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가 세계 증시를 강타한 지 불과 3년여 만에 주요국 재정위기가 촉발한 소버린 쇼크가 다시 세계 투자자들을 쇼크에 빠뜨렸다. 과거 10년 정도 주기로 오던 글로벌 위기가 이제는 숨 돌릴 틈조차 주지 않고 찾아온다. 이 위기를 위기로 끝낼 것인가, 아니면 기회로 활용할 것인가.
Strategy Ⅰ글로벌 위기 때 낙관론자가 승리했다
1929년 세계 대공황, 1973년 1차 오일쇼크, 1978년 2차 오일쇼크, 1987년 블랙 먼데이(검은 월요일), 1988년 미국 저축대부조합(S&L) 연쇄 파산, 1991년 걸프전쟁, 1992년 유럽통화 위기, 1994년 멕시코 페소화 급락,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1998년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파산, 2000년 닷컴 버블 붕괴, 2001년 9.11테러, 2002년 엔론 회계부정 사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소버린 쇼크(유럽·미국 재정위기)….
20세기 들어 글로벌 경제위기와 주가폭락을 불러 온 사건들인데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된 1980년 후반 이후 발생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위기 때는 예외 없이 주가가 폭락했다. 그 위기는 많은 사람들의 신분을 변화시켰다. 위기 이후 상승장을 잘 타면 신분상승의 기회를 얻었고 반대로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도 부지기수다. 투자자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대공황 이전 한 국가 또는 지역의 경제적 어려움은 파급력이 국지적이었다. 하지만 대공황 이후 상황은 완전히 달라져 한 국가의 위기는 빠른 속도로 전 세계로 확산된다.
1928년 조금씩 그 징후를 보였던 대공황은 1929년 10월 24일 ‘검은 목요일’로 알려진 뉴욕 주식시장의 대폭락에서 시작됐다. 주가 폭락으로 촉발된 패닉은 주식을 비롯한 자산 투매로 이어졌고, 그 결과 극심한 자산 가격 하락을 유발했다. 실물경제에서 인플레이션이 재래식 폭탄이라면 디플레이션은 원자폭탄이나 수소폭탄 수준이다.
대공황의 파문은 세계로 퍼져갔다. 요즘처럼 정부 간 공조는 생각할 수 없는 시대였다. 특히 유럽과 일본 등 미국과 긴밀한 경제 관계를 맺고 있었던 국가들이 재앙을 맞았다. 미국 시장이 위축되면서 미국과 교류가 많았던 영국과 독일에서 대규모 실업이 발생했다. 일본도 주식시장이 폭락하면서 수백 개 기업이 줄도산했다. 이는 일본의 대륙 침략 전쟁을 촉진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브라질 등 중남미 국가들도 대공황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대공황은 이후 발생한 글로벌 경제위기의 전형을 제시했고 경제위기 때 국가가 적극 개입하는 케인즈 경제학을 세계화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반복되는 글로벌 경제위기
역사는 반복된다. 대공황 이후 세계 경제는 더욱 끈끈하게 이어졌고 잊을 만하면 다시 대형 위기들이 발생했다. 원인은 여러 가지다. 글로벌 경제위기는 대공황 이후 수십 년 간 뜸했으나 1980년대부터 발생 빈도가 늘었다.
약 10년마다 한 번씩 증시 폭락을 초래하는 대형 사건이 발생하는 경향이 있어 ‘10년 주기설’을 주장하는 사람도 나왔다. ‘불황→회복→ 과잉투자→호황→주가 급등→ 과열→버블 붕괴’로 이어지는 과정이 10년마다 반복된다는 얘기다. 주로 부동산 등 실물 자산과 연계된 부실 채권을 지나치게 많이 보유한 금융기관의 연쇄 파산에서 위기를 키웠다는 점도 닮은꼴이다.
약 10년마다 한 번씩 증시 폭락을 초래하는 대형 사건이 발생하는 경향이 있어 ‘10년 주기설’을 주장하는 사람도 나왔다. ‘불황→회복→ 과잉투자→호황→주가 급등→ 과열→버블 붕괴’로 이어지는 과정이 10년마다 반복된다는 얘기다.
