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부진에 3분기 연속 적자를 보던 반도체 기업들에 업황 반등 기대가 커지고 있다. 이미 적자 상황에서도 엔비디아향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주 기대로 주가가 5월부터 반등하던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이제 D램 흑자 전환의 기대로 주가가 다시 한번 모멘텀을 얻게 됐다. 코스피 대장주인 이상 외국인 패시브 자금 수급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금리와 환율이 동반 상승하는 하반기 들어 주가가 다소 주춤한 상황이지만 향후 실적 턴어라운드를 염두에 두고 저점 분할 매수할 타이밍이 왔다는 기대도 나온다. 특히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은 그동안 주가 하락 폭이 더 컸던 만큼 업황 반등 시 주가 상승 폭이 더 클 것이란 전망도 있다.
반도체 업체들은 3분기 코스피 컨센서스 하향을 주도했지만 10월 초 삼성전자 실적 발표 이후 4분기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올라왔다. 하나증권이 9월 말에 추정한 삼성전자의 4분기 영업이익은 1조원이었는데 실적 발표 직후엔 2조5000억원으로 상향 조정되기도 했다.
반도체의 두 대장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중에서 주가가 더 안정적으로 우상향하고 있는 쪽은 SK하이닉스다. SK하이닉스는 HBM 수혜에다 최근 D램 흑자 전환이라는 호재까지 맞아 투자자들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10월 17일 13만원에 거래를 마쳐 52주 신고가를 경신했다. SK하이닉스가 종가 기준 13만원 선을 유지한 마지막 시점은 지난해 2월 23일으로 외국인 매수세가 집중되면서 1년 8개월여 만에 ‘13만닉스’로 복귀한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2분기 D램 시장 점유율(매출 기준)은 삼성전자 38.2%, SK하이닉스31.9%로 6.3%포인트 차이가 난다. 지난 1분기 18.1%포인트에서 크게 줄어들었다.
삼성전자는 가격 방어에 집중하는 수익성 우선 전략 때문에 출하량이 예상보다 미치지 못해 SK하이닉스에 비해 3분기 실적 개선 속도가 더뎠다. 위민복 대신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 메모리 부문에서는 D램 평균 판매단가가 상승세로 돌아서지만 감산으로 인한 단위당 고정원가가 증가했기 때문에 매출이 늘어나는 것만큼 영업이익이 늘어나지 않는다”라며 “비모메리 업황 역시 업황 회복이 미뤄지면서 파운드리도 역시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8월부터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감산 규모를 확대해왔다.
다만 최근 주가 부진에도 불구하고 내년도 전망을 감안한다면 삼성전자의 주가 상승을 염두에 둔 수급 상황이 개선될 것이란 기대가 있다. 3분기 출하량을 줄인 가격 방어 정책이 4분기에 본격적으로 빛을 발하면서 주가가 반등 모멘텀을 확보한다는 얘기다.
에프앤가이드가 증권가 추정치를 집계한 결과 삼성전자는 4분기에 매출은 69조600억원, 영업이익은 3조3900억원을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영업이익 2조4000억원을 기록한 3분기에 비하면 큰 폭의 수익성 개선으로 메모리 반도체의 수익성 개선이 다른 부문의 계절적 비수기 영향을 상쇄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 디램사업부는 판매량과 가격이 각각 전분기 대비 7%, 9% 상승하며 영업이익 1조원을 거둬 흑자 전환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4분기 후반 가격 반등이 추가 발생될 경우 재고자산평가손실에 대한 환입 규모가 더욱 커지며 영업이익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또한 그는 “낸드사업부는 판매량과 가격이 각각 17%와 11% 상승하며, 전분기 대비 영업적자 폭이 크게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게다가 삼성전자는 밸류에이션 측면에서 봐도 현 주가 수준은 12개월 트레일링 PBR 1.3배에 불과하기 때문에 충분히 악재와 업황 부진을 반영했다고 보는 것이 증권가의 시각이다. 삼성전자가 시장의 우려를 딛고 3분기 ‘어닝 서프라이즈’ 실적을 내면서 공급망체인에 있는 ‘반도체 소부장’ 기업 역시 주가가 큰 폭으로 뛰었다. 증권 업계에서는 그동안 소부장 주가를 억누르던 반도체 다운사이클이 업사이클로 바뀌는 변곡점에 가까워진 만큼 소부장 주가가 당분간 견조한 흐름을 보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10월에 한미반도체, HPSP 등 소부장 주가가 더 큰 폭으로 오른 이유는 반도체 업황 조기 반등에 대한 기대가 커지자 그동안의 하락 폭을 되돌리는 투자수요가 몰렸기 때문이다. 생산 업체들의 투자 관련 의사결정은 상승 사이클로 전환하는 시점에 이뤄지는데 이번 삼성전자 3분기 실적을 본 투자자들은 반도체 상승 사이클 진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3분기에 낸드플래시에선 2조7000억원가량의 적자, 메모리 부문에선 3000억원 가량의 적자를 내 당초 증권가의 예상보다 적자 폭을 크게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통해 수요가 많은 DDR5 반도체와 HBM 관련된 투자는 올 하반기부터 선제적으로 진행된 후 전반적인 투자 확대는 내년 상반기부터 진행될 가능성이 커졌다.
