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출 줄 모르던 소버린 쇼크 후폭풍이 증시에서는 가라앉고 있다. 증시가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자 기업들은 미뤘던 자금 조달에 나서고 있다. 회사채를 발행할 형편이 못되는 기업은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택하고 있다.
지난 8월과 9월 다수의 코스닥 상장사들이 CB와 BW를 발행해 운영자금을 마련한 데 이어 다시 발행을 검토 중이라는 회사들이 나오고 있다. 넘실대는 CB, BW를 사도 될까? 대박 투자처로 알려져 있지만 언뜻 투자하기에는 복잡해 보인다. 알면 큰 수익을 안겨주는 두 상품의 개념과 투자전략을 소개한다.
사채와 주식이 합쳐진 이종채권
기업의 자금 조달 수단엔 크게 주식과 사채(회사채)가 있다. 기업은 신주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데 이 유상증자도 좋은 투자처다. 일반적으로 시가에 비해 일정 정도 싸게 주식의 가격이 책정되기 때문이다.
회사채는 안정된 수익을 얻는 투자처로 알려져 있다. 회사채 투자자는 투자 회사의 채권자가 되는 것이다. 회사가 망하지 않는 한 원금을 잃을 가능성은 없다. 회사채 투자자의 권리는 여타 채무보다 앞서기 때문에 원금 손실 확률은 낮다고 채권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주식도 우량주와 그렇지 않은 주식이 있듯 회사채도 좋은 상품과 나쁜 상품이 있다. 신용등급 BBB 이상 회사채를 투자등급으로 분류하는데 일반적으로 A등급 이상을 안정적으로 보고 그보다 낮으면 리스크가 있다고 인식한다. 회사채는 등급이 낮을수록 이율이 높다. 등급이 낮을수록 부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발행 회사 입장에서는 위험을 감수하는 투자자를 대상으로 그에 해당하는 반대급부를 제공하는 것이다.
신용등급이 높은 회사채는 부자들에게 인기 높은 투자 대상이다. 이율이 은행 금리보다 높으면서 안정된 수익을 꼬박꼬박 주기 때문이다. 굴리는 자금의 크기가 큰 부자 입장에서는 그럴 만하다. 30억원의 현금자산이 있다고 하자. 1년에 3∼4%씩만 이자를 받아도 이 자산가는 9000만원에서 1억2000만원의 수익을 거둘 수 있다. 일반 회사원의 연봉보다 큰 돈을 안정적으로 매년 얻을 수 있는 셈이다.
이러한 투자는 30대 일반 회사원이 흉내내긴 어렵다.
물론 ‘은 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이라면 말이 다르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회사채 투자는 ‘남의 얘기’일 것이다.
그러나 ‘변종’은 얘기가 다르다. 변종이란 주식과 채권이 결합된 이종채권을 말한다. 대표적 상품은 전환사채(CB, Convertible Bond)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 Convertible Bond)가 있다. 이 상품들은 태생적으로 채권인데, 주식의 성격이 결합돼 있다. CB는 특정 가격에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사채이며, BW는 채권 외 특정 가격에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를 함께 주는 사채이다.
이 두 상품은 채권과 주식에 한꺼번에 투자할 수 있어 일거양득의 기회를 준다. 이종채권은 주식을 통한 시세 차익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금리를 낮게 책정한다. 발행사로선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채권 발행해서) 이익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급전이 필요한 기업이 주로 CB와 BW를 발행한다. 신주 발행은 최대 주주 등 기본 주주의 가치가 희석되는 단점이 있다. 이를 감수하고 발행하는 것은 자금이 그만큼 필요하기 때문이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 속담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급해서 발행하는 채권이기에 투자자에게 우호적 조건이 붙어서 나온다. CB와 BW가 ‘황금 투자처’로 불리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회사채는 금리만 주지만 CB는 금리에다 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 BW는 금리가 붙은 채권 외에 추가로 신주를 살 수 있는 권리를 준다. 부가적으로 붙는 혜택의 순서는 BW, CB, 회사채다.
BW 대박 사례 : 기아차와 아시아나항공
BW 대박의 대표 사례는 기아차다. 기아차는 현재 굴지의 자동차 업체로 성장했다. ‘국민차’라는 별칭이 붙는 ‘K’시리즈의 성공에 따른 결과다. 팔리지 않는 차를 만들던 회사가 이제는 차가 없어서 팔지 못할 정도가 되면서 기아차 주가도 급반전했다. 2009년 3월 8100원까지 갔던 주가는 지금 7만원을 오르내린다. 급반전해서 최대 수혜를 준 상품이 바로 기아차 BW다.
