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묘년 새해 첫 주, 한국거래소에 상장된 ‘상장지수펀드(ETF)’ 중 인버스와 레버리지 같은 파생상품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수익률을 보인 것은 ‘은행’이었다. KODEX은행과 TIGER은행을 비롯해 KBSTAR200금융 등 금융지주사와 은행에 투자하는 ETF 수익률은 9~13%를 기록하며 하락세로 마무리 지었던 코스피를 상회했다. 새해 들어 정부의 대출 규제 완화 기대감과 함께 은행들의 수익성 개선이 점쳐졌기 때문이다. 시장 금리 상승, 은행의 순이자마진 개선을 비롯해 배당주로서의 매력도 한층 커졌다. 지난해 코스피는 20% 이상 떨어졌는데, 새해 시작과 함께 은행 관련 ETF에 투자했으면 최소 10% 이상 수익을 낼 수 있었다.
지난 한 해 주요국의 기준금리 인상과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 악재가 겹친 상황 속에서 한국과 미국 등 주요 증시는 크게 하락했다. 코스피는 20% 넘게 떨어졌으며 다우지수 9%, 나스닥 지수 33% 등 속된 말로 박살이 났다. 호재가 보이지 않자 사람들은 ETF로 관심을 돌렸다. 한 종목에 투자하기보다는 다양한 테마, 산업군으로 나눠 투자함으로써 하락장에서 수익률 방어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ETF 시장 규모는 처음으로 80조원을 넘어섰다.
새해 시작과 함께 은행 ETF 수익률이 크게 확대됐는데, 이는 예측하기 힘든 일이었다. 다만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새해 좋은 수익률을 낼 수 있는 ETF로 크게 세 가지를 꼽고 있다. 채권과 리오프닝, 그리고 성장주다.
지난해부터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을 비롯해 국내 주요 자산운용사들은 올해가 채권의 해가 될 것이라고 전망해왔다. 발 빠른 투자자들은 이미 지난해 하반기,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 금리가 급등하자 채권을 대거 사들이기도 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개인투자자들은 회사채와 기타 금융채, 국채, 특수채 등 채권을 21조4000억원 순매수했다. 2021년 대비 16조8000억원이나 증가한 수치다.
올해도 이 같은 기조는 이어지고 있다. 1월 중순까지 개인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순매수한 ETF는 TIGER 24-10 회사채(A+이상)와 KODEX 미국채울트라30년선물 등이 차지했다. 올해 들어 순자산총액이 많이 늘어난 ETF 역시 TIGER CD금리투자KIS(합성), KODEX 종합채권(AA-이상)액티브 같은 채권 ETF가 다수 상위권을 차지했다.
기업이나 공공기관이 대중이나 법인투자자에게 거액의 자금을 일시에 대량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채권은 그동안 개인투자자에게 딱히 매력 있는 상품이 아니었다. 채권을 발행한 기업이 망하면 원금 손실이 발생하는 만큼 공공기관이나 신용도가 높은 기업의 채권을 사야 안전한데, 금리가 상당히 낮아 투자 매력이 떨어졌다.
하지만 지난해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과 함께 이 같은 기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채권금리는 기본적으로 채권을 발행하는 기업이나 기관의 신용등급 외에 기준금리의 영향도 받는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새로 발행되는 채권은 기존 채권보다 금리가 더 높아진다. 그러면서 기존 채권 가격은 떨어지게 된다. 즉 채권 가격과 금리는 반대로 움직이는 만큼, 금리가 높을 때 채권을 사둔 투자자는 금리가 하락할 때 시세차익을 누릴 수 있다.
다만 최근 채권금리가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만큼 지난해에 채권을 구입한 투자자와 비교하면 누릴 수 있는 시세차익이 적다. 이 경우 장기채 ETF를 고려해보는 것도 좋다. 장기채권의 경우 단기채권과 비교했을 때 가격 변동 폭이 상당히 크다. 따라서 만기까지 갖고 있기보다는 금리 변동에 따른 시세차익이 발생했을 때 적절히 매도하는 방법도 있다.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금리 인상 자체는 남아 있지만 투자자들은 인상 기조가 마무리 단계에 가깝다고 판단, 채권 매수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초단기채권에 대한 인기는 줄고 있다. 금리가 내릴 것으로 예상되면 가격 변동 폭이 큰 장기채권이 수익률 측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부터 중국의 정책 변화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확대됐다. 지난 2년간 중국 정부가 ‘제로코로나 정책’을 고집하면서 중국의 경기는 상당히 위축됐다. 하지만 올해 제로코로나 정책 완화가 시작되면서 게임, 미디어와 같이 당장 수혜가 예상되는 종목들의 주가가 빠르게 반등하고 있다.
