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이자 부담으로 부동산 수요가 위축되고 향후 집값이 더 내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각종 경매 지표는 급격히 얼어붙은 상태다. 내 집 마련이나 투자를 주저하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는 시기다. 하지만 알짜 물건은 냉각기 중에도 치열한 경쟁을 거쳐 주인을 찾는 법. 올 들어 경매 시장에 좋은 물건을 구해보려는 수요자 움직임이 슬슬 감지되는 이유다.
지난해 12월 전국 아파트 경매 진행 건수는 1754건으로 이 중 483건이 낙찰됐다. 낙찰률은 27.5%로 2004년 10월(27.2%), 12월(27.3%)에 이어 역대 세 번째로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경매로 나온 아파트 10채 중 주인을 찾는 물건이 3채도 안 된다는 얘기다.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도 2012년 8월(74.6%) 이후 10여 년 만에 가장 낮았다. 그동안 경매 시장에서 인기를 끈 서울 아파트의 낙찰가율(76.5%)도 2013년 12월(79.6%) 이후 9년 만에 80% 선이 무너졌다.
다만 현장에서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연초 경매 시장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최근 경매가 주춤하면서 감정가보다 낮은 물건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데다 경기 침체, 고금리 여파로 추가 물건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부동산 경매 시장을 찾는 사람이 다시 늘어날 조짐을 보인다.
1월 11일 오전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한 경매 법정은 이른 시간부터 경매 정보를 확인하는 예비입찰자와 경매 업체 관계자, 경매학원 수강생들이 몰려 붐볐다. 경매가 시작된 후에는 앉을 자리가 없어 서 있는 사람도 있었다. 다만 아직은 의욕적으로 응찰하기보다는 시장 분위기를 살피는 사람이 많았다. 경매 홍보물을 나눠주던 한 업체 직원은 “해가 바뀌자 경매 법원을 찾는 사람이 두 배 이상 늘었다”면서도 “아직은 분위기를 보러 오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여전히 응찰자 수는 적고 유찰 물건도 많지만 올 상반기가 끝날 때쯤이면 경매가 다시 인기를 끌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부동산 전문가들도 주택 가격이 하락세일 때 자신에게 맞는 물건을 잘 골라 내 집 마련 기회로 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조언한다. 경매 낙찰률과 낙찰가율이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한 것을 바꿔 말하면 그만큼 경쟁률이 낮고 헐값에 ‘내가’ 낙찰받을 확률도 높다는 얘기다. 예컨대 낙찰가율이 80%라면 10억원짜리 매물을 8억원에 낙찰받는 셈이다. 경매로 일반 거래보다 저렴하게 낙찰받으면 취득세도 줄일 수 있다. 또 토지거래허가구역이라 하더라도 경매로 취득하는 경우에는 토지 거래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 취득 후 의무 보유 기간이 따로 없어 소유권 이전도 바로 가능하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강남 3구와 용산구를 제외한 전 지역이 규제지역에서 해제되고 대출 규제도 완화됐기 때문에 경매로 집을 매수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라며 “특히 올해부터 특례보금자리론을 시행하면서 9억원 이하 경매 물건을 찾는 사람은 소폭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물론 시세보다 저렴하게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다 해서 아무런 준비 없이 경매에 뛰어들어서는 곤란하다. 저렴한 만큼 위험 부담도 따르는 게 경매다.
우선 부동산 경매를 처음 접하는 초보자라면 권리분석이 쉬운 물건부터 도전하는 것이 좋다. 권리분석은 경매로 나온 부동산에 법률적으로 문제가 있는지, 낙찰자가 낙찰 금액 외에 별도로 인수해야 하는 권리가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다. 경매 절차 중 가장 중요한 단계다. 경매에서 낙찰을 받아도 권리가 남았다면 낙찰자가 부담을 다 떠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세입자가 집주인으로부터 받지 못한 보증금을 낙찰자에게 내놓으라고 하면 상황에 따라 꼼짝없이 줘야 할 수 있다.
우선 등기부등본 읽는 법을 익히는 게 좋다. 갑구와 을구를 꼼꼼히 살펴 저당권, 근저당권, 가압류, 담보가등기, 경매개시결정등기, 전세권이란 단어가 있는지 찾아야 한다. 여러 개가 적혀 있다면 그중 날짜가 가장 빠른 것이 기준이 된다. 이 기준을 ‘말소기준등기’라고 한다. 경매가 이뤄지면 말소기준등기 이후에 올라온 권리는 모두 소멸된다고 보면 된다.
기본적으로 경매는 돈을 빌려준 누군가가 ‘집을 팔아 내 돈을 돌려달라’고 법원에 요청한 것이기에, 매각대금이 누구에게 배당되는지 확실히 해야 소유권 정리가 끝난다. 은행, 채권자, 임차인 등 매각대금이 누구에게 얼마나 가야 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가장 먼저 등기부등본에 올라있지만 배당에 나서지 않은 ‘임차인(선순위전세권)’, 재산을 처분할 수 없도록 법으로 묶어두는 ‘가처분’, 공사대금을 받기 위해 버티는 ‘유치권’이나 토지주가 달라져도 건물주가 계속 점유할 수 있도록 한 ‘법정지상권’ 등이다. 만일 권리 관계가 너무 복잡하다면 그 물건은 과감히 포기하는 게 좋다. 자신이 없다면 전문가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권리 관계에 문제가 없다면 이제 입찰가를 정할 차례다.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주변 시세를 조사해야 적정한 입찰가를 쓸 수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서 해당 물건과 주변 비슷한 매물의 최근 실거래 가격을 조사한다. 네이버부동산이나 호갱노노 같은 민간 사이트에서 호가와 실거래가를 비교해도 좋다.
