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등급 관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똑같은 소득에 똑같은 직장에 다니더라도 신용등급에 따라 대출금리는 2% 안팎 차이가 난다. 1억원을 빌리면 200만원가량을 더 내느냐 덜 내느냐가 갈린다는 의미다. 말 그대로 신용은 돈이다.
그런 만큼 많은 사람들이 신용관리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정작 등급 평가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개인신용등급을 매기는 나이스신용평가정보와 코리아크레딧뷰로(KCB)에서 신용평가기준을 공시하고 있지만 시중에는 여전히 오해와 편견이 난무한다. 평가기준이 관련법 개정 등으로 자주 바뀌는데다 지난해 신용등급 평가기준 공시가 시작되기 전에는 기준조차 알기가 힘들었던 탓이다. 은행에 근무하는 사람조차 아직도 신용을 조회하면 등급이 떨어진다고 여길 정도다.
신용등급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없애고 평가기준을 아는 것이 바람직한 신용 관리의 첫걸음이다.
신용도 조회하면 신용등급이 떨어진다?
개인신용등급에 대한 편견 가운데 신용조회에 관한 내용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신용조회의 신용등급 반영 기준이 법령 개정에 따라 계속 변화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난해 10월부터 모든 신용조회 기록은 신용등급에 반영되지 않는다. 자가신용조회부터 금융기관의 신용조회까지 유형과 횟수를 따지지 않는다.
종전에는 3회 이상의 자가신용조회나 대부업체 신용조회 기록이 신용등급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하지만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6월에 발표한 가계부채대책에 따라 조회기록은 더 이상 신용등급에 영향을 줄 수 없다.
대출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대출금리가 낮은 금융기관의 문부터 두드려보는 것이 현명하다. 대출을 거절당하더라도 조회기록이 남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출금리가 높은 금융사에서 대출을 받으면 상환부담이 커져 대출 시점에서 신용등급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자가신용조회도 제한이 없어졌기 때문에 현명한 신용생활을 위해서 자신의 신용등급을 자주 확인하면 좋다.특히 대출·연체·신용카드 발급·상환 등 신용에 영향을 주는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신용등급을 조회해보면 신용등급 향상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된다.
자신의 신용등급은 새희망네트워크(www.hopenet.or.kr)에서 무료로 열람할 수 있다. 나이스신용평가정보에서 매기는 등급은 마이크레딧(www.mycredit.co.kr)에서, KCB에서 매기는 등급은 올크레딧(www.allcredit.co.kr)에서 볼 수도 있다.
상환능력 개선되면 신용등급도 오른다?
소득이 늘거나 갖고 있던 재산의 가치가 오르면 개인신용등급에도 긍정적일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이런 편견 때문에 저축이 늘어나면 신용등급이 좋아진다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상환능력은 등급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수입이 없던 구직자가 연봉 1억원이 넘는 일자리를 구한다고 해도 신용등급에는 변화가 없는 것이다. 거액의 자산과 급여가 있다고 해도 불건전한 신용생활을 하면 저신용자가 될 수 있다.
개인신용등급은 빚을 갚을 능력보다는 상환의지를 평가하는 잣대다. 국가나 기업의 신용등급과는 다르게 오로지 상환의지만을 평가한다.
실제로 크레딧뷰로에는 개인의 소득이나 재산과 관련된 정보가 없다. 크레딧뷰로는 개인의 부채상황, 신용카드 사용, 연체·상환이력 등 과거 거래 행태에 관한 정보에만 근거해 신용 평점과 등급을 매긴다. 이 때문에 신용등급을 올리는 데는 건전한 신용거래 기록을 이어가는 것만큼 긴요한 방법이 없다.
한편 상환능력은 금융기관이 대출을 내주면서 평가한다. 금융기관은 크레딧뷰로에서 매긴 등급과 함께 대출 신청자의 자산, 급여 등을 평가해 대출 승인 여부와 한도, 금리를 결정한다.
연체기록 다 갚기만 하면 소멸된다?
연체는 독이다. 연체가 일어날 경우 신용등급이 한꺼번에 3~4단계도 추락할 수 있다. KCB에 따르면 연체이력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의 신용등급은 평균 3.8로 높지만, 연체를 한 번이라도 한 사람의 평균은 7.4에 그친다.
