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슈퍼 엘니뇨’가 지구를 덮치며 투자자들의 탄소배출권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엘니뇨는 페루 연안의 바닷물 온도가 평균 0.5도 이상 상승해 6개월 이상 지속하는 현상을 뜻한다. 엘니뇨 중에서도 바닷물 온도가 평년보다 2도 이상 높은 기간이 3개월 이상 계속되는 경우를 슈퍼 엘니뇨라고 한다. 엘니뇨가 발생하면 유럽·중남미에는 폭우와 폭염 현상이, 호주·동남아·인도에는 가뭄이 오는 등 이상기후가 발생한다. 세계 각국의 이상고온 현실화로 에너지 대란 우려가 커지며 탄소배출권에 대한 수요도 높아지고 있다. 탄소배출권이란 기업이 일정 배출권 범위 내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다. 각국 정부는 매년 배출 허용량을 설정하고 기업에 탄소배출권을 지급한다. 각 기업은 할당량에 따라 탄소를 배출해야 하는데 이를 넘기면 탄소배출권을 사 탄소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를 구매해 확보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탄소배출권이 거래되고 가격이 형성된다.
<잠깐용어> 탄소배출권(CERs)
지구온난화 유발 및 이를 가중시키는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로, 배출권을 할당받은 기업들은 의무적으로 할당 범위 내에서 온실가스를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남거나 부족한 배출권은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다. 현재 최대 시장은 환경규제에 민감한 유럽이다.
높은 관심을 대변하듯 탄소배출권 선물과 관련 파생상품의 변동성이 높아지고 있다. 유럽 ICE 선물거래소와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12월물 유럽 탄소배출권 선물 가격은 올해 초 t당 84유로 수준이었던 것이 지난 3월 97유로까지 오르며 100유로 문턱에 근접했다. 하지만 유럽 탄소배출권 가격은 지난 5월 80유로 아래로 떨어졌고 7월 17일 기준 t당 85유로선을 회복했다. 지난해 8월 러·우 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100유로에 근접하고 올 1분기도 무서운 상승세를 기록하는 등 상승세를 보인 탄소배출권이지만 최근에는 부진한 움직임을 보인다. 최근 에너지 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탄소배출권 수요도 줄어들면서다. 경기 침체로 인해 제조업 활동이 줄어들고 있는 점도 탄소배출권량 감소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단 증권가에서는 탄소배출권은 성장기에 불과한 만큼 기대감으로 단기 투자하기보다 중장기적 관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임은혜 삼성증권 연구원은 “탄소배출권은 청정에너지의 한 테마로 투자가 가능할 것”이라며 “ 다만 탄소배출권 가격이 올라갈수록 기업들이 탄소포집이나 저장 같은 탄소 배출 감소 기술 투자에 대한 유인이 늘어나기 때문에 수요와 공급 측면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 일종의 원자재 투자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발적 탄소배출권 시장(Voluntary Carbon Market)
개인, 기업, 정부, 비영리단체 등 다양한 조직이 자발적으로 탄소 감축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탄소크레디트를 창출하고 거래할 수 있는 민간 탄소 시장. 탄소크레디트는 온실가스의 배출 삭감 또는 흡수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생성되는 배출 삭감·흡수량을 가치화한 것으로, 탄소 상쇄에 이용하기 위해 거래되는 ‘상품’으로 인식된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이 불러온 에너지 대란은 유럽의 탄소 감축 필요성을 재차 상기시켰다. 유럽연합(EU)의 규제 강화 움직임에 최근 유럽의 탄소배출권 가격은 한때 t당 100유로를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유럽의 탄소배출권 가격 상승의 배경에는 지난해 12월 합의된 EU 탄소국경조정제(CBAM)가 있다. 이 제도의 핵심은 2039년까지 EU의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기업의 의무적인 탄소배출권 매입을 기존보다 엄격하게 규정한 것이다. 길게 보면 탄소배출권 가격은 지난 3년간 5배가량 상승했다. 그러나 주식 시장과 비교해 10년 이상 길게 보면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은 아니었다. 최근 유럽과 북미의 정책 변화와 전쟁이란 외생 변수에 가격 모멘텀이 커진 모습이다.
박수민 신한자산운용 ETF상품전략 팀장은 “탄소배출권 시장은 탄소중립(넷제로)을 위한 기후정책 강화 등 가격 상승요인과 경기 침체로 인한 기업의 생산활동 감소와 신재생에너지 사용 증가 등 가격 하락 요인이 혼재해 있다”고 설명했다.
탄소배출권을 직접 사고팔 수 없는 일반 투자자의 경우에는 상장지수펀드(ETF)를 통하면 간접적으로 투자할 수 있다.
미국 주식 시장에서 유럽의 탄소배출권에 투자하는 ETF는 대표적으로 ‘KraneShares Global Carbon ETF(티커명 KRBN)’와 ‘Krane Shares European Carbon AllowanceStrategy ETF(티커 KEUA)’가 있다. 두 상품은 모두 탄소배출권 선물에 투자하지만, 대상은 조금 차이가 있다. 두 상품 다 글로벌 탄소 배출 규제로 탄소배출권 가격이 높아질수록 좋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KRBN은 유럽과 미국 주요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탄소배출권 선물을 거래량에 기초해 가중치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투자한다. KEUA는 EU 배출권거래제(EUA)에서 거래되는 탄소배출권 선물지수를 따른다. KRBN은 주요 지역에 폭넓게 투자하고, KEUA는 유럽지역의 탄소배출권에 집중해 가격을 추종하는 셈이다. 다만 연초 이후 수익률은 높은 변동성으로 인해 7월 17일 기준 두 상품 모두 0.5%로 비슷하다.
