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시점에 맞춰 노후 자금을 마련해주는 ‘타깃데이트펀드’(TDF)가 최근 8년 사이 160배 넘게 성장하며 총 설정액은 10조원을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7월 14일 펀드 평가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TDF의 설정액은 2016년 말 663억원에 불과했지만 2018년 말 1조2554억원, 2020년 말 4조844억원 등으로 계속 늘어 지난해 말에는 9조 4883억 원에 달했다.
2016∼2023년 연평균 성장률은 무려 161%로 집계됐다. 올해 들어선 지난 11일 기준 TDF 설정액이 10조 8096억원으로 ‘10조원 고지’를 넘어섰다. 약 8년 동안 설정액이 163배로 불어난 셈이다. 2011년 두 개의 상품이 처음 출시된 이후 2023년 말 기준 20개 운용사에서 총 171개의 TDF가 출시되었다. 특히 TDF는 퇴직연금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2023년 말 기준 전체 TDF 순자산의 72.5%가 퇴직연금에서 운용되었다. 또한, 2024년 2월 14일 기준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상품으로 운용되는 펀드의 수탁액 중 82.3%가량이 TDF 및 TDF가 포함된 포트폴리오 상품으로 운용되었다.
TDF는 목돈이 필요한 고객의 은퇴시기를 ‘타깃데이트’(목표 시점)로 정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운용사가 펀드의 자산 배분을 바꿔주는 것이 특징이다. 통상 처음엔 주식처럼 상대적으로 위험이 큰 자산에 공격적으로 투자해 수익률을 올리고, 은퇴 시점에 가까워지면 채권 같은 안전자산의 비중을 확대한다. 고객이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수익성과 안정성을 모두 공략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런 장점 덕에 TDF가 미국 퇴직연금(401K)에서 이미 ‘대세’ 상품으로 성장했다. 국내에서도 고객이 투자 방향을 선택하는 확정기여(DC) 퇴직연금의 규모가 올해 117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돼, TDF의 성장 여력이 클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TDF에서 잘 알아야 할 개념으로는 ‘빈티지’와 ‘샤프 지수’가 있다. 빈티지는 고객이 퇴직하는 예정 연도를 뜻한다. 예컨대 ‘빈티지 2040’이라고 하면 2040년에 고객이 은퇴해 돈을 찾는다는 목표 아래 TDF가 설계됐다는 이야기다. 같은 TDF라도 상품마다 빈티지는 달라서 유의해야 한다.
또 하나, 샤프 지수는 투자 위험 정도를 감수할 때 돈을 얼마나 잘 벌 수 있는지를 측정하는 지표다. 위험 대비 수익이라는 일종의 ‘가성비’다. 수치가 높을수록 TDF가 나중에 좋은 성과를 낼 공산이 커진다. 에프엔가이드가 시중 자산운용사의 TDF를 전체 빈티지 모음(시리즈)으로 정리해 최근 1년의 평균 샤프 지수를 산출한 결과를 보면 ‘한국투자TDF 알아서ETF포커스’ 시리즈가 2.41로 가장 수치가 높았다. 그 외 상위권으로는 ‘마이다스 기본TDF’ 시리즈(2.09), ‘NH-아문디 하나로TDF’ 시리즈(1.96), ‘KCGI 프리덤TDF 시리즈(1.84), ‘미래에셋 전략배분 TDF’시리즈(1.81) 등이 있다. 샤프 지수는 개별 빈티지마다 또 달라지는 만큼 상품에 가입할 때 재확인해야 한다.
TDF도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미리 정한 배분 전략에 따라 자산 투자를 해서 시장 환경의 변화에 따라 상장지수펀드(ETF) 같은 경쟁 상품보다 실적이 못해 보일 수 있다.
예컨대 ‘증시 약세가 심해지는데 무리하게 주식을 처분한다’와 같은 불만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TDF는 스스로 무난하게 돈을 굴려준다는 특성이 핵심”이라며 “이런 편의성과 안정성에 중점을 둔다는 전제 아래 상품을 선택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만약 TDF의 운용 전략을 두 가지로 나누고 싶다면 핵심-위성 전략을 사용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핵심’ 부분은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하는 상품에 투자하여 기본적인 안전성을 확보하고, ‘위성’ 부분은 고위험 고수익을 추구하는 상품에 투자하여 추가 수익을 노리는 전략이다.
퇴직연금 TDF 포트폴리오에 적용하면, 적립금 대부분은 TDF에 투자하고 일부 적립금은 테마형 ETF나 해외주식형 펀드 등 고위험 고수익 상품에 투자하게 된다. 이러한 배분은 주기적인 자산 재배분(리밸런싱)과정을 통해 유지되며, 위성 자산이 큰 수익을 내면 이를 일부 실현하여 핵심 자산인 TDF에 재투자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TDF의 자산 배분 전략은 생애주기 별 재무설계 전략과 일치한다. 소득활동이 활발한 시기에는 높은 수익을 추구하기 위해 위험자산에 투자하고, 은퇴가 가까워지면 안전자산 비중을 높여 손실 위험을 줄이는 방식이다.
예상 은퇴 시점을 기준으로 투자자는 자신의 생애주기에 맞는 TDF를 선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50세의 투자자가 55세에 은퇴를 목표로 한다면, 2029년이 예상 은퇴 시점이 되고, 이에 맞는 TDF는 TDF2030이 된다. 투자 성향에 따라 TDF를 선택할 수 있으며, 높은 수익을 위해 위험을 감수할 수 있다면 목표 시점이 더 먼 TDF를, 안정성을 선호한다면 목표 시점이 가까운 TDF를 선택하면 된다.
다만 그런데도 2024년 4월 말 기준, TDF 상품 수는 거의 200개에 달한다. 많은 TDF 중 적합한 상품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평가 기준이 필요하다.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는 TDF 선택 시 고려해야 할 요건을 다섯 가지 포인트로 나눴다.
첫째는 자금 규모다. TDF의 자산 배분 전략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펀드 자금 규모가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 한다. 자금 규모가 충분하지 않으면 다양한 자산을 펀드 내에 편입하거나 자산 배분 전략을 충실히 실행하기 어렵다. 따라서 펀드 설정액이 50억 원 이상인 상품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둘째는 수익률이다. 과거 수익률은 미래 성과를 보장하지 않지만, 중요한 참고 지표이다. TDF는 장기 수익률로 비교하는 것이 적절하며, 최소 5년 이상의 기간을 기준으로 성과를 평가해야 한다. 또한, 기간별 수익률을 함께 확인해 특정 연도에 과대 또는 과소 평가되지 않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변동성이다. TDF의 변동성도 중요한 평가 요소이다. 변동성이 높으면 펀드를 장기적으로 운용하기 어려울 수 있다. 변동성이 낮을수록 자산 배분이 적절히 이루어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넷째는 손실 방어 및 회복 능력이다. 시장이 폭락하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TDF의 손실 방어 및 회복 능력을 평가해야 한다. MDD와 전고점 회복 기간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 다섯째는 환 헤지 전략이다. TDF는 환율 변동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환 변동 위험 회피 전략을 구사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환 변동 위험 회피를 하는 TDF와 하지 않는 TDF를 비교할 때는 같은 전략을 사용하는 상품끼리 비교해야 한다.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관계자는 “TDF는 그 특유의 자산 배분 전략으로 많은 투자자의 선택을 받아왔으며, 앞으로도 퇴직연금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라며 “다만, 투자자들은 TDF의 운용 원리와 평가 기준을 충분히 이해하고, 자신의 투자 성향과 목표 시점에 맞는 상품을 신중히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조언했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7호 (2024년 8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