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를 앞두고 재테크 전략을 새로 짜려는 투자자들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인하 분위기가 무르익은 가운데 오는 11월 미국의 대선 결과도 자산 시장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로 눈길을 돌리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사업장 정리 등으로 인해 올해 연말 뜨거워질 경매시장에 주목하라는 조언도 나온다.
‘2024 서울 머니쇼’에서는 하반기 재테크 투자 전략을 미리 세우기 위한 투자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연사로 나선 전문가들은 올해 상반기 주요 이슈를 정리하면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계제로의 시장 상황에서 재테크의 기본에 집중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주식과 채권, 부동산으로 자산을 나눠 관리하고 위기의 순간에 좋은 자산을 ‘패닉 매도’하지 않도록 최적의 자산 조합을 구축하라고 주문했다. 이들은 하반기 금융시장의 주요 이벤트로 미국의 대선과 금리 정책의 변화, 부동산 PF 정리 등을 꼽았다.
우선 해외 자산 비중이 큰 투자자라면 올해 11월 열리는 미국 대선을 투자 기회로 활용해볼 만하다. 전문가들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경우에 주목해야 할 섹터로 친환경과 산업재를 꼽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에는 에너지와 방산주에 온기가 돌 것으로 내다봤다.
박순현 SC제일은행 자산관리부문 투자전략 및 투자상품 총괄은 “트럼프 행정부 1기 때는 감세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고, 통신주와 경기소비재, 소재, 금융, 산업재 순으로 정책 수혜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며 “내수 중심의 매출 비중이 60% 이상, 실효 세율이 20% 이상 산업들이 또다시 수혜를 볼 수 있고, 에너지와 방산주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박총괄은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시에는 친환경 정책 연장에 따라 관련주들이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했다.
선거 결과에 상관없이 하반기 주도주가 될 섹터로는 기술주(IT)가 꼽혔다. 두 후보 모두 미국 우선주의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고, 중국과의 기술경쟁 심화를 고려할 때 관련 정책 지원이 지속될 수 있다는 배경에서다. 다만 세부적인 정책 방향성은 다르게 전개될 가능성이 큰 만큼 개별 기업들이 처한 상황을 면밀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 나온다.
박 총괄은 “중장기 관점에서 미국 매그니피센트7(M7·애플, 아마존, 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 메타플랫폼, 테슬라, 엔비디아)의 성장성은 유효하다”면서도 “다만 M7과 M7 제외 기업 간 이익성장률 격차가 줄어들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 상황에서 밸류에이션 부담이 누적된 소수 종목 중심의 접근은 투자 불확실성을 높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엔비디아를 비롯해 테슬라 등의 성장 잠재력이 높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그러나 테슬라의 경우 경기에 만감하다는 특성을 지녔고, 올해 미국 대선이라는 정치적 불확실성에 대한 노출도도 높은 산업”이라고 덧붙였다.
대선 결과에 따른 달러화 방향도 하반기 재테크 전략을 짤 때 짚고 넘어가야 할 변수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단기간 가파른 달러값 상승이 이뤄질 수 있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백석현 신한은행 S&T센터 이코노미스트는 “11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달러화 궤도가 달라지리라 예상하는데, 두 후보의 정책을 비교했을 때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단기간에 달러가 급등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백 이코노미스트는 “달러화가 상승하는 국면에는 한국보다 미국 증시가 상대적 우위를 보이는데 달러화가 단기적으로 하락하는 국면에서는 미국보다 한국 증시가 우월한 성과를 낼 수 있다”며 “이는 어디까지나 단기적 관점이고,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승자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은 유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만 대선 결과와 무관하게 중장기적으로 달러화의 강세는 ‘뉴노멀’이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백 이코노미스트는 “장기적으로 보면 세계화 퇴조 흐름이 적어도 10년 이상 지속되리라 본다”며 “세계화의 퇴조는 미국과 전 세계의 동반 성장이 아니라 정책적으로 미국의 배타적 성장을 지향하기 때문에 달러화 강세를 초래하는 변수”라고 평가했다.
이어 “달러화를 성급하게 사기보다는 내릴 때를 기다리며 단계적으로 사는 게 좋다”면서도 “통화 자체에 대한 투자보다는 해당 통화 표시 자산을 투자하는 것이 좋다고 보기 때문에 달러화보다는 미국 주식이나 미국채가 더 좋은 투자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하반기 금리 정책의 방향은 재테크 전략 수립에 앞서 빼놓을 수 없는 체크 포인트다. 실제 올해 상반기에는 경제지표가 발표될 때마다 금리인하 전망에 대한 기대감이 오르내리며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특히 6월 중순 발표된 미국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올해 처음으로 시장 전망치를 밑돌면서 금리인하 기대감이 전방위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고금리 환경 연장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투자대상 자산을 선별하라는 조언을 주고 있다. 백 이코노미스트는 “당초 시장에서는 미국이 올해 세 차례 금리 인하를 진행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현재는 올해 한두 차례 금리를 낮추고, 당분간 고금리를 유지할 가능성을 더 높게 보고 있다”며 “고금리 환경이 내년 이후 된다는 것을 전제해두고 투자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금리인하가 이뤄지더라도 본격적인 하락 사이클을 섣불리 예단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백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들어 줄곧 금리 전망이 상향되고 금리가 오르면서 주가에 부정적 방향으로 작용했다”며 “금리인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나 싶을 때, 금리인상으로 돌아서는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고금리 환경 연장에도 미국 주식 등 달러 표시 자산은 여전히 유망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태형 우리은행 TCE시그니처센터 부지점장은 “고금리 환경을 지속적으로 끌고 가는 것은 그만큼 미국의 경제 체력이 좋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며 “최근 자산가들에게도 미국 주식과 주식형 펀드는 비중을 확대할 것을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금리 환경 연장에 대비하는 투자자라면 금리 민감도가 낮은 자산에투자하라는 조언도 나왔다. 미국 하이일드 회사채나 미국 2년물 국채가 대표적이다. 박 총괄은 “금리 민감도가 낮은 단기채와 크레디트물을 담은 상품은 금리 하락 국면에서 양호한 성과를 기록하는 한편 금리 상승 시에도 안정적인 성과를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조언했다.