1987년 이른바 블랙 먼데이는 대공황의 망령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1987년 10월19일 뉴욕 증시는 20% 이상 폭락했고 영국과 홍콩, 일본 등 주요국 증시로 이어졌다. 블랙 먼데이는 미국의 재정적자 등 실체적 문제와 주식 프로그램 매매가 결합돼 촉발된 위기였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와 LTCM 사태가 발생했다. 두 사건은 직·간접적으로 서로 연관돼 있다.
다시 10년 후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사실 금융위기는 2007년 초부터 그 조짐이 보였다. 다만 터지기 전까지 ‘설마’하는 안일함이 있었을 뿐이다. 미국의 지속적인 저금리 정책으로 세계의 유동자금이 풍부해졌고 부동산에 대한 낙관론이 팽배했다. 금융기관들은 다양한 모기지 대출 채권을 묶어 이를 담보로 새로운 채권을 만들어 파는 파생 금융기법을 마구 동원했다.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기 전까지 이런 기법은 대출 후 빨리 현금을 확보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었다. 급기야 모기지 회사들은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에게까지 대출을 무분별하게 늘려 나갔다. 그 결과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규모가 비정상적으로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고 시중금리마저 상승하자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이 급증했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업체들은 위기에 몰렸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담보로 발행된 채권에 투자했던 금융회사들과 헤지펀드들이 감당하기 힘든 손실을 본 것으로 드러나면서 금융위기가 본격적인 국면에 들어섰다.
2007년 7월 미국의 5대 투자은행 중 하나였던 베어스턴스가 헤지펀드 손실을 밝혔고 이듬해인 2008년 3월 JP모간에 넘어갔다. 미국 2위의 독립 모기지 대출업체인 인디맥이 2008년 7월 문을 닫았고 이어 리먼 브라더스가 9월 파산 선고를 받으면서 미국을 비롯한 유럽과 아시아 주식시장은 연쇄적으로 대폭락하는 상황으로 악화됐다.
2008년 금융위기와 2011년 소버린 쇼크
글로벌 금융위기가 이전의 충격과 달랐던 것은 회복이 상대적으로 빨랐다는 점이다.
미국과 유럽 증시는 2009년부터 오르기 시작해 3년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그 원동력은 미국과 유럽 등 각국 정부의 정책 공조였다. ‘제로 금리’ 정책을 유지하면서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서브프라임모기지로 부실이 심했던 금융권에 구제 금융을 단행했다. 특히 미국 정부는 투자은행의 부실이 실물경제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두 차례에 걸쳐 막대한 자금을 푸는 양적완화(QE) 정책을 썼다. 미국은 달러를 거의 무제한 시장에 공급했고 주요국 정부도 이와 비슷한 조치를 취하면서 글로벌 정책 공조에 나섰다.
이에 힘입어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이머징 국가들은 2009년과 2010년 주가가 반등했다. 유럽과 일본발 위기설이 심심치 않게 제기되고 이런저런 돌발사건 때 일시적으로 약세를 보이기도 했지만 강하게 반등하는 주식시장을 막지는 못했다. 코스피는 2010년 말 금융위기 이전 수준인 2000선을 돌파했다.
최근 발생한 소버린 쇼크의 징후는 금융위기 이후 끊임없이 제기됐다. 특히 그리스와 포르투갈 등 남유럽 국가들의 부채비율이 높아 글로벌 주식시장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독일과 프랑스 등 유로존의 주요 국가들은 구제금융을 통해 그리스와 아일랜드,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의 재정적자 위기를 해결하려 했다. 그럼에도 재정위기는 좀처럼 진정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최근에는 미국마저 소버린 위기에 직면했다. 신용평가사인 S&P는 미국 재정적자 수준이 높다며 신용등급을 끌어내렸고 이 여파로 전 세계 주식시장은 몇 일간 폭락 장세를 연출했다.
2008년 금융위기나 2011년 소버린 쇼크나 원인은 다르지만 글로벌 증시 폭락의 뇌관이 매머드급이라는 점은 똑같다.
전개되는 과정도 비슷하지만 현재 처한 상황이 다르기에 대응 방안을 다르게 나온다.
우선 한국에선 2008년 8월 말 약 2400억 달러였던 외환보유액이 2011년 6월 말 현재 약 3100억 달러로 늘었고 단기외채 비율도 금융위기 때 보다는 양호한 편이다. 더욱이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높아졌고 실적도 많이 개선됐다.
