 자신이 직접 운영을 하거나 임대료를 대폭 올려 새로운 임차인을 받아들이는 악덕 건물주의 횡포를 막겠다는 것이다. 특히 권리금 분쟁이 극으로 치달아 사회적 비극으로 터진 용산참사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도 볼 수 있다.
당시 용산지역의 상가 임차인들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권리금에 대해 ‘실질적’ 보상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상가권리금은 ‘법’에 존재하지 않는 개념인 탓에 무리한 진압이 시도됐고 임차인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처럼 권리금을 주고 상가를 빌린 임차인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권리금을 회수하지 못한 상태에서 내쫓기는 신세가 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정부는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전체 상가권리금 규모가 33조원으로 추정된다고 판단하고, 회수 방해 등에 따른 피해액은 1조3000억원가량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전까지 권리금은 법에 의해 보호되지 않았던 모호하고 부실했던 권리였다. 법원에서도 권리금의 반환을 구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사례가 대다수였다.
다만 “장기간에 걸친 임대차를 예상하고 권리금을 지급했는데, 건물주의 명도요구에 의해 계약관계가 종료된 경우엔 목적물을 사용할 수 없는 기간에 해당하는 권리금은 반환해야 한다”고 인정한 예외적인 사례가 있다. 몇몇 사실관계에서 임대인의 횡포가 정황상 명확히 드러난 사례 외에는 임대기간이 만료돼 임대인이 나가라고 하면 전 임차인과 권리금에 대해 어떤 계약을 했든지 간에 회수할 방법이 묘연한 것이 현실이었다.
새롭게 4억원 이상 상가도 보장대상 포함
이번 당정이 합의한 상가 임대차제도 개선안의 주요골자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임차인의 대항력 인정범위 확대
둘째, 임대인이 권리금 회수를 방해하면 손해배상 책임부담
셋째,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 임차인과 계약 체결 의무 부과
넷째, 권리금 정의 명확히
다섯째, 표준계약서 보급을 통한 분쟁 예방
여섯째, 분쟁조정위원회 설치
항목을 하나씩 보면 먼저 대항력 인정범위 확대 항목에서는 서울 기준 환산보증금 4억원 이하 상가에서만 계약갱신 요구권 5년을 부여하던 것을 전체 상가로 확대했다. 영세상가 외에 대형 상가의 경우에도 잦은 분쟁으로 명도소송이 이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는 점을 보완하기 위한 항목이다.
두 번째로 기존 임차인이 새로운 임차인으로부터 권리금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임대인이 합당한 이유 없이 계약 거절 등으로 박탈하는 것을 막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를 방해할 경우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같은 상권에도 들쑥날쑥한 권리금을 조율하기 위해 국토교통부는 손해배상이 가능하도록 권리금 산정을 위한 기준을 고시할 방침이다. 그러나 정부발표에도 불구하고 권리금의 범위에 대한 논란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거래되는 권리금은 대부분 바닥 권리금이다. 또한 시설권리가격과 영업권리가격은 객관적인 파악이 가능하지만 바닥 권리금 가격은 점포구입자 입장에서는 객관적 가격을 책정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중론이다.
다음으로 임대인은 ‘정당한 사유’가 없다면 기존 세입자가 주선한 새 임차인과 계약하도록 했다. 이 항목은 다소간의 찬반논란이 있다.
건물주가 기존 세입자에게 입주를 원하는 특정 업종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도 임대인의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한 것이 아닌가 하는 부분이다. ‘정당한 사유’에 대한 좀 더 명확한 기준이 세워지지 않는다면 분재의 소지가 될 가능성이 다분해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노철래 새누리당 의원 역시 지난 10월 16일 국정감사 자료를 통해 “상가건물 임대차 보호법은 임대인이 계약 당사자를 누구로 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자유를 제한함과 동시에 임대인의 소유권을 지나치게 막을 수 있다”고 지적하며 입법 과정에서 보완을 촉구한 바 있다.
임대료 상승·재건축 리모델링 관련 사항 보완해야
소상공인 보호라는 취지에 대해서는 여야는 물론 다수의 전문가들 역시 공감하고 있다. 표준계약서 도입이 증세를 위한 ‘정부의 꼼수’가 아닌가라는 의구심은 번듯한 명목에 묻히는 분위기다.
하지만 기획재정부 측은 이번 개선안이 증세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선을 그면서도 “권리금은 소득세법에 나와 있는 기타소득의 하나”라고 표현하며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표준계약서는 의무사항이 아니라 권고사항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법에 기대야 하는 임차인 입장에서 표준계약서를 쓸 수밖에 없을 거라는 관측이다. 또한 정부는 권리금이 적힌 계약서를 공인중개사 거래정보망에 등록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밝혀지며 세원 노출에 대한 우려는 높아지고 있다. 세원 노출을 꺼리는 임차인들 사이에 계약서 사용을 피하거나 다운계약서와 같은 불법 거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또한 개선안 자체에 몇몇 약점도 지적되고 있다. 먼저 계약기간 5년을 보장하더라도 현행 제도처럼 건물주가 마음대로 임대료를 올릴 수 있도록 내버려둔 점은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현재 환산보증금이 4억원 미만일 경우 연간 임대료를 9%까지 올릴 수 있는 조항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건물 주인이 고의적으로 임대료를 올리면 임차인은 권리금에 발이 묶인 임차인은 을의 입장이 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권리금 보호 제도 시행 이후 건물주들이 세입자를 마음대로 내보내지 못할 경우 임대료를 대폭 올리는 방법으로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더 대표는 “이번 조치로 인해 상권이 발달해 권리금이 높은 수준으로 형성된 상권에서는 임대인들이 임대료를 의식적으로 인상하려는 움직임이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이러한 걱정에 대해 “2002년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될 때에도 임대료가 상승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동법 시행 전후의 임대료 변화는 거의 없었다”며 “임대료와 보증금은 대체로 상권의 시장 수급 및 경기변동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상가권리금 보호대책으로 인해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마지막으로 이번 개선안이 발표된 이후 가장 큰 논란거리는 건물이 안전상 이유로 재건축을 하거나 건물을 철거할 때는 권리금 보상 장치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재개발, 재건축 시 권리금 피해를 구제하려면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이나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을 개정한 이후에나 가능한 상태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재건축, 재개발 구역 내 상가 세입자는 4개월가량의 휴업손해를 전보받을 수 있을 뿐이다.
이 때문에 이번 개정안은 반쪽짜리로 평가 절하되기도 한다. 권구백 전국상가세입자협회 회장은 이에 대해 “실제 건물주가 상가 재건축을 핑계로 세입자를 내쫓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건물주가 안전상의 이유를 대고 재산 증식을 위해 재건축을 시행하면 1억원이 넘는 권리금을 내고 빈손으로 쫓겨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지적했다.
민병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역시 “용산참사의 배경이 되었던 재개발이나 리모델링의 경우 상가권리금이 전혀 보호되지 않는다”며 “일반적인 경우보다는 보호 수위가 낮아지더라도 재건축이나 재개발 시에도 최소한의 권리금 보호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