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전략자산 이슈로 가상자산 시장을 한바탕 휘저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엔 스테이블코인(stablecoin)을 들고 나왔다. 달러 패권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스테이블코인이 유용하다는 것이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초 백악관에서 열린 디지털 자산 서밋 행사에서 “의회에서 달러 기반의 스테이블코인과 디지털 자산 시장에 대한 규제 확실성을 제공하기 위한 법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강력하게 지지한다”면서 “미국 달러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고, 의원들이 8월회 휴전에 그 법안을 제 책상으로 보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대통령이 지시한 대로, 우리는 미국을 세계에서 지배적인 기축 통화로 유지할 것이며, 이를 위해 스테이블코인을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언급대로라면 현재 가치가 안정적인 미 정부 차원의 공식 디지털 화폐가 없는 것을 감안할 때 트럼프 행정부는 민간에서 현재 유통되는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정책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산 스테이블코인으로는 테더로 불리는 USDT와 USDC가 있다.
관련 흐름은 미 의회에서 관련 법안이 통과되는 등 상당히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지난 3월 13일 미 상원 은행위원회는 관련 법인 ‘지니어스 법안(GENIUS Act)’을 통과시켰다. 주요 내용은 100억달러 이상이 스테이블코인으로 발행되면 주 정부에서 감독을 받게 된다. 발행을 위한 준비금은 미국 통화, 요구불예금, 국채 또는 기타 승인된 자산이어야 한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자는 승인받은 발행사가 발행하지 않은 스테이블코인을 포함해 보유 자산의 구성을 자세히 설명하는 월별 유동성 보고서를 발행해야 한다. 또 고액 거래가 진행될 때 실사도 받아야 한다. 이와 함께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기만적인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도 추가됐다.
스테이블 코인 정책 발표와 동시에 관련 입법 절차가 진행되는 것은 그만큼 시장 육성에 강한 의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장의 움직임도 바쁘다. 특히 금융권의 움직임이 눈에 띄는데, 이는 스테이블 코인이 향후 실물 화폐를 대체할 결제수단으로 자리잡을 수 있어 시장 선점을 위한 행보로 보인다. 실제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세계 최대 은행과 핀테크 업체들이 암호화폐로 재편될 것으로 예상되는 국경 간 결제 시장에서 한몫을 차지하기 위해 자체 스테이블코인 출시를 서두르고 있다”고 전했다. 먼저 뱅크 오브 아메리카는 자체 스테이블 코인 발행 의지를 보이고 있다. 브라이언 모이니한 뱅크 오브 아메리카 CEO는 지난2월 트럼프 행정부가 스테이블코인을 합법화한다면 해당 사업에 진출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스테이블코인은 분명히 존재하며, 완전히 달러로 뒷받침되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미 자체달러 고정 스테이블코인(PYUSD)를 보유하고 있는 페이팔은 올해 다양한 결제 옵션을 출시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스탠다드차타드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와 협업을 통해 시장에 진출할 계획을 갖고 있다. 그 일환으로 싱가포르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체인 스트레이츠엑스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스테이블코인 관련 글로벌 주도권 경쟁도 벌써 시작된 듯 보인다. 유럽연합(EU)은 이미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유통기준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으며, 영국 금융 당국은 올해 관련 사안에 대해 시장과 본격적으로 협의에 나설 계획이다. 이 같은 흐름을 두고 업계 일각에서는 ‘서부 시대의 골드러시’와 같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6년 전 메타의 리브라 스테이블코인이 규제 당국의 적대감으로 사라진 것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이란 평가다. 우리도 트럼프 정부의 움직임에 맞춰 관련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한참 뒤처진 상태다. 3월 초 당정이 ‘가상자산 시장 발전을 위한 민당정 간담회‘를 열고 디지털자산기본법 등 관련 법안을 빠르게 처리하겠다고 한 것이 다일 뿐, 스테이블코인 관련 논의는 아직 개시 조차 못한 상태다. 지난 1월 금융위원회가 가상자산 입법 관련 2단계에서 관련 논의를 한다는 방침만 나왔을 뿐이다. 게다가 우리의 경우 중앙은행 차원의 CBDC에만 집중을 해온 터라 스테이블코인과의 관계 정리부터 고민해야 할 처지다.
CBDC의 경우 3월 중 10만 명을 대상으로 실거래 테스트를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CBDC의 경우 기존 원화와 동일한 가치를 가진다는 점에서 스테이블코인과 성격이 비슷하지만 발행 주체가 중앙은행으로 발행 시 스테이블코인처럼 준비금 형태의 담보는 필요없다. 통화정책에 따라 국가가 발행하는 것이다.
여기서 드는 궁금증 한 가지는 왜 트럼프 대통령은 중앙은행 차원의 달러 디지털 화폐가 아닌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달러 패권을 유지하려는 것일까’이다.