올해 3분기부터 소버린 쇼크 영향으로 실적이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한국 주요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져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강하게 나온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국내 외화건전성 규제가 많이 개선됐고, 각종 외화유동성 지표도 과거보다 훨씬 좋다”며 낙관론을 폈다.
그렇지만 2008년 금융위기 때에 비해 대응할 수 있는 무기가 줄었다는 점에서 신중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동안 글로벌 경제의 버팀목이었던 미국의 경기부양 실탄이 떨어졌다는 것. 이 때문에 3차 양적완화가 거론되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유동성을 늘린다고 소버린 쇼크가 극복되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3차 양적완화를 발표하는 순간 글로벌 주식시장의 충격은 더 커질 것”이라며 “소버린 쇼크는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로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도 “미국을 비롯한 유럽 등 주요 선진국이 정책 공조로 내놓을 방안이 거의 없다는 게 소버린 쇼크의 심각성”이라며 “이 때문에 예상보다 더 오래 주식시장이 출렁거릴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 경험으로 볼 때 글로벌 위기로 자산 가격이 급락할 때는 좋은 투자 타이밍이었다. 다만 앞으로 닥칠 위기의 전개방향이 과거와는 다르기 때문에 선별적인 투자, 빠르게 움직이는 투자가 유효해 보인다.
[장박원 / 매경경제 증권부 차장 jangbak@mk.co.kr]
Strategy Ⅱ널뛰기 장 현금 들고 기회 봐라
KT본사
재테크 전문가들은 패닉에 빠질 정도로 변동성이 큰 시장에선 투자전략을 세우기가 가장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매일경제신문이 재테크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구한 결과 10명 가운데 8명은 “지금은 현금을 보유하고 있을 때”라는 답변을 내놨다. 투자자산 가운데 대략 30~50% 정도는 현금으로 보유하고 있다가 기회를 노리라는 것이 이들이 내놓은 투자전략의 핵심이다. 그러나 현금으로 100% 가지고 있지 않을 바에야 변동성 장세에 적합한 투자전략을 세워 적극적으로 공략하는 게 현명하다고도 할 수 있다.
레버리지 인버스 ETF를 적절히 활용해라
금융위기나 재정위기와 같은 매크로 경제 변수에 영향을 심하게 받는 증시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종목이 일제히 오르고, 일제히 내린다는 것이다. 일종의 패닉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묻지마 투매 현상이 나타난다. 이런 상황에서는 코스피의 방향성을 감안해 패닉이 과도하게 시장을 지배해 폭락할 때는 지수를 사고, 기술적인 반등이 너무 강하게 나타날 때는 지수를 파는 전략이 상당히 유효하다. 적합한 상품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인덱스와 동일하게 움직이는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하는 것이다.
인버스ETF는 코스피가 하락할 경우 돈을 버는 청개구리 ETF다. 물론 지수가 오를 경우에는 그 만큼 손해를 본다. 유럽 재정위기나 미국의 경기침체 등이 예상 밖으로 길어지거나 충격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에는 인버스ETF를 사는 전략을 구사한다. 또 하나는 레버리지ETF다. 레버리지ETF는 8월 변동성 증시의 최대 히트 상품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변동성이 큰 8월에 거래량이 전달에 비해 5~6배나 증가하기도 했다. 레버리지ETF는 코스피가 오를 경우 수익이 나는데, 지수 상승률보다 두 배 높게 오른다. 예를 들어 지수가 3% 오르면 레버리지ETF는 6% 오른다. 물론 수수료 등을 감안하면 이보다는 약간 낮지만 오를 땐 지수의 두 배 오르고, 떨어질 땐 지수의 두 배로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쉽다. 일반 지수 투자상품보다 위험이 두 배 높다. 그러나 펀더멘털과 관련 없이 코스피가 패닉에 빠져 너무 많이 빠졌다는 판단이 들면 레버리지 ETF에 투자하는 스마트 개미들이 적지 않다. 실제로 코스피가 공포에 빠져 10% 가까이 빠진 8월9일 레버리지ETF 거래량이 급격히 증가하기도 했다.
