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은 기본이다. 이 기본을 지키는 범주 내에서 수익을 창출한다.”
연기금 중에선 국민연금을 제외하고는 가장 많은 10조원 가까운 자산을 운용하는 사학연금의 이윤규 자금운용관리단장은 단 한 순간도 이것을 잃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도 그가 30년 동안 운용 일선을 지킬 수 있던 비결이 궁금했다.
“항시 연구하고 노력한 덕분이다. 또 수익이 잘 나왔을 때 겸손할 줄 알아야 한다. 그 덕분에 실적이 저조할 때도 주위의 도움을 받아 이겨낼 수 있었다.”
이 단장이 사학연금에 온 지도 벌써 4년 가까이 된다. 그가 오래도록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은 단지 성실함만은 아니다. 대규모 자산을 굴려 합당한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그의 지휘 하에 사학연금은 2009년과 2010년 2년 연속 두 자릿수 수익률을 달성하며 전체 연기금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성과를 냈다. 2010년엔 평균잔고 기준 10.5%의 운용수익률을 기록해 기획재정부가 평가하는 37개 기금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2009년에는 12.67%의 운용수익률로 9개 금융성 기금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이런 성과는 외국에까지 알려져 이 단장은 2011년 금융투자전문지 <아시안 인베스터>지로부터 ‘올해의 CIO(The CIO of the Year)’로 선정되기도 했다. 올해는 주가가 지지부진했지만 현재 추세만 이어진다면 그래도 괜찮은 성적으로 한해를 마무리할 것 같다고 했다.
이 단장은 이 같은 성과의 핵심 노하우로 자산배분과 운용관리를 꼽는다. 특히 “자산배분은 수익률의 90%를 좌우한다”며 중시한다. 자산배분엔 오랜 경험에서 얻은 그의 경제관이 큰 힘이 된다.
“2008년 4월에 이곳에 왔는데 그해 10월이 되니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공포 분위기가 만연했다. 모두가 겁을 먹고 투자를 하지 못했다. 농협 채권까지도 거래가 안 될 정도였다. 그 상황에서 이것은 기회라며 직원들을 독려하며 주식이나 채권 투자를 늘리라고 했다. 특히 우량 채권을 많이 사라고 했다.”
외환위기와 카드사태 등을 경험한 그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이례적으로 급락한 자산 가격이 빠르게 회복될 것으로 보고 공사채나 금융채 우량 회사채 비중을 선제적으로 확대했다. 그의 예상은 적중해 2009년 사학연금은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의 성과를 올렸다.
이 단장은 2010년엔 유동성이 풀릴 것으로 보고 회사채와 함께 주식투자 규모도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한편 시장 금리가 불확실한 점을 감안해 듀레이션 중립 전략을 구사했다. 그의 예상대로 지난 2010년 수출기업들이 호황을 맞은 데다 글로벌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금융 당국이 유연한 통화정책을 펼친 덕에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주식시장은 활황을 이어갔다. 덕분에 사학연금은 다시 뛰어난 성과를 거뒀다.
사학연금은 안전을 기본으로 하는 연금이지만 다른 연기금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식 비중이 높다. 이와 관련해 이 단장은 “한국 경제는 성숙기에 접어들어 잠재성장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장기적으로 저금리 기조가 유지될 것이기에 채권으로 수익을 내기는 만만치 않다. 주식이나 대체투자를 늘리고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다”라고 강조한다.
그런 게 지금 사학연금 포트폴리오에 반영돼 있다. 12조원에 달하는 사학연금의 자산 가운데 교직원 대출 등을 제외하고 이 단장이 운용하는 자산은 9조5847억원(9월 말 기준)이다. 사학연금은 현재 자산의 21%를 주식에 투자하는 것을 비롯해 채권 62%, 대체투자 14%, 기타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짜고 있다. 국민연금에 비해 주식 비중이 월등히 높은 셈이다.
다음으로 이 단장이 중시하는 것은 관리다. 운용을 잘하는 매니저를 찾고, 잘하는 매니저에겐 더 많은 자금을 맡기고, 그렇지 못하면 엄격히 평가해 자금을 회수하는 게 좋은 성적을 내는 비결이란다. 뿐만 아니라 포트폴리오 목표를 세웠다고 경직되게 고수하지 않고 그때그때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도 그의 역할이다.
이 단장은 절대로 자기가 모두 하는 것을 고집하지 않는다. 나보다 더 잘하는 곳이 있으면 거기에 맡긴다는 게 그의 원칙이다. 사학연금의 운용자산 가운데 채권은 80%를 직접 운용하고 20%만 아웃소싱한다. 반면에 주식이나 대체투자는 60% 가량을 아웃소싱하고 40% 정도만 자체적으로 운용한다. 채권은 자체적으로 운용해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지만 주식은 많은 운용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잘하는 운용사나 자문사를 정해 맡긴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전략이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유연성은 자산배분에도 통한다. 이곳에선 5년 단위로 전술적 자산배분 계획을 세우고 연 단위로 전략적 자산배분을 한다.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매일 판단하고 점검해 월 단위로 또 자산배분을 조정한다. “시장은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이니 우리도 살아서 움직인다”는 게 그의 논리이다. 실제 사학연금은 2011년 주식편입 비율을 24.5%까지 높인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불투명한 시장상황을 반영해 2010년의 21.8%보다 낮은 21%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조정은 자체 운용하는 자산 뿐 아니라 아웃소싱 자산에도 똑같이 적용한다. 이처럼 원칙을 지키면서도 유연함을 잃지 않는 자세가 사학연금의 수익률을 최상위로 유지하는 비결인 셈이다.
