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국민은행이 지난 3월 4일부터 골드바를 팔기 시작했다. 단순한 금덩어리가 아니라 한국조폐공사가 품질을 보증하는 순도 99.99%짜리 골드바라고 한다. 이제까지는 은행 중엔 신한은행만이, 증권사 중엔 삼성증권과 이트레이드증권 등이 골드바를 팔았는데 이번에 국민은행이 가세한 것이다.
그 바람을 탔기 때문인지 최근 은행이나 증권사 PB센터에는 지금 금을 사는 게 좋은지 묻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한다. 그중엔 현금 들고 있다가 세금 두드려 맞느니 차라리 금에 묻어두겠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특히 아들이나 손자에게 상속할 때 세금 덜 내겠다는 사람들도 금에 관심을 갖는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국내에서 골드바 투자 바람이 부는 시점에 국제 금값은 사정없이 흘러내리고 있다. 글로벌 금값은 지난해 10월을 단기정점으로 해서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초 온스 당 1974.1달러까지 올랐던 국제 금값은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해 최근 1580달러 전후에서 움직이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투자자들은 지금 금을 사는 게 맞는지 아니면 장롱 속의 금반지라도 꺼내 팔아야 좋은지 궁금해 한다. 금이 내릴 만큼 내렸다면 사는 게 옳고 반대로 더 내린다면 있는 거라도 들고 나와야 할 판이기 때문이다.
투자은행들 금 전망 어두워
우선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전망은 부정적이다. 노무라증권은 올해 국제 금값 전망치를 종전 온스 당 1981달러에서 최근 1602달러로 하향조정했다. 또 내년도 전망 역시 종전 1800달러에서 1750달러로 깎아 내렸다. 최근 국제 금값이 이 수준보다 낮은 선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투자해도 좋은 게 아니냐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으나 차익을 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 4년간 2400억달러어치나 투자했던 금 투자자들이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들이 전망이 나쁘다고 보고 물량을 쏟아내면 가격은 더욱 하락할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골드만삭스나 크레딧스위스 등도 올해와 내년도 금값 전망을 하향조정했다.
지금 시점에서 우려되는 것은 수급이 급격히 악화될 가능성이다.
그동안 국제 금값이 강세를 보인 데는 세계경제 불안정을 고려한 한국 등 일부 국가의 금 매집도 한몫 했으나 금 투자로 한몫 챙기자는 투자자들의 가세가 더 크게 작용했다. 특히 금 관련 ETF에 자금이 몰려들면서 금 수요를 크게 늘렸다.
그런데 금값이 약세를 보이면서 ‘스파이더 골드 트러스트’나 ‘아이 쉐어 골드 트러스트’ 등 금 관련 ETF에서 자금이 빠져나갈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졌다. 펀드에서 자금이 빠지면 ETF는 금을 처분해야 하고 이것이 금값 하락을 가속할 수 있다. 실제로 640억달러의 자산을 운용 중인 세계 최대의 금 투자기관 스파이더 골드 트러스트는 최근 금을 매각해 2011년 10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보유량이 줄었다. 최근 금 관련 공매도가 급격히 늘어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물론 단기적으로 달러가 약세를 보이면서 금값이 잠깐씩 반등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이후 가격 하락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본 국제 금값은 여전히 높은 수준에 머물고 있어 추가 하락 가능성은 여전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최근 글로벌 마켓에선 귀금속 가운데서도 금보다 백금의 수익률이 높게 나오자 금을 버리고 백금에 투자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금보다 주식 등 수요 많아
금값 하락은 글로벌 투자자들의 안전자산 선호가 약화되는 것과도 맥을 같이 한다.
최근 글로벌 투자자들은 채권이나 금, 달러 등 안전성이 높다고 인식되던 자산을 떠나 주식 등 고수익을 추구할 수 있는 자산으로 옮겨가고 있는 추세다. 이와 관련해 삼성증권은 “최근 금의 약세는 글로벌 증시의 강세와 동행해서 나타났는데, 이는 위험자산 선호 현상을 일관되게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합리적인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금값 하락과 달러화 강세에 베팅하는 전략은 결국 미국의 경기에 베팅하는 전략과 궤를 같이 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점에서 최근 국내의 금 투자는 매매차익을 누리기보다는 세금을 줄인다거나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다는 다른 목적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금융기관에서 금을 살 경우 부가가치세(10%)와 수수료(4.5~7%) 등을 낼 뿐 아니라 되팔 때도 수수료를 내야 하므로 투자자산으로서 골드바의 매력은 그다지 높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투자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한국은행이 그 답을 주는 게 아닐까.
한은은 지난 2월 20톤가량의 금을 사들여 현재 104.4톤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한은은 국제 금값이 쌀 때는 우두커니 지켜보고만 있다가 금값이 최고조에 달한 2011년 7월부터 금 매입에 들어갔다. 시장 감각이 가장 떨어지는 한은이 금을 산다는 점에서도 투자자들은 반대로 가는 것을 고려하는 게 맞지 않을까.
Key point
최근 국제 금값이 이 수준보다 낮은 선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투자해도 좋은 게 아니냐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으나 차익을 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