고영민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실적 발표로 투자자들은 반도체 소부장 업계들 실적 방향성이 정해졌다고 인식하게 됐다”면서 “3분기 반도체 사업부는 여전히 적자를 봤지만 세부 데이터를 보면 사이클 변화가 감지됐기 때문에 소부장 주가들이 주가가 삼성전자 실적 발표 후 상승한 것”으로 풀이했다.
장비 업체 주가가 상대적으로 강하게 반등하기는 했지만 소재 및 부품 기업 중에서도 이익 회복이 빠른 종목들은 주가 모멘텀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류형근 삼성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소재·부품은 장비주 주가에 후행하는 경향을 보인다”라며 “유례없는 감산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단기 이익은 부정적이지만 이미 주가에는 감산 리스크가 반영돼 있어서 내년 생산 정상화를 감안해 저가 매수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소부장 업체들로선 올해 5월부터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를 크게 올리던 HBM의 모멘텀은 그대로 남아 있으며 GPU를 포함한 AI 서버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기 때문에 반도체 업종 전반의 실적 개선에 탄력이 붙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엔비디아와 AMD가 HBM3 기반 GPU 출하량을 늘리고 있는 만큼, 2024년 반도체 매출은 HBM3와 HBM3E가 주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HBM 시장은 2022년 23억달러(약 3조원)에서 2025년 103억달러(약 13조9000억원)로 연평균 64%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GPU를 포함한 AI 서버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는 효과가 크다.
특히 비메모리 시장에서 활약하던 기업들은 ‘메모리의 비베모리화’ 수혜를 받으며 HBM 시장을 중심으로 무대를 확장하고 있다. 비메모리 영역에서 메모리 시장으로 매출처를 넓히고 있는 한미반도체가 대표적 기업이다. 임소정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반도체가 PC, 스마트폰 외 차량용 AI 등 활용처가 다양해지면서 메모리 반도체 또한 다품종 다량생산의 길을 걷고 있다”며 “기업이 원하는 성능의 다양한 칩들을 생산하기 위해 비메모리향 매출 비중이 높았던 기업의 장비 부품이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소부장 기업 중 이오테크닉스는 그간 일본의 디스코(Disco)가 장악하고 있었던 레이저 스텔스 다이싱 시장으로의 신규 진입을 통해 삼성전자 HBM 기여분을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비메모리 반도체향 기여가 가능한 레이저 그루빙 장비의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생산 지형도 변화 관점에선 하나마이크론이 어드밴스드 패키징 투자 확대와 중국에 대한 생산 의존도 축소 효과의 덕을 볼 것으로 전망된다.
2022년 삼성전자의 HBM 시장 점유율은 40%, SK하이닉스는 50%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가장 최신 버전인 HBM3의 공급량만 보면 SK하이닉스의 시장 점유율은 95%에 이른다. 2023년 기준, HBM의 시장 점유율은 SK하이닉스 52%, 삼성전자 43%, 마이크론 5%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황민성 삼성증권 연구원은 “HBM2e에서 HBM3로 전환될 때 보였던 30% 후반의 가격 프리미엄이 재현될 것으로 보인다”라며 “업계의 증설로 HBM의 가격이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는 아직은 너무 이른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중국 리스크가 다소 완화됐다는 것도 긍정적이다. 미국 정부는 10월13일(현지시각) 미국 정부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중국 반도체 공장을 미 수출관리 규정에 따른 ‘검증된 최종사용자(VEU)’로 지정했다. VEU 방식은 중국 내 신뢰할 만한 기업을 지정하고, 기업과 협의해 지정된 품목에 대해 별도의 허가절차 및 유효기간 없이 수출을 승인하는 방식이다.
반도체 개별 종목 투자가 아닌 분산 투자를 택한다면 선택지가 많다. 투자 측면에서도 국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에 20개가량의 반도체 ETF가 상장돼 있어, 산업·테마 측면에서 가장 많은 ETF가 제공되고 있다.
KRX 반도체 지수를 추종하는 KODEX반도체 ETF나 TIGER반도체 ETF는 최근 6개월 수익률이 12%(10월 17일 기준), 1년 수익률이 32%다. 10월 17일 기준 구성비중을 보면 SK하이닉스 21.4%, 삼성전자 19.2%, 한미반도체 5.5%, DB하이텍 3.9%, 리노공업 3.4% 등이며 이외 HPSP, 이오테크닉스,원익IPS, 주성엔지니어링 등도 편입되어 있다.
KBSTAR 비메모리반도체액티브는 지수 추종이 아니라 펀드매니저가 자유롭게 종목과 편입비를 조절하는 방식이다. 비메모리 반도체(시스템반도체) 관련 산업에 속하며 우수한 기술력과 그에 연동되는 매출을 기반으로 고성장이 가능한 기업의 성과를 추종하도록 설계됐다. 삼성전자 13.63%, 한미반도체 10%, DB하이텍 7.75%, 리노공업 7.6% 등이 주요 구성종목이며 이외 이오테크닉스, 솔브레인, 주성엔지니어링, 하나마이크론, 대덕전자 등이 편입돼 있다.
신한자산운용이 올해 출시한 SOL 반도체 소부장Fn은 완성 업체를 배제하고 반도체 사이클상의 소재와 부품, 장비 업체만을 추종하는 ETF다. 한미반도체가 13.1%, HPSP 8.4%, 리노공업 8.1%, 이오테크닉스 6.8% 외 동진쎄미켐, 원익IPS, 솔브레인, 한미케미칼 등이 편입돼 있다.
김제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