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유럽 주요국과 ‘세계 최대 소비 시장’ 중국의 경제가 둔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자 투자자들은 유럽 명품주 매매 저울질에 나서는 분위기다. 럭셔리 브랜드의 경우 대부분 유럽에 본사를 두고 있고, 중국 매출 의존도가 크다는 점에서 기업 실적이 해당 지역 경제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다만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등 일부 기업은 호실적과 더불어 올해 파리 올림픽 특수에 힘입은 반사효과 덕에 매수세를 잡아끄는 모양새다.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세계 최대 명품업체인 파리 증시 LVMH(티커 MC)는 지난해 분기 실적 발표를 통해 턴어라운드(흑자 전환)에 성공했다고 최근 밝혔다.
명품주는 지난해 주요국 고금리 기조에 따른 소비 부담과 중국 수요 둔화 탓에 실적 부진에 시달려왔다. 이 때문에 유럽 증시 시총 1위이던 LVMH도 지난해에는 제약사인 노보노디스크에 1위 자리를 내준 바 있다. LVMH는 지난해 4월까지만 해도 유럽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시총이 5000억달러를 돌파했지만 명품보다 비만약이 투자자들의 관심을 사면서 비만 치료제인 삭센다와 위고비 개발사로 유명한 노보노디스크와 1,2위 자리를 맞바꿨다.
다만 시장 예상과 달리 LVMH에 따르면 회사는 지난해 매출이 총 861억5000만유로로 집계돼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팩트셋이 집계한 유럽 증시 전문가 기대치를 웃돌 뿐 아니라 직전 연도인 2022년보다 오히려 매출이 13% 늘어나면서 명품 시장 침체 우려를 덜었다. 올해 첫 거래일인 1일 2일 이후 2월 중순까지 LVMH 주가는 연중 약 13% 올랐다.
지난해 4분기만 보면 LVMH의 유기적 매출은 이전 연도 동기 대비 10% 늘었다. 매출 비중이 가장 큰 패션과 가죽제품 부문 매출 성장률이 14%, 비중이 낮은 향수와 화장품 매출은 11% 늘었다. 와인과 코냑 등 주류 부문 매출은 4% 감소한 반면 화장품 편집숍인 세포라가 속한 소비 유통 부문은 매출이 25% 늘었다.
유기적 매출(organic revenue)이란 기존 자원과 인력으로 거둔 매출을 말한다. 동일 점포 매출과 유사한 개념으로 유통업계 실적을 판단하는 기준이다. LVMH는 크리스챤디올과 루이비통, 헤네시 코냑, 지방시, 불가리 등 명품 브랜드와 세포라를 거느리고 있다. 특히 크리스챤디올은 현재 파리 증시 상장기업이기는 하지만 프랑스 억만장자이자 루이비통 모에헤네시 회장인 베르나르 아르노가 지난 2017년 크리스챤디올 지분 26%를 당시 121억유로에 인수한 것을 계기로 디올이 계열사 브랜드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한편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은 ‘2024 파리 올림픽 특수’ 기대감을 내비치면서도 앞으로 실적에 대해서는 경계감을 가지고 지켜보겠다는 발언을 동시에 내놓았다. 증권업계에서는 명품 선호 성향이 강한 중국인 소비가 단기에 반등하기 힘든 상황을 반영한 발언으로 보고있다.
LVMH가 명품 시장에서 비교적 선방했다는 평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요 기업들 사정과 주가 흐름은 다소 비관적이다. 일례로 올해 1월 초 영국 명품 기업인 버버리(런던증시 티커 BRBY)는 수요 둔화와 팬데믹 특수 실종에 따른 이익 둔화를 경고하기도 했다. 회사 주가는 연중 약 6% 하락한 상태다. 베르사체와 마이클코어스 등을 거느린 미국 카프리홀딩스(뉴욕증시 티커 CPRI)도 연중 주가 하락률이 6%에 달한다.
이탈리아 명품그룹 살바토레 페라가모(밀라노증시 티커 SFER)도 암울한 지난해 실적을 발표한 바 있다. 지난해 매출은 11억6000만 유로였는데 전문가 기대치를 밑돈 데다 앞으로 실적 전망에 대해서도 경영진은 다소 신중한 언급을 했다.