ELW 대박 환상은 버려라
무려 두 배씩 오르는 레버리지 ETF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일부 투자자들은 증시에 상장된 주식워런트증권(ELW)에 눈을 돌리기도 한다. ELW는 일종의 옵션이나 마찬가지다. 풋ELW를 사면 특정 행사가격에 ELW를 팔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주가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면 풋ELW를 산다. 콜ELW는 이와 반대다. 특정 행사가격에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주가가 오를 것으로 예상되면 콜ELW를 사면된다. 주가가 급등락하면서 평소 같으면 휴지통에 들어가야 할 ELW 가격이 갑자기 수백 배, 수천 배씩 뛴다. 이번 8월 초 변동장에서도 이런 사례가 종종 나왔다.
그러나 이는 이론상의 수익률일 뿐이다. 거래량이 적고 순식간에 급등락하면서 거래량이 늘기 때문에 실제로 이만큼 수익을 내는 것은 쉽지 않다. 변동성을 기대하며 가능성이 대단히 낮은 ELW에 베팅하는 것은 일종의 도박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계해야 한다.
주가 떨어진 배당주에 관심을 기울여라
주가가 펀더멘털과 무관한 증시에서 매크로 환경을 예측하며 방향성을 찾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날마다 급등과 급락을 추격하며 매수 매도를 하며 수익률을 내는 건 유능한 펀드매니저라도 쉽지 않다.
이런 때는 아예 주가가 많이 떨어진 기업 가운데 배당을 많이 하는 기업을 찾는 것도 방법이다.
통상 여름철은 고배당 주식들이 주목 받기 전 미리 사들이는 적기다. 8월 초 주가가 폭락하면서 확실한 수익 안전판인 고배당주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매일경제신문이 최근 대신 대우 동양 삼성 신영 우리 유진 현대 등 8개 증권사 리서치센터에 의뢰해 투자유망한 고배당주 3개씩을 각각 추천받은 결과 1위는 5표를 얻은 KT가 선정됐다. 전통적으로 통신업종은 배당수익율(1주당 배당금을 주가로 나눈 금액)이 짭짤한 업종으로 분류된다. KT도 2009년과 지난해 두 해 연속 투자자들에게 연말기준 5% 안팎 배당수익률을 안겨줬다. LG유플러스의 경우 실적에 대한 전망은 다소 어둡지만 주가가 너무 많이 떨어졌고 과거와 같은 배당성향(순이익에서 배당금이 차지하는 비중)을 유지할 전망이어서 복수 추천을 받았다.
카지노주 경쟁자인 강원랜드와 파라다이스는 최근 3년간 50%에 육박하는 현금 배당성향을 보였다. 강원랜드는 상반기 실적이 저조하지만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로 테이블 증설 가능성이 높아져 중장기 실적 개선이 기대된다. 파라다이스는 최근 중국인 입장객 증가 등으로 인해 실적이 좋아졌다. KT&G도 최근 3년간 40%대 현금 배당성향을 보였다. 최근 홍삼 화장품 등 신사업과 국외 시장 개척으로 성장성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중이다.
SK텔레콤·LG디스플레이·기업은행·부산가스·외환은행·전북은행·진로·진로발효·휴스틸·휴켐스·신도리코 등도 고배당주로 추천받았다. 특히 외환은행의 경우 대주주 론스타의 이익회수 때문에 올해 배당수익률이 13%를 넘어설 전망이다.
그러나 고배당주라 하더라도 주가가 떨어지면 도루묵이기 때문에 될 수 있으므로 영업이익률이 높으면서 배당수익률도 좋은 회사를 찾아야 낭패를 보지 않는다.
PBR 1배 미만 기업 중 옥석을 가려라
위기가 닥치면 변동성이 커지고 주가가 크게 폭락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장기적인 투자를 고려하면 이때는 좋은 주식을 싼 가격에 살 수 있는 기회다. 싼 주식을 고르는 기준으로는 단연 주가수익비율(PER)과 주당 순자산가치(PBR)이다. PER의 경우 주당순이익(EPS)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지금처럼 실적이 악화될 것이라는 염려가 계속 나오고 있을 땐 제대로 된 PER를 계산해 내는 게 만만치 않다.
