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피는 3D프린팅과 신소재 기술을 결합한 치아 교정장치 ‘형상기억 투명교정장치(Shape Memory Aligner)’를 개발한 회사다. 최근, 교정치료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일명 SMA 투명 교정장치는 기존의 투명 교정장치와 비교해 몇 가지 중요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기존의 투명 교정장치는 주로 PETG 진공 열성형 방식으로 제작되며, 이를 통해 플라스틱 페트로 만들어진 교정장치를 착용하게 된다. 그러나 이 방식에는 여러 가지 단점이 존재한다.
삐뚤빼뚤한 치아를 플라스틱 틀에 강제로 끼워 맞추는 형태이다보니, 착용 직후 환자는 고통을 겪게 되며, 치아와 교정장치 간에 강한 힘이 작용하게 된다. 이로 인해, 교정장치에 영구적인 변형을 일으키거나 플라스틱이 찌그러져 늘어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결국 교정장치의 영구변형으로 인해 교정력이 감소하는 현상도 나타난다.
반면, SMA 교정장치는 구강 내 형상기억 특성을 발현시켜, 교정장치가 착용되는 동안 지속적으로 치아를 부드럽고 꾸준히 감싸 안아 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구강 온도에서 형상이 복원되는 특성 덕분에, 교정장치는 착용 내내 치아에 빈틈 없이 완벽히 밀착되며, 교정력이 일정하게 유지된다. 교정장치의 영구적인 변형이 없기 때문에, 하루가 지나도 교정력의 변화가 없이 치아이동을 효과적으로 이어갈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2017년에 설립된 그래피는 3D 프린터용 신소재 개발 및 제조에 주력해왔으며, 특히 치과용 광경화성 소재 연구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치과·의료 분야는 제품의 정확도와 안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므로, 이 분야를 목표로 한 그래피의 행보는 설립 초기부터 기술력을 토대로 한 과감한 도전이었다.
그래피의 첫 번째 성공 포인트는 광경화성 3D프린팅 소재 자체를 직접 합성·제조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3D프린팅 분야에서 핵심은 ‘프린터 하드웨어’만큼이나 ‘소재의 물성’이다. 소재가 지닌 내구성, 형태 유지 능력, 치수 안정성, 생체 친화성 등이 제대로 갖춰져야 의료 분야에서 활용 가치가 커지기 때문이다. 그래피는 이러한 시장 수요에 맞춰 올리고머부터 자체 설계하고 합성하는 기술을 확보했고, 이를 기반으로 치과에서 직접 활용할 수 있는 맞춤형 솔루션을 개발해냈다.
그래피가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게 된 결정적 계기는 2018년 출시한 ‘형상기억 투명교정장치’ 덕분이다. 기존 투명교정장치는 열성형 방식을 통해 환자의 치아 모델 위에 진공 열융착해 제작하는 구조다. 반면, 그래피의 제품은 형상기억소재가 특정 온도(구강 내 온도)에서 원래 형태로 복원되면서 지속적이고 균일한 교정력을 제공한다.
의료 분야에서 무언가 ‘혁신’이라 불리려면 반드시 과학적 근거와 임상 데이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래피의 형상기억 투명교정장치는 이미 50편 이상의 임상 논문이 세계적 저널에 게재되어, 그 유효성과 안전성을 공인받았다. 실제 환자들의 사용 후기 역시 긍정적이며, 글로벌 교정 전문의들의 사례 발표를 통해 신뢰도를 더욱 높였다.그래피는 이러한 임상적 토대 위에서 AAO(American Association of Orthodontists), KAO(대한치과교정학회), SIDO(이탈리아 교정학회) 등 세계 유수 학회에 초청받아 기술력을 입증했다. 특히 2024년 10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린 제55회 SIDO 국제 학술대회에서는 그래피가 SIDO Innovation Awards 심사위원상(Jury Prize)을 수상하며, 그 기술력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이탈리아는 교정학 분야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국가이기에, 이러한 수상은 그래피가 글로벌 교정 시장에서 인정받았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그래피의 기술력이 더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국제 표준 제정 과정에서 주요 참여 기업으로 활약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4년 10월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개최된 ‘제60회 국제표준화기구 치과기술위원회(ISO/TC 106)’ 회의에 그래피는 대한치과의사협회와 함께 참석했다. 김훈 그래피 수석연구원은 “ISO 활동에 ILT(Interlaboratory Test) 및 NP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세계 3D프린팅 치과소재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전했다.
