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업황이 2023년 3분기부터 저점을 통과했다는 인식이 커지는 가운데, 새해에도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섹터가 핵심 테마 역할을 해낼 것으로 기대되면서 관련 상장지수펀드(ETF) 상품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현재 국내에 상장된 AI반도체 ETF는 신한자산운용의 ‘SOL반도체소부장Fn’, 한국투자신탁운용의 ‘ACE AI반도체포커스’, 삼성자산운용의 ‘KODEX AI반도체핵심장비’,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AI반도체핵심공정’ 등이 있다. 국내 ETF 시장을 양분 중인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은 나란히 내놓은 국내 AI 관련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에 집중 투자하는 상품을 내놨고, 앞서 한국투자신탁운용도 AI반도체 ETF 상품과 함께 일본 반도체 ETF까지 나왔다. 신상 반도체 ETF들의 잇따른 출시에 투자자들의 선택지가 넓어지는 모습이다. 삼성운용은 2022년 말 ‘KODEX AI반도체핵심장비’ ETF 상품을 상장했다. ‘아이셀렉트 AI반도체핵심 장비 지수’를 기초지수로 삼으며 패시브 형태로 운용한다. 이 상품은 HBM(고대역폭 메모리) 관련 장비주를 무려 83% 담고 있는데, 국내 반도체 소부장 ETF 가운데 최대 비중을 차지한다. 구성 종목 대부분이 AI반도체 전공정과 후공정, 패키징 전반에 쓰이는 장비 종목들이다.
구체적으로 반도체 후공정 장비를 제조하는 한미반도체(22.25%)를 가장 큰 비중(2023년 12월 14일 기준)으로 편입하고 있다. 이 밖에 반도체 검사 소켓을 만드는 ISC(17.02%)와 리노공업(14.02%)을 10% 넘게 담았다. 대덕전자(9.82%), 이수페타시스(8.39%), 하나마이크론(6.51%), 이오테크닉스(6.48%) 등 장비주도 골고루 편입했다.
AI반도체는 통상 높은 메모리 대역폭 구현이 가능한 HBM을 필요로 한다. 쉽게 말해 HBM은 기존 메모리 반도체보다 더 뛰어난 데이터 전송 능력을 보인다. AI 기술 발전으로 대량의 데이터를 빠르게 연산할 수 있는 반도체 수요가 늘어나면서 HBM이 주목받는 것이다. AI반도체와 HBM의 성장은 반도체 소재와 부품, 장비 등 수요를 만들어내는데, 한국 반도체 산업은 특히 압도적으로 ‘반도체 장비’에 강점을 갖고 있다는 판단이다.
삼성자산운용 측 관계자는 “AI반도체 공정의 핵심은 장비다. 특히 소재·부품·장비 중에 장비가 신규주문 사이클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장비에 경쟁 우위를 보유했고, 소재와 부품은 거드는 양상”이라며 “구글, MS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 또한 AI 서버 관련 투자를 빠르게 증가시키는 추세로, 글로벌 AI반도체 시장은 2026년까지 약 861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AI반도체핵심공정’ ETF도 AI반도체 중·소형주 가운데 HBM 관련주(패키징) 비중을 최대로 키우고, 미세화 공정 관련 중소형 반도체에 집중한 포트폴리오를 짰다. 주요 투자 대상은 한미반도체(16.15%), 이수페타시스(8.7%), 이오테크닉스(7.53%), 동진쎄미켐(6.96%), ISC(6.57%) 등 (2023년 12월 14일 기준)이다. 이 상품은 ‘아이셀렉트 AI반도체핵심공정 지수’를 추종한다.
미래에셋자산운용 관계자는 “HBM을 만들기 위해서는 고도의 패키징 핵심 공정 기술이 필요하고, 현재 대한민국이 글로벌 HBM 시장의 약 90%를 차지하고 있다”며 “이들 기업은 AI반도체 성장과 함께 특수를 누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운용과 미래운용의 상품 모두 반도체 대장주로 꼽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편입하지 않은 게 특징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사실 AI반도체뿐 아니라 모바일과 PC, 클라우드 등 여타 부문의 수요 정체도 영향을 미친다”며 “두 회사 모두 AI반도체 시장서 가장 혜택을 볼 수 있는 종목을 골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태혁 삼성자산운용 ETF운용본부장은 “KODEX AI반도체핵심장비 ETF는 HBM 관련 핵심 장비주를 국내 반도체 소부장 ETF 가운데 최대 비중인 약 83%까지 담고 있어 AI반도체 및 HBM 시장 성장의 수혜 정점에 있는 반도체 장비 기업에 손 쉽게 투자할 수 있는 상품”이라고 설명했다. 김남기 미래에셋자산운용 ETF운용부문 대표도 “향후 반도체의 상승 사이클은 AI 수요로부터 발생할 것이며 TIGER AI반도체핵심 공정 ETF는 AI 수혜 반도체 기업들을 찾고 있는 투자자에게 최적의 솔루션”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들 상품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11월 1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KODEX AI반도체핵심장비’는 출시 후 한 달여 만에 개인 순매수 187억원, ‘TIGER AI반도체핵심공정’도 개인 순매수 216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이 기간 동안 주식형 ETF 개인 순매수 1, 2위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이들 상품보다 앞서 출시한 한국투자신탁운용의 ‘ACE AI반도체포커스’ ETF도 AI반도체 및 HBM 관련 핵심 기업에 투자한다. 대신 SK하이닉스 25%, 삼성전자 24% 등 전통의 반도체 대장주를 25%씩 담았고, 한미반도체 25%까지 75% 비중을 차지한다. 나머지 25%는 해당 산업군 내 시가총액 4~20위 기업에 동일가중방식으로 투자한다. 기초 지수는 에프앤가이드가 산출·발표하는 ‘FnGuide AI반도체 포커스 지수’다.
