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은 작다. 분당, 평촌 등 1기 신도시 인구가 45만~55만여 명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아직 7만 명 수준인 과천은 신도시라는 이름이 낯간지러울 정도다.
과천 시민들은 스스로를 ‘과천 중독자’라 부른다. 과천은 시민들 주거 만족도를 묻거나 전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에 대한 설문조사를 할 때마다 1순위에 꼽히고 있다. 관악산과 청계산, 우면산, 응봉산이 둘러싸고 있어 경관이 뛰어나고 쾌적해 ‘전원도시’로 이만한 데가 없기 때문이다. 1990년대를 전후해 과천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집값과 투기바람이다. 도심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녹지를 향유하면서도 집값 프리미엄까지 누리는 ‘일석이조’ 생활은 웬만한 강남 중산층 거주자들에게조차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내년이면 꼭 30년을 맞이하는 ‘전원 명품도시’ 과천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지난 7월 수년간 진통을 거듭하던 세종시 이전이 원안대로 추진될 것이 확정된 이후 과천에는 먹구름이 가득하다.
과천 공무원들이 대거 과천을 빠져나가면 ‘유령도시’로 전락해 지역경제가 파탄날 것이라는 우려가 지역민들 사이에서 감돌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과천의 과거는 행정수도 이전 계획으로 흥했고 이제 행정수도 이전 계획으로 위기에 처했다.
1967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이른바 ‘행정수도 백지계획’이 추진됐다. 이는 지금 세종시가 들어서는 조치원, 공주 일대에 16년간 인구 50만 명 규모의 행정수도를 건설한다는 계획이었다.
행정수도 이전 계획에 따라 명암
그러나 1979년 박 대통령의 서거로 행정수도 이전 계획은 전면 중단됐다.
이에 따라 임시행정수도 건설 전 서울에 남아 있을 중추 행정기능 중 일부를 서울 인근으로 분산 배치할 위성행정도시 건설에 더 무게가 실렸는데, 이 과정에서 태어난 것이 과천신도시다. 30년 전 행정수도 이전 계획이 좌절되면서 본궤도에 올랐던 과천신도시가 행정수도 이전 계획의 축소판인 세종시 추진 원안이 확정되면서 공동화 위기론이 제기되는 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과천은 도시 전체에 방호 개념과 디자인 개념이 도입된 국내 첫 계획도시 개발 사례이기도 하다. “정부청사 위치만 하더라도 그냥 녹지가 풍부해서 거기에 만든 게 아닙니다. 당시는 안보적 측면이 예민할 때였어요. 신도시이자 정부 주요 부처가 들어서는 곳은 북의 대포 사거리에서 벗어나야 했고 한강 이남에 있어야 했어요. 관악산 기슭에 위치해 과천은 그런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죠. 박 대통령이 관악산을 지명할 때는 여러 가지가 고려된 겁니다.” 1979년 당시 과천 기본계획 수립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던 박병주(85) 홍익대 명예교수는 빛바랜 기억을 더듬어 회고했다.
수도 서울, 특히 강남지역의 과밀화 현상을 해소하고자 구상된 과천신도시 건설은 영국의 뉴타운 개발 방식을 모방했다. 담장에서 건물 높이, 도로망, 스카이라인까지 모든 구조물을 일괄적으로 디자인했다. 상업지역은 시내 어디서나 5~10분 내 도착할 수 있도록 중심부에 집결시켰다. 1995년까지 아파트가 총 1만3000가구 건설됐고 최근 수년 사이에도 재건축에 따른 멸실과 신축이 반복되며 비슷한 수치를 유지하고 있다.
박병주 교수는 “도시 입면 자체가 쾌적성을 추구했으며 어디서든 산을 볼 수 있고 환경오염 등 문제가 차단되도록 설계됐다”며 “서울, 청와대와의 연계성, 중앙공원 등 모든 측면에서 이후 설계된 신도시와 비교해도 여전히 가치가 탁월하다”고 평가했다.
신도시 건설계획 이후 과천 발전은 급속도로 진행됐다. 과천시 통계에 따르면 과천청사 건설이 확정된 1978년 과천 인구는 1만7084명에 불과했지만 1984년에는 6만948명, 지난해 기준으로는 7만2382명에 이르렀다. 주민들의 생활수준도 급격히 향상됐다. 1999년 개인 월평균 소득은 199만5000원이었지만 지난해 기준으로 4246만원으로 두 배 이상 껑충 뛰었다. 이는 소득 수준이 높은 외지인들이 꾸준히 과천으로 전입을 해온 결과다. 그저 살기 좋은 도시로 알려졌던 과천이 수도권 ‘땅값’, ‘집값’의 대명사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개발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다.