이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기 위해서 준비금 형태의 담보물이 필요하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이란 스테이블(Stable)이란 단어의 뜻에서 알 수 있 듯이 안정적인 코인이란 뜻이다. 이는 다른 가상자산처럼 가격 변동성이 크지 않고,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뜻이다. 가상화폐가 실생활에서 결제수단으로 자리잡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극심한 변동성이다. 매일 화폐 가치가 달라진다면 결제를 할 때마다 소비자들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고 이는 안정성 측면에서 낙제점이다. 그런데 스테이블코인은 우리가 매일 쓰는 현금처럼 가치가 일정하게 유지된다. 이는 스테이블코인이 화폐와 사실상 연동돼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조건이 한 가지 붙는데, 바로 스테이블코인이 발행되는 양만큼 그에 상응하는 준비금이 마련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발행된 스테이블코인은 언제든 실물 화폐와 교환이 가능하다. 자연스레 스테이블코인은 화폐와 일대일의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준비금은 보통 법정화폐, 채권 등 공신력이 담보된 금융 자산들이 주로 쓰인다. 스테이블코인의 원조격인 테더(USDT)의 경우 달러와미 국채 등을 준비금으로 확보해 발행해오고 있다.
여기서 트럼프 대통령의 노림수가 자리잡고 있는데, 그는 스테이블코인의 준비금으로 미 국채의 활용 비율을 대폭 높이면 적자 상태의 미국 경제하에서도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가치를 유지하는 데 유리하다고 본다. 실제 스테이블코인의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꼭 달러를 준비금으로 마련할 필요는 없다. 달러 못지않은 신뢰도 있는 담보가 있다면 시장은 안심할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 보유자가 일대일 등가 원칙으로 언제든 교환만 할 수 있다면 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미 국채는 상당히 괜찮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있어 담보물이다. 달러 못지 않은 신뢰도에다가 게다가 미국산(産)이다. 시장은 미 국채를 준비금으로확보한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나오면 달러처럼 의심 없이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시장에 사실상 달러를 공급하지 않고서도 달러를 시장에 푸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사실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가치를 유지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구조상 무역수지가 적자를 보일 수 밖에 없다. 전 세계에서 달러를 공급하려면 미국은 해외에서 더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구입하고 그 대가로 달러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달러를 계속해서 찍어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달러를 찍지 않고도 그에 상응하는 방법에 트럼프는 반색하고 있는 것이다.
또 미 국채는 미 정부의 부채다. 국채를 시장에서 소화해내지 못하면 국채 금리가 뛰는 등 미 정부의 경제 운용에 압박을 가하게 된다. 하지만 스테이블코인 발행으로 수요가 계속 창출된다면 미 정부로서는 이보다 더 좋은 상황은 없게 된다. 미 정부의 부채 문제 해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스테이블코인 활성화를 통해 꾀하는 정책 목표가 바로 이것이다.
3월 상원에서 통과된 ‘지니어스 법안’에 미 국채가 준비금으로 쓰여야 한다고 규정된 것도 이 같은 구상에 기반한 것으로 보인다.
스테이블코인 활성화로 미 국채 선호도가 높아지면 이는 미국의 안보에도 보탬이 되는 측면이 있다. 그동안 미 국채 수요의 가장 큰 손은 중국이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수요처가 있어서 다행이긴 하지만, 중국의 미 국채 보유 한도가 계속 늘어남에 따라 안보 위기라는 부메랑은 항상 걱정거리였다. 실제 미·중 갈등이 계속되면서 중국은 미 국채를 계속 시장에 팔면서 미 경제에 압박을 가해왔다. 실제 2021년 말 1조 403억달러였던 중국의 미 국채 보유량은 지난해 말 7590억달러까지 줄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구상이 성공할지 여부는 별개의 이야기다. 민간에서 발행되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규제를 한다 할지라도 투명성 논란은 언제든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역시 핵심은 준비금 보유 여부다.
스테이블코인의 원조 격인 테더는 이미 이 문제로 홍역을 치렀고, 여전히 진행형이다.
2014년 리얼코인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테더는 스테이블코인 시장을 장악하면서 가상자산 업계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거듭난다. 전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역할로 업계에서 입지가 강화됐는데, 테더 발행량이 늘면 코인 가격이 뛴다는 속설까지 생겼을 정도다.
테더는 코인 규제가 느슨했을 당시 시장으로부터 발행된 총 USDT 물량과 동일한 가치를 가지는 준비금을 실제 보유하고 있는지를 두고 계속 의심을 받은 적이 있다. 결국 미 법무부 등으로부터 조사까지 받아야 했다. 아직까지 이 문제는 투명하게 결론나지 않은 상태다.
현재 스테이블코인 중 가장 널리 쓰이고 있는 것은 USDT와 USDC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테더와 서클이 미국 스테이블코인 산업 규제 추진에 있어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며 “두 기업의 경쟁 결과가 스테이블코인의 미래를 구축할 것이다”라고 전했다.
현재 스테이블코인 시장에서 USDT 점유율은 60% 이상이다. 하지만 투명성 문제에서 USDC가 다소 후한 점수를 받고 있다. 한 가지 눈여겨볼 부분은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가상자산 주요 인사들과의 만난 자리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는 USDC 창업자였다. USDT와 USDC는 현재 각각 1130억달러와 500억달러 규모의 미 국채를 들고 있다.
[문수인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5호 (2024년 4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