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하반기 이후 진행된 유럽 재정위기의 상황이 예상보다 장기화되고 심각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PIG(포르투갈·아일랜드·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으로 유럽 재정위기가 일단락 되는 듯한 모습을 보였으나 그리스에 대한 2차 구제금융과 스페인 은행에 대한 구제금융 조치로 이어지면서 유럽의 재정위기는 은행위기로 번질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의 본질적인 원인은 재정 적자의 누적과 이를 조달하기 위한 국채발행이 밀접히 관련되어 있음은 자명하다. 또한 국채시장의 조달금리가 국채의 상환가능성이나 재정적자의 유지가능성(sustainability)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국채금리 수준과 변동성에 글로벌 금융시장이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 것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동안 유럽 재정위기의 진행 과정에서 유럽중앙은행(ECB)과 미국 연준(Fed), 국제통화기금(IMF)은 중앙은행 간 스왑과 금리인하, 구제금융에 의한 자금지원, 회원국의 국채매입, 장기유동성 공급(Long-Term Refinancing Operation) 등 새롭고 다양한 통화정책 수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유럽 국채시장의 안정화를 도모해왔다. 이후 유럽 국채시장은 유동성 공급에 의한 정책효과에 힘입어 단기적으로 안정화 조짐을 보였으나 여전히 국가별 상황에 따라 개별 회원국 국채시장의 변동성은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 과정에서 재현되는 국채금리의 변동성 문제는 향후 유럽 재정위기의 해결에도 주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그 원인과 대응책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유럽 재정위기 과정에서 국채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된 이유는 무엇일까? 유럽 재정위기가 국채시장을 통해 전염(Contagion)되는 양상을 보이는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유럽 재정위기는 단시일 내에 안정화될 것인가? 이러한 문제들은 궁극적으로 유럽 국채시장과 글로벌 금융시장 더 구체적으로는 글로벌 투자자금의 흐름(Capital Flows)과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 은행 간 자금거래 간 연관관계를 통해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와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첫째 유럽 재정위기의 해결을 위해서는 적자에 의한 국채조달 증대에 대비해 국채금리의 절대적인 안정화가 필요하다. 그 과정에선 국채에 대한 수요기반의 안정화가 필수적이다. 일반적으로 국채 수요는 국채의 신용도 또는 상환가능성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국채의 발행규모 혹은 발행 잔액이 GDP 대비 높을 경우 조달금리 수준이 상환가능성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채의 수요기반에 근본적인 점검이 요구된다. 특히 유럽의 재정위기는 외국인투자자의 국채 수요에 의해 상당 부분 결정되는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글로벌 자금 흐름에 의해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둘째 유럽 재정위기는 국채시장의 지역적 통합에 의해 전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대책이 요구된다. 유럽경제는 유럽화의 출범 이후 역내 경제의 통합에 따른 경제성장세가 확대되면서 유로화의 강세 기조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까지 지속돼 왔다. 유로화의 강세는 유럽금융시장의 통합을 가속화시키는 요인이 됐으며 회원국 간 국채금리가 하향 안정화되면서 수렴(Convergence)하는 경향을 보여줬다. 회원국의 국채금리 하락은 재정건전성에 대한 부담을 완화시켰으며 유럽 국채시장 간 연계성을 확대시키는 요인이 됐다. 유럽 국채시장과 단기금융시장은 국채를 담보로 활용해 RP거래 방식으로 단기자금조달을 확대하는 형태로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IMF의 2012년 4월 발간된 <글로벌금융안정보고서>는 은행권의 국채보유가 국채수익률(국채가격) 상승(하락) 시에 자산가치의 하락을 초래하고 이는 다시 은행의 자본비용을 높여 은행의 자금조달 비용 상승으로 이어져 단기자금시장의 경색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스페인 및 이탈리아 은행의 경우 자국 국채보유 비중이 각각 GDP의 26.5%, 32.0%, 총 은행자산 대비 각각 7.7%, 12.4%에 이르고 있다. 이를 감안할 때 향후 유럽의 재정위기가 은행의 건전성 악화로 이어지면서 국채시장의 불안정성이 은행위기로 전이되는 것을 선제적으로 차단해야 할 필요가 있다.