지난해 실적을 보면 북미 지역 매출이 17% 급감해 가장 큰 걸림돌이었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8% 감소했다. 유럽·중동·아프리카 매출은 3.4% 증가하는 데 그쳤다. 앞으로 전망과 관련해 마르코 고베티 살바토레 페라가모 최고경영자(CEO)는 “명품 수요 둔화에 따른 복잡한 시장 환경 탓에 턴어라운드 목표 달성이 생각보다 힘들고 오래 걸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고베티 CEO는 명품업계 스타 경영인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이전에는 영국 버버리 CEO로 회사 실적 개선을 이끌었다. 지난 2021년 6월 그가 버버리에서 나와 페라가모로 이직한다는 소식이 나왔을 때, 런던증시에서 버버리 주가는 하루 만에 거의 9% 급락하기도 했다. 다만 고베티 CEO도 중국 수요 둔화를 피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명품 구두로 유명한 페라가모는 2010년대 중반부터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지난 2015년 이후에는 루이비통과 구찌 같은 경쟁사에 뒤처지기 시작했고 특히 중국 시장에서 고전했다. 페라가모 주가는 지난 2015년 최고치를 찍은 후에 지난해까지 주가가 약 45% 하락했다. 사정이 여의치 않다 보니 지난해에는 매각설이 돌았다. 다만 올해 1월 말 페루치오 페라가모 회장은 밀라노에서 열린 패션쇼에서 “나는 이 회사를 사랑하고 매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매각설에 선을 그은 바 있다.
페라가모는 가족 경영기업이다. 살바토레 페라가모가 창업주이고 그가 사망한 후에는 아내인 완다 페라가모와 여섯 명의 자녀들이 경영을 해왔다. 지난 2018년 완다 페라가모가 96세의 나이로 사망한 후에는 장남인 페루치오 페라가모 회장이 그룹 회장을 맡고 있다.
다만 유럽 증권가에서는 명품기업들 주가가 저평가됐다는 반응도 나온다. 일례로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실적 발표 이후 주가가 급락했다가 이후 2월 중순까지 한 달간 약 13% 반등했다.
한편에서는 케링그룹(파리증시 티커 KER) 주가가 저평가된 상태이기 때문에 저점 매수할 만하다는 평가도 나왔다. 회사도 간판 브랜드인 구찌 매출 성장세가 둔화된 탓에 주가가 최근 3년간 약세를 이어온 결과 2021년 8월 최고가 대비 50% 가까이 주가가 떨어진 상태다. 다만 올해 들어서는 주가가 연중 8%가량 올라섰다.
케링그룹은 구찌를 비롯해 생로랑, 보테가베네타, 발렌시아가 등 럭셔리 브랜드를 거느린 명품 지주회사다.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루이비통 모에헤네시와 에르메스(파리증시 RMS), 크리스챤디올(파리증시 CDI)에 이어 4위 기업이다.
다만 미국 투자리서치업체 모닝스타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케링그룹의 주가수익비율(PER)이 14.7배로, 업계 경쟁사들에 비해 수치가 크게 낮아 저평가된 상태라고 분석했다. 2023년 한 해 LVMH와 에르메스는 주가가 각각 8%, 33% 올랐지만 케링그룹 주가는 16% 하락했다.
다만 모닝스타는 케링그룹 주가가 600유로까지 오를 여력이 있다고 보고 있다. 엘레나 소콜로바 모닝스타 연구원은 “케링그룹 산하 구찌와 생로랑, 보테가베네타 등 브랜드들은 에르메스에 비해서는 ‘열광 소비자층(소득 수준이 비교적 낮지만 명품 소비를 선호하는 집단)’ 측면에서 대중 노출도가 높아 경기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회사가 공격적으로 투자에 나서는가 하면 경영진을 바꾸는 등 변화를 시도한 점을 보면 투자 매력이 있다는 평가다. 케링그룹은 지난해 6월 럭셔리 향수 브랜드인 크리드를 인수했고, 이어 같은 해 7월에는 카타르 사모펀드 메이훌라로부터 이탈리아 발렌티노 지분 30%를 사들였다.
경영 쇄신 측면에서는 케링그룹 전체 매출의 70%에 달하는 최대 사업부 구찌 경영진을 바꾼 데 이어 2013년부터 생로랑 CEO를 맡아 온 프란체스카 벨레티니에게 그룹 내 모든 브랜드 총괄을 맡겼다. 소콜로바 연구원은 “케링그룹은 구찌를 부활시킬 수 있는 인적 자원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유럽 투자 은행인 HSBC는 구찌 매출이 다시 오르는 경우 케링그룹 수익성이 살아날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투자자들이 유럽 명품주를 매매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한국 증권사 계좌를 통해 파리·밀라노·런던 증시 등 주요 증시에 상장된 LVMH 등 개별 기업 주식을 직접 사고파는 것이다. 이런 경우원·유로화 환율 변화에 따른 손익이 추가로 발생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한국증시에 상장된 유럽 명품 상장지수펀드(ETF)를 매매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ETF는 ‘KODEX 유럽명품TOP10 STOXX’ ETF와 ‘HANARO 글로벌럭셔리 S&P(합성)’ ETF가 있다. 전자의 경우 에르메스 비중이 22.5%로 가장 크고 이어 LVMH(19.7%) 순이다. 반면 후자는 상대적으로 프랑스 명품주 비중이 낮은 편이다. 구성종목 1위가 에르메스이기는 하지만 비중은 8.9%이며 LVMH는 7.7% 정도다.
[김인오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2호 (2024년 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