내년 긍정적, 주식 비중 늘릴 것
내년 시장 상황에 대해 이 단장은 “괜찮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상반기까지는 힘들겠지만 이후 나아질 것이란 예상이다.
“유럽 재정위기나 미국의 경기침체, 중국의 물가불안 모두 결국은 해결될 것이다. 유럽은 여전히 조심해야 하겠지만 미국은 더블딥까진 가지 않을 것이다. 중국이나 동남아 모두 좋아질 것으로 본다.”
중국의 경우 9%대 성장을 계속해와 물가 염려가 제기됐으나 계속 발전하는 단계에 있고 경기가 소프트랜딩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결국 2012년 하반기에 주가가 강하게 상승할 것을 기대하고 있으며 이를 감안해 내년 주식투자 비중을 25% 정도로 높일 것이라고 했다.
국내에서 가계부채 문제가 불거질 것을 우려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는 그것이 금융시스템에까지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보았다. 당국이 LTV(주택담보인정비율)나 DTI(총부채상환비율) 등으로 통제하면서 대출이 이뤄졌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일부 개인들이 손해를 볼 수는 있겠지만, 그게 금융기관의 손실 급증이나 국가적 문제로 번지지는 않을 것으로 본 것이다. 또 상반기 조정국면을 예상하지만 큰 폭으로 하락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예상했다. 그만큼 한국 경제가 튼튼하다는 것이다.
다만 채권에 대해선 저금리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며 큰 수익을 기대하지는 말라고 했다. 대신 주식이나 대체투자를 늘리고 특히 해외에서 기회를 보라고 귀띔했다. 유럽 재정위기나 미국 경기침체 우려가 제기될 정도로 해외가 힘들기 때문에 오히려 기회가 생긴다는 것이다. 일시적으로 급락할 때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다만 남유럽이나 이머징 마켓 중에서 신용도가 낮은 곳은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반 투자자들에게 조언
일반 투자자에 대한 조언을 부탁하자 이 단장은 “간접투자를 이용하고 절대로 한 방을 노리지 말며 길게 보고 하라”고 강조했다.
“국내 주식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어 개인 투자자들은 이리저리 휩쓸리기 십상이다. 길게 보고 펀드에 맡겨 간접투자로 가는 게 바람직한데 지금이 자금을 맡기기에 적절한 시점이라고 본다. 아울러 절대로 한 방을 노리지 말아야 한다. 목표수익률을 낮추라는 얘기다. 금리가 낮은데 목표수익률을 높게 잡으면 까먹기 쉽다. 안전제일로 가야 한다. 투자기간은 장기로 봐야 한다. 주식이 싸다고 생각하면 조금씩 늘려라. 누구도 저점과 고점을 맞추지는 못한다. 그런 식으로 가야 한다.”
운용은 마라톤과 같다
이 단장은 마라톤 마니아다. 마라톤을 시작한 지 11년이나 됐다. 그 동안 27번이나 마라톤을 완주했고 보스톤 마라톤과 뉴욕 마라톤에도 나갔다. 4년 전엔 울트라 마라톤까지 했다. 아마추어 마라토너의 꿈을 모두 이룬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지금도 매일 아침 10~12km를 달린다. 혼자만 뛰는 게 아니라 마라톤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페이스메이커 역할도 많이 했다. 자격증까지 갖고 있을 정도다.
그는 마라톤이 운용과 같다고 한다.
“마라톤은 지구력이 있어야 하고 끈기도 있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운용도 비슷하다. 끊임없이 연구해야 하고 참을성을 길러야 하며 길게 보고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그는 특히 마라톤이 운용을 하는데 많은 영향을 준다고 했다.
“건강하고 자신감 있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또 건강하니 더 열심히 할 수 있다.”
■ 이윤규 단장은 30년 동안 투자 일선을 지키고 있는 국내 최고참 투자전문가다. 국내 최고의 기관투자가였던 한국투자신탁(한투)에서 24년간 근무하는 동안 주식과 채권운용은 물론이고 평가업무 부동산 대체투자까지 섭렵했다. 한투에서 애널리스트와 주식매니저 채권매니저를 거쳐 평가본부장, 통합 CIO, IB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이후 동부자산운용 부사장, 메가마이다스투자자문 대표를 거쳐 2008년 4월부터 사학연금 자금운용관리단장을 맡고 있다.
[정진건 기자 borane@mk.co.kr│사진 = 정기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