기아차는 2009년 3월 BW를 발행했다. 유동성 위기로 인한 고육책이었다. 규모는 4000억원 어치. 목적은 만기 임박한 회사채와 기업어음(CP) 상환용. 조건은 파격적이었다. 만기 3년에 연 5.5% 금리, 신주를 인수할 수 있는 행사가는 6800원이었다. 당시 주가보다 14% 낮은 가격이었다. 현 상황에서 돌이켜 보면 초대박 상품으로 너도 나도 청약에 뛰어들어야 할 대상이었다. 그러나 당시 선뜻 ‘사라(Buy)’는 투자 조언은 할 수 없었다. 기아차는 당시 국내·외 투자활동으로 현금흐름이 나빠지고 있었다. 2009년까지는 상당한 투자가 계획돼 차입을 통한 외부자금 조달이 불가피해 자금건전성도 단기적으로 볼 때 빠른 회복을 낙관하기는 어려웠다. 이 같은 위험보다는 가능성에 베팅한 투자자들은 대박을 거뒀다. 앞서 언급한 대로 기아차 주가가 BW 발행 당시의 10배로 뛰면서 워런트만으로 1000%의 수익을 거뒀다. 기아차 BW에는 8조원 가량이 몰리면서 경쟁률 20대 1을 기록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이보다는 소규모였지만 수익 규모는 다른 상품을 압도했다. 아시아나항공은 2009년 3월 운영자금 1000억원을 마련하려고 BW를 발행했다. 이 돈은 유류비, 외주수리비, 공항이용료를 감당하는 자금이었다. 아시아나항공도 힘든 시절을 이기기 위해 평소에 쓰지 않는 수단을 쓴 것이다. 워런트 행사가는 5000원이었다. 아시아나항공의 주가는 올 2월15일 1만2500원까지 올랐다. 수익률이 자그마치 150%나 된다.
BW와 CB가 투자자에게 항상 웃음을 주는 것은 아니다. 기초자산의 주가 흐름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코오롱건설은 2010년 9월 운영자금 250억원과 차환자금 750억원 마련을 위해 1000억원 규모 BW를 발행했다. 행사가액은 액면가인 5000원으로 행사가의 마지노선이었다. BW 발행 시 행사가격을 액면가 밑으로 낮출 수 없다.
코오롱건설 주가는 올 1월까지 기업가치 제고에 힘입어 5920원까지 올랐다. 이 때 BW를 근거로 신주를 샀다면, 투자자는 18.4%의 수익을 거뒀다. 그러나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미분양으로 중소 건설사의 주가가 주저앉자 코오롱건설 주가도 함께 휩쓸렸다. 올 4월 주가는 3705원까지 떨어졌고 지금도 4000원선에서 오르내린다. 5000원을 주고 신주로 바꾸는 권리는 현 주가만 놓고 보면 무용지물이 된 셈이다.
네오세미테크는 더 극단적 예다. 네오세미테크는 2009년 11월 350억원 규모의 CB를 발행했다. LED용 설비증설 등을 위한 자금 250억원과 운영자금 100억원을 마련하기 위한 조치였다. 한 달 후에 250억원의 BW를 추가 발행했다. BW는 제3자 배정방식으로 저축은행 세 곳에 배정됐다. 네오세미테크 부도로 CB와 BW의 권리는 휴지가 됐다.
대박 노린다면, 투자처로서 BW ≥ CB
CB는 청약한 만큼의 주식을 전환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 채권 그 자체를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상품이다. BW는 채권뿐만 아니라 추가로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를 준다. 플러스알파를 받는 혜택은 금리로 상쇄된다. CB는 BW에 비해 금리가 2∼4%포인트 높다. 투자 대상 기업의 주가가 행사가격 이상으로 오르지 않는다면 CB가 BW보다 좋은 선택이다. 미래 주가에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BW가 아닌 CB를 권한다.
확실하게 알아야 할 점은 BW가 주식 자체를 공짜로 주지는 않는다는 것. 행사가액으로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만 부여받게 된다. 그러나 권리 자체만으로 돈이 된다. 1000원짜리 주식을 500원으로 살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면, 이 권리를 사려는 수요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 이 권리로 주식을 사도 100%의 이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가 생기는 만큼, 증시에서 채권값은 깎인다. 시장에 나오면 15% 정도 할인되어서 나온다. 채권값이 1만원이라도 8500원이 시초가가 되는 식이다. 할인되는 특성 때문에 본의 아니게 종자돈이 물릴 수도 있다. 대개 2년 후부터 BW는 조기 상환이 이뤄진다. 원금보다 일정 부분 이자를 받아서 투자금을 돌려받으려면 최소 2년은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BW를 취급하지 않는 고수들도 많다. 일부 투자 전문가들은 BW를 투자할 바에는 ‘채권 30%, 주식 70%’로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형태를 택하기도 한다. 단기적으로 15% 안팎 빠진 금액으로 돈이 묶이는 것보다는 자체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식을 선호한 데 따른 결과다. 물론 BW가 단기간에 급등해서 할인폭을 상쇄한 뒤 더 높은 수익률을 만들어 내면, 채권을 할인된 가격에 팔고 단기 차익을 노릴 수도 있다.
CB가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BW가 CB보다 항상 좋은가?
