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비트코인의 정중동 현상이 5개월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국내 거래소인 업비트 기준으로 1억원을 돌파한 후,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인 바이낸스 기준으로는 7만3000달러) 높은 변동성이 나타나는 속에서도 박스권을 유지하며 일정하게 움직이고 있다. 8000만원대를 지지선으로 삼으며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고 있다. 지난 8월 5일, 세계 증시가 초토화된 ‘블랙 먼데이’ 당시 비트코인 가격도 크게 출렁였지만, 이내 반등에 성공하며 박스권 내로 다시 복귀했다. 방향성 없는 지루한 장세는 가상자산 시장 투자자들을 지치게 하고 있다. 인내심이 바닥난 일부 투자자들은 반감기 이벤트가 벌써 끝난 것 아니냐는 불안감도 드러내고 있다. 동시에 시장에는 아직도 연말 강세장에 기대감도 여전하다. 과연 비트코인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비트코인은 현 달러 중심의 세계 경제 시스템에 대한 반감으로 탄생했지만, 여전히 거시 경제 환경과 밀접하게 움직이고 있다. 때문에 현재 전 세계 초미의 관심사인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 여부와 관련된 움직임에 따라 비트코인도 일희일비하고 있다. 비트코인의 방향성을 정할 주요 이벤트인 셈인데, 하지만 금리 인하가 경기 침체 여부와도 직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이슈가 비트코인 가격에 긍정적일지 부정적일지 예단하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경기 침체를 예측하는 지표들도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이에 따라 기술적 분석 지표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기술적 분석이란 가격 흐름을 나타내는 차트를 통해 방향성을 예측하는 방법을 말한다. 기술적 분석 기법 중 가장 흔히 사용되는 것이 장단기 이동평균선(이평선)을 활용하는 것이다.
현재 비트코인의 장기 이평선인 200일선은 추세적으로 상승하고 있지만, 20일선과 50일선이 하향 돌파한 상태다. 이는 데드크로스 상태로 20일과 50일 전에 비트코인을 매수한 이들이 손실을 보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국면을 차트 분석가들은 하방압력이 높은 것으로 해석한다. 일본의 일목산인이 개발한 일목균형표를 사용해도 하방 압력이 높다는 분석이다. 일목균형표에서는 전환선과 기준선의 교차 여부를 두고 강세와 약세를 판단하는데, 현재 상태는 약세 국면이다. 주가의 위치도 기준선 아래에 있어 힘이 없는 상태다. 엘리어트 파동 이론으로 볼 때도 5번의 상승 파동이 마무리된 후 조정 파동 국면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가상자산 거래소인 비트파이넥스는 암호화폐 시장에서 신뢰하는 분석 지표인 MVRV 지표를 제시하며 “수치가 0.84까지 하락했다. 이는 단기투자자가 지난 2022년 약세장 이후 가장 큰 규모의 미실현 손실을 기록 중”이라고 전했다. MVRV는 “Market Value to Realized Value”의 약자로 암호화폐 시장에서 특정 자산의 상대적 가치를 평가하는 데 사용된다. 1 미만이면 약세 국면으로 평가한다. 온체인 결제 프레임워크 개발사 SOFA.org의 사이트 책임자인 아우구스틴 판도 MVRV 지표를 제시하며 “(시장의)심리 위축이 관측된다”고 분석했다.
월가의 투자 분석 기관 울프 리서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현재는 비트코인의 상승 촉매제가 고갈된 상황이라며 사상 최고치를 향해 다시 한 번 도전하기 전에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암호화폐 전문 매체인 코인텔레그래프는 “비트코인 가격이 5만 2000달러대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는 한화로 약 7000만원대이며, 8월 5일 폭락장의 하단선 부근이다.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이 맞다면 당분간 박스권 돌파는 어려울 수 있으며, 오히려 가격 하방 압력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물론 긍정적 신호를 주는 기술적 지표 분석도 있다. 차트상 나타나는 일정 패턴을 보고 해석한 결과인데, 사상 최고가를 찍은 후 나타난 비트코인의 가격 흐름이 하락 확장 삼각형(Descending Broadening Triangle)에 해당된다는 분석이 주목받고 있다. 이는 과거 비트코인의 대상승장에서 유사한 패턴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익명의 암호화폐 애널리스트인 ‘트레이더 타디그레이드’는 “2019년 비트코인이 1만달러 아래에서 7만달러 근처까지 상승하기 직전에 현재와 비슷한 하락 확장 삼각형 패턴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언급의 취지는 비트코인이 그때처럼 강세장에 돌입하기 직전의 국면에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 하락 삼각형 패턴은 패턴 차티스트로 유명한 토마스 N. 불코우스키가 뽑은 ‘성취율이 가장 높은 10가지 바닥 패턴’ 중 2위에 올라 있다. 그만큼 패턴이 완성되면 높은 확률로 주가 상승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함정도 있다. 상승하려다 힘에 부치면 큰 폭의 하락 국면이 전개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하락 삼각형 패턴을 확인하려면 비트코인 가격이 사상 최고가를 찍은 날부터 고점을 연결하는 추세선을 그린 후, 이 추세선을 돌파한 후 지지가 이뤄져야 한다. 상승 시도를 하다가 이 추세선이 무너지면 위기 신호를 준다고 일반적으로 본다.