미국 외 유망 투자 국가로는 일본이 꼽혔다. 박 총괄은 “일본은 올해 봄철 임금협상인 춘투에서 1991년 이후 최대 인상폭의 임금상승률에 합의했다”며 “임금이 오르고 물가도 상승하는, 경험해보지 못한 경제 환경이 펼쳐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일본 기업들의 실적 전망도 좋은 만큼 토픽스지수 기준으로는 상승 여력이 더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다만 전문가들은 엔화 투자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지난해 말부터 ‘앞으로는 오를 일만 남았다’며 엔테크에 나선 투자자가 많지만 기대보다 엔화값 상승 속도가 빠르지 않을 것이란 이유에서 다. 백 이코노미스트는 “일본 경제는 금리 인상이 시급하지 않고, 변화에 적응할 시간도 필요하다”며 “장기적으로는 엔화 상승이 기대되지만 일본 중앙은행의 보수적 입장을 감안하면 상승 속도는 느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환경일수록 다각화된 포트폴리오가 투자 성패를 좌우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주요 자산이 기록하는 수익률 순위가 매년 다이내믹하게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2017년 최고 수익률을 냈던 중국 주식은 최근 3년 새 20% 안팎의 손해를 기록하며 부진한 상황이고, 2022년까지만 해도 고전했던 선진국 주식은 지난해 주요 자산 중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박 총괄은 “다각화된 포트폴리오는 시장 참여를 지속하기 위한 가장 좋은 대안이 된다”며 “포트폴리오를 적극적으로 꾸리기 어려운 투자자라면 기대수익률에 따라 포트폴리오 내 위험자산 비중을 조절하는 글로벌 자산배분펀드를 고려해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백 이코노미스트도 “국내 부동산을 보유한 투자자라면 코스피보다는 나스닥100이나 일본 주식, 금에 투자하는 것이 포트폴리오 효과를 더 크게 볼 수 있다”며 “국내 주식 보유자라면 미국 국채와 금으로 자산을 분산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국내 자산에 눈을 두고 있는 투자자라면 올해 연말 경매시장을 주목해 볼만하다. 고물가와 고금리 등을 견디지 못하는 경제 주체가 늘면서 법원 경매 신청 건수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금융당국이 추진하는 부동산 PF 부실 사업장에 대한 정리가 하반기부터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강은현 법무법인 명도 경매연구소장은 올해 말 2008년 금융위기에 버금가는 경매물건이 시장에 쏟아져 나올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는 “올해 말까지 12만건에 달하는 부동산 물건이 경매시장에 나올 수 있다”며 “올해 말과 내년 상반기 사이 경매시장은 IMF(1997년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은 역대 세 번째 시장 참여 호기를 맞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미 올해 1~4월 누적 법원 신규 경매 접수 건수는 역대급 수치를 보이고 있다. 연초부터 올해 4월까지 신규 경매 접수 건수는 4만 694건으로 2013년 4만2271건 이후 11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통상 경매물건은 법원에 신규 접수가 이뤄지고 나면 7~8개월 뒤 실제 경매가 이뤄진다. 전문가들이 올해 연말 경매시장 ‘큰 장’이 설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조바심을 내 ‘오버페이’하기보다는 시장 바닥 국면에 접어드는 올해 말까지 기다리면서 똘똘한 매물을 잡으라는 조언을 주고 있다. 이미 골프장 등 일부 물건에서는 그 징후가 포착되고 있다. 감정가가 1000억원이 넘었던 충남 소재 A골프장 터는 8차례 유찰 끝에 최저 입찰가격이 500억원대까지 내려왔다. 외환위기 당시에도 보기 어려웠던 서울 중구 명동 중심거리 빌딩도 경매시장에 매물로 등장하는 상황이다.
다만 강 소장은 중장기적으로 투자 가치가 높은 지역에 대해서는 빠르게 투자 결정을 내리는 것도 유효하다고 봤다. 첨단 시스템반도체 국가 산단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조성되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일대가 대표적이다. 강 소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본격적으로 공장을 가동하면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상황이 전개될 것”이라며 “장기 투자를 고려하는 사람에 한해서는 접근해볼 만하다”고 평가했다.
유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