2023년 FnGuide AI반도체포커스 지수의 성과는 47.19%로 코스피(14.3%) 대비 약 3.3배에 이른다. 반도체 업황이 안 좋았던 2021년과 2022년을 제외하면 언제나 코스피를 웃도는 성과를 기록했다.
한국투자신탁운용 측은 “ACE AI반도체포커스 ETF는 국내 상장 반도체 ETF 중 최초의 ‘AI반도체’ 상품으로 AI 기술 실현에 필수인 HBM에 직접 수혜를 받을 수 있는 종목들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AI반도체에 투자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투자 수단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ACE AI반도체포커스 ETF는 최근에 상장한 여타 반도체 ETF와 달리 HBM 시장서 가장 앞서나간다고 평가받는 SK하이닉스의 비중을 제일 높게 구성한 점이 눈에 띈다. SK하이닉스는 DDR5, HBM 등 하이엔드 메모리 시장에서 점유율 1위에 올라 있다. 전 세계 최초로 HBM 개발과 양산에 성공한 이후 현재 엔비디아에 HBM을 독점 공급하고 있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는 2025년 공급을 목표로 주요 고객사와 6세대 HBM4 개발에 착수해 선두 업체의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 그래픽처리장치(GPU) 신제품 출시가 빨라질수록 향후 HBM 시장은 양산 노하우와 원가 경쟁력을 확보한 선두 업체의 승자독식 구조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며 “SK하이닉스의 HBM 시장 선점효과가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투운용이 같은 날 함께 상장한 ‘ACE 일본반도체’ ETF도 있다. 이 상품은 일본 증시에 상장된 반도체 기업에 투자하는 환노출형 해외주식형 상품이다. 기초지수는 블룸버그 인덱스 서비스다. 해당 지수는 일본 반도체 기업 중에서도 시장 대표성과 반도체 사업성을 충족하는 25개 종목을 선정해 동일가중방식으로 편입했다. 시장 대표성은 유동시가총액으로, 반도체 사업성은 기업 전체 매출 내 반도체 사업 매출 비중을 기준으로 평가된다.
이들 신규 상품 이외에 2023년 초 이후 개인 순매수 1위를 기록한 2022년 4월 상장한 신한자산운용의 ‘SOL 반도체 소부장 Fn’ ETF도 있다. 이 상품은 한미반도체, 하나마이크론, 이오테크닉스, ISC 등 국내 AI반도체 및 HBM 대표 기업과 함께 미세화 공정 관련 기업인 동진 쎄미켐, 솔브레인, 원익IPS, HPSP 등을 담았다. 이 밖에 리노공업, 티씨케이 등 반도체 부품기업을 포함해 솔브레인, 한솔케미칼 등의 소재기업까지 포함한다.
김정현 신한운용 ETF사업본부장은 “AI반도체와 HBM은 이제 막 개화하기 시작한 반도체 섹터의 새로운 테마이기 때문에 기존 한미반도체, 하나마이크론 등의 기본 수혜주와 함께 우량한 반도체 소부장 전반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리노공업의 경우 우량한 반도체 부품기업인데 스마트기기에 장착되는 온디바이스AI에 대한 수혜로 새롭게 주목받게 됐다”고 밝혔다.
이들 운용사들이 모두 동일하게 최대로 담은 개별종목인 한미반도체의 약진에도 관심이 쏠린다. 한미반도체는 2023년 3분기 실적 부진에도 HBM 시장 개화에 따른 수요 증가의 가장 큰 수혜를 받는 기업으로 꼽힌다.
현재 한미반도체는 전체 매출의 59%를 MSVP 장비서 거두고 있다. MSVP는 시스템반도체 패키지를 절단하는 데 쓰이는 후공정 필수장비 ‘마이크로쏘’와 반도체 검사 및 적재 공정에 쓰이는 장비 ‘비전플레이스먼트’를 결합한 장비다. 한미반도체는 글로벌 MSVP 시장점유율 1위다. 유진투자증권은 6만원 초반대인 한미반도체 목표주가를 8만3000원으로 설정하고 매수 의견을 냈다.
또 다른 반도체 소부장 기업 이수페타시스도 눈에 띈다. 이수페타시스는 현재 엔비디아, 구글, MS 등에 MLB를 납품하고 있다. MLB는 인쇄회로기판(PCB)을 여러 개 쌓아 올린 제품으로 층수가 많을수록 많은 양의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AI용 서버에 장착되는 GPU에 사용된다. 국민연금도 최근 16억원을 투자해 이수페타시스의 지분율을 9.99%에서 10.09%로 확대해 주목받고 있다.
한편, 반도체 섹터를 둘러싼 글로벌 환경도 긍정적이다. 2023년 MS와 오픈AI가 주도한 ‘챗GPT’발 생성 AI 열풍에 대응해, 구글이 최신 AI 언어모델인 ‘제미나이(Gemini)’를 전격 공개하면서 2024년 AI 대전은 심화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구글은 2023년 12월 제미나이 출시를 알리며 “인간 전문가도 뛰어넘은 첫 AI 모델”이라고 강조했다. 경쟁작인 챗GPT-4와의 성능 테스트에서도 더 나은 점수를 받았다고 밝혔다.
구글의 제미나이 출시는 자사의 챗봇 ‘바드’ 출시 이후 8개월 만이다. 생성AI의 선두 주자로 평가받는 오픈 AI의 챗 GPT-3.5 출시 1년 만이다. 이미 오픈AI는 2023년 3월 챗GPT-3.5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GPT-4.0을 출시했다.
[홍성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