비트코인 대세 상승장이 나타났던 2019년 당시 조정 폭은 꽤 컸다. 한화 기준 400만원 밑에서 출발한 비트코인 가격은 1600만원대를 돌파한 후 다시 1000만원대까지 추락했다. 이 기간 하락폭은 60%대에 달한다. 많은 투자자들이 이때 강세 직전의 추세에서 탈락했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다시 상승세를 타며 8000만원대까지 급격하게 올랐다.
한 가지 다른 점은 2019년의 하락 삼각형 패턴은 반감기 전에 있었고, 2024년은 반감기 후에 유사한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2024년 8월 중순 현재 비트코인의 가격은 직전 고점 대비 35~40% 수준이다. 만일 추가 조정이 있다면 비트코인의 장기추세를 믿는다 해도 비교적 큰 조정폭을 감내해야 되는 시기를 견뎌야 할 수도 있다.
MVRV 지표와 관련해 1보다 낮으면 매수 기회가 아니냐고 볼 수도 있지만, 과거 사례를 보면 대부분 많은 시간을 견딘 후에도 매수 타이밍이 나타나곤 했다.
한 시장 전문가는 “기술적 지표들의 근간은 결국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라면서 “비트코인의 장기 추세에 대한 기대와 변동성 큰 시장을 바라보는 불안한 마음들이 합쳐져서 현재의 박스권 장세가 펼쳐지고 있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했다.
이런 맥락에서 기술적 지표상 약세 국면에 있는 비트코인이지만 기관투자자들의 진입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시장 약세에도 불구하고 비트코인을 사려는 기관투자자들의 행렬이 계속된다는 것은 시장 유동성을 뒷받침하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식이나 코인 시장에서 유동성이란 키워드는 시장 변화에서 핵심 변수다.
기관들은 직접 비트코인을 살 수 없기 때문에 비트코인 ETF를 대거 사고 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된 2분기 증권 보유 현황 공시(13F)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비트코인 현물 ETF의 기관 보유자는 1924곳으로, 1분기(1479곳) 대비 약 30% 증가했다. 이는 다수의 기관이 비트코인 가격이 2분기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비트코인 보유량을 늘렸다는 의미다.
13F는 최소 1억달러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기관 투자자들이 제출해야하는 분기 보고서로 큰 덩치의 자금들이 계속 비트코인을 사고 있다는 의미다. 코인베이스는 이 같은 흐름을 두고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증명하는 유망한 지표”라고 했다.
기관 투자자뿐만 아니라 각국 기업들도 비트코인 보유량을 늘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먼저 뉴욕 증시에 상장된 암호화폐 채굴 기업 마라톤 디지털은 3억달러의 전환사채 발행을 통해 자금을 마련한 후 4000개 이상의 비트코인을 매수했다. 또 다른 상장사인 의료기술기업 셈러 사이언티픽은 암호화폐 매수를 위해 SEC로부터 1억 5000만달러 이상의 자금 조달 승인을 받았다. 일본 투자 기업 메타플래닛은 330만달러 규모의 비트코인 57개를 추가 매입했으며, 회사가 보유한 총 비트코인 보유량은 303개다.
우리 국민연금도 간접 투자를 통해 비트코인 매입에 나섰다. 전 세계 단일 기업 중 비트코인을 가장 많이 보유한 마이크로스트래티지 주식을 2분기에 신규로 24만5000주 투자한 것이다. SEC 증권 보유 현황 공시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해 3분기 코인베이스 주식 28만 2673주를 추가하며 비트코인 간접 투자를 시작했다.
[문수인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8호 (2024년 9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