과천은 당시 전체 면적의 92.2%가 그린벨트로 묶인 대표적인 전원 주거지였다. 녹음 속에 고요하기 짝이 없는 신도시가 설립 초기부터 투기바람에 휩싸인 것은 바로 이 ‘녹지’ 때문이다.
과천은 입주가 완료된 1980년대 초부터 지역 내 그린벨트가 대거 해제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실례로 1980년대 초 갈현동에 고속도로가 난다는 소문이 생기자 한 달 만에 그린벨트 녹지 내 땅값이 2만~3만원씩 치솟았다. 당시 주암리 갈현리 일대 논밭이 3.3㎡당 5만~6만원 수준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상승폭이 얼마나 빨랐는지 짐작이 된다. “투기지역화되고 외지인이 막 들어오니까, 뭐랄까 순박함이 없어지고 돈이 지배하는 동네가 되더라고. 공화당 시절에 서울의 큰손들이 다 과천으로 왔어요. 1980년대 최고의 투기지역이었지요.” 갈현동에 거주하고 있는 과천 원주민 이용진씨(87)가 <과천시보>에 털어놓은 회고담이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이후 정부가 그린벨트 해제를 발표하면서 원문동, 별양동 일대 주공아파트에 건축추진위원회가 줄줄이 구성됐다. 소형 5층 아파트 68개동 3110가구를 중대형 고층아파트 5000여 가구로 재건축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과천 집값이 다른 1기 신도시를 훌쩍 뛰어넘어 강남을 제외한 타 지역의 매매가까지 앞지르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부터다. 부동산뱅크에 따르면 1993년 아파트 3.3㎡당 가격은 과천 516만원, 분당 497만원, 일산 433만원, 평촌 402만원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
1980년대부터 상승하다 ‘유령도시’ 괴담 돌며 추락
그러나 과천시 아파트값은 1990년대 후반 IMF 사태 충격을 빠르게 극복하며 3.3㎡당 941만원을 기록, 인근 평촌신도시 아파트값 3.3㎡당 515만원의 거의 두 배에 달했다.
본격적인 상승은 2001년부터였다. 부동산 활황기의 수혜를 받으며 2001년 1320만원이었던 3.3㎡당 가격은 2002년 1773만원으로 1년 사이 34%가 올랐다. 부동산뱅크 이서호 연구원은 “과천시 아파트는 저층 재건축이 다수인 아파트로 강남 재건축의 호재가 전파될 수 있어 1기 신도시에 비해 상승 재료가 많았다”고 말했다. 버블세븐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최고점을 찍던 2006년에는 과천시 아파트는 1년간 60%가 상승한 3.3㎡당 3752만원을 기록했다.
정부과천청사는 오는 2012년부터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 등 총 9부 2처 2청과 36개 산하기관이 이전한다. 과천을 떠나는 공무원은 1만 명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과천시 인구가 아직 7만9000여 명 남짓인 것을 감안하면 총 인구의 12%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도시를 떠나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셈이다. 한때 ‘준강남’으로 대표되던 과천이 ‘유령도시’로 전락할 수 있다는 괴담까지 등장한 것은 그만큼 과천에서 공무원들의 주거 밀집이 갖는 상징성이 크기 때문이다.
중앙동 내 G공인중개사무소 임모씨는 “과천이 교육편의 인프라는 다소 미비하지만 공무원 등 중산층 이상 안정적 주거배후지로서 프리미엄이 보장돼왔는데 그런 프리미엄 자체가 청사 이전으로 사라지는데 좋아할 주민이 누가 있겠냐”고 말했다.
집값은 주택 경기 침체와 더불어 지역 공동화에 대한 우려로 매매 값이 연초 대비 최고 2억원씩 ‘뚝’ 떨어졌다. 지난 5월 과천지역 네 개 아파트 단지의 재건축을 위한 안전진단이 통과됐지만 집값은 계속 추락만 거듭하고 있다. 과거 같으면 집값 호재로 떠들썩했을 법할 소식도 전반적인 침체 분위기와 정부청사 이전 여파 속에 파묻혀버린 셈이다. 가장 빠른 속도로 재건축이 추진되고 있는 원문동 주공2단지 59㎡는 올해 초만 해도 8억5000만원 안팎에서 실거래 됐다.
