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의 시작, 보험증권을 꺼내볼 시기다. ‘보험은 예전 상품일수록 좋다’ ‘옛날 보험은 해지하는 게 아니다’라는 재테크 격언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합리적 비용으로 제대로 보장받으려면 한 번씩 상품을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요즘은 보험사 앱에서 내가 가입한 상품 내역과 부족한 보장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보험은 가장 어려운 상품이다. 월 보험료가 저렴해도 가입 기간이 수십 년이니 수백~수천만원짜리 상품을 계약하는 셈이다. 게다가 계약 시점과 보험금 수령 시점이 몇 년 이상 차이 나기 때문에 계약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보험금을 받지 못하면 고객 불만이 높은 상품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기존 보험과 차별화한 다양한 혁신상품도 나오고 있다. 알면 돈 되는 보험 리모델링 정보와 신년 추천 상품을 정리했다.
2022년부터 이어진 기준금리 인상 행진은 저축보험 금리를 연 6%까지 끌어 올렸다. 대부분 5년 만기 일시납인데, 이 상품 덕분에 수조원대 목돈이 보험사로 흘러갔다. 그동안 은행권만 고집해왔다는 60대 이자생활자 오 모 씨는 최근 A생보사 저축보험에 가입했다. 오 씨는 “연 5% 후반대 확정금리를 준다고 해서 가입했는데, 열흘도 안 되어 바로 단종시키더라. 금리가 오를 만큼 올랐다고 판단해 5년짜리 고금리 상품을 확보해두는 차원에서 가입했는데 잘한 것 같다”고 말했다.
교보생명과 한화생명, 푸본현대생명, KDB생명 등은 2022년 말 연 5% 후반 확정금리 저축보험으로 인기를 모았다. 유동성 가뭄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2012~2013년 저금리 시절 가입한 고객들의 해지가 늘어난 데다, 1월부터 시행된 새 회계제도(IFRS17)에 대비하기 위해 자금을 확충해야 했다”면서 “고금리라고는 하지만 단기간에 너무 많은 자금이 몰려서 회사도 놀랐을 정도”라고 말했다. 고금리에 자금이 쏠리면서 대부분 상품들이 일주일도 안돼 ‘완판’됐다.
통상 보험은 해지하면 원금을 손해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최근 저축보험은 6개월이나 1년이 넘으면 100% 이상을 돌려주는 방식이라 부담이 크지 않은 것도 장점이다. 보험이기 때문에 정기예금 성격에 사망보장이 추가되는데, 만기 전에 사망하면 원금 외에 일정 보험금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단 대부분 5년 만기여서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은 명심하자.
수수료와 사업비를 떼기 때문에 실제 수익률이 표면상 금리보다 적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연 복리 4.5%를 제공하는 저축성보험의 경우 5년이 지난 후 받을 수 있는 실질금리는 연 복리 3.97%다. 고금리 상품에 가입하고 싶지만 보험사 재정이 걱정된다면 예금자보호 한도인 5000만원 미만으로 나누어 여러 곳에 가입하는 것도 방법이다. 내가 계약한 보험사 사정이 어려워져 다른 회사에 인수되어도 고객 자산과 계약 내용은 그대로 이전되어 계속 보장받을 수 있다.
최근 몇 년 새 자산 가격이 상승하면서 상속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종신보험이 상속세 재원 마련 수단으로 급부상한 것도 이때다. 기존 종신보험은 ‘금리확정형’이 대부분인데, 최근에는 고금리 기조에 맞춘 ‘금리연동형’ 상품도 나오고 있다. 한 생보사 관계자는 “기존 금리확정형 상품 이율이 2.25~2.5% 수준이다 보니 요즘 같은 때에는 금리연동형 상품을 추천해드린다”면서 “연동형 상품도 최저보증이율은 확정형 수준으로 설계되기 때문에 고객 입장에서는 연동형에 가입해 추가 이율을 노리는 것이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종신보험은 다른 상품에 비해 보험료가 높은 편이다. 보험사들은 가입 문턱을 낮추기 위해 보험료 대비 사망 보험금을 많이 책정한 ‘상속준비형’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이런 상품을 활용하면 합리적인 보험료로 비슷한 보장을 받을 수 있다. 생보 업계에서는 지금은 일반 종신보다 변액종신보험을 선택할 시기라고 조언한다. 투자자산 가격이 많이 떨어져 있는 만큼 수익률을 높일 가능성이 커서다. 그러나 변액보험 판매 추이를 보면, 주식 시장이 호황이었던 2021년에는 5조원을 훌쩍 넘었지만 2022년에는 반토막이 났다. 시장이 안 좋을 때 많이 사고 좋을 때 적게 사야 하는데, 소비자들은 거꾸로 투자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유백민 미래에셋생명 선임매니저는 “미국 시장 급락 뒤 3년 이후는 93%가 수익권이었다는 데이터가 있다. 지금은 주식 시장이 침체된 만큼 변액 상품에 가입하기 좋은 시기”라면서 “상속세를 대비하고 싶다면 변액종신보험 가입을 고려해볼 만하다. 금리확정형보다는 금리연동형, 일반종신보다는 변액종신을 선택하면 좋을 것”이라고 추천했다. 시기상으로 보면 추가 금리 인상이 예상되는 상반기에 확정형 고금리 상품에 가입하고, 하반기에는 변액연금이나 변액종신 같은 상품을 선택하면 된다.
