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4일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 회장의 건강 상태에 대해 근거 없는 소문이 돌았을 때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주가는 크게 치솟았다. 현대모비스는 장중 14.5%까지 오르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에서 사실무근이라고 단호하게 부인하면서 단순 지라시 해프닝으로 결론났지만 현대모비스 주가는 크게 꺾이지 않고 7.5% 오른 주가에 거래를 마감했다. 비록 몇 년 후가 될 수는 있지만 현대차그룹의 승계와 지배구조 개편이 여전히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졌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정부의 밸류업프로그램과 기업의 실적 호조, 적극적인 주주환원정책 3박자가 맞아 대형주 중에서도 눈에 띄는 주가 상승 랠리를 보였다. 7월 들어 주가가 다소 소강 국면에 있기는 하지만 올해 상승폭(7월 16일 기준)은 현대차 34.9% 현대차우선주 47.83%, 현대차2우B 52%, 현대차3우B 48.3%를 기록했다. 현대글로비스도 31.1%, 현대모비스 28.8% 올랐다. 다만 현대오토에버는 -17.1%, 현대위아는 -14%의 부진한 성적표를 받았다.
현대차그룹은 70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대기업으로, 12개의 상장사, 5개의 금융사를 보유하고 있다. 2023년 말 기준, 그룹사 손익은 합산 매출 286조원, 영업익 18조원 규모다. 이중, 핵심 계열사인 현대차· 기아· 모비스 비중은 매출· 영업이익· 시총 각각 61%· 78%· 83%에 달한다.
현재 국내 10대 대기업집단 가운데 순환출자 구조를 깨지 못한 곳은 현대차그룹이 유일하다. 현대모비스는 그룹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현대차의 지분 21.43%를 갖고 있는 최대주주다. 그런데 현대모비스 최대주주는 지분 17.28%를 갖고 있는 기아차다. 결국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의 순환출자를 끊는 것이 현대차그룹의 해묵은 숙제이며 여기에 현대건설, 현대제철 등의 상장 계열사와 현대엔지니어링 비상장계열사 간의 지분 교통정리 과제도 남아 있다.
그리고 정의선 회장은 현대차, 기아 등 핵심 계열사 지분이 많지 않다. 현대차 2.62%, 기아차 1.74%, 현대모비스 0.32%가 정 회장이 보유한 지분이다. 정 명예회장의 지분까지 합해도 7조원의 지분으로 159조원의 그룹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이때문에 정 회장이 지분 23.29%를 가지고 있어 최대주주 지위를 갖고 있는 현대글로비스가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현대글로비스의 기업 가치를 끌어올려야 이를 통해 현물출자로 현대차, 기아의 지분을 맞교환해 최대한 핵심 계열사 지분을 많이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순환출자 해소뿐만 아니라 대주주 상속과 지배력 강화라는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여러 목표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고 그룹사 이해관계자 간 유불리가 없고, 효율적 비용 집행까지 해야 하는 고차원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숙제가 남아 있는 셈이다.
2018년 이미 현대차는 지배구조 개편안을 시장에 내놨지만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의 공격과 소액주주들의 반대로 포기한 전력이 있다. 순환출자 고리를 끊고 지배구조를 단순화하는 방안이었지만 결국 현대글로비스 주주들에게만 유리한 개편안이라는 거센 반발에 부딛힌 것이다. 당시 개편안은 현대모비스의 주력 사업 중 모듈과 AS부품 사업을 분할해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것이었다. 정 회장과 정몽구 명예회장이 가진 현대글로비스 보유지분을 매각해 모비스 주식을 매입해 지배구조를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로 단순화하는 것이다.
정몽구 명예회장이 보유한 그룹사 지분 5조3000억원 중 4조7000억원이 현대차·모비스 지분으로 상속에 따른 경영권· 세금 등 이슈가 나올 수 있다. 상속세 60%를 가정할 경우, 정의선 회장은 3조원가량의 상속세를 납부해야 한다. 5년 연부 연납하더라도 연간 6300억원 규모로 2023년 배당 수취액 3300억원을 상회한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상속세 마련이란 숙제뿐만 아니라 안정적인 경영권을 위한 추가 지분 확대가 필요하다는 과제까지 있다.
이 때문에 승계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현대모비스의 주가가 오르고 있다. 현대차·모비스에 대한 대주주지분율이 비슷한 상황에서, 56조원 규모의 현대차 지분을 늘리는 것보다 22조원 규모의 현대모비스 지분을 확대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22조원의 현대모비스 지분을 현재 8%에서 안정적 경영권 수준인 25%로 올린다고 하더라도 약 4조원 가량의 현금이 필요하다. 실제 지분 매입 과정에서 주가 상승가능성이 높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필요 현금은 더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과정에서 ‘현대모비스 분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는 이유다.