투자 대상을 고르는 또 하나는 대안이 바로 PBR이다. PBR이 1배 미만이라는 것은 어떤 기업의 주가가 청산가치만도 못하다는 얘기다. 8월 초 증시 폭락으로 주가가 청산가치만도 못해진 주식이 수두룩하게 등장했다.
8월 11일 종가 기준으로 시가총액이 순자산가치보다 못한 기업이 946곳으로 전체 상장사 1746곳의 54.2%나 됐다.
헐값 주식의 대표적인 예가 포스코다. 지난 7월 말 50만원을 바라보던 주가는 소버린 쇼크로 40만원 밑으로 급락했다. 포스코의 부진에 동반해 중형 철강업체 주가도 대거 청산가치보다 낮은 수준으로 밀렸다. 조선주에서는 현대미포조선, STX그룹주(조선해양, 팬오션, 엔진, 메탈)가 PBR 1배 밑으로 주가가 떨어졌다. 대기업인 효성과 KCC, 그룹의 지주사인 CJ SK 코오롱 한진해운홀딩스 웅진홀딩스도 순자산가치 대비 시가총액이 낮은 수준으로 주가가 급락했다. 통신주인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내수주인 롯데칠성도 PBR 1배 미만으로 돌아섰다.
명심해야 할 것은 PER가 낮다거나 PBR이 1 미만이라고 해서 경계심을 풀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재정위기가 지속될 경우 기업의 실적은 언제든 추가 악화될 수 있고 청산가치 평가도 변할 수 있다.
[황형규 / 매일경제 증권부 기자 hwang21@mk.co.kr]
Strategy Ⅲ경제위기 때 강남 부자들 이렇게 움직였다
#1. 강남지역 증권사 지점에는 향후 증시 반등을 노리고 새로 증권계좌를 개설하려는 투자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증시가 폭락한 이달 3일부터 10일까지 시중 A증권사의 강남 3개 지점에서의 신규 계좌는 총 59개로 이전 주 29개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최근 가격이 크게 떨어진 이탈리아와 스페인 국채, 유럽 은행주를 사려는 문의 전화도 심심찮게 걸려온다고 한다.
#2. H증권사 압구정동 PB센터 고객 김상영(가명) 씨는 최근 2년간 투자한 5개 펀드의 평균 수익률이 20%에 이른다. 지난달 말까지만 하더라도 30%가 넘던 것이 폭락장을 거치며 10% 넘게 빠졌다. 김 씨는 최근 증권사 담당 PB에게 전화를 걸어 펀드환매시기를 의논했다. 잠정 결론은 코스피가 1900선까지 반등하면 펀드 수익을 일부 실현하고 현금 비중을 높인다는 것. 김 씨는 “오르더라도 크게 오르기는 어렵지 않겠느냐. 세계 경제가 더블딥에 빠질 가능성에 대비해 주식 비중을 조금씩 줄여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일부는 하락기 적극 저가매수 나서 유럽 재정위기 해결까지 관망파도
“많이 떨어진 지금이 저가매수할 절호의 찬스다” VS “추가 조정은 분명히 온다. 주식비중 줄이겠다”
8월 초 기록적인 증시 폭락을 겪으며 개인투자가들이 갈팡질팡하고 있다. 이런 때 주식비중을 늘려야 할 시점인지, 반대로 안전자산으로 이동해야 할 때인지 전문가들마다 말이 다르기 때문이다. ‘돈 냄새’에 관한 한 천부적 후각을 지녔다는 강남 부자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강남권 PB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기왕에 주식비중이 컸던 자산가들은 몸을 사리는 경향이 두드러진 반면 저가매수를 노린 신규 투자자금은 매수 타이밍을 저울질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 기류는 ‘일단 관망’ 쪽이 좀 더 우세해 보인다. 윤형원 삼성증권 강남파이낸스센터 부장은 “증시 전망이 나눠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유럽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분위기가 우세하다”고 말했다. 특히 이미 수익이 난 투자자의 경우 수익의 일정부분을 현금화한 후에 향후 재조정이 있을 때 다시 진입하는 전략을 수립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당분간은 ‘크게 먹기’보다는 ‘지키기’에 주안점을 두고 간다는 포석인 것이다.
