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의 주부 A씨. 슈퍼리치 PB센터 고객인 A씨는 급등락이 심한 주식보다는 채권 위주로 투자한다. 지방채에 투자했던 A씨는 지난해 물가가 들썩거릴 조짐을 보이자 물가연동국채에 수억원을 투자했다. 물가가 크게 오르면서 A씨는 6개월 만에 대략 연 8%의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자영업자 B씨. 또 다른 증권사 PB센터 고객 B씨는 해외에 상장된 KP(코리아페이퍼) 물에 투자해 큰돈을 거머쥐었다. 지난해 하반기 유럽 재정위기로 금리가 급등하자 하이닉스반도체 KP물(2012년 콜옵션 조항)에 투자해 표면금리(7% 중반)를 크게 웃도는 자본차익을 냈다.
통상 채권은 ‘저위험 저수익’이라는 고정관념이 강하다. 그러나 지난해는 ‘채권의 재발견’이라 할 만큼 채권 투자에 대한 기존의 선입견과 관념이 깨진 한 해라는 것이 슈퍼리치를 상대하는 프라이빗뱅커(PB)들의 공통된 견해다.
유럽 재정위기로 주식 투자를 꺼리면서 슈퍼리치들의 채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데다 증권사들이 다양한 종류의 채권을 선보이면서 채권은 더 이상 ‘저위험 저수익’ 상품이 아니라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지만 상당히 높은 수익을 내는 ‘중위험 중수익’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이닉스반도체 KP물처럼 금리와 자본차익을 더하면 주식이나 원자재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낮은 위험에 꽤 높은 수익률을 내는 고수익 채권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올해에도 채권 투자에 대한 관심은 이어질 것이라는 게 PB들의 한결같은 답변이다. “채권은 어렵다”거나 “채권은 예금과 비슷한 투자상품일 뿐”이라는 인식이 깨진 만큼 좀 더 다양한 포트폴리오와 수익률의 채권 투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오갈 데 없는 자금들이 원하는 ‘중위험 중수익’ 상품을 얼마나 내놓느냐가 증권사 상품 개발의 관건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중위험 중수익’ 상품의 핵심은 바로 다양한 채권 포트폴리오에서 나온다.
PB들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채권 투자를 하기엔 그다지 나쁘지 않은 환경이라고 얘기한다. 여전히 주식시장이 유럽 재정위기 한복판에서 불안에 떨고 있는 만큼 올해에도 팔색조 매력을 가진 채권 투자의 매력에 빠져볼 수 있는 기회라는 설명이다.
장기 저금리 시대 도래
삼성증권·대우증권 등 각 증권사들은 골드에그, 골드어카운트와 같은 은퇴 이후를 대비하는 금융상품을 내놔 관심을 크게 끌었다. 이 상품에는 은퇴를 앞둔 50대뿐 아니라 30~40대의 젊은 직장인들도 상당히 관심을 갖고 투자했다. 은퇴 이후를 대비한 이 상품의 투자처를 살펴보면 ‘20년 장기 국고채’가 눈에 띈다.
20년 장기 국고채가 관심을 끄는 배경은 우리나라의 금리가 장기적으로는 미국·유럽 등 선진국처럼 저금리로 갈 것이라는 전망에서 나왔다. 현재 우리나라의 기준금리는 3.25%. 시중금리는 4% 초반에 불과하다. 경기상황에 따라 기준금리가 오르내릴 수 있지만 10년, 20년을 놓고 보면 우리나라도 유럽·미국·일본 등 선진국처럼 1~2%의 저금리로 낮아질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장기 저금리가 추세라면 20년 국고채는 상당히 매력적인 투자처다. 현재 6개월마다 이자를 지급하는 국채 20년물의 표면금리는 4.75%. 매매시중금리는 3.8%대다. 6개월마다 나오는 금리를 재투자한다면 연 금리는 4% 후반에서 5% 초반이 나온다.
삼성증권 강남SNI센터 분석에 따르면 최고세율이 적용되는 고액 금융자산가는 분리과세 후 재투자를 감안하면 만기까지 보유할 경우 연 수익률은 5.27%가 나온다. 일반세율을 적용받는 직장인이라면 연 4.87%의 수익률이 나온다. 이는 4% 초반에 머물고 있는 정기예금에 비하면 꽤나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20년 국채를 20년 만기까지 보유하겠다는 생각으로 투자할 필요는 없다. 중간에 금리가 낮아질 경우 매매를 해 자본차익을 얻을 수 있다.
