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할 만한 돈은 좀 있다. 부동산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아파트는 불안하다. 더 이상 오를 것 같지가 않다.
오피스텔·도시형 생활주택 등 소형주택은 공급 과잉이라고 생각한다. 몇 년 후 완공 시점에 임차인을 관리할 걸 생각하면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돈을 묻어놓을 곳이 없을까 하고 부동산 시장을 기웃거리는 사람 중에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무슨 상품을 추천해야 할까. 정답은 ‘빌딩’이 될 것 같다.
빌딩투자라 하면 법인이나 큰손 위주로 돌아가 ‘내가 함부로 넘볼 수 없는 거대시장’이란 선입견을 갖기 쉽다. 하지만 집을 나가 좌우로 눈 한 바퀴만 돌려보자. 세상에 빌딩이 얼마나 많은가. 여의도에 있는 63빌딩만 빌딩인 것은 아니다. 집 근처 3~4층 아담한 상가건물도 어엿한 빌딩이다. 그리고 이 빌딩은 모두 주인이 있다. 부동산 바닥에서 빌딩주인은 웬만큼 부를 일군 ‘자산가’ 보증수표로 불린다. 특히 강남에 있는 빌딩은 이런 효과를 극대화한다. 이와 같은 각인효과를 노려 유독 강남빌딩에만 집착하는 자산가들도 있을 정도다. 강남이 주는 상징성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내 건물이 있는 ‘빌딩 오너’가 되려면 통상 가용 자금이 10억원대는 있어야 안정적이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모태 자산가’들만 빌딩을 소유하는 것은 아니다. 의외로 바닥부터 올라와 빌딩 오너 자리에 오른 능력자가 적지 않다.
2010년 공기업에서 명예 퇴직한 이 모씨(55)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는 넉넉지 못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근면함을 온몸으로 익힌 천상 ‘보통사람’이다. ‘내가 가문을 일으켜야 한다’는 생각에 재테크에 관심을 기울여 결국 빌딩 오너 자리까지에 올랐다.
그는 경기변화에 따른 주도주를 골라 돈을 묻는 방식으로 주식투자에서 적지 않은 돈맛을 봤다. 2008년에는 신흥 부촌으로 떠오른 반포 재건축 단지에 입성하기까지 했다. 여기까지는 재테크로 부를 일군 전형적인 가장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는 한 단계를 더 생각했다. 당장 내일 모레로 퇴직날짜를 받아놨는데 앞으로 뭘 먹고 살아야 하나 막막했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게 ‘빌딩투자’였다.
몇 년 살아보지도 못한 반포 아파트를 과감히 매도하는 결단을 내렸다. 아파트는 더 이상 오를 것 같지 않다는 확신이 섰다. 강남 최고급 아파트에 한번 살아봤으니 어디 가서 집 얘기로 꿀릴 것은 없겠다는 판단도 내렸다.
아파트를 13억원에 매도한 그는 송파구 삼전동 소재 대지 248㎡ 규모의 지하 1층~지상 4층짜리 상가주택을 샀다. 지하철 2호선 신천역 부근에 자리 잡아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었다. 꼭대기 층에 가족들과 함께 살며 아래층에 있는 상가를 임대 놓는 구조로 근처엔 지하철 9호선이 뚫릴 예정인 데다 롯데월드타워(제2롯데월드)가 부지 근처여서 지가가 오를 만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미국에 있는 자녀 곁으로 이민을 떠나는 노부부가 내놓은 매물을 눈여겨봤다. 27억원을 부르는 노부부를 설득해 가격을 1억원 깎았다. 아파트 매각대금과 퇴직금을 포함해 모아뒀던 현금을 합치니 통장에 17억원이 찍혔다. 상가 보증금 2억원을 끼고 은행에서 7억원을 대출받아 잔금을 냈다.
매월 650만원가량 월세가 꼬박꼬박 들어오는 점은 좋았지만 은행이자를 빼고 나니 수중에 남는 돈은 월 350만원 수준이었다. 넉넉한 노후를 즐기기에는 2% 아쉬운 금액이었다.
여기서 이씨는 평생 갈고 닦은 재테크 마인드를 한 번 더 발휘했다. 일단 인근 상가빌딩 임대시세를 빠짐없이 조사하기 시작했다. 조사를 끝낸 이씨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자신의 빌딩 임대료가 주변시세의 70% 수준에 불과했던 것이다. 전 소유자였던 노부부가 “좋은 게 좋을 것”이라며 세입자에게 관용을 베풀었기 때문이었다. 재테크 마인드로 무장한 이씨가 임대료 올려 받기에 나선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자면 월세가 잘 나올 만한 업종으로 상권을 재배치하는 것이 시급했다.
일단 1층에 자리 잡은 분식점 대신 월세가 비싼 커피전문점을 유치하기로 했다. 1층 임차인에게 “주변시세 수준으로 월세를 인상하겠다”고 통보하자 곧바로 “어차피 장사도 잘 안 되니 나가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씨는 바로 유명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협상 절차에 돌입했다. 5년 장기 임대조건을 제시하며 담당자 마음을 끌었다. 직전 임차인인 분식점 사장과 직접 권리금 문제까지 논의하며 문제해결에 적극적이었다. 결국 유명 브랜드 커피전문점이 이씨의 건물 1층에 들어서기로 계약이 체결됐다. 사무실로 쓰던 2층과 3층에는 병원을 유치하기로 했다. 인근에 자리 잡은 신축 아파트 단지가 입주하면 새 수요가 창출될 것으로 내다봤기 때문이다.