삼성증권은 폭락장 직후인 지난 8월 11일 강남 한 호텔에서 SNI고객 100여 명을 대상으로 현재 위기의 원인과 전망, 대응책을 논의하는 조찬 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참석 고객들의 질문은 유럽 재정위기의 정치적 해결 가능성, 그리고 2008년 금융위기 때 구원투수 역할을 했던 중국이 이번에도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에 모아졌다. 이재경 삼성증권 상무는 “단기 코스피 전망을 묻는 질문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며 “미국, 유럽 문제가 사안의 본질이고 이것이 해결되지 않고는 본격 증시반등은 어렵다는 인식이 확고해 보였다”고 말했다. 저가매수를 겨냥한 자금들이 들어오고 있지만 아직은 자산 가운데 현금 비중이 높은 일부 고객들에 한정된 움직임이다.
정대영 KB투자증권 압구정PB센터 지점장은 “외부변수가 상황을 결정하는 지금 국면에서 중장기적 예측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다. 급락 후 단기반등에서 10% 이내 수익을 실현한 뒤 빠져 나올 것을 고객들에게 조언하고 있다”고 말했다.
급락 구간에서 거액의 자금이 들어온 펀드시장 역시 순유입 흐름이 오랫동안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내주식형펀드의 경우 이달 들어 16일 현재까지 1조5000억원이 순유입됐다. 김재홍 한국투자증권 여의도 PB센터 차장은 “1900선에 근접하면 환매 대기물량이 대거 쏟아져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런 움직임을 고려할 때 코스피가 반등하더라도 그 추세는 미약할 가능성이 있다.
주식 매집에 나선 고객의 경우에도 종목선택에 있어 과거와는 다른 패턴을 보이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낙폭이 과도했던 대형주 위주로 주식을 매수했다면 최근엔 중소형주 선호 경향이 두드러진다. 향후 성장가능성과 회복강도 등을 고려했을 때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으로 대표되는 대형주 보다 중소형주에 좀 더 전망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중소형주의 회복 속도가 대형주에 비해 빠른 이유로 ‘글로벌 경기 회복 불확실성’을 우선 꼽는다.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부사장은 “수출 중심의 대형주가 살아나려면 글로벌 경기 회복이 전제돼야 한다”며 “지금은 이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한 국면이므로 경기를 덜 타는 중소형주가 각광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현욱 유리자산운용 본부장은 “외국인 수급과 대치관계에 있는 대형주보다는 중소형주의 상승 탄력이 클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안전성’을 우선시하는 고객들에게 PB전문가들이 추천하는 투자상품은 대략 몇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절대수익 추구형 펀드로 시장 상황과 무관하게 수익을 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헤지펀드가 대표적이다. 국내에는 아직 헤지펀드가 도입되지 않았지만 해외 헤지펀드를 묶어서 파는 펀드오브헤지펀드에 투자할 수 있다. 일반 공모형 펀드 중에서도 롱쇼트 등 헤지펀드형 운용전략을 채택한 펀드들이 있다. 이들 펀드들은 일반 국내주식형 펀드에 비해 급락장에서 좋은 방어율을 보이고 있다.
보수적 투자자들 사이에선 주식보다는 채권 등 안전자산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진다. 윤형원 삼성증권 부장은 “물가채와 브라질 채권에 대한 문의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브라질 채권은 헤알화 환율 변동 가능성이 리스크로 지적되지만 올림픽과 월드컵을 앞둔 데다 자원 대국이라 국채 위험보다는 상대적으로 높고 안정적인 투자처로 여전히 인식되고 있는 분위기다.
주가연계증권(ELS)은 급락 구간에서 손실 우려를 낳기도 했으나 지금은 오히려 안전한 투자처로 주목받고 있다.
ELS는 최근의 주가 급락으로 손실 발생 구간이 낮아져 상대적으로 안전해진 데다 은행예금이나 채권보다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 펀드나 랩상품에 가입한다면 월 지급식을 고려해 볼 만 하다. 월 지급식 상품은 사전에 약정한 수익률만큼을 매월 지급하는 구조다. 고액 자산가들이 생활비를 충당할 목적에서 월 지급식에 가입한다기보다는 수익이 날 때마다 현금화하는 안정적 투자 전략으로서의 의미가 보다 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