대출을 많이 받아 내려간 신용등급은 충실하게 상환하면 금세 회복할 수 있지만 연체로 떨어진 등급을 다시 회복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연체기록은 연체 발생시점부터 최장 5년까지 족적을 남긴다.
반영기간이 연체 유형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연체기간이 90일을 넘기면 장기연체로 분류돼 5년 동안 신용등급에 악영향을 준다. 90일 이상 연체가 이어지면 은행연합회에 ‘채무 불이행자’로 등록돼 정상적인 금융생활이 어려워지는 불이익도 있다.
연체기간이 90일을 넘지 않으면 반영기간이 3년으로 줄어든다.
연체로 인한 등급 하락을 막으려면 가능한 한 빨리 연체를 해소하는 것이 좋다. 연체기간이 길어지면 등급도 계속 내려가기 때문이다. 장기연체로 넘어가지 않아야 기록 반영기간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
한편 하루나 이틀 연체는 신용등급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 현재 신용정보법에 따르면 10만원 이상의 채무를 5영업일 이상 미뤘을 경우 연체로 취급한다. 카드대금이나 이자납입을 1~2일 깜박하더라도 신용도가 떨어지지는 않는다. 또 10만원 미만의 소액 연체는 기간에 상관없이 신용평가에 반영되지 않는다.
신용카드는 많을수록 좋다?
신용카드는 가장 쉽게 쌓을 수 있는 신용거래기록이다. 연체하지 않고 꾸준히 사용하면 신용등급을 올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소득공제와 소비규모 조절을 위해서는 체크카드가 좋지만 신용등급 관리를 위해 소액이라도 신용카드를 같이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신용카드 보유 숫자는 등급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카드 발급량이 신용등급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신용등급을 산출할 때 카드 사용액은 단기부채로 인식된다. 등급을 결정하는 신용평점은 카드 사용으로 15~40일 만기의 단기부채가 늘어나고, 대금납입으로 부채가 소멸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조금씩 올라간다.
이 때문에 발급만 해놓고 사용하지 않는 카드는 신용등급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
카드를 많이 발급받는 것보다는 전체 한도를 늘리는 것이 신용등급에는 더 좋다.
흔히 많은 직장인들이 신용카드 이용한도를 자신의 한도보다 일정 부분 낮은 수준으로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 과도한 소비를 사전에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카드 이용액이 신용카드 이용한도의 어느 정도 수준까지 육박하면 신용등급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신용카드 이용자가 자금이 부족하다는 신호로 비칠 수 있어서다.
신용평점은 한도대비 이용실적이 꾸준하게 유지될 때 가장 많이 오르는데 한도를 높여 놓을수록 실적의 변동폭이 줄어들면서 등급에 좋은 영향을 준다.
종전의 카드사용 패턴에 비해 갑자기 일시불이나 할부 사용액이 늘어나면 부채가 과도하게 증가한 것으로 인식돼 등급이 떨어질 수 있다. 병원비 등의 목돈을 카드로 결제할 때 이 같은 일이 발생한다. 하지만 연체하지 않고 상환하면 떨어진 등급은 금세 회복된다. 신용카드는 할부나 일시불이나 신용도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할부는 부채의 만기를 연장, 분산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상환부담 증가로 일시불에 비해 평점은 조금 더 내려갈 수도 있다. 정상적인 상환으로 극복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기 때문에 크게 염려할 필요는 없다.
돌아오는 카드대금을 일시에 막기 어려우면 일부만을 갚는 리볼빙을 활용하는 것도 좋다. 카드 부채를 적정 이자를 지불해 다음달로 넘기는 리볼빙은 연체를 막는 데 효과적이다. 다만 원금에 이자가 더 붙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이다.
통신요금·공과금 체납은 신용도에 영향을 줄까?
휴대전화, 인터넷 등 통신요금 연체가 길어지면 신용정보회사에서 추심을 한다. 개인신용평가회사와 비슷한 상호를 쓰는 곳도 있어 신용등급이 떨어질까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통신요금과 공과금 연체는 신용등급에 영향이 없다. 통신요금과 공과금 납부 정보가 수집되지 않기 때문이다.