물론 중국이 방역 정책을 완화하면 다른 많은 나라들이 경험했듯, 일시적으로 코로나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가 빠르게 확대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만약 사망자 수가 증가하고 중국의 의료시설이 확진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오히려 경기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은 남아있다”며 “하지만 최근 코로나19 증상이 약화된 만큼 늦어도 1분기 이후 중국 역시 다른 나라들처럼 코로나 이전으로 일상이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한 3월에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와 함께 시진핑 주석의 세 번째 임기가 시작된다. 이와 함께 경기 부양을 위한 중국 당국의 지원이 있을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일상회복과 관련된 ETF 또한 올해 성장이 예고된다.
삼성자산운용은 “중국의 전면적인 일상회복 재개 상황이 오면 중국 정부 주도의 투자 확대 및 민간 기업 투자 장려로 인한 중국 내수 활성화가 기대된다”며 “KODEX 차이나CSI300, KODEX 차이나2차전지MSCI(합성), TIGER 차이나항셍테크 ETF 등으로 투자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시진핑 주석의 ‘공동부유’ 정책에 드라이브가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공동부유 정책의 핵심은 과학혁신과 저탄소배출이다. 이와 함께 중국 정부는 첨단산업, 신재생에너지산업에 대한 지원을 지속적으로 추진해나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관련 ETF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공동부유 정책 수혜 분야로는 정보기술과 신소재, 바이오테크 등이 꼽힌다”며 “그 밖에 인공지능, 양자, 반도체, 전기차 등의 산업에 대한 투자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중국 전기차 투자는 TIGER 차이나전기차 SOLACTIVE, 신재생에너지의 경우 TIGER 차이나클린에너지SOLACTIVE, 반도체는 TIGER 차이나반도체FACTSET 등의 ETF를 이용해 투자할 수 있다.
한화자산운용은 지난 1월 5일, 국내 방위산업 대표 기업에 투자하는 국내 최초 ETF ‘ARIRANG K방산Fn ETF’를 상장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비롯해 현대로템, 한화, LIG넥스원 등 관련 기업들에 투자하는 ETF다. 국제 정세가 불안하고 향후 지정학적 위기는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자 하락장 속에서도 국내 방산 업체들의 수출 규모는 크게 증가했다. 전 세계가 무기가 없는 평화협정을 맺지 않는 이상 첨단 무기에 대한 수요는 향후 꾸준히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처럼 성장 가능성에 무게를 둔 업종의 경우 올해 수익률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글로벌 하락장 속에서 특히 성장주의 경우 큰 하락을 맛봤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바이오 산업을 꼽을 수 있다. 지난해 하락장 속에서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주가는 크게 하락했다.
2022년 KRX헬스케어 지수는 30% 넘게 하락했으며 이에 바이오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 수익률도 크게 떨어졌다. KODEX바이오, TIGER 코스닥150바이오테크, KBSTAR 헬스케어 등 모두 25~ 30%가량 떨어지며 하락장을 이겨내지 못했다. ‘성장주형’ 기업의 경우 가파른 금리 인상과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로 투자 심리가 크게 위축되며 반등의 기회조차 찾지 못했다.
올해 관건은 신약 출시다. 바이오젠과 일라이릴리를 비롯해 머크, 젠맵 등 글로벌 제약 기업들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긍정적인 임상 결과를 발표하며 신약 출시를 예고했다. 여러 신약이 시장에 출시되면 올해 바이오주는 예상보다 빠른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특히 올해는 다양한 바이오 신약 임상과 출시가 예고된 해이기도 하다. 저명 과학 저널 네이처가 선정한 올 한 해 기대되는 과학성과 9개 중 4개가 바이오 분야일 정도다.
여기에는 바이오젠과 일라이릴리의 치매 치료제 임상 허가 여부를 비롯해 유전자 가위에 대한 임상 시험, 화이자가 진행하고 있는 코로나19와 독감에 모두 적용 가능한 차세대 백신 임상 결과 발표 등이 대거 포함됐다. 박재경 하나증권 연구원은 “제약·바이오 섹터 전반의 멀티플을 기대하기보다는 연구개발(R&D)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일부 기업에 대한 전략이 유효하다”고 말했다.
국내 바이오 기업들의 선전도 예상된다. 권해순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상반기, 항암제 임상이 진행 중인 유한양행과 오스코텍, 북경한미의 고성장이 기대되는 한미약품, 신제품 출시 효과가 반영되는 대웅제약의 주가 상승이 예상된다”며 “중반에는 레고켐바이오, 알테오젠의 기술이전, ABL 바이오의 항암제 글로벌 임상 1상 데이터 확인이 예고되어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산업 역시 올해 회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박세중 키움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은 “반도체의 경우 빠른 업황 하락에 따라 개선 시기도 앞당겨지고 있다”며 “단기적으로 1분기까지는 극도의 부진한 실적을 기록하겠으나 이후 반등 국면 진입이 예상된다. 다만 주가는 선반영하기 때문에 이미 반등 시작 중”이라고 설명했다.
원호섭 매일경제 증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