2층과 3층 임차인에게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임대료를 50만원씩 인상하겠다고 제시했다. 임차인이 계약 갱신 의사가 없다고 밝히자 이사비용 명목으로 500만원씩을 지급했다. 인간적인 정을 주고받으며 계약만료 이후 혹시 생길지 모르는 불상사를 예방하고자 의도한 것이다.
그리고는 직접 임차인 구하기 대작전에 돌입했다. 빌딩 구조와 임대료 등 세부사항이 적힌 자료를 준비해 인근에 자리 잡은 부동산 중개업소 30여 곳을 찾아다녔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빌딩 장점을 소개하며 중개업소 대표들을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결국 임차인 모집에 나선지 두 달 만에 한의원과 치과가 각각 이씨 건물에 입점했다.
월 650만원 받던 상가빌딩 임대료가 월 830만원으로 뛰었다. 이자를 빼고 손에 쥐는 금액에 월 500만원이 넘는다. 올라간 것은 월세 금액만이 아니다. 1층에 세련된 분위기 커피전문점이 들어선 데다 2·3층에 병원이 입점하자 빌딩이 허름했던 과거 이미지를 일신한 것이다. 단숨에 클리닉빌딩으로 리모델링된 것이다. 임차인을 유치하며 친해진 주변 몇 곳의 중개업소 대표에게 “지금 빌딩을 시장에 내놓으면 30억원은 받을 수 있을 것”이란 평가를 받았다. 매입가격과 대비하면 시세가 4억원 오른 것이다. 적극적인 임대관리에 나선 덕분에 임대료와 시세가 모두 껑충 뛰며 ‘일거양득’ 효과를 얻은 셈이다.
이씨 사례를 참고하면 중소형 빌딩 투자 성공 비법을 발견할 수 있다. 일단 현 임대료 시세보다 미래 임대료 수준을 내다볼 수 있는 ‘상상력’을 길러야 한다. 시장에서 고평가를 받고 있는 세련된 빌딩은 주변 비슷한 면적 빌딩과 대비해 시세가 높은 경우가 많다. 돈이 많다면야 시세와 관계없이 비싼 값으로 사면되지만 그럴 경우 임대수익률이 은행이자를 밑도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오히려 주변 대비 월세를 적게 받아 시세 측면에서 저평가인 빌딩을 매입해 적극적인 임대관리에 나서면 월세를 올려 받고 시세 차익도 볼 수 있다. 주식시장에 통하는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라’는 격언은 부동산 시장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주변 상권 분석은 철저히 해야 한다. 당최 사람이 몰리지 않은 외딴 곳의 빌딩을 싸다고 샀다가는 투자자금만 장기간 묶일 수 있다. 예를 들면 수요가 한정적인 수도권 외곽지역은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높다. 인근에 지하철역이 새로 들어오던가 쇼핑몰이나 할인 매장 입주 등 호재가 한두 가지는 들리는 지역을 주목해야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다.
공실률에 주목해야 하는 점도 중요한 포인트다. 일단 건물에 공실이 있다는 얘기는 상권 선호도가 떨어진다는 얘기다. 저렴한 월세로 유인해도 임차인이 넘어가지 않을 만큼 입지나 건물 자체에 하자가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상권 활성화에 제약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투자를 보류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투자이전에 건축물 대장을 확인하는 것은 필수다. 상권 분석에만 치우쳐 법률 관계 파악을 소홀히 하다 투자 이후 낭패를 보는 사례가 종종 나오기 때문이다. 이 경우 매입한 빌딩을 재매각하는 것도 쉽지 않아 평생에 걸쳐 모은 재산이 꽁꽁 묶이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다.
상장기업 임원으로 재직하다 퇴직 직후 근린업무형 상가빌딩에 투자한 안 모씨(53)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는 퇴직금과 회사 주식을 매도해 마련한 현금 14억원과 대출 6억원을 쏟아부어 마포 공덕동 네거리에 대지 195㎡, 지하 1층~지상 4층짜리 상가빌딩을 매입했다. 보증금 1억원에 월 임대료 880만원이 나오고 있어 이자를 내고 월 500만~600만원은 수중에 떨어질 것으로 봤다.
하지만 중개인 말만 믿고 물건 파악에 소홀한 것이 뼈아픈 실수였다. 매입 4개월 이후 구청에서 이행강제금 통지를 받았다. 매입한 상가빌딩이 건축법상 사선제한을 받아 계단형으로 건축됐는데 전 소유자가 층별로 불법 증축을 해 반듯한 사각형 건물로 만들어 놨기 때문이다.
항공촬영에 적발돼 전 소유자가 이행강제금을 납부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안씨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 뒤늦게 원상복구 명령에 따르려 했지만 그러려면 임차인을 모두 내보내야 할 판이었다. 임차인 가게 인테리어를 다 뜯어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안씨는 원상복구를 포기하고 매월 수백만원에 달하는 이행강제금을 납부하고 있다. 사실상 월세를 쥐어도 손에 남는 게 거의 없는 상황이다. 본인이 직접 건축물대장을 꼼꼼하게 확인해 실제 건물과 비교했으면 벌어지지 않을 일이었다. 불법전용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건물을 재매각하기도 사실상 불가능해 안씨는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건물 하자를 점검하는 것도 중요한 이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편이 낫다. 노후도가 심한 건물을 매입했다가 자칫 막대한 수리비용을 내야 할 수도 있다. 보수적으로 투자에 임하라는 것도 다수 전문가들이 빠지지 않고 하는 조언이다. 과거 빌딩 시세가 하루가 다르게 올랐던 활황기가 가까운 미래에 재연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따라서 막대한 부채를 안고 단타 위주로 빌딩 시장에 접근하는 것은 금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