여기서 알아둘 점은 경매가 신청될 경우 법원은 경매개시결정등기와 동시에 부동산 감정평가를 진행한다. 이후 여러 절차를 거치다 보면 최소 6개월, 길게는 1년 후에 투자자가 입찰할 수 있는 매각기일이 잡힌다. 감정평가 시점과 매각기일 간 시차가 꽤 나기 때문에 감정 가격이 시세를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요즘처럼 집값이 약세장일 경우 감정 가격이 시세보다 높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경매 감정 가격이 시세라는 인식은 버려야 한다.
최근 상황을 고려하면 감정가 대비 10% 이상 낮은 가격에 매입해야 손해를 덜 볼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아예 최소 두 차례 이상 유찰된 물건을 노려보는 것이 유리하다. 법원 경매에서는 1회 유찰될 때마다 입찰 최저가가 20%씩 내려간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 양천구 목동신시가지 7단지다. 목동 7단지 전용 101㎡ 매물은 당초 감정가가 26억2000만원에 책정됐으나 두 차례 유찰 끝에 18억6892만원에 낙찰됐다. 낙찰가율은 71.3%다. 같은 면적 아파트가 지난해 4월 25억4000만원에 실거래된 바 있고 최근에도 최소 23억원에 호가가 형성돼있으니 경매 낙찰자 입장에서는 꽤 괜찮은 투자였다. 최초 감정가 10억4000만원이었던 마포구 성산동 성산시영아파트 전용 47㎡는 네 번째 입찰 만에 6억3699만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낙찰가율은 61.2%다.
윤재호 메트로컨설팅 대표는 “불황기에는 시세 대비 감정가가 얼마나 높은지 꼼꼼히 따져보고 경매에 나서야 한다. 집값 바닥을 예단할 수 없는 만큼 환금성 좋고 한두 차례, 많게는 세 차례 이상 유찰돼 감정가가 급락한 매물을 노려볼 만하다”고 주문한다.
또한 해당 물건 지역의 시세를 보다 정확하게 판단하려면 무작정 인기 지역 매물이라고 해서 경매에 뛰어들기보다는 관심 지역을 몇 군데 정해놓고 집중적으로 공부해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입찰하기 전에 관심 지역 시세 흐름을 분석한 뒤 경매 매물 권리분석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목소리다.
적정 가격 판단이 끝났다면 현장에 꼭 가보는 게 좋다. 실제로 물건을 방문하면 곳곳이 망가졌거나, 채무자의 밀린 관리비가 쌓여 있는 등 ‘예상 못 한 문제’가 있을 수 있어서다. 관행상 밀린 관리비를 낙찰자가 부담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주변 공인중개사 사무소는 물론이고 관리사무소에도 들러서 현황을 파악하고, 밀린 비용이 있다면 입찰가에 미리 반영하자. 신속통합기획, 공공재개발 등 개발 호재 물건이나 서울·수도권 외곽, 지방 저평가 물건을 눈여겨보는 것도 방법이다.
지난 1월 둘째 주 가장 많은 응찰자를 기록한 물건인 경기 안양시 동안구에 위치한 한 A아파트 전용 102㎡의 경우 응찰자만 51명이 몰려 감정가(6억5000만원)의 124.8%인 8억1100만원에 낙찰됐다. 낙찰가율이 100%을 훌쩍 넘겼지만 나쁜 조건이 아니었다. 해당 물건의 감정이 2018년에 진행됐기 때문에 애초에 감정가가 최근 시세를 반영 못한 낮은 금액이었기 때문이었다. 권리분석상으로도 큰 문제가 없었고 주변 인프라 등 입지가 괜찮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았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시세차익이 목적이라면 재개발, 재건축 또는 남들이 잘 찾지 않는 소위 ‘특수물건’에 대한 접근 방법과 해결 방안 등을 공부해 실력을 쌓아가는 것도 좋다”며 “임대수익에 중점을 둔다면 상가나 오피스텔, 지식산업센터 등의 상권분석과 공실률, 수익률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지역분석을 틈틈이 해둬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목적을 정해 놓을수록 본인에 맞는 투자금과 적정 낙찰 가격 등에 대한 계획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매각기일에 보증금 잘 챙겨 적정 가격에 입찰하고, 마침내 물건을 낙찰받았다 해도 이후 신경 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소위 ‘사연 있는’ 물건이 경매 시장에 나오는 경우가 많은 만큼 부대비용을 감안해야 한다. 채권말소비용, 송달료, 세금 대납 등 법무비용 부담이 커질 수 있다.
마지막 단계는 낙찰받은 곳에 살고 있는 사람을 내보내는 ‘명도’ 절차다. 이사비를 줘서 나가게끔 합의하는 게 관행인데, 만약 이들이 나가지 않는다면 강제 집행을 통해 법적으로 내보내는 방법도 있다. 웬만하면 합의로 빠르고 확실하게 결정짓는 게 좋다. 이후 소유권 이전등기까지 하면 경매 절차는 마무리된다.
불가피하게 명도소송에 들어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때 점유자를 상대로 인도명령신청을 해두면 명도 판결문과 같은 강제집행권원을 얻을 수 있다. 인도명령신청은 낙찰자가 법원에 신청하면 보다 빠르게 강제집행을 할 수 있도록 한 절차다. 채무자나 대항력 없는 세입자 등 점유권이 없는 자는 모두 인도명령결정 대상이 된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경매 입찰 전 부동산 점유자의 상황을 살펴본 뒤 명도가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는 물건을 고르는 것이 좋다. 임차보증금 전액을 배당받을 수 있는 세입자가 있으면 유리하지만 반대로 채무가 과다한 소유자가 점유하고 있다면 낭패를 겪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다운 매경이코노미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9호 (2023년 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