통신요금과 공과금의 성실한 납부도 개인의 채무상환의지를 보여주는 데 도움이 되지만 아직까지 신용평가사들과 정보공유가 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향후 정보공유가 일어나면 연체정보가 등급에 반영될 여지는 열려있다.
세금을 연체하면 등급은 떨어진다. 국세, 지방세, 관세를 500만원 이상 체납하면 연체 정보가 전국은행연합회로 들어간다.
은행연합회의 정보는 전 금융회사와 신용평가사가 공유하기 때문에 신용평점이 하락하는 것과 더불어 금융기관에서도 부정적인 정보로 인식한다.
체납 정보가 은행연합회로 통보되는 기준은 체납 발생일로부터 1년이 경과하고 체납액이 500만원 이상 또는 1년에 3회 이상 체납하고 체납액이 500만원 이상일 경우다.
연체한 적도 없고 신용카드도 잘 쓰고 있는데 신용은 5등급?
개인신용평점은 곧 신용거래의 역사다.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긍정적인 거래를 해왔는지를 통해서 신용등급이 결정된다. 또 신용평점은 상대평가로 점수를 매긴다. 상위등급을 받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자신의 신용등급이 예상했던 것보다 낮은 데는 크게 2가지 원인이 있다.
먼저 신용거래기간이 짧아서 신용평점 산출의 근거가 부족하면 상위등급을 받을 수 없다. 신용거래를 막 시작한 사람들의 등급은 일반적으로 4~6등급이다.
이들은 정보가 없기 때문에 연체 같은 부정적 사건이 없더라도 신용평가사에서 조심스럽게 등급을 매긴다. 이들에게는 시간이 답이다. 신용카드와 대출을 꾸준히 쓰면서 연체하지 않고 건전한 거래패턴을 보이면 등급은 쉽게 오른다.
신용거래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연체가 발생하면 등급은 순식간에 폭락한다. 평점의 판단근거가 되는 건전한 거래이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연체부터 발생했기 때문이다.
연체 없이 오래 신용거래를 하더라도 낮은 등급에 머무를 수 있다. 신용거래 이력이 부족한 경우다. 신용카드나 대출을 거의 이용하지 않으면 거래기간이 충분하더라도 상환의지를 판단할 근거가 없다. 예를 들면 한 달 카드사용액이 1만원 아래고 대출은 전혀 쓰지 않는 사람은 연체를 하지 않아도 ‘돈을 잘 갚는다’고 판단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대출 계획이 없는 사람이 신용등급을 잘 받기 위해서는 꾸준히 신용카드를 쓰는 방법밖에 없다. 대출과 신용카드 모두 쓰지 않으면 오히려 등급이 떨어질 수도 있다.
개인워크아웃 신청하면 등급은 추락한다?
상환능력이 고갈돼 연체가 길어지면 신용회복위원회에 개인워크아웃을 시작하는 게 현명하다.
개인워크아웃으로 채무조정이 시작되면 신용등급이 내려간다는 말이 있지만 이것은 편견이다. 워크아웃 시작과 동시에 등급이 내려갈 때가 있는데 이는 연체가 길게 이어져 떨어진 것이지 채무조정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연체 기록이 정리되면서 오르는 경우도 생긴다. 개인워크아웃이 결정되면 채무조정을 통해 이자와 연체이자는 모두 탕감 받을 수 있고 원금도 해당 금융회사에서 손실처리를 했을 때는 절반까지 경감된다. 2년간 금융거래는 제한되지만 이 기간 동안 경감된 빚을 성실하게 갚아 나가면 신용등급을 서서히 회복할 수 있다.
상환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별다른 조치 없이 연체와 돌려막기를 반복한다면 종착역은 10등급이다. 연체가 더 길어지기 전에 채무조정을 하고 빚을 갚을 방법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연체기간이 90일을 넘지 않았다면 프리워크아웃이 답이다. 프리워크아웃은 신용등급에 영향이 없고 금융사에 장기 연체 기록을 남기지 않아 금융생활의 불이익을 줄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