금리가 떨어지면 채권 가격은 오른다. 시중 금리가 높을 때 채권을 샀는데 금리가 떨어지면 자본차익을 얻게 된다. 물론 반대 경우도 있다. 금리가 오르는 경우다.
이때 중간에 채권을 팔면 자본차익이 아니라 손실이 발생한다. 하지만 갑자기 돈이 필요하지 않을 바에야 장기 투자를 염두에 뒀다면 금리가 오를 때 채권을 팔 이유가 없다. 채권은 중간에 매매하지 않고 만기까지 갖고 간다면 예정된 원금과 이자를 받을 수 있기때문이다.
현재의 20년 만기 매매금리가 1년 후에 0.3%포인트 낮아진다면 최고세율 투자자는 연 11.3%의 높은 수익률을 얻게 된다. 5년 후에 매매금리가 0.5% 하락할 경우에는 연 6.52%의 수익률을 얻게 된다. 10년 후에 금리가 낮아져 1.0%포인트 하락하면 연 6.24%의 수익률을 얻게 된다.'표 참조'
금리변동에 따른 채권 가격 급등락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외환위기나 국가부도 상황이다. 1997년 말 외환위기 때 우리나라 금리가 치솟아 채권 가격이 폭락했을 때 채권을 구입한 투자자들이 얼마 후 금리가 정상화돼 엄청난 자본차익을 얻은 게 대표적이다. 대단히 위험한 국채이긴 하지만 요즘 유럽 재정위기로 금리가 폭등한 그리스 국채도 가격은 크게 떨어져 있다. 만일 그리스가 정상화돼 금리가 제자리로 돌아오면 채권 가격이 다시 올라 수십%의 자본차익을 얻는다.
그리스와 같은 나라의 국채는 국채지만 투기등급 채권만큼 위험하다. 그러나 이머징 마켓 가운데서도 가장 빼어난 신용등급을 유지하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는 위험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따라서 장기 저금리를 감안한다면 20년 국고채도 투자해 볼 만한 채권이다.
물가채·해외채도 투자할 만하다
장기 국고채뿐 아니라 지난해 큰 인기를 끌었던 물가채도 올해 ‘중위험 중수익’으로 노려볼 만하다.
투자의 귀재로 알려진 권남학 케이원투자자문 대표는 올해 주목할 주식으로 인플레이션 관련주를 꼽았다.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유효한 투자 테마라는 것이다.
오현석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올해 채권 전망 보고서에서 “(지난해 물가상승률이 높았기 때문에)기저효과에 따라 지난해보다 다소 낮아질 것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물가상승에 유리한 거시여건이 올해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물가연동국채의 매수 관점도 지속할 것을 권한다”고 강조했다. 올해도 연초부터 국제 원자재 가격이 들썩이는 등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물가채가 지난해처럼 단기간에 연 8~9%의 수익을 내기는 쉽지 않겠지만 ‘중위험 중수익’을 노리는 투자자들이 기대해볼 만하다.
우리나라 국채뿐 아니라 해외에 있는 안전 채권에 적절히 투자해 ‘중위험 중수익’ 포트폴리오를 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우리나라 우량기업과 은행이 해외에 상장한 KP물에 투자하는 것이다.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채권은 우리은행·신한은행과 같은 은행들이 발행한 채권과 하이닉스 채권이다.
이 채권은 우리나라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상당히 안전한 기업 채권으로 인식돼 있지만 해외에선 우리나라에서만큼 높은 신용등급을 받고 있지 못하다. 신용등급이 낮다는 얘기는 채권 금리가 높다는 것으로 이들 KP물의 금리는 6~7%에 달한다. 만기까지 보유하고 있으면 국내 우량기업 채권보다 높은 금리를 받을 수 있다.
게다가 글로벌 경기가 좋지 않으면 자본차익을 노릴 수 있다. 지난해 하반기 유럽위기가 터져 글로벌 금융시장이 뒤숭숭했을 때 금리가 치솟아 하이닉스 KP물이 급락하기도 했다.
고액자산가 중에는 하이닉스 채권 가격이 크게 떨어졌을 때를 노려 대량 매입해 단기간에 10%를 훌쩍 넘는 자본차익을 얻기도 했다. KP물은 거래단위가 크기 때문에 개인투자자들이 투자하려면 증권사를 통해 최소 5000만원 이상은 넣어야 한다는 게 단점이다.
브라질 채권의 경우 자원대국이라 국가부도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고 금리도 9~10%에 이를 만큼 매력적이지만 환율 급변동 위험이 큰 것이 단점이다. 올해 브라질채권을 놓고 투자해도 괜찮다는 전망과 여전히 환율 급변동 위험에 노출돼 있어 유의해야 한다는 반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