답은 그렇지 않다. 더 큰 수익률을 선사하는 BW를 향한 쏠림 현상은 존재한다. 지난 5월 청약을 마친 두산건설 사례가 대표적이다.
두산건설은 건설경기 부진에 따른 실적 악화로 인해 훼손된 재무건전성 회복을 위해 CB와 BW 발행을 결정했다. 각각 1000억원씩 총 2000억원 규모를 발행했다.
결과는 극과 극이었다. BW는 1조4266억원이 모집돼 14.27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해 흥행에서 성공했다. CB는 1000억원 모집에 382억원 모집되는 데 그쳤다. 나머지 618억원은 CB발행을 주관한 9개 증권사가 떠안았다.
금리를 보면 CB가 이처럼 찬밥 대우를 받을 이유는 없어 보인다. 두산건설 CB는 표면이자율 연 4%, 만기이자율 7.5%를 지급한다. 3개월마다 지급하는 이자는 연 4%지만, 만기엔 연 3.5%의 금리를 추가 지급하는 구조다. 전체 만기는 3년이지만 1년6개월 뒤부터 조기상환을 요구할 수 있다. 조기상환 시에도 연 7.5%의 수익률을 받을 수 있다. 반면 BW는 표면이자율이 연 2%에 만기이자율 5.5%이다. 마찬가지로 만기는 3년이지만 조기상환 가능 시점은 발행 후 2년 뒤부터다. 이자율도 CB가 높고, 권리 행사 가능 시기도 CB가 빠르다. 금리 면에서는 CB가 유리한 구조다.
CB와 BW 간 다른 성질을 활용한 투자도 좋은 투자 전략이다. CB는 일정 기간 중 채권을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상품이다. 주가가 오르면 주식으로 바꾸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채권으로서 활용해 이자 수익을 노리면 된다. CB는 BW보다 보통 2~4% 이상 금리가 높다. 주가가 행사가격 이상으로 오르지 않는다면 CB 투자가 BW보다 나은 셈이다. CB와 BW가 동시에 발행될 때 해당 기초자산의 미래 주가에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BW가 아닌 CB에 눈을 돌려볼 것을 권한다.
채권처럼 접근하라
CB와 BW에서 투자자들은 미래의 대박만을 본다. 주식처럼 투자한다는 얘기다. 주식투자의 본질은 기업의 미래가치 향상에 대한 베팅이다. 반면 채권은 정반대다.
주식투자는 영업활동의 변화가 1차적으로 반영되는 손익계산서 상의 변화에 주목한다면, 채권은 대차대조표에 주목한다. 영업활동을 포함한 전 기업활동을 통해 짜인 자본구조에 초점을 맞춘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미래보다는 과거에 방점을 둔 투자다.
CB, BW의 높은 수익률의 원천이 주식에서 비롯되긴 하지만, 투자 전문가들은 투자 여부를 결정할 때 채권처럼 접근하라고 조언한다. 미래가치란 기업이 존재한 뒤의 문제다.
이종채권이 기업의 생존을 위한 마지막 발악이 되는 경우가 심심찮음을 감안하면, 일단 버틸 수 있는 기업을 고르는 게 우선이라는 판단에서다. 회사의 존폐 불투명성까지 걸려 있기 때문에 “CB와 BW는 주식 투자가 아니라 위험성이 큰 파생상품 투자와 같다”는 말도 나온다.
현실적 수익 범위도 채권을 기준으로 살펴보는 게 합리적이다. 만기까지 보유한 이종채권의 수익률은 나쁘지 않다. 만기까지 보장하면 일정 기간마다 받는 금액에 플러스알파를 받을 수 있다.
채권을 만기까지 보유하고 주식이 오를 경우 워런트로 추가 수익을 내는 기본에 충실하라는 게 채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BW의 경우 3개월마다 지급하는 표면이자율보다 만기까지 보유했을 경우 지급하는 만기보장수익률이 3~4%포인트 이상 높기 때문에 오래 보유하면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다.
기아차 BW는 3개월마다 지급하는 표면금리는 연 1%에 불과하지만 만기보장수익률은 5.5%다. 3년 동안 보유하고 있으면 총 14.5%(연 4.5%의 복리)의 이자를 추가로 받게 되는 셈이다.
안정된 이종채권 투자를 위한 가장 간편한 방법으로는 신용등급 하한선을 두는 것이다. 기준선으로 BBB-가 꼽힌다.
CB와 BW 공모 일정은 공시에 나온다
서울 논현동 두산건설본사
CB나 BW 공모는 공시로 외부에 알려지기 2주일 이전에 정보가 밖으로 새어 나가면 공시위반이다. 일정 자체가 공정공시 사항이기 때문. CB나 BW에 관심이 있다면 금감원 전자공시나 경제신문에 나오는 공시를 꼼꼼히 체크해야 한다. CB와 BW 발행을 위한 공시는 ‘투자설명서’라는 제목으로 이뤄진다.
[김대원 / 매일경제 증권부 기자 egofree@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