시장에서 전망하는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는 현대모비스 분할, 현대모비스에 타 계열사 지분 현물출자 여부에 따라 나뉠 수 있겠다. 현대모비스를 분할할 경우, 그룹사업구조 개편· 효율화가 가능함과 동시에 보다 용이하게 현대모비스 지분 확보가 가능해진다. 분할 방식 및 계열사에 따라 차이는 있겠으나, 2018년 무산된 지배구조개편안을 수정하는 방안이 지속 거론되고 있다. 현대모비스를 분할· 상장하고, 시장가치에 따라 글로비스와 합병한다. 그 후 공개매수를 통해 글로비스 지분을 현대모비스 지분으로 확보하는 방식이다. 사업구조 효율화 명분 아래, 시장 눈높이에 맞춰 지분구조를 변경하는 것이다. 다만, 해당 방식은 기업의 시장가치 변동을 예측하기 어려워 진행과정에 있어 대응이 쉽지 않다. 특히, 존속 모비스의 가치 대비 합병 글로비스의 가치가 커질 경우, 지주회사 요건에 따라 현대모비스의 자회사 의무 지분 보유 요건이 강화되는 변수가 있다.
이 때문에 최근 들어선 현대모비스 분할 없이 대주주가 자체적으로 보유 지분 및 자산을 활용하여 모비스 지분을 확보하는 방안도 나올 수가 있다는 시각이 있다. 현재 시총으로 단순 계산 시 4조원 이상의 현금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나, 개편 과정에서의 노이즈 및 기업가치 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다. 현재 대주주가 보유한 그룹계열사 지분은 현대모비스 제외 8조6000억원으로 추정된다. 또한 비상장사인 보스턴 다이나믹스와 현대엔지니어링의 상장·구주매출을 통해 9000억원 가량의 추가 현금 마련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계열사 실적 개선에 따른 배당금 상향 또한 지속되고 있어 정공법을 통한 지배구조 개편 및 지배력 강화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2023년 대주주의 배당 수취액은 3282억원으로 2022년 2305억원 대비 977억원 증가했다. 완성차 중심 이익체력 및 주주환원정책 강화 기조가 지속되고 있는 점을 감안 시, 무리한 지배구조 개편보다는 점진적으로 지분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과거의 경험으로 현대모비스 분할이 주주들의 반발을 산다는 점을 체득한 현대차그룹은 이번 지배구조 개편에는 다른 선택을 할 가능성이 있다. 대주주 지배력 강화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의 명분을 시장에 납득시키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김귀연 대신증권 연구원은 “현대차 그룹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는 현대모비스 분할과 유상증자, 대주주지분 현물출자 여부에 따라 나뉠 수 있다”면서 “현재로서는 분할· 유증· 현물출자 없이 중장기적으로 모비스 지분을 확보하는 전략을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또한 법적 기한 없는 상황에서 대주주 보유 지분을 활용한 중장기 모비스 지분 확보 재원 마련이 가능하기 때문에 오히려 현대차나 기아, 그리고 대주주 지분보유 종목(현대오토에버, 현대위아)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대모비스 분할 외 다른 방식으로 지배구조 개편이 이뤄질 경우 현대모비스 주가는 새로운 모멘텀을 얻을 수 있다.
현대차 지배구조의 정점에 위치해 있는 현대모비스는 지속적인 외형 성장에도 불구하고 수익성과 자본효율성이 15년간 악화돼 인위적인 실적 부진이 아니냐는 의구심도 계속 있어왔다. 가령 2010년 연결기준 매출은 22배인데 올해 전망치는 29조원으로 연평균 성장률이 8%에 달한다. 다만 2010년 10.5%에 달했던 영업이익률은 올해 4.3%에 머물 예정이다. 주가이익비율 역시 2010년의 28%에서 올해 전망치 9%는 초라한 숫자다.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방향이 정 회장이 가지고 있는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이용해 현대모비스 지분을 취득하는 것이라면 현대모비스 가치는 낮아질수록, 현대글로비스는 높아질수록 좋다고 보는 것이다.
김준성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5월 31일 현대모비스 수소사업의 현대차 이관이 진행되면서 현대모비스 분할을 통한 지배구조 개편 가능성은 축소됐다”면서 “지배구조 개편이 실현될 경우 기업가치 평가에서 대대적 변화가 나올 것”이라 전망했다. 비주력 자산의 정리와 현금 확보, 적자사업 정리를 통한 기업가치 부양 가능성 때문이다.
이에 올해 현대차, 기아, 현대글로비스는 모두 주주환원 강화 방침을 발표했다.
현대차도 기존 25~30% 수준의 배당성향과 연간 1% 규모의 자사주 소각에 이어, 자사주 추가매입 등 새로운 내용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6월 28일 있었던 현대글로비스 인베스터데이에선 대대적인 주주환원과 무상증자가 발표됐다. 현대글로비스의 2030년 중장기 재무 목표는 물류사업부 매출액 16조원, 해운사업부 매출액 7조원, 유통사업부 매출액 17조원으로 전사 영업이익 2조8000억원(영업이익률 7%), 주가이익비율(ROE) 15% 이상이 목표다. 2025~2027 3개년 배당정책 또한 새로 발표됐는데, 기존 2022~2024 배당정책이었던 주당배당금(DPS) 5~50% 상향 목표에서 배당성향 25% 이상 DPS 연간 최소 5% 상향(보조기준)으로 확대·변경됐다. 참고로 동사의 과거 5개년 평균 배당성향은 21.2% 수준이다. 이재혁 LS증권 연구원은 “자동차운반선 해운사업의 실적 상승 기대감이 꾸준히 유효한 가운데 각 사업부의 고른 외형 성장과 미래 신사업 추진, 주주 환원 확대 계획에 이르기까지 주가 흐름에 긍정적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제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