표준화 작업은 세계 시장에서 기술 지배력을 확고히 하는 핵심 전략으로, ISO 표준에 맞춰 전 세계 치과 교정장치가 생산·유통된다면 그래피가 실질적으로 시장을 주도하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짧은 기간 내 그래피가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배경에는 과감하고 지속적인 R&D 투자가 존재한다. 창립 이후 3D프린팅 소재와 치과용 제품 분야에만 누적 150억원 이상을 투입했고, 소재 물성 개선과 대량 생산 공정 자동화를 동시에 추진중이다. 이와 함께 철저한 품질관리로 ISO 13485(국제품질경영 표준)와 GMP(우수 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기준) 인증을 획득, 생산 공정의 안정성과 안전성을 증명했다.
치과 교정 시장은 2020년 약 70조원 규모에서 2030년에는 약 150조원대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거대 시장에서 그래피는 이미 90여 개국, 160여 개 거래처를 확보하며 글로벌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국제 전시회와 학회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홍보와 네트워킹을 진행했고, 해외 유명 치과 대학 및 병원과의 협업을 통해 임상시험과 현지 마케팅을 병행했다.
심운섭 대표는 이에 대해 “앞으로 교정 치료는 디지털화, 개인맞춤화가 핵심 키워드가 될 것”이라며 “그래피의 형상기억 투명교정장치는 이를 가장 잘 구현한 제품이라고 자부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래피의 글로벌 확장 전략은 2025년을 분기점으로 더욱 가속화될 예정이다. 미국과 중국에 현지 법인을 설립해 북미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현지 고객과의 접점을 늘려 매출을 빠르게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이는 세계 최대 규모의 치과 시장인 미국과, 높은 인구 대비 교정 수요가 급증하는 중국에서 본격적인 시장 점유율 확대를 꾀하는 행보로 풀이된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그래피가 단순히 3D프린팅 소재만 고도화하는 것이 아니라, AI(인공지능) 기반 스마트 로봇 시스템도 개발 중이라는 사실이다. 이미 형상기억소재를 활용한 3D프린팅 솔루션에 AI를 결합해, 더 정교하고 개인화된 교정장치를 자동으로 생산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그래피는 이를 통해 생산 효율성과 치료 정확도를 동시에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리는 AI 기술을 접목해 환자별 맞춤형 교정장치를 더 빠르고 정확하게 생산할 수 있는 자동화 로봇 시스템을 준비 중입니다”라고 회사 측은 설명한다. 이는 전통적 치과 교정 시장에 혁신적 변화를 몰고 올 수 있는 강점으로, 향후 교정치료 프로세스 자체가 디지털화·자동화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번 평가 결과로 그래피는 “3D 프린팅 기술력과 세계 시장에서의 성장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라고 밝혔다. 심 대표도 “이번 평가 결과는 그래피의 기술력과 미래 가능성을 공인받은 것”이라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연구개발과 혁신을 통해 치과 교정 분야뿐만 아니라 다양한 의료기기 시장에서도 선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피는 2024년 연말, 50억원 규모의 프리IPO 투자유치에 성공하며 누적 투자금 400억원을 돌파했다. 이는 국내외 투자자들이 여전히 그래피의 기술력과 시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그간 그래피는 설립 이래 연구개발, 생산시설 확충, 글로벌 마케팅 등에 과감한 투자를 진행해왔고, 이번 투자로 확보된 자금은 더욱 공격적인 세계 시장 공략과 기술 고도화에 쓰일 예정이다.
그래피의 다음 목표는 코스닥 시장 상장이다. 회사는 지난 1월 17일 상장예비심사청구서 제출을 완료했으며, 연내 코스닥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심 대표는 “이번 상장을 통해 조달한 자금은 미국 현지 법인 설립과 대량생산설비 구축 및 AI 기반 스마트 로봇 시스템 개발에 집중 투자할 예정”이라며, “우리는 치과 교정 시장에서 한 발 더 앞선 세계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밑거름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형상기억 투명교정장치는 기술적 혁신성과 임상적 가치를 모두 갖춘 제품으로, 가까운 미래에 교정 업계의 표준이 될 것”이라며 포부를 드러냈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3호 (2024년 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