보험의 비과세 혜택도 활용해볼 만하다. 2022년 9월부터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 2단계 개편이 적용되면서 연간 금융소득이 2000만원을 넘으면 피부양자 자격이 상실되고 지역가입자로 전환돼 보험료를 따로 내야 한다. 건보료 부담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장기 저축성보험에도 관심이 쏠린다. 10년 이상 가입하고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이자소득 비과세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한 생명보험사 관계자는 “과거 두 차례에 걸쳐 비과세 혜택이 줄었고, 앞으로도 계속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목돈을 넣지 않더라도 보험 상품으로 ‘비과세 주머니’를 만들어두고, 만기에 가까워질수록 추가납입 등으로 납입액을 늘리면 비과세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실제로 보험 비과세 혜택은 계속 축소되는 추세다. 2014년 2월 이후 가입한 저축성보험 계약부터는 1인당 2억원을 넘으면 비과세를 적용받지 못하게 바뀌었다. 2017년 4월부터는 가입기간 중 1회라도 월 납입보험 추가납입금액이 150만원을 넘으면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됐다. 이렇게 기준이 강화되기 전에 가입한 보험이 있다면 가능한 해지하지 말고 유지하는 것이 좋다.
아무리 좋은 상품에 가입했어도 보험은 중도에 해약하면 손해가 큰 경우가 많다. 설계사들이 ‘가장 좋은 보험테크는 해지하지 않고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최근 보험을 해지하거나 제때 보험료를 내지 못해 효력을 상실하는 경우도 급증하고 있다.
급전이 필요할 때는 보험약관대출이나 보험료를 줄이는 감액 제도 등을 활용해 최대한 계약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보험료 감액제도란 질병 사망금 1억원짜리 계약을 5000만원으로 줄이고 보험료를 낮추는 제도다. 기존 상품을 유지하면서 중복되는 특약만 해지할 수도 있으므로 해지 전 설계사와 상담해볼 것을 권한다.
보험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실손의료보험에는 가입되어 있기 마련이다. 3900만 명에 달하는 국민보험인데, 2022년에 이어 2023년에도 보험료가 계속 오르는 추세다. 대구에 사는 50대 손 모 씨는 지난달 4세대 실손으로 갈아탔다. 그는 “앞으로 한참 병원에 다닐 나이라는 걸 알지만 은퇴가 코앞인데 매달 20만원이 넘는 보험료를 내기가 너무 부담스럽더라. 내년, 내후년에도 계속 오른다는데 유지할 자신이 없었다”면서 “실손 보험료는 병원에 안 가면 다 날아가는 돈이지 않나. 1만~2만원대 4세대 상품으로 갈아타고 나머지 보험료로 적금을 들었다가 의료비로 쓰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병원에 자주 가거나 도수치료를 많이 받아야 하는 사람, 암 같은 주요 질환의 가족력이 있는 사람은 무리가 되더라도 기존 실손보험을 유지하는 것이 이득이다. 자기부담금이 없거나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년 인상될 것으로 예상되는 보험료를 감당할 수 없다면 4세대 전환도 고려해볼 만하다. 한 손해보험사 관계자는 “예전 실손이 좋다는 인식이 워낙 확고하다보니 고객들에게 4세대 가입을 적극 추천하기 어려운 분위기”라면서도 “최근 젊은 고객들 중에는 4세대로 갈아타고 나머지 보험료로 암과 심장질환, 뇌졸중 등에 대비할 수 있는 건강보험을 가입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했다.
최근 4세대로 전환했다는 30대 회사원 박 모 씨는 “50대나 60대까지 기존 상품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고, 그때 가서 다른 건강보험에 추가로 가입하려면 보험료도 비싸고 이미 유병력자일 확률도 높을 것 같았다. 실손으로 자잘한 보장을 받기보다, 치료비가 많이 드는 질환 위주로 대비하는 것이 낫지 싶어 전환했다”고 말했다. 4세대로 전환하려면 기존 보험을 해지하지 말고 보험사 콜센터나 설계사에게 전환을 신청해야 한다.
암보험의 효용도 예전과 다르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요즘은 암 치료비 중 많은 부분을 국가에서 중증환자산정특례제도로 보장해줘 개인 부담이 많이 줄었다. 그런데도 암 보장금액을 수천만원 이상으로 설정하는 것은 암으로 인한 실직과 생활비 보전을 위한 것이다. 치료비보다는 생활안정자금 성격이 강해졌다는 이야기다.
최근에는 중입자가속기와 양성자치료기 등 새로운 기술을 보장하는 상품도 속속 나오고 있다. 비용이 1억원에 달하지만 치료효과가 좋다는 기법들이다. 박문철 현대해상 설계사는 “중입자가속기가 지금은 비싸지만 10년 후면 저렴해지지 않겠나”라며 “이렇게 암보험 성격이 달라졌기 때문에 고객들에게 보험 기간을 길게 하지 말고 보장금액을 올리라고 추천한다. 예를 들어 같은 5만원이라도 100세 만기 20년납이면 암 진단비가 1000만원인데, 15년납 15년 만기로 설계하면 1억원까지 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상생활배상책임보험에 가입되어 있는지도 체크하자. 보장받을 수 있는 범위가 넓어 ‘가성비’ 좋은 상품으로 꼽힌다. 예전에 가입한 실손이나 건강보험에 특약으로 가입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요즘 상품 중에는 운전자보험이나 주택화재보험 특약으로 들어가 있다. 내 보험에 이 특약이 없다면 향후 다른 보험에 가입할 때 포함시키는 것이 좋다.
신찬옥 매일경제 금융부 기자