국내 시장에서 탄소배출권에 투자할 수 있는 상품은 크게 ETF 4종목, ETN 4종목이다. 대표적으로 신한자산운용의 ‘SOL 유럽탄소배출권선물S&P(H) ETF’는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유럽 탄소배출권 12월물 가격 90%를 담고 있다. 유럽탄소배출권 시장은 전 세계 거래량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환 헤지가 되는 상품으로 환율 변동을 신경쓰지 않고 투자할 수 있다. 이 상품은 연초 이후 2.2% 상승했다.
같은 기간 삼성자산운용의 ‘KODEX 유럽탄소배출권선물ICE(H) ETF’도 4.8%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상품은 영국 ICE선물거래소에 상장된 유럽탄소배출권 선물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ICE EUA Carbon Futures Index ER’을 기초지수로 하며, 유럽 ICE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EUA의 가장 가까운 12월물 선물 가격을 추종한다.
NH아문디자산운용의 ‘HANARO 글로벌탄소배출권선물ICE(합성) ETF’는 연초 이후 –1%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 상품 역시 ‘ICE EUA Carbon Futures Index ER’을 기초지수로 하며 유럽, 미국 등의 탄소배출권 선물 12월물을 추종한다. 이처럼 같은 탄소배출권 선물에 투자하더라도 추종지수와 환 헤지 여부 등에 따라 수익률이 다른 것을 볼 수 있어 투자자들의 주의가 필요하다.
최근에는 탄소배출권 가격 하락에 베팅하는 인버스 투자상품도 출시됐다. 지난 6월 20일 신한자산운용은 유럽 탄소배출권 가격 하락에 투자하는 SOL 유럽탄소배출권선물인버스ICE(H) ETF를 상장했다. 이 상품은 상장 이후 7월 17일 기준 5.7% 수익률을 보인다. 탄소배출권이 급격한 성장 이후 조정을 보이자 인버스 상품의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 김정현 신한자산운용 ETF사업본부장은 “유럽 탄소배출권 자산에 대해서 양방향 투자 수요가 존재한다고 판단해 상품을 내놓게 된 것”이라며 “탄소배출권 수준에 따라 상장된 다양한 ETF를 활용해 투자할 수 있다”고 말했다. 탄소배출권 관련 ETF는 단기적으로 등락 폭이 크게 나타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유망한 투자상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박수민 신한자산운용 연구원은 “유럽 탄소배출권 가격은 최근 70~100유로 안에서 움직이고 있어 하락과 상승요인이 혼재돼 있다”며 “단기간 급등한 만큼 하락할 수 있는 구간에 진입했기 때문에 선별적으로 투자해 효과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탄소배출권 시장 자체가 확대될 수 있어 중장기 분할 매수 전략은 유효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강송철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탄소배출권 ETF는 분산 투자 효과도 얻을 수 있어 가격 조정이 올 때마다 분할로 접근하는 것도 좋다”며 “장기적으로 봤을 때 탄소배출권 거래제도 확대와 정책 강화, 공급 감소 등이 나타나면 가격 상승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금융당국은 자발적 탄소배출권 시장 개설 방안에 대해 검토 중이다. 한국거래소는 지난 4월 해외의 자발적 탄소배출권 시장에 대한 현황 파악에 나섰다. 거래소는 지난 2015년부터 환경부로부터 위탁받아 배출권 거래시장(K-ETS)을 운영해오고 있다. 금융위원회도 올 초부터 일본 금융청과 관련 논의를 꾸준히 이어오고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발적 탄소배출권시장(VCM·자발적 탄소 시장)은 정부가 주도하는 기존 탄소배출권 시장(CCM·규제적 탄소 시장)과 달리 민간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시장으로 향후 STO를 통한 거래방식도 고려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싱가포르·일본 등을 중심으로 VCM 시장은 세계 각국에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인다. 2021년 미국 컨설팅회사 맥킨지앤드컴퍼니에 따르면 탄소 크레디트의 발행 규모는 2020년 2억3400만 t에서 2021년 3억7800만 t으로 60% 이상 증가했다. 2030년까지 CCM과 비슷한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VCM이 도입되면 국내 배출권 시장의 가장 큰 단점으로 꼽혔던 유동성 부족 해소에도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2022년 기준 배출권 거래시장(K-ETS)의 거래량은 1200만 여 t으로, 배출허용총량(6억1100t)의 2% 수준에 불과하다. 미진한 거래량 탓에 가격 변동성도 크다. CCM의 보완적 성격인 VCM이 개설되면 배출권 거래가 늘면서 국내 CCM 시장의 성장을 이끌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VCM에서 거래되는 대상이 ‘크레디트’인 만큼 투명성을 강화하는 것이 VCM 활성화를 위한 핵심 과제로 꼽힌다. 이에 따라 모든 거래 정보가 기록되는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한 크레디트 발행이 주목받고 있다. 올해 초 금융위원회가 도입한 STO와 VCM의 결합 가능성이 높아지는 이유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세계적으로 자발적 배출권 거래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있다”라면서 “특히 블록체인 기술이 가진 높은 투명성과 보안성을 통하면 탄소배출권 거래 추적이 가능해진다는 점이 장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가상자산과 연계하면 거래가 쉬워지고 투자자 유입이 늘면서 배출권 유동성이 증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연구위원은 또 “올해 초부터 조각투자 등 STO 수혜가 기대되는 분야로 민간 기업의 사업 진출이 활발하게 이뤄져왔는데, STO로 민간 기업의 배만 불린다는 지적이 있었다”라면서 “VCM과 STO의 결합으로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국가적 과제를해결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