그러나 지금은 7억원으로 1억5000만원 떨어진 가격에서 급매물이 나오고 있다. 인근 부림동 주공8단지 89㎡는 올 초 7억8000만원 안팎에서 1억원 이상 빠진 6억5000만원 수준에서 매물이 나오고 있지만 매수 문의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다.
경기도와 과천시는 2005년 정비발전지구제도 도입과 개발제한구역 규제 완화, 청사 용지 무상 양여·사용 허가 등이 포함된 과천지원특별법 제정을 정부에 건의했다. 지난 8월엔 과천 정부청사와 공공기관 이전지 67만5000㎡에 대해 최고급 연구시설과 주거 여건을 갖춘 과학기술 연구개발 단지로 개발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긴 ‘과천종합대책’도 내놓았다. 문제는 이런 논의 자체가 계획일 뿐 이해 관계자끼리 어떤 합의점도 마련되지 않고 있다는 것. 현재 관련 법안은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고 수년째 잠들어 있다. 계획대로 교육·과학·연구 중심도시로 개발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가 땅과 건물 등을 무상으로 내놓고 그린벨트 해제 등이 해결돼야 하는데 경기도와 과천시는 청사 용지 활용에 대한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 게다가 시 전체 면적 중 약 90%가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있다.
경기도와 과천시는 청사 이전에 따른 공동화에 대비하기 위해 이미 결정된 그린벨트 해제 물량 205만㎡ 외에 추가로 과천경마장 일대를 포함한 250만㎡의 해제가 필요하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국토부 관계자는 “과천 북부지역(경마장 일대) 그린벨트 해제를 폭넓게 논의하겠지만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도 고려해야 한다. 일단은 현행법의 틀에서 공동화를 막는 대책부터 논의하겠다는 게 기본 방침”이라며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정부과천청사 부지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를 놓고도 무상으로 사용하게 해달라는 과천시 주장에 대해 중앙정부가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앞으로 2년 남짓 남은 본격적인 세종시 이전 시점까지 지자체와 중앙정부의 격렬한 대립이 벌써부터 예고되고 있는 상황이다.
■ 풍수지리로 풀어본 과천의 흥망성쇠
정부청사의 세종시 이전으로 흥망성쇠의 기로에 선 과천의 운명을 풍수지리가들은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참여정부가 건설을 추진한 과거 세종시의 모태가 된 행정중심복합도시의 입지 선정에 한국의 풍수사 중 유일하게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던 고제희 대동풍수지리 학회장에게 얘기를 들어봤다. 과천의 산천과 풍수를 살펴보면 남쪽의 청계산에서 갈라져 나온 산줄기가 동, 서쪽을 둥글게 감싼 가운데 북쪽이 트이고 안쪽에 양재천이 흐르는 배산임수이자 남고북저의 지형이다.
과천에 있는 정부 제2종합청사 뒤편에 있는 관악산은 그간 과천이 행정도시로 제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해준다.
고제희 학회장은 “관악산은 ‘닭의 벼슬’처럼 화기(火氣)를 가진 산으로 관운이 높아 그간 별 탈 없이 국가를 통치하는 데 적당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러나 관악산의 동쪽 기슭은 관악산의 얼굴 쪽이 아닌 등 쪽에 해당되는 기가 센 터로 언제든지 외부로부터 그 기능이 내몰릴 수 있는 운명이었다”고 설명했다. 세종시로 청사 이전이 풍수학적 운명이라는 해석이다.
그렇다면 정부청사 이전 후 공동화를 막는 대안으로 논의 중인 교육과학연구 중심도시로서 과천의 풍수는 어떨까.
과천은 인재를 길러내는 땅보다는 관료가 활동하는 땅으로 더 적합하다는 것이 풍수 전문가의 의견이다. 고 학회장은 “주변에 붓을 닮은 문필봉이 있거나 또는 책을 펼쳐놓은 책안(冊案)을 닮아야 지덕이 발동하면서 학자와 문장가가 배출되는데 과천은 붓이나 책을 펼쳐놓은 산들이 주변에 바라보이지 않기 때문에 교육과 과학의 인재를 키우는 땅으로 큰 덕을 지니지 못했다”고 말했다.
재물을 모을 수 있는 땅으로도 과천의 풍수지리적 입지는 좋은 편이 아니다. 과천시의 중심을 관통하는 양재천은 폭포수처럼 급히 흘러 빠지는 물이라 땅이 비옥해지기 어렵고 주변에 넓은 들판이 만들어지기 어려워 풍수지리 측면에서는 큰 부를 누리며 살기에 부족한 입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