셋째 브뤼겔(Bruegel) 연구소에 따르면 유럽국채 시장에서 2011년 기준 비거주자(Non-Resident) 투자자의 비중은 약 30~60%에 이르고 있다. 2007년의 경우 동 비율이 약 40~70%대에 이르는 등 높은 수준을 유지했던 것과 비교하면 외국인투자자금의 이탈(Sudden Death)이 심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리스의 경우 2007년 73.8%에서 38.5%로 하락했으며 스페인의 경우 동 기간 중 47.7%에서 34.2%로 하락했다. 유럽 재정위기는 국채시장의 역외자금 이탈을 초래하고 이는 다시 자국 은행의 국채매입을 확대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국 은행의 국채매입 확대는 ECB를 통한 유동성 공급에 의해 자동적으로 이뤄지는 측면도 있다.
향후 유럽의 재정위기 해소를 위한 국채시장의 핵심과제는 안정적인 국채수요 기반을 체계적이고 장기적으로 확보하는 데 있을 것이다. 현재 유럽 재정위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과정에서 미국계 자금을 중심으로 글로벌 자금의 회귀(Reversal)가 이뤄지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의 유동성이 급격히 축소됐던 사례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다행히도 현재와 같은 글로벌 자금의 유럽탈출(exits from eurozone) 현상이 금융시장 여건의 개선에 따라 급격하게 역전될 가능성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향후 유럽 재정위기의 해소를 위한 단기적 과제는 국채시장의 신뢰도를 신속히 회복하는 것이 될 것이다. 국채시장의 신뢰도는 개별 회원국의 재정적자의 축소 여부에 따라 결정되지만 궁극적으로는 자국의 국채투자 수요기반을 확충할 필요가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재정적자는 궁극적으로 국채발행 규모를 확대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실물경제의 성장률 회복과 조세기반의 강화를 통해 적정 수준으로 축소돼야 할 것이다.
이에 따라 최근 유럽 각국은 연금, 의료, 교육 등 재량적 지출규모를 줄임으로써 재정지출을 축소하고 세율인상을 통해 조세기반을 강화하는 정책으로 전환하고 있다. 일부의 경우 과다한 재정지출의 축소와 세율 인상이 내수기반의 위축과 더불어 유럽경제의 전반적인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회의론도 있다. 그러나 유럽 재정위기의 궁극적인 회복은 금융시장의 유동성 공급에만 의존하는 금융정책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특히 2008년 위기와 같은 글로벌 차원의 공조체계 없이 해외자금의 이탈로 나타나고 있는 글로벌 자금의 조정과정(Re-balancing)을 독일 및 프랑스의 지원만으로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앞으로 유럽 재정위기에 대한 정책대응 방식은 지금까지의 금융정책과 더불어 실물경제적 관점이 강조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정상회의에서 합의된 은행동맹은 유럽 금융권의 통합을 촉진하는 통합정책의 일환으로 풀이되며 궁극적으로 실물경제의 구조조정을 위한 다각적인 노력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실물경제의 구조조정에 따른 유럽경제의 회복은 2008년 위기와 달리 예상보다 중장기간에 걸쳐 이뤄질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중국 및 한국 등 수출 중심의 신흥국가들에게 유럽위기가 글로벌로 파급되는 부정적인 효과에 선제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과제로 대두될 것이다. 글로벌 유동성의 재조정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글로벌 유동성의 위축에 대비하고 국채시장을 비롯한 자본시장의 글로벌자금 이동에 대비해 국내투자자 기반을 강화하고 외환시장의 방호벽을 구축해 나가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긴요한 과제다.
당분간 유럽 재정위기가 실물경제에 미칠 수 있는 이차효과(Secondary Effect)에 대비해 금융시스템의 완충력과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지속돼야 할 것이다. 동 과정에서 초래될 수 있는 사회적 비용과 충격을 분담할 수 있는 안전망 확보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배려도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